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정부에 대해 좀 강한 비판 기사를 쓰고 바로 박정희 대통령과의 면담이 있었다. 속으로 좀 찜찜한 느낌이 있었는데 뜻밖에 그는 아주 호의적으로 나를 대해주는 것이었다. 헤어지려고 할 때 그는 나를 부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둔한 사람은 아니오. 잘되라고 비판하는 말과 죽으라고 저주하는 소리는 구분할 줄 압니다."


(전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 회고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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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노무현 정권을 겪는 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우파세력은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 투트랙 작전을 수행했다. 한 가지는 스스로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노무현에게 접근, 가능한 한 그가 보수적 정책을 펼치도록 조언(?)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권을 망하게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의외로 이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니 그가 지금까지도 멍에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특검 승인이 그 한가지 예이다. '좌측 깜박이 켜고 우회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수사도 그렇지만 그가 자기 편도 못 챙겨주는 무능한 대통령이었다는 비판은 그의 지지자에게서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당시 노무현에게 접근해서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된다.', '조선일보와 싸우면 안되고 필요하면 불러다가 돈을 찔러주며 설득시켜야 한다.', '한나라당 사람들도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얘기를 잘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라고 조언을 했던 보수파 인사들 가운데 진짜 그의 편은 하나도 없었다. 


노무현이라는 한 자연인이 죽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의 후계자들 - 현재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정치세력들의 마인드다. 이들이라고 바보이겠는가? 당연히 노무현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문재인 코드 및 낙하산 인사이다.


이 상황에서 우파 세력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실 난감한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먼저 노무현에게 이용한 투트랙 작전은 일종의 속임수이기 때문에 한번이나 가능하지 계속 써먹을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지금 문재인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보수 인사도 거의 없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뒤늦게나마 문재인에게 알랑방구를 뀌며 주위의 주사파들과 결별하라는 호소를 하고 있는데(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0/2017112003117.html) 그런 유치한 수작이 통하리라고는 본인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에게 가능한 한 보수 정책을 펴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금까지 문재인을 죽으라고 저주해 오던 자들 뿐이다. 온갖 저주를 다 해온 자들이 갑자기 낮빛을 바꾸고 "그게 아니라 니가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는 건... 우선 본인이 입이 떨어지긴 할까? ^^


이건 염치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문재인을 저주해 오던 자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악당 전략'을 써 왔다. 즉 "그래. 나는 나쁜 놈이다. 그런데 니가 나를 어떻게 할래? 하려면 그만한 힘을 갖고 나서 덤벼 봐. 힘도 없는게 까불어" 식이다. 솔직히 논전이 붙었을 때 이런 식의 전략은 상대방을 도발하는데 있어 상당히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상대방이 정말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략은 '힘없고 결백한 피해자'역을 하는 것인데... 이게 사람들에게 먹혀들까? 통베충이들이 결백한 피해자라? ㅋㅋㅋㅋ


베충이들을 빼고 이야기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수파 중에 인간성이나 도덕성 면에서 자신있게 내세울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애국을 내세우려면 스스로 납세 및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청렴, 공정, 검소의 덕목을 지키고서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큰 소리를 쳐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보수 출신 논객이나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는 자들은 전부 병역기피자, 성범죄자, 갑질하다 문제가 생긴 자, 어쨌건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자들 뿐이다. 이들이 과거에 나름의 능력을 발휘하여 보수세력의 집권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세력의 결성이야말로 보수의 희망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인간성에서 흠잡을 수 없는 인물이 보수의 재건과 문재인의 타도를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