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반일

 

2020.10.09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우리나라 말(한국 말) = 한글로 인식합니다. 그러니 한글날만 되면 어김없이 외래어를 쓰지 말자. 표준어를 쓰자. 축약된 국적불명의 한글을 쓰지 말자.”는 엉뚱한 주장이나 캠페인이 난무합니다.

한글이 외래어 사용에 얼마나 도움을 많이 주는지, 자음+모음의 표의문자이면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모아쓰기를 하는 문자로, 디지털 시대에서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진 것인지 알면 저런 소리들을 하지 못하죠. 한글은 하나의 대답으로 자신의 의도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고, 축약된 단어들로도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글자라는 사실을 한글날에 알아야 하는데, 한글의 장점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저렇게 막고 있으니 참....

디지털 시대에서는 한글은 한자보다 5~6, 알파벳보다 2, 일본 문자(히라가나, 가다가나)보다 3~4배 빠르게 자판을 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자는 표의문자이다보니 자판에서 발음 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쓰고 다시 한자로 전환해야 하고, 알파벳(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등 유럽에서 쓰는 Latin Alphabet, 중동 아랍지역에서 사용하는 Arabic Alphabet, 러시아 등 슬라브계에서 사용하는 Cyrillic Alphabet)이나 일본 히라가나, 산스크리트어(인도)와 그 변용들(버마, 태국 등)은 표음문자이긴 하나 풀어쓰기를 해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한 글자로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에 비해 디지털에서는 불리합니다. 세계에서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표음문자라는 것도 디지털과 디자인 세계에서는 한글의 유리한 점일 것입니다.

 

한글날은 ‘facebook’페이스북이라고 쓸 수 있도록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날이지, ‘facebook'얼굴책으로 쓰게 하는 한국어를 위한 날이 아닙니다.”

 

위의 글은 길도형님이 페이스북에 소개한 글인데 한글날의 의미를 정확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촌철살인의 글이라 생각됩니다.

세종이 백성을 어엿비 여겨서든, 사대주의에 찌들어 한자를 중국발음에 맞게 발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든, 중국의 홍무정운이나 동국정음의 음운학을 참고한 것이든, 한글을 만들어 놓고도 한자는 진서로 높여 부르고 한글을 언문으로 낮춰 불렀든, 한글이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 경쟁력 있는 문자가 되었음으로 세종에게 감사할 일입니다. 당시의 세종은 ‘facebook'顔書라고 불렀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불러야 한글의 의미와 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하기사 ‘3D Printer'삼디 프린터라고 읽었던 대통령도 있는데 ’facebook‘얼굴책이라고 쓰는 것을 나무랄 일은 못되죠.

 

디지털 시대, 글로벌 사회에서 표의문자(음소 문자)이면서 모두쓰기를 하는 한글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살펴보고,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게 한글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한국어를 살리자며 외래어 쓰지 말기나 표준어 쓰기 운동 캠페인을 주장하며 이런 것들이 민족 자존을 지키는 일인 줄 알고 있으니 기가 찹니다.

올해 한글날에는 유치원이라는 용어는 일제 잔재이니 유아학교로 바꾸자고 합니다.

<유치원 명칭 '유아학교' 개정돼야..>

https://news.v.daum.net/v/20201009155313769?fbclid=IwAR2FsrRouMLhfs-F24Jy37rvhkCLdmgMiBy0cP6XSThuzPr06cCAU8rPK6c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유아학교역시 일본에서 만든 단어와 개념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민족, 민주, 공화, 철학, 사회, 과학, 질량, 속도등 인문, 사회, 정치, 과학, 종교 등 일상의 전분야에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 대부분이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만든 한자조어들입니다. ‘민족을 들먹이며 한글날에 유치원유아학교로 바꾸는 것이 마치 민족정기를 살리는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반일이라는 필터를 뇌 속에 장착하고 기승전반일을 주장하는 인간들이 한글을 숨도 못 쉬게 만들고 있으면서 한글을 사랑한다고 나대고 있습니다.

 

한글날만 돌아오면 어용매체들이 한결같이 언급하는 것이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입니다. 일본이 민족정기를 없애려고 한국어와 한글을 탄압했다고 주장하고, 이런 주장들은 어떤 검증도 없이 우리 역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고 교육되고 있죠.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벌인 후 1940년대 들어 조선에 일본어를 적극 장려하는 일본어 全解운동을 시작했고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한글(한국어)을 탄압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은 한글(한국어)을 탄압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지원병이나 징병으로 참전하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적극 장려한 것이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조선어학회 사건의 진실도 우리가 배운 것이나 영화 말모이에 나오는 내용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진명행님의 글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역사는 영화나 드라마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http://blog.daum.net/bolly99/212?category=155588

 

일본은 19118'조선교육령'을 공포하고, 이어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조사에 나서, 1911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으며(1920 출판), 1912년에는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제정했습니다. 일제의 조선어 사전은 해방 후에 우리말 큰 사전이 나오는데 그 기초가 되었죠. 일제는 소학교에서 한글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조선의 문맹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조선이나 대한제국이 이어져 성리학적 세계관에 쩔은 위정자들이 계속 정권을 잡았다면 과연 한글이 지금처럼 제대로 발전되었을지 의문입니다. 한글을 언문으로 낮춰 부르고 아낙네들이나 쓰는 글이라며 암클이라 불렀던 조선 사회가 한글을 발전시켰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일제가 한글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당시에 한글(한국어)로 된 신문이나 문학집이 꾸준히 나왔다는 것과 레코드판까지 나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폐간 이후에도 조광’(지금의 월간조선)이라는 출판물이 한글로 해방 때까지 출간이 되었고, 1945년 해방 때까지 조선총독부에서도 총독부 기관지를 한글로 출간했습니다.

성악가 윤심덕의 경우는 일본에서 조선어 레코드 "사의찬미"를 발매하고 총독부 국비 유학으로 일본에 유학까지 합니다. 윤동주의 시, 김동리의 소설, 계간지 등 문학 작품의 한글 출판도 금지되지 않고 자유롭게 출판되었습니다. 남인수의 감격시대’, ‘애수의 소야곡’,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백설희의 나그네 설움‘,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등 당시 유행가들도 모두 한국어로 불려졌고 한글로 발매되었습니다. 또한 판소리 역시 일제시대에 이르러 고유음악으로 정착을 했습니다.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일제가 한글을 탄압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조선에는 일제통치기간에도 조선어가 사용되었으며 한글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글의 띄어쓰기가 한글이 창제된 직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세종이 훈민정음을 시험하기 위해 한글 반포 전에 만든 유일한 책인 용비어천가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 아낙네들의 국문 편지 등 19세기말까지 쓰여진 모든 한글 서책에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글의 띄어쓰기를 만든 것은 영국인 목사 존 로스입니다. 1877존 로스는 띄어쓰기를 최초로 적용한 한글 문헌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한국어 교재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존 로스는 조선어 첫걸음에 한글의 띄어쓰기 뿐아니라 한글의 가로쓰기도 최초로 적용해 출판했습니다.

한글에 본격적인 띄어쓰기가 도입된 것은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을 통해서입니다. 독립신문은 189647일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민간 신문이자 한글, 영문판 신문으로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의 기관지로 발간되었습니다. 독립신문은 미국인 호머 헐버트박사가 이야기한 한글 띄어쓰기의 도입을 받아들여 적용하고 본격적으로 띄어쓰기 보급에 앞장서게 됩니다. 또한 띄어쓰기 이외에도 .(뎃점) 찍기를 처음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호머 헐버트는 1892<한글>(The Korean Alphabet)이라는 논문을 시작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논문 <한글>에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인류사에서 빛나는 업적이라 칭송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의 금속활자, 거북선 등에 대한 한국문화 관련 논문을 발표하였고, <대한제국 명망사> 등을 저술하였는데,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 훈장 태극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글 띄어쓰기는 조선어학회가 1933년 띄어쓰기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영하며,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가로쓰기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점을 생각하면, 우리의 한글의 보편화와 발전에는 외국인들의 힘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독립신문은 일본의 힘을 빌어 일으켰던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이 중심이 된 독립협회가 만든 것이고, 독립협회에는 친일파인 윤치호, 이완용이 핵심적인 일을 했습니다.

한글은 근대화 과정에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보편화되면서 대중들의 문자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 소위 친일인사들의 공도 있고 일제도 나름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아무 검증없이 독립운동가들이나 우리의 선각자들이 일제의 말살정책에 맞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한글을 살리고 발전시킨 것으로 인식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글날에 외래어 쓰지 말자고 캠페인을 하고, 일제의 한글 탄압을 과장하여 강조할 것이 아니라 존 로스호머 헐버트를 기억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한글을 세계화하고 발전시켜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 세계 유일한 모아쓰기 표음문자인 한글을 만든 나라였습니다. 문화와 문명의 기초가 되는 금속활자와 과학적 표음문자를 갖고도 19세기에 세계 열강들의 밥이 되고,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는 수모를 당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한글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