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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나 문재인 지지자들은 야권 단일후보가 확정되기만 하면 TV토론 몇차례 하면서
박근혜를 완전 발라버릴 거라고 잔뜩 기대들 하고 있던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원래 TV토론이란 건 기본적으로 토론을 아주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상당한 어드벤티지를 안고 들어가는 게임이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되게 못할 것 같은 사람은 기본 정도만 해도 상당한 득점을 하는 반면
토론의 달인일 것 같은 사람은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니까요.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가 이명박에게 버벅대는 영상이 떠돌면서 박근혜는 이미 자타공인 '토론회 루저'로
등극해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이런 각인 효과가 박근혜에게는 그닥 불리한 조건이 아닐 거라고 봅니다.
사실 2007년도에는 오히려 이명박이 돈만 아는 장사꾼 이미지, 박근혜는 당 대표까지 지낸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정치토론회에서는 박근혜가 전혀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명박은 나름 청산유수, 박근혜는 졸린 눈에 먼산 바라보기만 하고 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명박의 낙승으로 끝나버린 것이죠.
1997년 대선에서도 디제이의 토론 실력은 그닥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토론을 못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보다보니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것이죠.
디제이 지지자들이 다수인 회사직원들과 술 한잔 하면서 당시 토론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 저 노인네 왜 이렇게 딱부러지게 말을 못해'라는 원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ㅎㅎ
암튼 2012년 현재 유권자들은,
논리정연한 사고와 어법을 보유한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수많은 강연회와 토크쇼로 단련된 소통과 대화의 달인 안철수,
상대방 말귀도 제대로 못알아먹는 데다, 뭔 말 하나를 해도 한 3초 정도는 생각해야 겨우 입을 떼는 박근혜로
딱 이미지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보기에 정치토론회에서 제일 불안해보이는 사람은 안철수입니다.
이 사람 같은 경우 논쟁적인 토론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하다못해 다른 주자들은 대권후보 되기 전에 이런저런 시사프로에 나와서 댓거리도 해보고
당내 경선이라는 나름의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몸을 만들어 왔는데
안철수는 매번 자신을 치켜세워주기에 급급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강연하고 토크쇼만 하고 다녔기 때문에
정작 치열한 공방이 오고가는 정치토론회에서 순발력있게 대응할 수 있을지 상당한 의문입니다.
게다가 정치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을 언급하며 치고 들어올 경우에는
5년전 박근혜처럼 먼산 바라보기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구요.
얼마전 이해찬이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얘기해서 파장이 일었을 때,
우연히 TV 뉴스를 보다보니 기자들이 안철수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근데 이 양반이 목소리까지 살짝 떨려가며 '무소속으로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빠져나가는 장면이 나왔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감이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양반이 생각보단 토론을 되게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문재인도 지난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토론하는 모습을 보니 기대보단 영 별로더군요.
토론실력 만큼은 손학규가 제일 나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암튼 조금 있으면 사천만 국민이 기대하는 TV토론이 열리겠지만
과연 야권지지자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바대로 한쪽 진영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그런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의외로 박근혜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구 말이죠...
2012.11.09 08:31:55
박근혜는 10여년동안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이니 토론회에 크게 영향받을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상상초월 수준이면 또 다른 이야기겠으나.
안철수는 영향을 꽤 받을 것 같고...문재인은 그 중간 정도 되겠지요.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토론회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조순이 서울시장 출마했을 때 토론 솜씨는 그야말로 안습. 그럼에도 그게 오히려 '참신함'으로 부각돼서 선거 승리.
이명박이 서울시장 출마했을 때 김민석에게 밀림. 그렇지만 혼잣말로 '말로는 도저히 못이기겠구만' 한마디한게 호감도 상승 시킴.
박원순 또한 서울시장 토론때 반쯤 안습. 그럼에도 무상급식 및 안철수 바람으로 나경원 제압.
이런저런 사례들을 볼 때 안철수를 제외하고 타 후보들은 큰 영향없을 것 같습니다. 안철수는 기존 토론 방식 답습하지 말고 자기만의 색깔을 내는게 중요하겠지요.
2012.11.09 08:39:43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아주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죠. 토론이 벌어져 토론의 내용상에서 보여지는 승자패자가 가려질 수 있지만, 이것은 단순이 주제 토론에 대한 승패의 결정입니다. 유권자들에게 보여지는 정치인은 토론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토론에 임하는가, 모습은 어떤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지난 지방선거 오세훈-한명숙의 토론에서 한명숙이 완전히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박빙까지 갔잖아요?티브이 토론은 여러 선거운동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이죠.
2012.11.09 09:11:48
티비토론이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티비토론이 선거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례를 딱 꼬집어 얘기할만한 건 없다고 하더군요.
그 유명한 닉슨과 케네디의 토론 정도가 선거판세에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될 뿐
나머지 수많은 티비토론 중 지지율을 출렁거리게 만든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미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다 결정했을 시기인 선거일 2-30일전에야
겨우 티비토론이 시작되기 때문에 티비토론의 결과 때문에 갑자기 지지후보를 바꾸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고 해야겠죠.
근데도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헛된 믿음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더군요.
토론회만 시작되면 지지율 격차를 확 벌려놓을 수 있다고 말이죠.
본문 글은 바로 이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전제로 작성한 것입니다.
게다가 설령 토론회에서 예기치못할 상처를 입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바로 안철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구요.
여담이지만, 지금까지 본 티비 토론 중 아직까지도 머리 속 기억에 남아 있는 건
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박찬종이 지금의 안철수처럼 기성정치권을 막 비난하면서 무소속 후보의 장점을 한참 얘기하다가
잠깐 무소속 후보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순간 민주당 조순 후보가 눈까지 꿈벅거리면서 너무도 천연덕스런 목소리로
'그렇게 힘드시면 당에 들어오시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 하는 바람에 사회자부터 시작해서 좌중이 빵 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한마디와 좌중의 분위기로 인해 무소속 후보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버렸죠.
그리고 97년 대선 때 아마도 마지막 토론의 마지막 발언이었던 것으로 생각나는데 디제이가 그랬죠,
되게 불쌍한 목소리로 '이회창 후보나 이인제 후보는 젊어서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지만, 저는 이게 마지막이니 저좀 꼭 찍어주세요~~'
그랬는데 암튼 되게 불쌍하고 처량한 목소리였지만 이게 묘한 호소력을 가졌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뭐 정책에 대한 거창한 주장보다는 저런 어찌보면 사소한 행동이나 말들이 훨씬 더 크게 표심을 좌우하지 않을까 싶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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