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판 방청기는 서프라이즈에 올리기 위헤서 썼던 글입니다. 서프라이즈 서버가 해킹으로 자료를 망실했고, 새로 이전한 사이트는 자료가 극히 적어졌습니다.)


2012년 7월9일 월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40분경까지.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24호 법정.
3명의 판사가 배석했고,
피고인 신상철 씨 외에 6명의 변호사가 배석했고,
한 명의 공판검사(?)와 이를 보조하는 직원 한 명이 배석했고,
법정 서기(?)와 속기사와 법원 여직원 2명이 있었고,
방청객은 모두 30명 가량이었습니다.
증인은 박연수 씨와 공창표 씨였습니다. 다른 증인은 불출석했습니다.


박연수 씨는 20대 후반으로 앳되어 보였습니다. 나중에 증언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인데, 학사장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사건이 일어날 당시 그는 천안함의 작전관이었고, 20시 이후에 당직사관으로 함교에서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천안함 함장인 최원일 함장은 21시05분경에 함장실로 가서 함교에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짙은 곤색 양복을 입고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천안함은 사건이 일어나기 10일전부터 백령도 서남쪽 해역을 경비하고 순찰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3월26일 당일은 아침 6시부터 작전이 시작되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백령도 서남쪽 해역을 경비하고 순찰하였다고 합니다. 속도는 대략 6노트에서 7노트 정도로 기동했습니다. 한 시간에 2번 북서쪽과 남동쪽을 왕복했다고 합니다. 박연수 씨는 작전관으로서 오전 8시에 포술장과 당직사관 근무교대를 했고, 다시 19시50분에 당직사관 근무교대를 했다고 합니다. 함교에는 여러 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당직사관의 자리에는 바로 아래에 KNTDS, 레이다, 해저 깊이를 재는 측심기(?) 등이 있다고 합니다. 당직 교대 후에는 스테이션별로 특이사항이 있는지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그날 음탐실이나 후타실 등에서 특이한 보고가 없었고,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고 합니다. 천안함은 매 30분마다 날씨를 2함대사령부에 문자로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통상 5~10분 전에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며, 사건 당일에는 상황실에서 이 문자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건 발생 시간이 대략 9시20분 이후로 추정된다고 증언합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천안함은 백령도 남동쪽으로 기동하고 있었고, 박연수 대위의 명령에 따라 변침하여(방향을 바꾸어) 북서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기동하였습니다. 당시의 조류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바람도 비슷했으나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정거리는 3마일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도 안개는 끼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파도는 다소 높은 편이어서 2.5미터 정도로 평소보다 안 좋았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함교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무 조짐이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에서 20~30 센티미터 떴습니다. 그리고 함교 우현으로 떨어졌습니다. 천안함이 불과 몇 초 사이에 거의 90도에 가깝게 오른쪽(백령도 방향)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우현견시 공창표 하사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부직사관이 함교에 물이 차고 있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천안함이 이미 우측으로 기울어 있는 상태여서 함교의 인원들은 좌현 수밀문을 열고 좌측견시 쪽으로 나가 좌현갑판쪽으로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연수 대위는 공창표 하사를 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때 함교에 있던 이광희 중사는 공창표 하사를 구하기 위해서 우측견시 문을 열고 나갔는데, 당시 함교창문 아래의 나무봉에 공창표 하사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광희 중사의 인도로 공창표 하사는 함교를 지나서 좌측견시 쪽으로 스스로 나갔습니다. 이광희 중사는 그 뒤에는 우현으로 다시 나가서 비상신호기(?)와 구명보트(?)를 분리하였다고 합니다.


5~10분 쯤 되었을 때 함교에서 박연수 대위가 좌현 갑판(정확히는 좌현 측면이라고 봐야 하겠죠.)에 올라갔을 때 중갑판 쪽에서 승조원들이 탈출하고 있었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어뢰폭발로 추정되는 섬광이나 화약냄새나 물기둥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천안함은 이미 우현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본인의 휴대전화로 상급부대에 보고하려고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고, 포술장이 이미 보고하는 장면을 보고 본인은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미 전기가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박연수 대위는 승조원을 구조하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육성으로 지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한 다음 박연수 대위는 5~10분 뒤에 구조물을 피해가면서 기어서 함미쪽으로 접근했는데, 절단면까지 도착해 보니 함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다시 돌아가서 최원일 함장을 만나서 상황에 대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어뢰 피격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3가지 근거에 따라 이 사건의 원인을 좌초나 내부폭발로 볼 수 없고, 어뢰 피격으로 판단하였고, 최원일 함장도 어뢰 피격으로 의견을 밝혔다고 합니다.


(제가 기록을 정확히 다 하지 못해서 상황실의 통신장이 어뢰 피격이라고 외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상황 발생 후 몇 초 뒤의 일일 것으로 보입니다.)


포술장의 보고에 따라 참수리 고속정 4척이 급파되어 천안함 함수에 접근했지만, 너울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간신히 연결하여 먼저 박연수 대위가 고속정으로 건너갔으나, 너울 때문에 고속정의 구조는 무리인 것으로 보고 최원일 함장의 지시에 따라 고속정은 구조를 포기하고 옆으로 비켰고, 해경의 501 경비함이 도착해서 나머지 55명을 구조했습니다. 해경의 501 경비함 식당에 모인 천안함 승조원들은 최원일 함장의 명령에 따라서 휴대전화를 전부 수거하였답니다. 고속정과 경비함은 사고 해역에서 계속 수색구조작업을 했습니다. 이 때 헬기가 조명을 비추고 다녔는데, 박연수 대위는 헬기의 구조 장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3월27일 아침6 경에 박연수 대위는 고속정에서 다른 군함(아마도 성남함인 것 같습니다)으로 갈아탔고, 14시에 평택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한편 2함대사령부에서는 유가족/실종자가족들에게 3월27일 오전에 브리핑을 했습니다. 유족들 중에는 좌초라고 브리핑을 받았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지만, 브리핑을 한 당사자인 이원보 대령은 이와는 반대되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후에 박연수 대위가 도착하자 한 번 더 브리핑을 하게 되었는데, 유가족/실종자가족들이 흥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유족들이 사고가 일어난 지역에 대해서 재차 질문하자, 박연수 대위는 빨간점 부근을 가리키며 사고해역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연수 대위는 최초 좌초라고 말한 적도 없고, 이 사건의 원인이 좌초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브리핑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증인 이용기 씨의 증언과 증인 박연수 씨의 증언이 서로 모순이 됩니다. 한 사람은 최초 좌초라고 들었다고 증언하고, 다른 한 사람은 좌초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제가 짐작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에 천안함의 포술장이 2함대 사령부(?)에 보고할 때 좌초라는 보고를 했던 것 같습니다. 왜 좌초라고 보고했는지는 저는 증언을 듣지 않아서 모릅니다. 이것이 중앙일보 3월27일자에 침수라고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가족/실종자가족들이 이것을 좌초라고 이해한 것 같습니다. 흥분한 상태에서 오전에 이원보 대령의 브리핑을 듣고, 사고해역이라는 표현을 좌초한 해역으로 이해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오후에 박연수 대위가 다시 브리핑할 때, 유가족/실종자가족들은 좌초를 부정하는 박연수 대위의 말은 흘려 듣고, 사고해역을 좌초 지점으로 오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용기 씨가 가리킨 지점을 박연수 대위가 '함수가 떠 있는 지역'이라고 오해하여 그 지역을 가리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편 KBS의 보도를 캡처한 내용에 따르면, 합참은 파공으로 인한 침수라고 브리핑을 했던 모양입니다. 이 브리핑은 박연수 대위의 보고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전 브리핑과 오후 브리핑을 녹음하거나 촬영한 동영상이 없으므로, 현재 누구의 증언이 진실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박연수 대위의 다른 증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역을 경비한 것은 근래에 일어난 변경이 아니고, 2009년부터였습니다. GPS 화면에는 해당 지점의 수심이 표시되고, 그동안 계속 이 작전구역을 기동했지만, 좌초할 만한 암초 같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백령도 서남쪽 2~2.5마일 거리에서 기동했습니다. (이 증언은 국방부의 발표와 모순됩니다. 국방부는 1해리 정도 거리였다고 발표했고, 이를 피고인측에서 지적했습니다.) 천안함이 당일 후진기동을 한 적이 없으며, 침수되었거나 비상이 걸린 적도 없습니다. 포술장이 좌초라고 보고한 것은 비상시에 허둥대다가 사용한 표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후타실 CCTV의 6명 중에서 김** 병장 외에는 누구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김** 병장이 생존자이므로 합조단이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은 분명히 아닙니다. 쿵 하는 것이 어뢰 피격으로 인한 것인지, 기뢰 폭발로 인한 것인지, 좌초로 인한 것인지 느낌으로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피고인 변호인의 증인심문이 끝나고 검사가 다시 재심문을 하면서 확인한 사항이 있습니다. 최원일 함장이 휴대폰을 수거하면서 사고에 대해서 함구하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사고 원인에 대해서 함구하라고 말했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501 경비함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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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표 하사는 해병으로 복무하다가 하사관이 되었습니다. 공창표 하사는 함교 우측견시였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떴고, 그 충격으로 오른쪽 무릎의 인대가 파열되었고, 그 때문에 국군수도병원과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공창표 하사의 증언은 박연수 대위의 증언과 배치되는 점이 없었습니다. 그도 섬광이나 물기둥이나 화약 냄새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쾅 하는 소리는 한 번만 들었습니다. (다른 승조원은 두 번의 쾅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답니다. 변호인의 지적이었습니다.) 2년이 넘은 일이고, 당시에 우현견시로서 살아남기에 바빠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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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재판기일은 8월27일로 정해졌습니다. 국방부에 요청한 문서 같은 것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탓이라고 합니다. 증거물이 도착하지 않으니까 심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증거 제출을 독촉하도록 판사에게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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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1일 증인심문에서 이용기 씨의 증언이 확고해 보였기 때문에 박연수 대위가 '최초 좌초'라는 말을 했거나 그 지역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인정할까 여부가 관심사였습니다. 왜냐 하면 '최초 좌초' 지점과 합조단이 결론을 내린 '폭발 원점' 지점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최초 좌초' 지점의 수심이 얕아서 좌초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연수 대위의 증언을 들어 보면, 서로 오해할 만한 상황이 겹쳐서 오해가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포술장의 증언을 검토해 봐야 할 텐데, 저는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브리핑 동영상이나 녹음이 발견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박연수 대위의 증언을 들어 보건대 거짓말을 섞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오해가 겹친 것 같이 보입니다.


공판검사는 왠지 박진영을 닮아 보였고, 주심판사(?)는 정병국 의원이나 크리스토퍼 리브(수퍼맨 1탄)과 왠지 이미지가 겹쳐 보였습니다. 신상철 씨는 키는 작아지고 옆으로 퍼졌고, 머리가 컸습니다. ^ ^ 에어컨이 서늘한 정도로 맞춰져 있어서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렇다고 추위를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법정에 휴대폰이나 카메라의 소지는 가능했지만, 촬영이나 녹음은 허가 없이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들 몰래 스마트폰을 켜 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만, 꺼두었습니다.


<메모한 내용을 그대로 올립니다. 수첩에 적은 대로 줄도 거의 그대로 지켜서 올립니다.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록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린 방청후기를 참고해 주십시오. 증언 내용을 다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제 옆자리에 앉았던 중앙일보 오대영 기자가 저보다 3배는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기록의 정확성을 위해서 대조가 필요하다면 오대영 기자에게 부탁해 보십시오.>


(재판정 그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기는 좀 그렇군요.)


1. 보통 사람은 법정에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천안함관련 재판이 열리는 이 법정의 모습을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은 허가를 얻은 다음에 해야 하고, 만약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고 하여, 사진을 찍지 않고 간단한 도형 몇 개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 그림을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천장은 둥근 아치로 되어 있고, 여기에 형광등이 여러 줄 있어서 조명은 약간만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2. 선서석은 재판정 맨 뒤(북쪽)에 있습니다. 여직원 한 분이 증인으로 참석한 사람에게 선서 서류를 작성하게 하더군요.


3. 재판 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재판이 방해받기 때문인지, 휴대전화를 끄라는 지시를 명백히 받았습니다. 법정서기(?)로 보이는 분도 지시했고, 그 전에 여직원 한 분이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3. 녹음이나 녹화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허가 없이 녹음하거나 녹화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경고 안내문이 벽에 붙어 있습니다.


4. 524호 형사재판법정에는 스피커가 벽에 4개 붙어 있었습니다.


5. 프로젝터가 하나 동쪽 벽에 매달려 있고, 서쪽에는 스크린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6. 판사석은 남쪽에 있습니다. 좌석은 모두 3석인데, 마이크는 1개만 있었습니다. 모니터는 중앙에는 2개, 다른 판사석 앞에는 1개씩 2개가 있어서, 모두 4개의 모니터가 있었습니다.


7. 판사석 바로 아래에는 속기사석이 있었습니다. 여자 속기사가 컴퓨터로 속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판 중에 대충 보니, 검사와 변호인은 사전에 심문할 내용을 정리해서 판사들과 속기사에게 제출하는 모양입니다. 질문에 번호까지 매겨 놓고 순서대로 질문하더군요. 이렇게 하면 속기사는 증언만 부지런히 기록하면 됩니다. 증언을 토씨까지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아니고, 조서를 꾸밀 때처럼 문장을 정리하여 기록하더군요.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방식입니다. 미드 [보스턴 리걸]에는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변호인의 심문, 검사의 심문, 증인의 증언, 판사의 명령 등이 모두 실시간으로 기록되어야 진짜배기 '속기'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사전에 심문 내용을 제출함으로써 일거리가 줄어들고 재판비용이 줄어들고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점은 장점인 것 같습니다. 장점 때문에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검사석에는 좌석이 2개 있습니다. 공판검사가 앉을 자리와 보조하는 직원이 앉을 자리입니다. 검사석의 마이크는 1개였습니다.


9. 변호인석은 좌석이 모두 4개 있었습니다. 마이크는 2개 있었습니다.


10. 증인석은 좌석이 모두 2개 있었습니다. 마이크도 2개 있었습니다.


11. 증인대기석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변호인들이 거기에 앉더군요. 9개의 좌석이 있었습니다.


12. 1시50분에 변호인 2명이 도착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분홍색 보자기에 20센티미터 정도의 두툼한 A4 용지뭉치를 들고 왔더군요. 그것도 모자랐는지 백팩까지 매고 왔습니다.


13. 방청객은 처음에 세었을 때는 23명이더니, 곧 24명이 되었고, 나중에는 30명도 넘게 되었습니다. 일부 방청객은 바닥에 앉아서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14. 박연수 대위는 20대 후반으로 앳되어 보였습니다. 검정색은 아니고, 진한 곤색 양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15. 1시 58분 변호인 1명이 추가로 도착했습니다.


16. 1시 59분 피고인이 도착했습니다. 가방 하나와 천안함 목조 모형을 들고 왔습니다.


17. 1시 59분 검사가 도착했습니다.


18. 증인대기석에 2명이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증인인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변호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변호인이 모두 6명으로 보입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판사가 변호인을 하나씩 확인하는데, 여러 법무법인의 이름과 변호사 이름을 확인하더군요. 롯데, 증평 등이라고 들었습니다. 법무법인이 몇 개 더 있습니다.


19. 2시 07분 판사 세 사람이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법정서기가 기립이라고 외쳤고,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습니다. 판사들이 착석하자 법정서기가 착석이라고 외쳤습니다.


20. 중앙에 있는 판사(주심판사라고 알고 있는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는 수퍼맨 스타일이었습니다. 검은 테의 안경에 정병국 의원과 좀 닮아보이기도 했습니다. 목소리는 작았습니다.


21. 2시 10분 박연수 대위의 증언이 시작되었습니다. 증인석에 서서 박연수 대위는 선서를 합니다. 선서가 끝나 2시 12분에  검사(공판검사라고 해서 재판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검사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수사만 하는 검사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업무분담이 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드 [보스턴 리걸]에는 수사검사가 공판도 하는데, 이건 좀 이상야릇한 분담이지요.)의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22. 박연수 대위는 3월 26일 19시 50분에 당직사관 임무를 교대했습니다. 그 날 아침 08시에 포술장과 당직근무를 교대했고, 20시에 다시 근무교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변호인은 나중에 포술장이 근무 교대 후 어디에 있었는지를 심문합니다. 박연수 대위는 모른다고 증언합니다.)


23. 천안함은 매 30분마다 2함대 사령부에 날씨 정보를 문자정보망을 통해서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이 보고문서는 통상 5~10분 전에 작성하여 30분이 되면 문자정보망에 올린다고 합니다. 상황실(함교 아래에 있는 상황실로 짐작됨)에서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장면을 박연수 대위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건(사고)이 일어난 시간을 9시 20분 이후라고 추론하였다고 합니다.


24. 사건이 일어나자, 박연수 대위의 몸은 함교에서 20-30cm 위로 떴습니다. 그리고 다시 떨어졌을 때는 우현 벽으로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변호인이 이 과정에 걸린 시간이 얼마였는지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안함이 얼마만에 우현으로 기울었는지가 합조단이 어뢰 피격을 증명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연수 대위는 이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변호인은 상식을 거론하며, 몸이 떠오른 시간과 착지하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일 수밖에 없는데, 증인이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고 대답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5.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떠올랐지만, 어뢰 폭발에 해당하는 소음은 못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그 대신 우현견시의 비명소리와 부직사관의 함교 침수 외침을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때는 이미 전기가 다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박연수 대위는 우현견시를 구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광희 중사가 문을 열고 우현견시 쪽으로 나가서 우현견시 공창표 하사에게 이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안내했습니다. 나중에 공창표 하사의 증언에 따르면, 공창표 하사는 우현견시를 하고 있었는데, 박연수 대위는 함교 탈출과 구명복(CO2 뭐라고 하던데 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착용을 지시하고, 좌현 수밀문을 열고 좌현견시 쪽으로 나갔습니다. 이 때 중갑판 쪽의 문을 통해서 중앙통로에 다른 승조원들이 나와서 모여 있었습니다.




합조단 조사 받음


공창표 하사 구조 지시

육성 지시 + 구급장비 착용 지시

물이 차서 함교 탈출 지시

함미 안 보임

기어 가서 함미 손실 확인 없었음

포술장 함대상황실로 보고

중갑판 문 열고 나옴

휴대폰 보고

통신장이 어뢰 보고 상황실

어뢰 판단+함장 대화

인원 파악 보고

고속정 접근 접근 불가함

계류색 먼저 건너감

고속정에 구조됨. 이함 불가능 판단

-->해경 구조

-->생존+실종 명단 작성

2함대 사령부로 이동

최원일 휴대전화 수거함

입막음 격리 조치 --> 없었음

교육장 이동 유가족 설명했음

백령도 남서쪽 가리킴

좌초 부인함.

3/27 2함대 도착

이동+브리핑

빨간점 최초 사고 위치

함수 위치를 지칭함

좌초 단어 부인 2회

유족 앞에서 좌초 내부폭발 부정함

함장 브리핑에 참여하지 않음

사건 전 좌초 충돌 부인함

변호인 반대심문

사고해역이라고 말했다고 함

좌현견시 황보상준 상병

기관전령-속도조절 담당

시간당 2회 왕복

6-7노트 정도

출동전 점검 10일 작전 중임

암초 확인 상태

백령도 2-2.5 마일 정도

북서쪽 6-7노트 기동중 사고전..

파고 2.5m 내외

평소보다 안 좋음

시정 3마일 바람 불음

A~B 지점

KNTDS

변침 지시함. 시간기억 안 남

타각+방향 지시-->실행 후

-->침로 지시

북서-->남동 방향 조류

회전 반경 크기 기억 안 남

쾅 소리 한 번

함수 전방 응시 - 북서쪽

불빛 섬광 물기둥 화약냄새

느끼지 못함

좌초 느낌 없음 하루 종일

후진기동 없었음

구조 요청 사고 전 없었음

부직사관 - 함교 침수 소리지름

후타실 침수 지시 없음

좌측 수밀문 열고 탈출

배는 우현으로 기울었음

우현견시 비명

구조 ~ 5~10분 걸린 것 같음

공창표 하사 = 우현견시

이광희 중사

쿵 + 우현으로 떨어졌음

즉시 90'로 기울었음

이용기 : 3/27 오전 브리핑

이원보 대령 좌초 브리핑

박연수는 모름

당일 설명 녹음 - 모름

중앙일보 3/27 침수 기사 부인

KBS 파공 합참 브리핑

그런 보고 부인

포술장 - 좌초 보고함

박연수에게 보고하지 않음

포술장 보고는 박연수 탈출 전임

중갑판 중앙통로쪽 포술장 위치

박연수는 보고한 바 없음

포술장-작전관 함교 당직사관

2교대함 오전+오후

포술장 좌초 보고는 비상시 표현으로

생각함

해역+충돌X+배 절단면

흘수선 2.5~3m

측심기+레이다 확인 수시로

고속정 4척 도착(몇 척인지 모름)

501 해경

<3시20분임>

501함 식당 집결 휴대폰 수거

최원일

3/27 평택 입항 14:00

해군 함정으로 이동+입항

헬기 운항했음

(구조 여부는 모름)

환자 우선 육지 이송 용기포

후타실 CCTV 사진

김용현 병장 말고는

화면상으로 분간이 안 됨

06~21시 작전기동함

27 06까지 고속정 타고 수색

함수 침몰 장면 보았음

전방 주시+섬광 없었음

학사장교

스테이션별 당직 교대

보고 음탐기

액티브/리슨 모드 교대

질문 안 함

피고인이 증인을 심문한다?

검사는 박진영 닮음^ ^

검사의 추가 질문 따름

사고원인 함구?

사고 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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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홍창표 우현

갑판하사 현역

원당직근무 20~24시

항로 주시 업무

헤드라이트는 당직사관

21:05분

사건 전 비상 상태 없었음

이광희 중사 안내로

오른쪽 인대 파열 복통

성남함에서 치료 받음. 응급처치

분당 국군수도 병원 먼저 이송됨

천안함 좌초 사실은 전혀 없음

긁히는 소리 없었음.

2009년 9월22일 발령 근무

불빛 섬광 못 봤음

함미쪽 확인 안 했음

몸 떠오르는 건 못 느꼈음

목 난간 밟고 봉 잡았음

쾅 소리 한 번만 들음

오른 무릎 인대 파열

다른 데 부딪친 탓이 아님

우현 기울어진 시간 정확히 모름

물기둥 못 봄

물벼락 못 느낌

화약냄새 못 맡음

기름냄새 기억 안 남

구조활동 안 했음. 주저앉음

사고 원인에 대한 논의한 적 없음

정신이 없어서

병원 1차 조사

7월 국방부 2차 조사

수도병원 + 의무대

8/27 월 다음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