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역사 왜곡 영화, '군함도'


                                                                2017.07.18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징용문제를 다룬 영화 ‘군함도’가 다음 주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예고편과 줄거리를 읽어보니 제가 예상했던 대로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더군요.

1945년 군함도에서는 영화 ‘군함도’와 같은 사건은 없었습니다. 완전한 허구입니다.

영화가 원래 픽션이긴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성 영화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해야 하고, 관객들에게 픽션임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군함도’는 영화를 시작하기 전이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도 픽션임을 알리는 자막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군함도’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에 이어 우리의 치부와 어두운 과거를 가리려 일본을 악마로 만든 사기 영화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자극해서 돈 벌어 먹으려는 치졸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역사를 우리 후세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우리를 성찰하고 잘못된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없을까요?

위안부 문제, 군함도, 독도문제에서 진실을 말하면 친일로 매도하는 국수주의적이고 반역사적인 분위기에 역사학자나 지식인들은 언제까지 침묵할 것입니까?


먼저 아래에 링크하는 서경덕(성신여대 교수,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 알리는데 김장훈과 함께 열심인 사람)이 ‘군함도’의 진실을 알리겠다며 광고판 펀딩을 모집하는 사이트와 실제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서경덕이 광고한 광고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video?id=100359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5713#

이 사이트에 서경덕이 게재해 놓은 사진들과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동영상에 나오는 ‘군함도’의 인물 사진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서경덕은 이 사진 속 주인공들이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려 굶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조선인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며 조작입니다.

서경덕이 올린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 게재된 1926년 9월9일 홋가이도 아사히카와 신문을 아래에 링크하니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1632295/page/81880?&sst=wr_hit&sod=asc

1926년이면 조선인이 징용되기 한참 전이었음으로 저 사진 속의 사람들이 조선인일 리도 없고, 군함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홋가이도라는 것이 명백함으로 서경덕이 저런 사진을 내걸고 펀딩을 한 것은 사기입니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저 사진을 동영상에 넣어 광고한 것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군함도’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수준이 딱 서경덕 정도이고, 이런 잘못된 인식을 한 배경에는 반일을 자신의 존재감이나 밥벌이 수단, 그리고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학자, 정치인, 진보연 하는 인사들의 역사 왜곡 때문입니다.



조선에서 징용이 실제적으로 시작된 때는 1944년 8월입니다. 1939년 일본은 총동원령을 발령했지만 일본 본토(열도)만 시행되고 조선에서의 최초징용은 1944년 8월부터입니다. 즉 그 이전에 군함도에 조선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징용으로 온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군함도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재해권이 미군에 넘어가 조선과 일본과의 뱃길이 막혀서 1945년 2월쯤에야 뱃길이 열려 군함도에 징용으로 온 사람들은 8월 해방될 때까지 7개월 정도 일을 한 것이 됩니다.

군함도는 당시 가장 근대적 시설이었다고 알려졌고, 탄광으로써 1930~1940년대의 세계 여느 광산의 일반적인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았고 탄광이라는 특성상 열악한 채굴 현장이었을 뿐입니다. 그 후 30년 이상 지난 파독광부들의 사망률이 저 때의 군함도 사망율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일본인도 군함도에서 많이 죽었고 조선인에 대해 차별 대우를 했다는 증거도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 징용자들만 특별히 고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당시 시대 상황이 그랬고, 탄광이라는 특성이 그랬기 때문일 뿐이지, 일본이 조선인을 징용으로 끌고가 사지로 몰아넣고 학대를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군함도를 관광으로 여행한 르뽀 영상과 예전에 MBC 무한도전팀(‘하하’가 다녀감)이 군함도를 방문해 담은 영상을 보면 그 당시 탄광치고는 현대적 시설에 아파트 같은 숙소와 학교까지 갖추고 있어 무척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이 왜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으로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 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조선인은 탄광 노동자로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니고 일본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조선인들은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징용 뿐아니라 징집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 일본은 조선인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었죠. 태평양전쟁으로 군인으로 징집할 인원이 모자라고 동원할 인력도 한계에 다다르자 일본은 조선인도 징집하고 징용에 동원한 것입니다. 선거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도 이 때였고, 일본은 조선인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것으로 당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징집할 인원이 부족하자 징집연령을 18세(19세?)로 낮추면서 선거권도 이 징집연령에 맞춰 부여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의무와 권리가 함께 동반한 것입니다.


징용을 ‘강제 연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일본은 내지인(본토인)들에게는  조선인들보다 먼저 1939년에 동원령을 내렸고 일본인들도 이 동원령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징용으로 동원되었습니다. 전시체제에서는 어느 국가든 강제 동원령이 내려집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었고 조선인들도 일본인 다음으로 조선인들은 2등 국민이라며 중국인들을 깔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이 평양 등 전국에서 중국인 400여명을 사상한 ‘만보산 사건’은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시는 조선인도 모두 법적으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이 동원령에 의해 징용으로 가는 것을 차별이나 학대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선인에 대한 동원령이 내려지고 징용이 시작되기 전에도 조선인들을 모집하여 일본의 탄광이나 건설현장의 인부로 쓴 사실은 있습니다. 이 때 일본으로 온 사람들은 징용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온 사람들이죠. 조선 내의 삶이 고달프거나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가정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일본 기업들의 인부 모집에 희망자가 2배에 이를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일본에 일자리를 찾아 밀항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의 동남아 외국 노동자들이 불법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하듯이 말입니다.


후쿠오카(福岡)현에 위치한 메이지 광업 히라야마 광업소가 1941년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조선인 근로자의 모집 요강'을 보면 고용기간을 2년으로 규정했으며, 이바라키(茨城)의 조반 탄전의 자료에서는 2번 계약을 갱신하면 임금을 2배로 올려 계약했습니다. 기간을 정하고 있는 것부터 노예 같은 강제 노역이 아니었음을 나타내고 있지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1941년도 근로 동원 시행계획에 따른 조선인 노무자의 국내이입 요령’을 보면 ‘조선인 노동자의 처우에 대해서는 가급적 내지인(일본인)과 차별이 없도록 하라’고 써 있고, 1943년 6월의 규슈(九州) 광산 학회지를 보면 후쿠오카현 아카이케(赤池) 탄광의 광산 근로자 1명의 평균 일당은 일본인이 4.65엔, 조선인이 4.64엔으로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제 와서 밀항이든 모집이든 자발적으로 일본에 가서 일을 한 것을 모두 징용에 끌려가 열악한 환경에서 차별 대우 받으며 굶주렸다고 과장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죠. 당시는 일본으로 간 가족이 있으면, 남은 가족들은 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가족이 돈을 벌어온다는 인식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가족을 보낸 동남아 외노자들의 가족들이 한국으로부터 송금해 들어오는 것을 기대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조선인과 일본인의 노임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고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차별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아마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임금 차이와 차별은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노자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대하는 것과 한국인과의 임금 차이를 생각한다면 비난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황이 악화된 탓에 패전 3개월 전부터 징용된 노무자들에게 급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체불된 급료에 대한 청구권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한일 양국이 합의했습니다. 일본 남성이 부족한 가운데 조선인의 힘이 석탄 증산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제국시대의 조선인들이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반일선동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봅니다.

* 이상의 조선인 징용과 관련한 내용은 아래의 xcvv***님이 네이버에 올린 영화 군함도의 리뷰 내용을 일부 참조한 것임을 밝힙니다.

 *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4527038&code=146506#tab


우리는 독도문제가 되었든, 위안부문제가 되었든, 징용문제(군함도)가 되었든 역사적 사실을 먼저 직시하려 하기 보다는 우리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잘못을 일본이라는 가해자에게만 전가시켜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사실을 왜곡합니다. 역사든 무엇이든 객관적 사실이 먼저이고 이에 기반하여 해석하고 자기의 해석이나 의견을 주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조그만 찾아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검증하려는 노력은 찾기 힘들고 반일정서에 기대 우리의 치부를 가리려고만 합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제도 정치권 진입의 발판으로 삼고, 심지어 문화 영역에서조차 돈벌이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진실은 도외시 한 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우리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사이, 거짓은 진실이 되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회생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진실로 굳어진 거짓으로 역사를 평가하게 될 것이 무엇보다도 안타깝습니다.

국수주의적 역사관이 판을 치는 한, ‘명성황후’(뮤지컬), ‘군함도’(영화), ‘귀향’(영화), ‘덕혜옹주’(영화) 같은 반일감정을 자극해 돈을 벌려는 뮤지컬이나 영화 등의 문화상품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이런 문화상품이 계속 나오고 그리고 성공하는 이유는 객관적 사실을 기반한 역사 교육보다 국수적 반일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연극 ‘덕혜옹주’는 영화 ‘덕혜옹주’와는 시각도 다르고 사실에 기반하고 있어 의외였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연극을 보았는데 놀랐습니다.)

우리 역사학계와 전교조를 비롯한 선생님들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거짓을 진실로 둔갑해 전달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 한국의 영화 ‘귀향’의 대척점에 서 있는 영화 ‘요코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을 아래에 링크하오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요코 일가가 함경북도 나남에서 일본까지 귀향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으로부터 약탈, 강간, 살해의 위협을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엉터리 역사 교육을 받았는지, 얼마나 피해자 코스프레로 하면서 역사를 국수적으로 이해하는지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4511128&code=146506#t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