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하면 글을 잘 안 쓰려고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 문제만큼은 꼭 글을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정치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전반적으로 좌측에 계신 분들이 많은 사이트인지라, 이 사안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좌파적인 어젠다에 동의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측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안을 보는 시각은 좌측과는 다를 수 없다.
특히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좌측보다 더 잘 볼 수 있다고 자부한다.

1. 언급되는 맥락

일단 비행소년님이 아래에 올린 글에서, minue622님, 아이기스님, 비행소년님은 각론이나 세부사항을 모두 설명하진 못할지언정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국정치의 기본적인 전제로서는 맞다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이 이론이 언급되는 맥락을 본다면 그것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소위 비노-반노 계열의 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질 때에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그들을 변호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던 이론이,
소위 친노 계열의 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질 때에는 빈번하게 언급된다는 것은 무언가 이 이론이 객관적인 설명틀이 아님을 의심케 한다.
만약 그토록 일반론적인 전제라면 보편적으로, 선거철마다 나와야 하는 이론일진대, 김한길-안철수 때에는 비긴 지방선거까지 '사실상 진 선거'로 몰아가던 이들이 문재인호의 전패에 대해서는 이 이론을 들먹인다는 것은 이 이론이 객관적인 설명틀로서 갖는 힘을 상당히 떨어뜨린다.
본디 수사란 그 맥락에서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법이다.
맥락이 ulterior motive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수사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2. 서 있는 위치의 차이

백번 양보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순수한 분석적 의도에서 나오는 수사라고 치자.
하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이들을 가만히 보자.
대부분이 한때 운동권 출신이었고 극렬좌파였다고 분류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에서 운동권 당시의 사고습관을 버리지 못했다고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극좌라면, 내 입장에서 볼 때에 당연히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다.
이건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명백하다.
조갑제가 한국을 가리켜 우편향된 나라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조갑제는 무조건 정부와 사회가 좌편향되어있다고 말한다.
왜?
그는 극우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원리이다.
유시민, 진중권, 노회찬 등은 소위 중도층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어려운 극좌파들에 가깝다.
비록 세계적인 좌파 지형도에서 그들이 우측에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과 한국 내에서의 정치지형은 다른 것일진대, 그들이 한국 내에서 극좌파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극좌파들 입장에서야 당연히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고, 그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설명력을 가질 수는 있으나,
실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설명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이론인 것이다.

3. 한국과 두려움의 정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론은 상당히 패배주의적이면서도 편향적인 논리이다.
마치 자기네만이 계몽되어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보라서 새누리당을 찍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한국정치가 기본적으로 두려움의 정치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대전제인 영남패권주의를 제외한다면 다음으로 큰 변수는 '두려움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과 '독재에 대한 두려움' 간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남지역에서는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이 지역구도로 치환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미 최장집 등이 말한 바 있지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에서였나?) 민주화운동은 소수만의 운동, 그들만의 잔치였다.
중산층이 이 운동을 지지한 것은 그렇게 할 경우 더 많은 성장, 더 많은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걸 기본전제로 깔 때에 몇 가지 사실은 당연해진다.
   1.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은 독재에 대한 두려움보다 커진다.
   2. 좌파적인 선거 구도는 성공할 수 없다.
처음에 중도우파적인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던 한겨레와 경향이 좌파화되면서 marginalize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유시민이 묻는다. 한겨레가 점유율이 낮은 까닭은 조선일보보다 능력이 딸려서냐고.
난 솔직히 맞다고 생각한다. 한겨레같은 거지같은 신문을 돈 내고 보려면 상당 정도의 이념적 헌신이 요구된다.
나도 관점의 차이나 커버하는 뉴스의 종류의 차이 때문에 챙겨보기는 하지만, 솔직히 기사 퀄리티나 편집 등등에 있어서 한겨레는 봐줄 수가 없는 수준이다.
이걸 좌파들은 자기네 자존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무상급식을 바탕으로 하는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 것에 대해서도 좌파들은 복지에 대한 지지라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지만,
사실 이는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가 단순히 새누리당 심판 정서가 먹혀들어간 마지막 선거일지도?


4. 중도우파적인 정치를 위하여

결국 결론은 간단하다. 극렬좌파들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서는 야당이 절대로 선거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손학규나 안철수에게 상당정도의 지지가 몰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조중동을 보는 상당수의 중도우파적인 인구가 비새누리당의 중도우파 정당을 원했다는 걸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손학규와 안철수는 둘 다 이 바람을 읽어내지 못하고 극렬좌파들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명백하다. 한국에서 그런 좌파들은 한 줌도 안 될 뿐이고, 성공할 수 있는 선거 플랫폼은 중도우파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또 하나의 결론을 뽑아낼 수 있다.
문재인,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세력이 아무리 중도 코스프레를 해 봤자, 그들은 이미 중도우파적 지지층들에게는 좌파라고 낙인이 찍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력이 야권에 나타날 때가 되었다.
친노세력이 정치판에서 퇴출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을 아우르는 중도우파적인 정당이 나타나면 새누리당과 새민련을 누르고 다수당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