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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그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이라는 던져진 텍스트에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새타이어 · 패러디 · 아이러니 · 패러독스’ 따위다. 이게 핵심이다. 이거 웬만한 식자들에겐 너무나 뻔한 얘기다. 그러나 이 진부한 얘기를 첫머리에 반복하는 까닭은 “강남스타일”(과 박노자)에 관해 한마디쯤 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만큼은 ‘새타이어 · 패러디 · 아이러니 · 패러독스’의 기본 미덕을 까마득히 망각하기 때문이다. 즉 “강남스타일”의 풍자적 측면은 거론하면서 그 순간 자기자신은 풍자적 미덕을 거의 발휘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킨 촘스키의 “MIT Gangnam Style” 찬조 출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골 지식인의 대명사 촘스키가 “싼티”가 줄줄 흐르는 대중음악, “가장 조잡하고 동물적인 자본주의적 욕망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최저질의 세뇌제” 패러디 영상에 기꺼이 출연한 까닭은 ‘새타이어 · 패러디 · 아이러니 · 패러독스’의 미덕을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이라는 텍스트에서 읽어냈기 때문이다. 촘스키 오빠는 좋은 게 좋다고 괜히 유행 따라 출연하는 무골호인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촘스키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은 비판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작품이 ‘새타이어 · 패러디 · 아이러니 · 패러독스’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은 그 작품이 본질적으로 비판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이런 공통적 요소가 겉보기에 전혀 이질적인 두 극이 서로 통한 까닭이다.
만약에 ‘포스트모던’스러운 좌파 지식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슬라보이 지제크)이 “강남스타일”이라는 텍스트를 분석한다면, 아주 재미난 글이 나올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이론)의 본질적 속성은 극과 극이 맞부딪쳐 일으키는 충돌과 긴장과 갈등의 국면들, 그때 빚어지는 핵분열 혹은 핵융합의 산물들을 주로 탐구하는 분석적 속성이라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관념론↔유물론 따위처럼 그의 이론에는 항상 대립항들이 따라다닌다. 그의 철학/이론의 핵심이다. 이런 핵심적 요소가 “강남스타일” 자체에 내재돼 있고, 나아가서 “강남스타일”을 둘러싼 논쟁의 판세 속에도 극과 극의 대립적 구도가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는 판국이다. 따라서 이런 최적의 (변증법적) 대립항들을 풍부히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세계적인 문화 현상(Gangnam Style Phenomenon)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흥미만점의 텍스트 “강남스타일”에 대해서 논평하지 않는 문화비평가 지젝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일 것이다.^^
박노자의 비판글 「강남스타일’, 최저질의 세뇌제」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박노자가 이 비판글에서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말 충실하게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판의 세부 사항에서는 남종석 님, 이덕하 님 같은 분들이 지적했듯이 남한의 사회 현실을 약간은 오독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판의 대의를 무산시킬 만한 것이 전혀 아니라서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박노자 비판자들은 박노자의 인식이 시대착오적이고 황당하다며 아주 정색을 하고 진지한 반론을 조목조목 늘어놓고 있는데, 다름 아닌 “강남스타일” 자체의 풍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그 반박글들이 더 우스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박노자 비판자들은 박노자가 “강남스타일”의 풍자적/패러디적 요소를 간과하고/무시하고 현실성 없는 극좌적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완전히 오독하고 있다고 강력 비판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비판 자체가 풍자적/패러디적 여유를 망각하고 곧이곧대로 역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판자들은 “강남스타일”의 자본주의/물신주의에 대한 풍자적/패러디적 요소를 박노자 비판의 주요 논거로 거론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풍자적/패러디적 컨텍스트의 맥락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대쪽에서 말하자면, 박노자의 일견 극좌파적인(?) “강남스타일” 비판은 “강남스타일”이 생성시킨 하나의 컨텍스트 세계에서는 그 비판적 적실성이 아주 유효하다는 것이다. 즉 풍자적 요소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진보좌파의 전복적이고 반체제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박노자의 글이 더 풍자적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극과 극은 상통한다. 이런 풍자의 컨텍스트를 망각하고 딴엔 진지하고 진중한 정면 비판을 훈계하듯 조목조목 늘어놓는 논자들이 어찌 더 우스꽝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덕하 님의 위 댓글로만 판단한다면, 이덕하 님께선 제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물론 그 까닭은 제가 작문을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덕하 님께선 위 댓글에서 전혀 뜬금없는 얘기를 하시고 있습니다.
박노자 선생께서 “강남스타일”에 대해 “진중한 정면 비판”을 의도했다는 말씀은 당연히 맞는 말씀입니다. 박노자 선생 자신이 풍자를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죠. 이런 요지의 이야기는 이미 제가 윗글에서 주장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이덕하 님께서 〈박노자 씨의 두 편의 글은 전혀 풍자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적어도 박노자 씨 자신은 “진중한 정면 비판”을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반박하신 것은 정말 뜬금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윗글에서 좀 더 상세히 적지 못한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풍자(Parody)는 (싸이의 용어를 약간 빌려 말하자면) 아주 진중한 것을 한심스럽게/우스꽝스럽게, 혹은 그 반대로 아주 한심스러운/우스꽝스러운 것을 진중하게 흉내내거나 희화화해서 비판하는 것이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 뮤비는 대중문화적 컨텍스트에서 볼 때 아주 우스꽝스러운 내용을 담은 작품이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없이 가볍고 유희스런 풍자 작품에 대해 느닷없이 박노자 선생께서 진중하고 무거운 진보좌파적 시각의 비판을 들고나왔을 때 많은 논자들이 예의 그 “황당함”을 느끼고 말도 되지 않는다는 식의 반론을 펼쳤던 것입니다. 즉 “강남스타일”의 한없이 가벼운 유희성과 박노자 선생의 너무 무거운 진중한 비판 사이의 컨텍스트적 격차/이질감이 너무나 컸다는 사실이 많은 논자들한테 황당하다는 느낌을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박노자 선생에 대한 논자들의 강한 반박은 바로 이 컨텍스트적 격차에서 유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강남스타일”의 한없이 가벼운 유희성과 박노자 선생의 진중한 비판 사이의 격차는 다시금 “강남스타일” 현상이 생성해낸 논의의 컨텍스트 공간에서 또 하나의 역설적 효과를 빚어낸다는 것입니다. 그 역설적 효과는 바로 박노자 선생의 진중한 비판 자체를 (박노자 선생의 애초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나의 풍자로서 기능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스꽝스러운 것을 아주 진지한 것으로, 혹은 진지한 것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역설적으로 비트는 것이 풍자의 핵심(중 하나)인데, “강남스타일”과 박노자 선생의 비판 내용이 형성하고 있는 관계 자체가 그런 컨텍스트적 구도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윗글에서 주장한 내용의 핵심입니다. 이런 맥락적 인식에 근거해서, 박노자 선생을 비판하는 논자들이 “풍자적/패러디적 컨텍스트의 맥락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다”고, 그래서 풍자의 미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제가 비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제 주장이 성립하려면 박노자 선생의 진보좌파적 “강남스타일” 비판이 여전히 적실하고 유효하다는 전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풍자나 패러디의 기반은 원전과 패러디 작품 모두 일정한 유의미성을 확보하고 있을 때 제대로 기능하고 설득력 있는 호소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박노자 선생의 진보좌파적 시각의 “강남스타일” 비판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도구화, 물신주의 조장, 가부장적 남성 중심주의, 자본주의의 병폐 따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적실하고 유효한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논거에서 제가 박노자 선생을 옹호하는 동시에 이덕하 님과 같은 반박자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박노자의 해당 글은 악간은 핀트가 빗나가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박노자가 빞판하려했던 것은 대중문화--특히 한류로 나타나는--였고 한 예로 '강남스타일'을 거론 한 건데, 마치 '강남스타일'에 대한 음악 비평처럼 받아들여지게 글을 썼다는 거지요. 사실 강남스타일의 인기 원인은 가사 내용이나 멜로디가 아니고 춤, 특히 곡과 어우러진 춤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노자의 비평은 좀 빗나간 건 사실입니다.
물론 의식있는 독자라면 텍스트의 빗나감을 넘어 박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새겨들어야하는데, 박노자 글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 너무 어의가 없더군요. 특히 남종석이란 사람은 좌파라고 일컬어지던데 그의 시각은 전혀 좌파답지 않았습니다. 무늬만 좌파인거 처럼 보입니다. 거기다 더 문제가 되는 건 그 비판들에는 한결같이 애국적 정서가 내재돼 있음을 풍겼습니다. 우리 노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니 그걸 두둔해주고 싶은 애국심이란 집단의식이 작용한다는 거지요. 그런 집단 의식은 소위 좌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매카시즘에 오래 시달렸던 우리나라에선 좌파가 하향평준화 된 게 분명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모호한 감이 아니라 구체적 자료에 근거해서) 싸이(PSY)가 “원힛원더”로 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케이팝(K-pop) 장르에서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과 같은 세계적 대박을 치는 노래가 많이 나오리라 판단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직 케이팝(K-pop)의 세계적 홍보와 마케팅은 초보적 수준이라 봅니다. 앞으로 케이팝(K-pop)과 케이 컬처(K-Culture)에 대한 전략적 홍보와 체계적인 마케팅이 뒷받침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결과들이 나올 것입니다.
오마담 님, 오마담 님께선 어떤 근거에서 케이팝(K-pop)이 미국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시는 것인지요?
제가 알기로는 오마담 님께선 미국 현지에 계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미국 현지의 일반적인 대중문화 정서와 시류, 인기를 잘 끄는 대중음악 스타의 유형, 가수/그룹들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 등등에 관해 한국에서 건너다보면서 판단하는 것보다 오마담 님처럼 미국 현지에서 직접 체감하면서 판단하는 게 정확할 수 있겠죠. 바로 그 현지 체감의 구체적인 느낌을 오마담 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왜, 어떤 근거에서 케이팝(K-pop)의 미국 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시는지요?
물질주의에 대한 풍자니 어쩌니하는 것도 지나친 호들갑이란 생각이지만
그걸 또 세뇌제 어쩌고하는 것도 역시 오버한다는 생각입니다.
둘 다 오버한다는 점에서는 동질성이 잇다고 하겟으나
그렇다고 극과 극이 통한다며 둘 을 갖다 붙이는것 또한 억지스럽습니다
강남 스타일 그냥 재미있게 만든 음악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경제불황으로 시달린 사람들이 그나마 웃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뜬것일뿐입니다
강남스타일이 무슨 예술성이 있나요
메시지가 심오하나요
아니면 뭐
그냥 재미있고 잘 만든 대중음악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인의 감성에 그리고 세계인의 감성에 맞아떨어진것입니다
강남스타일 히트했다고 우리 음악이 줄줄이 빌보드 챠트에 맨날 올라갈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앞으로 가능성은 무한하게 열어놓았고 우리 음악이 어느정도 세계 수준에 근접한건 사실이지요
가만 봐면 좌파나 아니면 유명인사들중 무슨현상이 생기면 그걸 꼭 이념적으로 아니면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세세하게 해석하고 분석하거나 비판하려는 강박증이 있는듯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에 예술성이나 메시지가 있든 없든, 심오하든 일천하든, 그런 사실은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에 대한 비평 작업을 세세하고 심오하게 전개하는 작업과는 별개의 문제죠. 비평 작업은 비평 대상의 예술성/메시지의 수준/유무에 관계 없이 분석에 대한 “강박증”을 항상 지나칠 정도로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비평의 의무이고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은 이미 그저 단순한 하나의 대중음악 작품을 넘어서서 이 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일부) 표상하는 그 어떤 상징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주관적 주장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물리적 자료들과 세계의 비공식/공식적 인증 기관들이 “강남스타일 Gangnam Style”에 부여한 객관적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중립적 입장에서 전달하는 것 뿐이지 그 어떤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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