문화/예술/과학 게시판
소향이 나가수에 나온다는 소식이 있자 CCM를 부르거나 하나님한테 영광 돌리는 식의 발언을 하면 안된다 하는 분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듣기 싫다는 것인지 공중파에서 종교적 색채를 띠는 언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혹시라도 후자라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 그건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자존심을 깔아뭉개거나 협박을 하는 수준의 폭력적인 전도행위만 동반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곁가지로 하는 말이지만, 소향이 CCM쪽에서만 유명할 뿐 가창력을 인정받은 대중적 스타가 아니니 나가수에 나오는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역시 소박한 생각이다. 종교를 갖지 않은 대중도 종교음악을 즐길 수 있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지만 바흐의 종교적 색채 짙은 작품들을 빼놓고는 클래시컬 음악을 생각할 수 없다. 아마 죽는 순간에 가장 아쉬운 것중 하나는 '바흐의 곡들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일 것이다. CCM 가수라는것보다는 대중적이지 않다는게 문제라면, 엄밀한 의미의 대중적 스타는 팝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팝 아닌 모든 장르들의 스타들은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이지 않다. 록도 한국에서는 대중적 장르가 아니고, 따라서 지지난번 나왔던 국카스텐도 대중적 스타가 아니었다.
어느 게시판에서든 뜨거운 종교 관련 글타래를 볼때마다 개독교도들의 망상만큼이나 종교라는 것에 대한 초등학생 수준 이상의 깊은 생각이 피력되지 못한, 즉 소박한 종교 비난 글들, 특히 기독교 비난 글들에도 놀라곤 한다. 지식이 좀 있는 이들의 글조차도 정작 세계종교와 미신의 차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전무하거나 종파들과 신학적 입장들의 다양성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거나 해당 종교를 앞세운 이들이 저지른 만행과 악행만으로 해당 종교가 차라리 없었던게 좋았다라는 식의 유치한 주장을 하곤 한다. 예수와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의 차이를 못보거나 카톨릭 때문에 중세 서구 사회가 암흑사회가 되었다 등등.. 자신이 믿는 종교를 거의 미신으로 타락시키는 이들과 보편적/인간적 현상으로서의 종교 - 반면 과학은 덜 인간적이고 덜 보편적인 현상이다 - 에 대한 이해가 박약한 이들이 서로를 강화하면서 서로를 반영하고 있는 이런 현상은 참 보기 안스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시민교양이라는 인식이어야 한다. 종교를 갖느냐 안갖느냐는 개인의 자유지만 종교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주제를 가지고 지적으로 고민하는 경험은 의무교육이 촉진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될 생각이 없고 거의 문학작품을 안읽고 살아가게 될 이들도 국어시간에 의무적으로 문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듯이 말이다. 아주 짧게 말하면, 성경, 불경 등등은 안읽어도 그만인 판타지가아니라 '고전'이라는 말이다. 신앙이 지성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어도 지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는 하다는 사실에 유독 둔감한 한국의 기성 종교제도들의, 해당 종교 신앙인들에 대한 나쁜 영향력을 상쇄하는데도 이 교육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새로 교과목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기존 교과목들 두 셋에 종교 관련 챕터들을 추가하고 서술형 시험과 논술고사에 종교 관련주제들의 출제 빈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은 좋은 방법일 듯하다.
첫번째 문단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FSM은 종교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소통 불가능한 비합리적인 맹신에 대해 경계하는 이들의 모임이니 직접비교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기독교 교전을 일종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이라 생각나는 게 있는데, 예전에 모태신앙으로 교회 다니던 시절 신약을 후딱 읽어버리게 했던 계기가 다음 구절이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편 7절-10절>
이 문장이 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더랬는데... 그게 거의 20년 전쯤의 일이 되겠군요. 암튼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것 말고도, 시편 23편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기도문도 있죠. 종교적인 것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그 안에 죽음에 대한 인간의 절망과 구원, 승리에 대한 갈망이 녹아들어 있어서 지금도 종종 입 안으로 되뇌곤 합니다. 종교학 일반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문학적으로 접근해도 정말 근사한 문장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덧, 호러 및 고어 장르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종교적 텍스트는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
소위 우리나라 합리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은 종교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지요
엄연히 우리의 과거이며 역사인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판할 때도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을 기독교도들의 학살로 비약을 시킵니다
아니 그러면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침략은 불교도들에 의한 고구려 학살이고
반대로 광개토대왕의 요동경략도 불교도인들의 학살이고
그런데 이런 유치한 개그가 자칭 신학자라는 오강남 박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유독 기독교에게만 종교적 교리의 실천이 국가적으로도 그대로 실천되기를 요구하는 이상한
그리고 국가가 하는 일이 종교가 하는일로 평가를 하는 불공평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종교를 논하는 수준이지요
성경만이 아니라 불교 유교도 풍부한 유산들이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도서관에서 금장태 교수의 한국유교와 타종교라는 책을 빌려왔군요
종교에 관하여....
요즘 독실한 기독교 신자분과 같은 곳에서 일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는데 정말 머리가 딱딱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기독교 관점으로만 해석하고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정치 이야기를 나눠도,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결국은 그 종교관으로 귀결됩니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세계화도, 한국 경제의 발전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기독교의 하나님 때문에 이만큼 살게 되었으며,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스마트폰으로 교류하게 되는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된 발전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힘들어 죽을 지경이입니다!!
종교 공부를 제법 깊이한 저로서는 그분의 그 맹목적인 종교관에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두어해 전부터 일 때문에 읽은 책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성경밖에 읽지 않으신 분 같습니다. 그런데도 모르는 게 없습니다. 다 자신의 생각이 객관적이라며 주장을 하십니다. 아~, 종교의 해악을 아주 절절하게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주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절대 어떤 대화도 나누지 말자"고 말입니다!^^
진실된 신앙인들에게는 좀 죄송한 말씀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진심으로 이 세상에서 하루 빨리 종교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휴~
생각은 그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에는 여러가지 특성이 있다. 인간의 생각은 감정을 초래한다. 감정은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은 습관을 형성하다. 그러한 습관은 인간의 삶의 질을 좌우하고, 운명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생각을 잘 해야만 한다. 생각의 질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생각, 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사람의 생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신념, 가치관, 종교이다. 인간은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갖가지 생각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생각의 힘도 커진다. 상상력, 추론력, 예측력, 통찰력, 분석력 등등. 생각은 모든 능력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은 다양한 감정을 유발한다고 했다. 생각은 비교하는 것에 의해서 판단하게 되고 감정을 낳게 된다. 나라는 생각은 타라는 관념을 낳게 된다. 작다는 생각은 크다는 비교 관념을 낳는다. 비교는 불만이나, 불평등, 시기심, 불편함 등의 많은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 생각에 의해서 인간의 감정이 물위에 출렁이는 강가의 뗏목처럼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러한 생각은 마침내 인간을 다치게 한다. 나와 상대가 있을 때 생각은 다툼을 유발한다. 특히 종교에 의한 생각은 가장 분란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들은 신념, 종교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인간에게 신념, 종교, 가치관이라고 하는 생각 덩어리가 중요한 것이다. 어떤 한 종교를 가진 자와 다른 종교를 가진 자가 만나면 결코 화합할 수가 없다. 생각과 생각이 부딪히기 때문에 다투게 된다. 절대 화합이란 있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깊은 교류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사사건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려면 생각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고로 종교가 같거나 아예 없는 편이 낫다. 그렇지만 종교를 버리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 개인이 살아가는 데는 종교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전혀 없다.
그는 종교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어짜피 인간은 무리지어 살 수 밖에 없다. 사회를 이루어야 하고, 국가 속에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전세계가 개방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종교가 문제가 된다. 그 동안 종교가 얼마나 큰 역사적 비극을 초래해 왔는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잘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는 종교 전쟁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전쟁 속에 있는데, 지구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한 개인이 자신의 종교 속에서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류가 화합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종교를 버리거나 모든 인류가 동의할 수 있는 더 큰 개념의 종교가 나와야만 할 것이다. 더 큰 개념의 종교가 나오거나 다른 관념 체계를 갖기 전까지는 우리는 두가지 조치밖에 취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무조건 각자 자신의 종교를 버리거나, 적어도 종교를 가볍게 취급해야만 할 것이다. 어떻게 종교를 가볍게 취급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지구가 변하고 과학이 발전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의 범위가 넓어졌는데 어찌 아직 과거에 생각에 매여 살 것인가.
종교는 분명 인간의 생각을 제한한다.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 세상의 사람끼리의 다툼이나 의견 다툼도 실은 인식의 다름일 뿐이다. 동일한 사물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거나, 서로 다른 속성만을 고찰하는 것이다. 개인의 개성의 차이라기 보다는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결혼에 대해서, 선악에 대해서 다른 기준 혹은 관점을 갖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는 것은 생각의 범위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반목하는 것은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각자가 주인공인 것이다. 그들의 다툼과 분쟁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서로를 대하는 길 뿐이다. 사회의 분열과 다툼에는 생각이 차이, 근본적으로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입장의 차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의 견해 차이, 지배자인 정부와 국민의 인식의 차이가 세상에 불협화음을 초래하는 것이다. 가장 큰 차이를 유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다.
사람들은 흔히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민감하고, 뿌리 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자간에 정치에 관해서 이견이 있어서 의를 끊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종교 때문에 가족이 반목하는 경우는 어떤가. 종교는 그만큼 무서운 생각의 주머니이다. 자, 가장 종교 인구수가 많다고 하는 기독교와 불교를 생각해볼까.
불교와 기독교, 어떤 종교가 진리일까?
두 종교는 서로 제 쪽이 낫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느 쪽이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종교가 합리적이라고 하는 순간, 다른 쪽은 비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어서게 되고, 자신의 종교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된다. 그 순간 대립이 생기고 만다. 각종 불협화음이 생길 수 박에 없다. 그런데 정말 어떤 종교가 더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종교는 모두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시간을 가졌다. 한쪽이 옳았다면 다른 쪽 종교는 자연 포섭되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앞으로 수만년이 더 흐른다고 해도 어느 쪽이 진리인지 밝혀지지도 않을 뿐더러 포섭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둘다 진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둘 다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어쨌든 두 종교는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기독교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고, 불교는 ‘자비심으로 갖고 이웃을 대하라’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핵심 사상이 아니라면 어느 종교도 계속 이 지구상에 설 명분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 서로 죽이거나 다투거나 상처를 준 게 더 많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랑과 자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왜 그럴까? 제대로 된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거나, 극히 어려운 수행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이 어렵게 깨달은 것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종교는 버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의 차이만 낳아서 다투고 싸우게만 만들었다면 진즉에 없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보자!
인간의 생각, 인식의 차이가 어떻게 서로 문제를 일으키는가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옳다고 하면 다른 것은 그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다툼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관점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옳다고 하는 점은 변하게 된다. 가령 자신을 경상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나아가 지구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는 무척 중요한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관점에서 보아 불교 혹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존재로 존재할 할 것인가. 한국인으로 살 것인지, 지구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우주인으로 살 것인지는 그대 생각에 달려 있다. 또 불교인으로 살 것인가, 기독교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위대한 신으로 존재할 것인가는 그대 선택에 달려 있다. 옳고 그름은 없다.
제가 전에 썼던 글이지만, 저 글에서 예상했던 일을 그대로 겪고 있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는 정말 피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기에 망정이지 늘 다툼으로 끝나고 맙니다. 적당한 선에서, 이제 그만합시다 하며 이야기를 끝내고 맙니다.
만일 한 부부가 혹은 한 가정에서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참으로 힘들겠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정말 종교에 대해서 깊이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구~~~ 골 아파라!
분별심에 대하여...
종교에 대해서 논하려면, 저는 불교 공부는 좀 철저하게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의식구조 혹은 인식에 대해서 불교만큼 철저하게 연구한 학문(?)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교를 인간의 의식세계에 관한 최고의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완벽하리만치 철저하게 밝혀 놓은 셈입니다. 그것도 벌써 몇천년 전에 말입니다.^^ 오늘날의 심리학이니, 특히 인식론이니 인지심리학 등은 아주 낮은 수준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전철을 기다리면서 겪은 일입니다만 저는, 종교에 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된, 마땅히 그러한 자리에서라면 -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준비가 된 예배 시간 등 - 문제가 없겠지만 무시로 자신의 종교관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크게 거스릴 수가 있다고 봅니다. 비록 종교라고 해도 음악성이나 예술성으로 접근한다면 문제가 덜 하겠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기대하고 있는데, 종교적 색채가 강한 가사가 들리어 온다면 분명 듣는 이에게는 거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 그건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자존심을 깔아뭉개거나 협박을 하는 수준의 폭력적인 전도행위만 동반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폭력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다를 수도 있겠지만, 오늘 기독교 구원론을 열심히 설파하신 그 아주머니는 우연히 그 주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어 폭력일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시끄럽고 귀에 거슬렸기에 주위에서 듣고 있던 젊은 아주머니께서 '그만 좀 하시라고' 소리를 쳤겠습니까?
어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음악의 가사에는 종교적 교리 혹은 주장, 또는 체험이 실려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제 윗글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그것은 곧 분별심을 초래하게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진리라는 혹은 최고라는 신념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대중매체에서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더 크게 더 강하게 주장하는 효과를 가질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자의에 반하여 듣고 싶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종교가 진리이고 옳고 최고라는 생각은, 다른 것들을 배타적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분이,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내면서까지 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설파했던 것이구요. 옳고 그른 분별심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저는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 종교든 거의 위협적인 수준입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은 구원받지 못한다, 내세의 행복이 없다. 사람들의 나약한 면을 아주 치명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지요. 누군들 구원을 받고 싶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혹 있을지 모를 내세에서나마 행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소망을 파고들어가 소구하는 것이지요.
같이 대화를 나누고 하는 기독교 종교인은 불교에 비해 기독교가 우월하다고 합니다. 기독교에는 구원론이 있기 때문이라면, 그것이 없는 불교에 비해 월등한 종교라는 것이지요. 글쎄요, 그 분이 불경을 한번 읽어보셨을지 의심이 많이 듭니다. 내 종교가 진리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열등하고, 그러므로 타파해야할 대상으로 인식되게 되는 것이지요. 종교에 있어서 다른 종교를 포용하거나 인정하는 관용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 봅니다.
종교가 이런 저런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면, 다 종교 한 공동체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시민 교양으로서의 종교 논의는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아가 종교들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종교와 신앙이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와 미신의 차이 등등에 대한 심층있는 논의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 조화롭고 협력하면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인간은 종교에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인가?
2012. 7. 14.
23:13
종교 연구가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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