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정치사회적 차별에 대한 반사적 행동을 지역주의라고 부른다면, 할렘가 흑인들의 정치사회적 저항을 할렘지역주의라고 불러도 된다는 말일까? 할렘에도 타 지역과 동일한 수준의 예산을 배분해달라, 장기간의 차별적인 예산 배분으로 낙후되어 버린 것에 대한 보정을 요구하면 그것을 할렘의 지역이기주의라고 부르겠다는걸까?
그래서 나는 한국에 지역주의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호남 역시 그에 해당하는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지역주의 이야기가 나오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역주의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스페인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고 이탈리아에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투쟁과 남북전쟁등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하면서 마치 한국의 지역주의(?)가 그것들과 유사한 현상인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봐도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지역주의는 "분리독립적" 지향이고, 남북전쟁 역시 그렇다. 우리가 흔히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의 지역주의 사례"라고 들고 오는 것 대부분이 '분리독립운동'의 산물이거나 분리독립된 상태에서 강제로 통합을 당한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분리독립운동의 역사가 있었는가? 아니면 현재의 지역구분 현상이 1500년전 고구려의 일부와 백제가 신라에 강제로 통합당한 결과물이라는 것인가? 호남 영남 충청의 '지역구분 현상'은 결코 분리독립을 지향하지 않는다. 특히 호남의 경우 그 자체가 오히려 분리를 당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통합과 일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코 지역주의적이지 않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저항적이라는 근사한(?) 꼬리표를 달아주면서 지역주의라고 부르고, 그걸 극복하자고 온갖 웃기지도 않는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일까?
물론 영남과 충청같은 경우에 '분리독립적이고 배타적인 지역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지역주의와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그것은 '지역이기주의' 일 뿐 지역주의는 아니다. 특히 충청은 더 더욱 그렇다. 타 지역으로 이주한 충청주민들은 더 이상 자민련이나 자선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지역주의라고 불리려면 최소한 주거지에 상관없이 '출신지역'에 따라 일관된 정당지지 현상이 관찰되어야만 한다 (물론 주거지에 상관없이 출신지역에 따라 일관된 정당 지지가 관찰된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지역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도지역 심지어 면단위에도 존재하는 '지역 내 SOC 유치를 위한 활동'과 충청의 지역정서가 본질적으로 다른게 있을까?
흔히 한국에 지역주의가 존재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선거 때마다 차이가 나는 지역별 정당지지율과 득표율을 든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서울에도 있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 역시 지역간에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정당지지율과 득표율이 존재한다. 영호남의 차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못지 않다. 그러면 이제부터 강북지역주의와 강남지역주의라고 불러도 될까? 강북지역의 서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과 호남의 서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의 본질적인 차이를 과연 무엇으로 구분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 도리어 호남주민들의 절대다수는 서울강북의 서민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어떤 유권자가 '지역주의투표' 를 했다고 규정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조건들을 모두 충족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괄호안은 필자 본인의 주관적 판단)
1. 주거지 변동에 상관없이 동일한 투표를 할 것인가? (영호남 O, 충청 X)
2. 소득의 변동과 상관없이 동일한 투표를 할 것인가? (영남 O, 호남 △, 충청 X)
3. 배타적이고 우월한 지역 이익에 찬성하는가? (영남 O, 충청 O, 호남 X)
4. 특별한 불이익이 없다면, 자신의 출신지역이 국가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것을 찬성하는가? (모두 X)
따라서 영남의 정치사회적 정서는 크게 보아 지역주의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패권적 지역이기주의로 엄격하게 분류하는 것이 옳다. (명심해야 할 것은 지역주의보다 패권적 지역이기주의가 훨씬 더 나쁘다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의 지역 정서는 분명 민족감정에 의한 지역주의이지만, 잉글랜드의 지역 정서는 지역주의보다는 패권적 지역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명칭법인 것과 같다.
이렇게 지역간에 본질적이고도 엄연한 차이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모두 한개의 범주로 묶어서 '지역주의' 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

한국 정치지형은 어찌어찌해서 (물론 원흉은 박정희라고 보고) 지역구도가 형성된거지, 그걸 지역주의라고 해버리면 호남은 정말 억울하죠.
지역구도의 형성경위에 대해서는 박성훈이 <만들어진 현실>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거 말고 다른 설명도 있으면 소개 좀 부탁해요.
1971년 7대 대선 [편집]
1965년 5월 13일 이효상 국회의장이 서독 방문 중 본 대학교 학생들 앞에서 "현 정권은 경상도 정권이다"라는 발언을 하였다.[13]
1966년 9월 23일 민중당 위덕용 의원은 경상도정권 발언 등으로 지방파벌 의식을 고취하고 민족분열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이효상 국회의장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하였다.[14]
1969년 10월 13일 신민당의 전라남도 광주시 유세에서 당시 신민당과 3선개헌반대 범투의의 이재현, 정성태, 김대중, 윤길중, 양일동, 양희수 등은 신민당 광주유세에서 영남 지방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 정부가 박정희의 1967년 대선 공약이었던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않고 푸대접하고 있다며 경상도 정권을 타도하자는 발언이 나왔다.[15] 1971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박정희 측과 신민당의 김대중 측의 대결로 지역감정이 나타났다.
민주공화당에서는 "전라도 대통령을 뽑으면 경상 푸대접 내지는 보복이 온다"고 선전했고, 신민당은 "전라도에서도 이번에는 꼭 대통령을 내어 푸대접을 면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호남지방에서는 "지금 경상도에서는 자기들 출신 대통령을 다시 뽑을려고 기를 쓴다"고 말하고 영남지방에서는 "똘똘뭉쳐 김대중씨를 뽑으려 한다."고 이간질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선거 막바지에는 영남 지방에 "전라도여 뭉쳐라"는 등에 내용의 벽보가 나돌았다,[16] 한편,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영남 지역에서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전단지가 나돌았다.[17]
1971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언급을 하였다[18][19] 이효상은 박정희 지지 찬조연설에서 "쌀밥에서 뉘가 섞이듯이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된다. 경상도 사람 중에서 박대통령 안찍는 자는 미친놈이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20][21]
중진 연사인 이효상은 영남 지방유세에서는 경상도 의식을 강조, 호남 지방에서 다른 정치인은 되도록 표준말을 써서 언어에서 나오는 반감을 사지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16] 또 어느 공화당 찬조 연사는 "경상도 사람치고 박대통령 안뽑을 사람있느냐"고 반문, 노골적으로 지역의식을 강조하기도 했으며 다른 연사는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전라도에서 전라도민은 모든 단결해서 나를 뽑아주어야한다."고 했다면서 이런 사람이 전라도 대통령은 할수 있지만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수 있느냐"고 경상도 유권자들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신민당은 호남지방에서 "경상도 정권하에서의 전라도 푸대접의식"을 강조, 이를 부채질하는 등 선거에 지역감정을 이용했다.[16]
1.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인식의 변화 - 1988년과 2003년 비교《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2004년 12월 21일 정기선 전임연구원
2. 충청도는 물 먹은 적 없다《한겨레21》2000년 3월 23일 신승근 기자
3. 박상훈,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후마니타스, 2009년, p.9-10
4. "부모가 호남출신...충성인사로 발령해야" 이명박 '호남 솎아내기', YS보다 심했다《오마이뉴스》2012년 4월 7일 김당 기자
5. TK·PK 역차별, 기준은 오직 '탄생지역'뿐?《오마이뉴스》2009년 8월 6일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허미옥
6. '토종TK'냐 '서울TK'냐... 이걸 보고 판단하라고?《오마이뉴스》2012년 3월 13일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허미옥
7.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 선거정보시스템
8. 경상도 vs 전라도…1971년 4월 27일 갈라졌다!《프레시안》2011년 10월 10일 김택근
9. 박정희 측, 6대 대선 때 윤보선 암살하려 했다《CNB저널》2007년 11월 26일 김현석 기자
10. "정보기관, 71·87년 대선 조직적 개입"《한국일보》2007년 10월 24일 신재연 기자
11. "중정.안기부, 주요 선거때마다 깊이 관여"《연합뉴스》2007년 10월 24일
12. 김사만씨 영주강연. 부산과 대구엔 빨갱이 많다. 1963년 10월 11일 경향신문
13. 이 의장 발언이 더 한심하다《동아일보》1965년 5월 14일 사상계 사장
14. 국회해산론 대두《매일경제》1966년 9월 23일
15. 푸대접을 막자 신민, 광주 유세 1969년 10월 13일 경향신문
16. 가 나 다 지역감정의 극한대결 말초심리 자극선동 1971년 4월 30일 동아일보
17. (분수대) 흑색선전《중앙일보》2010-06-02 00:38
18. 박정희-김대중 후보 격돌 7대 대선 때 첫 '양극화'《동아일보》2000-03-04
19. (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스포츠서울》2009/08/22 19:46
국가정보기관을 통한 선거개입 및 지역감정 조장 [편집]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보고서에 따르면 10월 유신으로 가는 마지막 대통령직선제 선거였던 제7대 대선에서 박정희 정부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풍년사업’이라는 공작명 아래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풍년사업’은 1972년 5월부터 준비한 유신공작 사업으로 알려졌지만 대선개입 등을 위해 그 이전부터 준비되었으며 중앙정보부는 풍년사업을 통해 김대중의 선거 유세에 인파가 몰린 것이 부각되지 않도록 보도통제를 실시하고 요원들이 직접 경상도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흑색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8] 아울러 도쿄에 거주하는 조 모씨가 대선 일주일 전 중앙정보부 요원과 접촉해 ‘우리 가문에는 김대중을 지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약했다는 ‘풍년사업’보고서가 확인돼 정치공작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뤄졌음을 시사했다.[9]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해 열린 첫 대선인 1987년 13대 대선에서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선거 개입은 여전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상록사업’이라는 공작명으로 대선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는데, ▲특정 단체에서의 시국 강연과 노태우 후보 지원 요구 ▲국가안전기획부 공무원 및 가족들의 대민접촉을 통한 선거운동 ▲사업장 근로자 득표율 제고 대책 등을 담은 문건들이 확인되었다. 총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김영삼 등이 출마한 곳을 포함한 7개의 지역구를 ‘정책지구’로 선정하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에게 반드시 승리할 것을 지시했다는 정황이 여러 증언을 확인했다.[10] 또 1985년 실시된 제12대 총선에서도 선거 개시 5개월 전부터 투표일 직전까지 국가안전기획부가 선거 판세를 분석하고 취약지구 공작을 기획했다. 정보기관은 이와 함께 선기기간 야당 정치인의 사찰을 실시하는 한편 선거구도를 여당에게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야당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경쟁력 없는 야당 후보를 세우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예를 들어 제5대 대선에서 6명의 야당 후보가 출마했는데 중앙정보부는 이들의 후보 사퇴를 막기 위해 요원들을 동원해 후보 사퇴를 하지말라는 편지를 후보 당사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진실위가 공식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5ㆍ6대 대선 등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는 방안도 중앙정보부가 모색했다는 의혹이 있다.[11]
다른설로는 70년대 이전에는 경상도는 가난해 곡창지대인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고 가난한탓에 전라도에서 보리까지 훔쳐먹었다고 하여 경상도 보리 문딩이라는 말이 나왔단다
쌀도 아닌 가난의 상징 '보리'요,나병환자를 뜻하는 '문디'의 합성어로 널리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문딩이'의 어원은 흔히 아는 '문둥이'가 아니라 '문동이'입니다. 글월 문'과 '아이 동'이 그 어원입니다. 같이 글 공부하던 아이들이 서로를 편하게 부르던 말이 어감상 '문둥이'와 비슷하게 느껴져서 비칭으로 바뀐 경우입니다. 원뜻은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전라도 깽깽이'는 전라도 방언이 '-랑게' 혹은 '-랑께'로 끝나는 것을 비하해서 '전라도 사람은 말끝마다 깽깽한다'고 한 것이 '깽깽이'가 된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어원도 좋지 않습니다. 이 역시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이 말끝마다 갱아지 처럼 깽깽거린다고 전라도 깽깽이 라고 부른다는군요
정치/사회게시판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