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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33854.html
2014년 기사예요. 이정서라는 양반이 영어뉘앙스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뇌피셜로 번역하기로 좀 유명(?)한가 보더라고요. 이분을 집요하게 비판하는 다른 어떤 분도 계신데 아.. 번역 참 어렵다 싶으면서 그 비판하는 분이 조목조목 짚어주는 오역이 너무너무 재미가 있어요. 이 분의 비판글을 따라다니면서 저 또한 동네아짐이 한 번역이니 알아서 걸러듣겠거니 하고 아마추어번역한 것도 더 이상 안 하게 됐어요. 사방에 뿌린 허접한 글 지우고 싶은데 지울수가 없음 으윽..
이정서란 분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등 본인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번역을 너무 많이 시도.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
2018.10.24 21:46:04
다른 사람의 오역은 비교적 쉽게 집어낼수 있지만 한사람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옮긴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려운듯 합니다.
저도 번역에 흥미 있어 취미로 건드려 봤지만 적절한 표현법이 필요한 상황에선 삼사일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번역을 직업으로 삼았다면 끼니를 걱정해야 했겠지요. 번역이란 것이 워낙 어렵다보니 어느정도 겸허한 마음이 필요할듯합니다.
원문이 일본어인경우 우리나라에 일본어 잘하는 사람도 많고 번역에 있어서 유리한점도 있어서 매우 전문적인 분야나 서브컬쳐에 관련된것이 아닌한
큰 불편없이 번역서를 볼수 있지만, 불어나 독일어가 원문인 경우 영어로 보는것이 편할때가 있더군요.
지금은 좀 미흡하겠지만 앞으로 중국어 서적도 많아질텐데 한자 조금 읽을뿐 중국어는 못하는것이 좀 아쉽습니다.
영어를 배울때의 경험으로 보면 문화를 모른체 언어만 습득할 경우 이해도가 떨어지던데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에서 수년을 살면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것은 현재로선 어려운일이라
내인생의 외국어는 영어로서 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18.10.26 03:53:29
움.. 영어나 불어에 대한 언어직관력이 뛰어난 분들이 한탄 중인데 이정서는 계속 오역은 물론, 명색이 문학작품인데 전체맥락까지 뇌피셜로 치장을 하고 있어서 잘 모르는 독자들 바보천치로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번역자들은 섬세한 차이에 민감할 의무가 있어요. (그래서 전 이제 감히 번역따위 안 함ㅋ). 이정서의 해악이 얼마나 컸던지 그를 비판하는 논문도 있어요. 이 논문 꽤 재밌네요.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70945
UCI 어쩌구 날짜 나오는 링크를 다운받으면 무료로 볼 수 있어요.
[“그는 내게 그날 내가 내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던 거라고 그가 말해도 되는지 물었다”(이정서:94)] 이 사람은 일단 한국어부터 공부해야..
[근래에 나온 이정서의 『이방인』 번역은 기존 번역에 대한 불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이정서는 비단 기존 번역에 대한 불만에 그치지 않고, 기존 번역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 온 김화영의 번역을 비판하면서 58개의 항목에 걸쳐 원문 대조를 통한 번역 비평과 함께 새로운 번역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우상파괴의 선봉에 선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듯 보이는 어조로 기존 번역의 오류와 결함을 지적하는 대목들은 때로는 상당한 설득력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권위자에 대한 비판에서 생기는 쾌감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내세우는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어사는, 원문 대역을 제시하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프랑스어 원문에 대해 가장 올바른 이해에 도달한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어를 모르거나 초보적인 수준의 독자들이 보기에는 그동안 이루어진 프랑스 문학 전공자들의 작업은 온통 미숙함을 드러내는데 반하여, ‘정서법(正書法)’에 따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필명(이정서!)으로 내놓은 이 번역은 프랑스어 해독에서나, 작품 이해에서나, 우리말 표현에서나 모두 월등히 앞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기존 번역의 오류들을 찾아내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적절한 역어를 제시할 때의 득의양양함은 어떤 독자라도 설득해 낼 듯 보인다. 더욱이 카뮈와 『이방인』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그 문체에 대한 자기만의 감지,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실감나
게 되살리려는 시도 등은 작품 이해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서가 제시한대로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하며, 아니면 별개로 이 번역을 읽게 된다고 해도, 조금만 읽어나가면 어색한 대목들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단지 문체의 차원이라면 번역자의 독자적 개성으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본고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초보적인 단계의 언어요소들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유감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이정서가 기존의 번역들을 비판할 때 들이대었던 엄격한 기준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번역이 스스로 충실도를 자처하는 것은 “꼼꼼한 재번역과 원본 대조” 작업에다, “편집자의 꼼꼼함과 단호함”40)에 의한 검토 과정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게다가 카뮈 자신의 음성까지도 들었다고 하는 신비로운 고백을 통해 그 심정적 충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작가의 목소리까지 듣는 환청을 경험한 자가 도대체 몇이나 될 것인가!] (크고 작은 오역 지적한 건 페북에 많음..)
게 되살리려는 시도 등은 작품 이해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서가 제시한대로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하며, 아니면 별개로 이 번역을 읽게 된다고 해도, 조금만 읽어나가면 어색한 대목들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단지 문체의 차원이라면 번역자의 독자적 개성으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본고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초보적인 단계의 언어요소들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유감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이정서가 기존의 번역들을 비판할 때 들이대었던 엄격한 기준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번역이 스스로 충실도를 자처하는 것은 “꼼꼼한 재번역과 원본 대조” 작업에다, “편집자의 꼼꼼함과 단호함”40)에 의한 검토 과정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게다가 카뮈 자신의 음성까지도 들었다고 하는 신비로운 고백을 통해 그 심정적 충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작가의 목소리까지 듣는 환청을 경험한 자가 도대체 몇이나 될 것인가!] (크고 작은 오역 지적한 건 페북에 많음..)
2018.10.26 14:41:18
움... 한국어부터 공부해야 되겠다며 예든 문장은 문장이 팔푼이같은데.. 불역비판은 제가 불어를 몰라서 이해가 안 가지만 영어는 조금 알아서 영역비판한 거 보니까 한숨이.....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모르면서 일단 번역을 해놓고 그게 왜 그런지 막 뇌피셜로 장황하게 설명을 해요. 그거 보고 있으면 진짜 웃긴데. 이 분 비판에 열심이신 Sarah Kim님의 오역비판글을 거의 매일 보고 있는 중이에요. 번역은 참과 거짓의 가치영역은 아니졍. 문체를 해석하는 직관과 그걸 문학적으로 전달하는 재능이 중요한데 이정서는 뉘앙스 뒤트는 오역은 물론 기본적인 영어실력도 의심이 가는 게 문제라서. 제가 감히 비판할 입장은 못되지만 번역가로서 <번역의 정석>이란 책을 낼 정도면 출중한 실력을 갖춰야 하잖아요.
2018.10.26 16:35:34
한국말을 저렇게 사용하면 이상한 문장 안 좋은 문장으로 판단하게 되겠죠. 그런데 특수한 사정으로 일일이 명확하게 글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 문장은 그런 예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대충 의역을 해 버리는 게 더 쉽겠지만, 번역자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일부러 그랬다는 뜻일 테고요.
이정서의 영어 실력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냥 까뮈 번역본 놓고 투닥거리는 것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자기가 출중한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뭐.. ^ ^
번역은 참과 거짓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번역은 참이고, 엉터리 번역은 거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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