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즘 오랫동안 마음의 숙제이었던 남아공 방문을 결행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답사였다. 굳이 여행에 아니라 답사라고 강조하는 까닭은 나머지 생애를 그 곳에서 살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보이는 단순한 현상들 보다는 가능한대로 그 현상 뒤에 있는 구조를 보려고 노력 했다.

 

남아공은 빈부 격차와 범죄와 부패가 심한 위험한 나라이다. 국민의 50%가 실업상태라고 하니 일거리가 있고 방 한 칸이라도 안전하게 살 집이 있다는 것은 죽어서 간다는 천국 보다 몇 배가 더 귀한 것이다. 그래서 남아공 흑인들은 일자리만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새벽에 일어나서 걸어서라도 간단다. 나를 부르는 바람과 구름 부부는 어릴 적 배고팠던 기억 때문에 지난 20 년 동안 죽지 않을 만큼 일을 해서 현재는 30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회사를 운영 하고 있고 앞으로 그 가족들을 전부 불러서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본인들의 배고픔을 벋어나 흑인들의 배고픔을 해결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남아공에는 왜 가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바람의 계획을 설명하니까 “그렇다면 자선사업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은 간단히 말해서 돈을 벌어서 흑인 생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자선 사업이 아니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질문이 참 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질문은 바람의 목표를 정의하는 일에 핵심 키워드가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되었다.


자선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사업도 규모가 커지면 재단이 되고 재단이 계속적으로도 유지되려면 후원금이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관리 비용이 들어간다. 정확한 통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선 재단의 실제 사업비용 보다 관리 비용이 높아서 문제가 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 계속 돈이 드는 구조라서 정작 사업을 하는데 쓸 돈이 부족한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 공동체는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구조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수입은 자본주의적으로 하고 지출은 사회주의적으로 하는 즉 영리사업을 해서 비영리 지출을 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살게 위해서는 농산물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자립경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면서 살 수는 없지만 효과적으로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바로 공동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생활공동체 운동은 당장에 급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는 생태공동체 운동으로 발전 할 수 있다.


호주 대륙에서 시드니의 정반대편인 동부 해안에 있는 퍼스에 있는 자연주의자들이 사는 공동체를 방문 했을 때 공동체의 리더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놀란 것은 그들의 집 바닥이 카펫이나 마루가 아닌 흙바닥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맨 땅에다 침대와 가구들을 놓고 살고 있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으로 보존하면서 살자는 그들의 철학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런 문화를 퍼머컬쳐 permaculture 라고 한다. 영속적인 농업(permanent agriculture) 혹은 영속적인 문화 (permanent culture)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자원을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지금처럼 자원을 인정사정없이 써버리고 또한 사용 뒤에 폐기물들을 남기게 되는 망하는 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순환적으로 사용하여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또한 사용 이후의 폐기되는 자원의 양을 가능한 줄이고 그 폐기물을 다른 차원의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모든 사고 체계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불쌍한 어머니 지구를 생각해서 덜 쓰면서도 좋은 것 생산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운동이다.


몇 해 전에 한국에 갔을 때 바람과 함께 방문했던 경남 산청의 민들레 마을은 공동체 식구들의 대부분 먹을거리가 자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유기 농사를 짓고, 퇴비도 직접 만들고, 단열이 뛰어나 에너지 효율 면에서 아주 우수한 볏단을 넣은 집(스트로베일하우스)를 짓고 폐식용유로 만든 기름으로 차도 운행하고, 바람과 자전거를 활용한 에너지 만들기도 했다. 영국에서 대안기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기술자가 다양한 대안 기술을 공동체 안에서 구현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열 에너지를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공동체 식구들의 취사는 기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비효율적인 면도 있지만 대안적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Alternative Lifestyle(대안적 삶)’이라는 말은 1966년을 기점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반문화 운동으로 히피운동에서부터 퍼져 나간 말이다.

바람과는 그동안 한국에 나갈 때마다 시간을 맞추어 만나서 잠깐씩 이야기도 했지만 번번이 시간에 쫓겨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이번에는 뿌리는 뽑는 마음으로 이야기라도 실컷 해보고 행여 내가 밥숟가락이라도 놓을 일이 있을까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몇 해전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의 길은 고귀한 길이지만 그 길은 아무나 따라 할 수없는 길이다. 하지만 빈곤과 부패와 범죄가 만연한 남아공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바람의 소원은 뜻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생을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저곳 공동체를 찾아다닌 끝이 남아공이 될 것인가는 아직 모르겠다. 성질만 안 죽었지만 몸은 이미 노인체질로 바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했다. 내가 남아공에 가서 할 일을 찾으려고 한다니까 이구동성으로 위험한 곳에 왜 가느냐고 하지만 만약에 흑인들의 위해서 조그만 일이라도 하다가 흑인들에게 총 맞아 죽는다면 그것 보다 값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심장에 정통으로 맞아서 죽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엉뚱한 맞아서 몸도 못 쓰고 병신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그래서 심장에 권총 타깃을 디자인한 옷을 입어야 되겠다고 했다.


낮선 땅, 낮선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욱이 치안이 불안해서 늘 전투에 투입된 병사처럼 사주경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과 전혀 다른 이해를 해야 하는 일도 힘든 일이다. 나는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다녀와서 몸살을 앓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말이 통해도 전혀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몸보다 뇌가 피곤해서 곤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장장 14 시간 비행 끝에 남아공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울린 사건은 바람의 집 50대 흑인 가정부 메기와 악수를 하는데 두 손을 공손하게 내미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사업장에서 만나는 직원들도 악수를 할 때 두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현상은 요즘 한국 젊은이들에게서도 점점 사라지는 현상인데 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대도시가 아닌 시골 동네에서는 어른 앞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면 매를 맞는다고 한다. 그런 어른에 대한 공경이 조금 발전해서 자신의 고용주나 손님에게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사실 아프리카를 가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과연 아프리카의 원시적인 문화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시드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러보니 아프리카를 가는 비행기에 흑인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침 내 앞 의자에 안경을 쓴 척 봐도 먹물 깨나 먹은 것 같아 보이는 젊은 흑인이 멜번의 모나쉬 대학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잘되었다 싶어서 말을 붙였다.

“모나쉬 대학에 다니는 모양이구나. 내 아들도 모나쉬 대학교 교수다.”하고. 이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는 모나쉬 대학에서 마침 ‘아프리카의 마을문화와 서구화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남아공에 가서 흑인들의 생활이나 행동 양식을 보고 나니까 그가 쓰는 논문의 주제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서구화된 오늘날의 흑인들의 삶에서 부락문화는 깡그리 사라졌다.


태초 이래 흑인들의 마을 문화는 자연과 이웃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혼자서는 생존을 할 수 없고 농사나 사냥을 하더라도 항상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해야 했었다. 지금도 이런 전통이 조금은 남아서 도시로 몰려온 흑인들 가운데 같이 사는 동료가 실직을 해도 나누어 먹는 것에서는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백인들에 의한 식민화의 결과로 흑인들의 마을 공동체는 점차 사라지고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과거처럼 마을에서 단순하게 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된 흑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동물이 되어야 했다. 도시화된 흑인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란 것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요즘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전통부락은 모두 민속촌이라고 보면 된다. 원주민은 없고 원주민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는 있다고 하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원래 바닥이 얇은 이민 생활이란 한 번 실수 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바람 부부는 현실적으로는 위험한 개척자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크고 넓은 이상을 품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일치하지 않는 이런 상태는 자칫하면 위험에 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억척같은 의지를 가지고 현실적인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 가면서도 품고 있는 이상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원래 성과적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성공적이라는 말을 대신에서 사용하는 말인데 나는 어쩐지 이 말이 더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성공은 결과를 말해 주는 것 같지만 성과는 단기적인 효율을 말해주는 것 같은 어감이 들기 때문이다.


바람의 집은 주거 환경으로서는 최상의 조건인 요한네스버그 시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백인 지역에 5,000평의 대저택이다. 부근의 집이 모두 그 이상의 규모이고 바람의 집은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바람은 농사도 짓고 많은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 큰 땅과 집이 필요해서 이 집에 사는 것이지 결코 호화롭게 살기 위해서 땅이 넓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본채와 부속 건물 2 채와 컨테이너 3 대를 들여놓고 바람의 가족을 비롯해서 20 여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전기는 있어도 전화가 없다는 것이다. 도로에 나가 보면 전화선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데 감전이 되니까 전기선은 못 끊어가고 전화선이나 케이블은 끊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선 인터넷은 당연히 안 되어 고가의 무선 인터넷을 쓰고 있다. 그래서 멕가이버의 사촌(?)인 남편 구름은 6Km 떨어진 사무실의 인터넷을 끌어 쓰기 위해서 안테나를 높이 세워서 전파를 받아쓰는 노력을 하고 있고 현재 시험 중이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전화선들이 멀쩡히 있는 것을 보고 구름에게 당신네 동네는 전화선이 끊겨서 전화를 못 쓰는데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도둑질도 타산이 맞아야 하지요. 전화선을 절단하기 위해서 기름 값 없애면서 차를 끌고 와야지 끊은 다음에는 팔러 돌아 다녀야지. 한 마디로 원가가 안 나오는 거지요. 도시는 바로 끊어서 동네 고물상에 갖다 주면 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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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뉴라이트가 되다(?)     http://theacro.com/zbxe/5139436


3편: 만델라도 해결 못한 문제들    http://theacro.com/zbxe/5140463


4편: 흑인은 열등한가?   http://theacro.com/zbxe/5141358


5편: 신뢰의 값   http://theacro.com/zbxe/5142456


6편: 기술학교의 꿈  http://theacro.com/zbxe/5143010


최종회: 아름다운  관계  http://theacro.com/zbxe/5144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