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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님이 여신 글타래 http://acro.pe.kr/zbxe/?document_srl=7791 로부터, 제목을 테마로 따름 토론을 열어 볼까 합니다.
사실 과학적 사고와 비과학적 사고가 과학의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그리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작게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부적의 힘을 믿고 따르고 있으며, 크게는 한의학, 특히 경락이론에 기초한 침구술은 그 '과학성'이 서구 과학의 기준에서 명확하게 인정 받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제가 얼핏 듣기론, 서양 의학회 혹은 미국 의학회에서 예전에 동양 의학은 합리적인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진술이므로 여기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정보를 주십쇼- 일반인들에게는 엄연한 '동양 의학'으로 그 '과학성'이 널리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사이비 과학 논쟁은 동서 학문의 대립 구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양 학문 내부에서도 있어왔던 논쟁입니다. 최근에는 소칼의 '지적 사기 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크스의 경제학이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역시 '과학의 탈을 쓴' 사이비 이론이라고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지요.
이렇게 따지면 도대체 서구의 자연 과학, 자연 과학적 사고,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 가지는 함의와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서구의 과학과 동양의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양립할 수 없는 학문인가 자연스럽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회원 여러분들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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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과학적 사고와 비과학적 사고가 과학의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그리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작게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부적의 힘을 믿고 따르고 있으며, 크게는 한의학, 특히 경락이론에 기초한 침구술은 그 '과학성'이 서구 과학의 기준에서 명확하게 인정 받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제가 얼핏 듣기론, 서양 의학회 혹은 미국 의학회에서 예전에 동양 의학은 합리적인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진술이므로 여기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정보를 주십쇼- 일반인들에게는 엄연한 '동양 의학'으로 그 '과학성'이 널리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사이비 과학 논쟁은 동서 학문의 대립 구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양 학문 내부에서도 있어왔던 논쟁입니다. 최근에는 소칼의 '지적 사기 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크스의 경제학이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역시 '과학의 탈을 쓴' 사이비 이론이라고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지요.
이렇게 따지면 도대체 서구의 자연 과학, 자연 과학적 사고,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 가지는 함의와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서구의 과학과 동양의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양립할 수 없는 학문인가 자연스럽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회원 여러분들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2009.07.14 04:03:31
저는 사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_-; 하지만 제 의견에는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입니다... 사실 서구의 자연 과학, 의학의 경우 굉장히 우리가 시각적으로 볼수있는 부분에 의한 직접적인 경험으로 인지할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거에 비해 한의학 같은 경우는 시각적 인식이 아닌 단순히 두리뭉텅한 부분으로 치부해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지요. 하지만 결국 두리뭉텅한 부분으로 보든 직접적인 부분으로 보든 맞으면 그만 아닌가 싶습니다. 저가 반도체 공학을 배우면 전자의 이동에 대해서 단순히 "이건 현상적으로 이러하니까 이런식의 식을 사용한다" 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완전히 과학적 인식이란 조금은 힘든 부분인거 같습니다. 한의학의 경우도 최소 몇백년 동안의 선조들의 경험적인 부분에 의한 의학이라고 치부한다면, 그런 경험적인 인식론을 꼭 과학적 인식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버릴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요즘에 친환경농업(뭐 태평농업이나, 유기농 같은)의 경우 조상들의 농사를 짓는 방식에서 방법을 많이 찾고 있지요. 사실상 그것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더라도, 몇백년동안의 축적해온 지식은 완전해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극소해(완벽한 해는 아니지만 그에 비슷한 해)를 찾아낼 수는 있는 것이지요. 그런 극소해를 찾는 것에만 의의를 두어도 굳히 과학만이 진리다 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을 듯 싶습니다... 거기에는 다 이런 저런 정답의 힌트들이 숨어있으니까요.. (추가 질문 드리면.. 태교도 굉장히 비과학적 아닌가요? 실제로 어떻게 되는진 모르는데 그냥 좋다더라... 이것 아닌가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ㅎㅎ )
2009.07.14 08:08:24
과학 안에서도 전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는 무리들이 있지 않습니까?
과학이 사실을 구성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도 논리적 추론을 근거로 시작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입증가능한 증거들 "을 제시해서 타당성을 인정받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증거들을 100% 제시할 수도 없거니와 결정적 반증이 없기전까지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논리적 추론이 시작되는 시점은 과학적 사고가 아닌 과학자의 개인적인 세계관, 더 깊게는 종교적인 수준의 신념체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즉 과학도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제 말은 과학의 모든 영역이 해석에만 달려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닙니다. 해석이 과학이론의 중요한 한 부분중 하나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근, 현대의 과학의 방법론은 서양에서 정립이 되었고 동양은 좀 다른 방식으로 경험을 과학화(?)하는 방법을 택해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즉 동양은 이론의 근거가 되는 신념의 체계(종교적 세계관)를 숨기지 않고 이론화했다고 봅니다. 종교를 사회통합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동양에서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종교적 신념체계의 제구성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서양은 문예부흥을 경험하면서 과학현상에 대한 종교적 세계관을 탈색시키는 방식의 이론화를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한 과학자가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제할때 까지는 그 추론의 근거가 되었던 신념의 체계가 유효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해보일 때는 이 신념을 입증의 근거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진화론자들의 신념의 체계는 무신론입니다. 당연히 무신론도 종교적 세계관입니다. 진화론은 이 세계관을 근거로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의 이론체계도 과학의 방법론에 의하면 충분히 과학적입니다. 두 이론체계는 순전히 서로에게 상반되지만 둘다 나름의 지지 학자들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과학적 이론들입니다.
하지만 두 부류의 과학자들은 그 이론체계를 논증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접근은 배제합니다. 종교적인 접근은 결국 반칙(?)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의 경험과학의 이론화는 종교적 세계관, 이론화의 근원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찾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본인도 동양의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음양이나 태극의 동양철학은 종교적 신념과 유사한 깊이의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서양과학의 기준으로볼 때는 동양의학이 반칙(?)을 하는 셈이됩니다.
입증가능한 근거를 다시 종교로 환원하여 객관성을 상실하고 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의학도 근래에 들어서는 서양의 방법론에 의해서 충분히 재구성되고 서양의 과학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과학을 영적, 종교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과학은 측정가능한 절대 객관적 사실이다"라는 잘못된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학은 개관적이어야 하고 측정(입증) 가능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반론이 그것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만 유효한 한시적인 이론체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동설을 사람들은 암흑 중세시대의 종교적 광기로만 이해하지만 사실은 천동설은 한 시대에서만큼은 충분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유효한 입증을 가지고 있었던 체계입니다.
단지 지동설이라는 더 좋은 설명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한시성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여론과 정치와 폭력으로 반론을 적대했던 것이 문제였지요.
서양과학도 하나의 경험세계를 이론화하는 방법론일 뿐 자신의 한시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물에 기억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물과 공기와 불을 꼽았던 고대철학자자들의 주장대로 물은 단순한 '하나의 물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에 얽혀있는 생명의 신비와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지나치게 나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경험을 체계화하는 서양의 방법과 동양의 방법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나 부작용들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서양적 방법론이 교차하는 시도를 금기한다면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같이 버리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과학이 사실을 구성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도 논리적 추론을 근거로 시작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입증가능한 증거들 "을 제시해서 타당성을 인정받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증거들을 100% 제시할 수도 없거니와 결정적 반증이 없기전까지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논리적 추론이 시작되는 시점은 과학적 사고가 아닌 과학자의 개인적인 세계관, 더 깊게는 종교적인 수준의 신념체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즉 과학도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제 말은 과학의 모든 영역이 해석에만 달려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닙니다. 해석이 과학이론의 중요한 한 부분중 하나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근, 현대의 과학의 방법론은 서양에서 정립이 되었고 동양은 좀 다른 방식으로 경험을 과학화(?)하는 방법을 택해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즉 동양은 이론의 근거가 되는 신념의 체계(종교적 세계관)를 숨기지 않고 이론화했다고 봅니다. 종교를 사회통합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동양에서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종교적 신념체계의 제구성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서양은 문예부흥을 경험하면서 과학현상에 대한 종교적 세계관을 탈색시키는 방식의 이론화를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한 과학자가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제할때 까지는 그 추론의 근거가 되었던 신념의 체계가 유효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해보일 때는 이 신념을 입증의 근거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진화론자들의 신념의 체계는 무신론입니다. 당연히 무신론도 종교적 세계관입니다. 진화론은 이 세계관을 근거로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의 이론체계도 과학의 방법론에 의하면 충분히 과학적입니다. 두 이론체계는 순전히 서로에게 상반되지만 둘다 나름의 지지 학자들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과학적 이론들입니다.
하지만 두 부류의 과학자들은 그 이론체계를 논증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접근은 배제합니다. 종교적인 접근은 결국 반칙(?)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의 경험과학의 이론화는 종교적 세계관, 이론화의 근원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찾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본인도 동양의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음양이나 태극의 동양철학은 종교적 신념과 유사한 깊이의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서양과학의 기준으로볼 때는 동양의학이 반칙(?)을 하는 셈이됩니다.
입증가능한 근거를 다시 종교로 환원하여 객관성을 상실하고 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의학도 근래에 들어서는 서양의 방법론에 의해서 충분히 재구성되고 서양의 과학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과학을 영적, 종교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과학은 측정가능한 절대 객관적 사실이다"라는 잘못된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학은 개관적이어야 하고 측정(입증) 가능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반론이 그것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만 유효한 한시적인 이론체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동설을 사람들은 암흑 중세시대의 종교적 광기로만 이해하지만 사실은 천동설은 한 시대에서만큼은 충분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유효한 입증을 가지고 있었던 체계입니다.
단지 지동설이라는 더 좋은 설명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한시성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여론과 정치와 폭력으로 반론을 적대했던 것이 문제였지요.
서양과학도 하나의 경험세계를 이론화하는 방법론일 뿐 자신의 한시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물에 기억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물과 공기와 불을 꼽았던 고대철학자자들의 주장대로 물은 단순한 '하나의 물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에 얽혀있는 생명의 신비와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지나치게 나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경험을 체계화하는 서양의 방법과 동양의 방법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나 부작용들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서양적 방법론이 교차하는 시도를 금기한다면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같이 버리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2009.07.14 08:29:58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물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물은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명제는, 순수하게 사실에 관한 명제일까요? 또한, '인체의 몸은 경락, (경혈과 경혈의 연결선, 즉 기와 맥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병증은 대개 기와 맥의 흐름이 불순해 지거나 막힌 곳이 있을 때 일어난다'는 명제 역시, 단순히 '관찰 가능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명제일까요? 만약 그러하다면, 이 명제들이 바탕을 두고 있는 '사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두 명제는 서로 같은 수준의, 같은 논리적인 형식과 질을 가지는 명제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논리적인 형식과 질을 가지는 명제일까요? 만약 두 명제의 논리적인 성격이 서로 다르다면, 그 다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첫번째 명제가 '헛 소리'라면 두번째 명제도 '헛 소리'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두번째 명제는 그 헛소리의 정도가 첫번째 명제보다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일까요?
이 두 명제는 서로 같은 수준의, 같은 논리적인 형식과 질을 가지는 명제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논리적인 형식과 질을 가지는 명제일까요? 만약 두 명제의 논리적인 성격이 서로 다르다면, 그 다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첫번째 명제가 '헛 소리'라면 두번째 명제도 '헛 소리'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두번째 명제는 그 헛소리의 정도가 첫번째 명제보다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일까요?
2009.07.14 10:28:23
숨쉬는 바람님!!! 좋은 질문들을 주셨는데 님이 생각하는 답은 무엇인지도 알려주시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군요.
한가지 저도 구분하지 않고 쓴 표현이 있다면 ...
"물은 생명이 있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명제에 대해서 반대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지요.
제가 회의적으로 표현한 것은 crete님의 발제글을 통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과학자(이름을 까먹었습니다.)가 선택한 과학적 방법인 면역체계 어쩌고... 한 내용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그 과학자는 과학의 언어와 논리를 통해서 자신의 명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참, 거짓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물론 저는 crete님과 여기 올라와 있는 몇개의 관련된 발제글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은 전무합니다.
제 판단의 근거는 이렇게 빈약하기는 합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물은 생명과 기억...." 그리고 "한의학".....이렇게 두 가지 명제의 차이는 경험된 실용성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도 경험된 실용성이 어디에 사는 누구의 것이냐는 또 다른 질문을 피할 수 없겠지만요...^^.
한가지 저도 구분하지 않고 쓴 표현이 있다면 ...
"물은 생명이 있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명제에 대해서 반대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지요.
제가 회의적으로 표현한 것은 crete님의 발제글을 통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과학자(이름을 까먹었습니다.)가 선택한 과학적 방법인 면역체계 어쩌고... 한 내용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그 과학자는 과학의 언어와 논리를 통해서 자신의 명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참, 거짓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물론 저는 crete님과 여기 올라와 있는 몇개의 관련된 발제글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은 전무합니다.
제 판단의 근거는 이렇게 빈약하기는 합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물은 생명과 기억...." 그리고 "한의학".....이렇게 두 가지 명제의 차이는 경험된 실용성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도 경험된 실용성이 어디에 사는 누구의 것이냐는 또 다른 질문을 피할 수 없겠지만요...^^.
2009.07.14 11:47:18

좋은 질문은 즉각적인 대답이 가능한 것 보다는, 그와 연결된 다른 질문들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질문일 경우가 많지요. ^^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명료성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면, 기다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의 대화라는, 인류가 고안해 낸 막강한 탐구 방법의 도움을 빌 수도 있겠지요.
'새로운 물과학'과 '한의학'과의 차이는 단지 경험된 실용성의 차이가 아닐까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중입니다.
<동일한 대상 세계에 대해, 내적으로 정합된 복수의 기술 체계가 가능하다면, 그 기술 체계의 진리치는 결국 이론이 현실에 미치는 효과에 있다>는..다분히 실용주의적인 진리관이지요. 이 진리관은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진리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진리에 대한 체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2009.07.14 15:46:48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진화론자들의 신념의 체계는 무신론입니다. 당연히 무신론도 종교적 세계관입니다. 진화론은 이 세계관을 근거로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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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들의 신념의 체계는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의 진리에 대한 과학적 믿음과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은 부인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논리적 도출관련도 친화적 도출관련도 없습니다. 다윈 자신부터가 무신론자였다고 볼 수 없고 기독교적 유신론의 입장에서 신이 이 세계를 진화의 세계로 창조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미 그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진화론과 무신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오해의 대부분은 진화론의 성격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부족에서 옵니다. 진화론은 생물이 어떻게 처음 출현했는지에 대한 이론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진화론이 기독교와의 갈등관계 속에 있은 적이 있고 현재에도 몇몇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이 [ 어리석게도] '맹렬한' 무신론자라고 하는 사실이 혼동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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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들의 신념의 체계는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의 진리에 대한 과학적 믿음과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은 부인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논리적 도출관련도 친화적 도출관련도 없습니다. 다윈 자신부터가 무신론자였다고 볼 수 없고 기독교적 유신론의 입장에서 신이 이 세계를 진화의 세계로 창조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미 그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진화론과 무신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오해의 대부분은 진화론의 성격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부족에서 옵니다. 진화론은 생물이 어떻게 처음 출현했는지에 대한 이론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진화론이 기독교와의 갈등관계 속에 있은 적이 있고 현재에도 몇몇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이 [ 어리석게도] '맹렬한' 무신론자라고 하는 사실이 혼동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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