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이슈를 두고 아크로에서 언급되었던 '보지'나 '구멍'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일본극우는 일본에 있지만 그들과 똑같은 사고를 가진 가부장쓰레기들은 한국에 팽배해 있죠. 전쟁터로 징용되어 가는 남성은 적군의 총격에 사망하고 없지만 위안부는 그나마 '소중한 보급품' '대접'을 받으며 목숨은 부지하고 살았으니 남성의 운명보다 낫다는 개쓰레기 사고는 도대체 위안부가 뭐라고 생각하면 튀어나오는 걸까요? 남성군인들은 전투훈련이라도 받지 여성들은 비전투인력이면서도 똑같이 전쟁터에 데리고 가 부대의 소수정예 몇몇이 전투현장에 파견되면 위안부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이나 위안소업자들이 기존에 있던 위안소 여성들이나 공장 등에 취직해 돈을 벌고 싶어한 순진한 처녀들에게 전투병력과 똑같이 전장에 투입되어 군인들의 노리개가 되는 일이 주업무라고 얘기 안 하죠. 대부분 취업사기입니다. 


이 보고서는 버마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과 한국인 위안부에 대해 미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나서 작성한 거예요. 보고서의 논조는 당시 서구제국주의 가부장군인의 야만성도 내포합니다. 일본군이 부대 안에 체계적으로 '위안소'라 하여 군인들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구축해 놓은 현장을 보고 '이런 천인공노할 성착취시설을 봤나!'라는 어조가 전혀 아닙니다. 물론 건조한 보고서일 뿐이니 그렇겠지만서도 언놈이 작성했기에 보고서에 그들이 이해하기로는 부대 안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으로 보였던 이들에 대해 인성과 외모 품평을 합니까. 미군은 부대 바깥에서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성매매시설을 이용하는데 그 시설이 부대 안에 있으니 그냥 신기했겠죠. 군인과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의식주는 near-luxury에 준하는 수준이었고 쇼핑도 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건 다 쓸데없는 디테일이에요. 보고서는 이 곳이 다른 위안소들보다는 매우 상황이 낫다는 얘기도 하죠. 과거 야만의 시대에 미군 가부장의 눈으로 작성된 일본 부대 내 성착취시설은 성착취시설로 묘사되어 있지 않고 당시 서구 제국주의 가부장이 아시안 군인과 여성들을 멸시하는 시선을 가지고 생소한 시설과 사람들을 심문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내가 이전에 하던 일이 무엇이었든 거짓취업광고로 사람을 유인해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외국땅, 그것도 전장에 떨어뜨려 놓고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착취당하게 만든 구조는 화장품도 잘 사고 쇼핑도 하고 군인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선물도 전해 받고 일본군인과 결혼도 했다는 자잘한 자유로는 결코 상쇄될 수 없는 엽기적인 인권유린이에요. 

이 상황을 실재했던 역사로 인식하려면 당사자가 구술하는 서사를 들어야 합니다. 

https://youtu.be/SqmanqgEfLM  2분 33초부터 구술이 시작되죠. 

어떻게 갚아야 속을 풀까

- 김화선 할머니 -

시간 : 19분24초

기획 : 아시아프레스

일자 : 2002년 12월 26일

1926년 평양 출생
1941년 당시 15세 위안부로 연행되어 싱가포르로 감
1947년 귀국 후 부산 수용소에 있다가 인천, 서울 등지에서 생활 평양위향을 시도하지만 실패
1950년 부산, 대구, 인천, 제주 등지에서 피난생활
1966년 충청남도 조치원에 정착
2003년 현재 77세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에서 혼자 거주

평양서 거기 거.. 뒷동산이 있고. 그냥 동네 동산이 있거든. 근데 거기 동산 올라가서 노는데 군복입은 사람이 밀꿀 주더랑께. 밀꿀. 그 캬라멜이라 해지데. 그걸 주면서 이거 많이 줄텐께 가자그래. 그래서 우리집 들어가서 얘기하고 가자 하잔께 못드리게 하더라고. 그냥 거기갔다 금방올껀데 뭐하러 가네요. 그래서 가는데 서평이 있고 번평이 있어. 번평으로 대려가더라고 전차타고. 가니까 여자들이 많이 앉아 있드라니까 부글부글해.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어 그 끌려가는 여자들을 무슨 많이 주문해 다 놨어? 타는데 기차 사람 앉는 데가 아니고 곳간, 지금 곳간 있잖아. 거기다가 다 잡아 넣으니까? 뭐가 그렇게 좋은 지 깔깔대고 웃기는 뭐 그냥 좋아서들, 돈 많이 벌어서 집에 보내주면 될 거 아냐 그러는 바람에 쟤들 좋아서 깔깔대니까 기차 딱 타고나니까 빠가야로 코노야로 하잖아. 웃지말라고 이틀인가 그것이....는데 내려가지고 배를 타라고 해 또 가서 내려서 배를 타고 가는데 밥들을말야 이런 주먹밥을 하나씩 주잖아. 그거 먹고 이제 갔는데 배타고 이틀인가를 또 갔어. 거기서 이틀 째를 산 거같애 배를 내리니까 목단항이라고 해. 싱가폴이라고 해 싱가폴. 여기가 어디냐고 하니까 싱가폴이라고 해.

아니, 군인들이 총들을 밀고 말야. 긴 칼을 차고 말야. 그러고들 있느니, 무서워요. 거기 가더니 그냥 저기 집이 있으니까 저기 방에 하나씩 하나씩 다 들어가라고. 그런데 몽땅 다 내리는 게 아니라 여기다가 내려놓고 또 다른 데다 실어다 내려놓고 또 딴 데다 실어놓고 다 갈랐어 사람을 같이 간 사람이 어디로 갔는 지 알 수 있어야지 다 몰라 번복이 되어가지고 이리 먼저서(먼 데서?) 온 사람은 이리 쭉 가고 또 먼저서 온 사람은 저리 쭉 가고

- 배에 있는 여자 분들이 몇 분이나 타신 것 같아요, 할머니?

내가 보기엔 한 50명 정도 되는 것 같아. 보기가 그치만, 세 봤어 어쨌어 모르지. 그리 가가지고 방 하나에 이런 나무떼기를 깔고 담요 한 장씩 깔아놨어. 여기는 이제 거죽떼기같은거 담요같은거 이렇게 쳐놓고 거기 들어가, 들여보내놓고 군인들을 저기 줄을 세우는거야 아휴, 거기 군인들이 하도 장난을 치는데 아랫도리가 이렇게 부었는 지 어쨌는 지 몰라 너무 아파서 다리를 발로 걷어차고 칼을 가지고 휘둘러요. 칼, 긴 칼 그래서 휘둘러서 나는 무서워서 울기만 자꾸 우니까 울지 말라고 막 야단하잖아. 그 야단하는 걸 일본 말로 모르니까 울지말라는 소리같애. 눈치로, 시끄럽다고. 그래서 거기서 고생을 한 6개월 간 했나. 6개월 간 했는데. 목단강으로 간다 이거야. 근데 또 목단강이 어딘 지 알게 뭐야 군함 타고 실어갔어 여자를. 실어가지고 갔는데 가서 또 딴 데 또 내려다 갈라놓더라고 몇명씩 또 딴 데 방 있다고 집 있다고 나가는 사람들은 내보내고 이렇게들 하니 저희갖다 저희 맘대로들 하라고 따라 댕길 수도 없고 군인만 따라 댕기는 거야 아주 칼 가지고 휘둘러서 무서워서.. 조금 잘못하면 막 찔러.

내가 저번에 우물을 자꾸 끌고가서 우물에다 빠져죽게 바다가 없응게, 산으로 저거를 가니께 그 쪽은 우물이 다 있어. 거기다 그냥....나도 몇 번 끌려갔었어 말 안듣는다고 그래서 같이 있는 여자들이나 발, 손 이런 맥아리들 다 떨어져나갈뻔했어 팔, 다리 매달려서 데려가면 안된다고.. 놔두라고 그래서 용서받고 나오고, 나오고 수십번 그랬어.

나는 그냥 다 군인만 따라다녀서 그래서 밖에....고 옷도 없고 딴 사람은 옷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더라고 보니까 나와서 나는 치마 저고리도 하나도 없어 입을 게 중국 여자꺼 훔쳐다 입은 적도 있어 토벌 나가고 주워다 주는 군인도 있더라고 사방으로 나갈 적에 다 데려가잖아. 우리를, 몇 명 안되니까..사방으로. 한 군데만 가는 게..동네 이름은 다 몰라 다 잊어버렸어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해도 저기 빨갱이가 들어온다 말하자면 그거야 그러면 거길 가야하고 요거같이 38선 한 군데가 아니고 수십 군데니까 어디 들어가자하면 저리가고 우리 데려가면 좀 호강시럽긴 해. 그렇게 줄 세우진 않으니께. 높은 사람들이 나를 이쁘다고 차지를 해버려. 안예쁜 사람들은 막 그냥 막 군인들이 뭐 그렇게 안 많죠. 부대같이 많지 않죠. 싸움하러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많이 가? 오늘 누구누구 토벌은 누구누구 토벌. 하고 데려가잖아. 그래가지고 그렇게 나가면 나는 조금 호강하는 셈이야 예쁘다고.

거기 군인들이, 남자들이 오리주둥이같은 거 있어 지금 병원에 가면 여자들 하는 거 그걸로 들여다보고~ 매독 올랐다, 임질 났다. 이 소리 해.....나는 그게....가 뭔가 하고 물어보니까 그거래. 그냥 나쁜 병에 올랐다. 이거야. 밑에 고무를 씌우는, 남자새끼들 씌우는 고무가 있어. 그거를 씌우면....장난하고 나가면 안새는데 찢어지도록 막 그냥 지랄하는 놈들이 있잖아. 찢어지면 병 올랐다 이거야. 오르면 군인 안되는거야. 군인들이 오르면..

- 그래서 할머니, 어떤 병 걸리신 적 있어요?

그렇게 하더라고....라고 하는데, 그 이상은 뭐 얼마나 더.. 나쁜 병은 다 걸렸지.

- 치료는 받으셨어요?

치료는 글쎄 주사 한대 씩 나줬고, 뭐야 하루 걸러서

- 그럼 그 때는 치료받는 동안은 일 안하시나요, 할머니?

아유, 고무 준다니까 고무. 고무.. 한국 애들은 장화라고 하잖아. 그 때는 사꾸라고 해 사꾸. 그 사람들이 그러고는 뭐 너무 엉망진창이라서..그래가지고 주사를 큰 주사를 놓으니까 사람이 맥이 없어요. 기운이 없고, 밥을 제대로 못먹고..밥은 많이 줘? 조금씩 주지..미소시루하고 된장국.

근데, 자고나니까 다 없어졌어 군인들이 밤에 잠깐 잤는데 사라졌어. 어디갔나하고 살살 나가보니까 여자들 우리, 같이간 여자들은 아니지만 같이 있는 여자들이 몇명 있더라고. 다 어디 갔어? 해방됐다고 다 갔대는거야. 어디로 갔어?....에 저희들 다 가버려서 나도, 우리도 모른다는거야. 그래서 서로 뿔뿔히 헤어져야지 어떻게 같이 어디가서 어떻게 얻어먹어 그래서 가서 시내로 나간께 걸어서 배고프고 그러니까 걸어서 나가니까 식당이 있더라고 그 식당에 들어가서 밥 좀 얻어먹으려고 식당 할머니가 어떻게 봤던지 참 예쁘다고. 나보고. 들어와서 앉으라고 그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불쌍하다고 나 차비도 없고 옷도 없다니까 옷도 사주고, 일하게 해서 자기 이제 들어갈 시간이 됐다고하지 아무 때나 못들어간대 자기도. 갈 명목 내려야지 못간다는거야.? 그래서 잘 됐다고 나를 데리고 있는거야. 할머니가. 그것이 또 만날 된장하고 된장국이지 뭐 미소시루. 그거하고 얻어먹고 일을 참 솔직히 잘했어 내가. 말도 많이 배우고..한 이년인가 있었어. 할머니 들어가는 바람에 나도 이제 옷도 입고, 요기도 있어서 나왔잖아. 나오니까 동력거 타라고 해 다 그래서 하~ 타는데 얼마나 많아 뭐, 한 두 사람이야? 수용소를 지어놨더라고 천막쳐서 깔개, 거죽떼기 깔고..그 넓은 데가.그리 갔지 뭐.

할머니랑 있다가 가서, 돈, 옷도 주고, 돈도 주고 그냥 뭐 잘해준다고 해서 인천.... 몸파는 데야 그것도 할래? 가서? 가야지 어떻게 해 먹고 살아야지. 수용소서 붙어서 만날 있어? 거기가서 있는데 내가 제일 예쁘대. 또 거 안에서도. 제일 예쁘다는데 너무 많이 옷을 많이 이거 입으라 저거 입으라 화장품도 사다가 화장시켜놓으니 여간 예뻐? 그 지랄해가지고, 빚을 잔뜩 지어놨어 나를 뭐를 갚아 내가 그거를 몸 팔아서 언제 갚냐고. 그런데 누가 서울에서 데리러 왔다 이래 서울 거기는 얼굴을 내 파는 데가 아니고 내놓고 분을 있는대로 바르고 앉아있는 데가 아니고 사진 내거는 저거더라고 거기 갔지 서울로 팔러 갔지. 돈을 그 집에서 받아 먹은 거 나는 돈 하나 구경도 못하잖아. 데려가서 있는데, 사진을 찍어서 내걸면 나까이라고 해서 안내자, 여자..노인네.... 늙은이들이 그 사람들이 이 사진 보고 마음에 드는 거 저리 하라고하면 데리고 그 방으로 들여보내. 거기서 또 죽겠어 그냥 어떻게 하면 또.... 그럼 이게 경찰관인가 누가 나를 갚아줬어요. 그 돈을 갚아주고 나가라고 그래서 나가서.. 먹고 살 길이 있어? 촌으로 가서 그냥 김도 매주고, 불도 떼주고.. 그 땐 불 떼는 게 밥이야. 지금은 떼지 않지. 그래서 그런 데.... 얻어먹고 옮겨다녀서 그래서 밥 한 그릇을 얻어먹고, 얻어먹고, 돈은 못벌고.

살잇는것에 내가 해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거에 호강을 못해서 고맙지 요새는 한쪽은 고맙고 한 쪽은 원수같고 이런데 어떻게 내가 해가지고 어떻게 내가 속을 풀어 못풀겠어 풀 길이 없어 죽을 나이 다 되니까. 너무 원통해서 지금도 내가 힘이 있고 세상이 이렇게 돼서 빽이 있고 하면 일본 놈 제일 높은 놈 끌어다가 칼로 막 내려치고 내가 죽을....한거야. 원수 갚고 죽으려고 내가 마음이 그렇다고

(일본 노래)

-----

[나는 그냥 다 군인만 따라다녀서 그래서 밖에....고 옷도 없고 딴 사람은 옷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더라고 보니까 나와서 나는 치마 저고리도 하나도 없어 입을 게 중국 여자꺼 훔쳐다 입은 적도 있어 토벌 나가고 주워다 주는 군인도 있더라고 사방으로 나갈 적에 다 데려가잖아. 우리를, 몇 명 안되니까..사방으로. 한 군데만 가는 게..동네 이름은 다 몰라 다 잊어버렸어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해도 저기 빨갱이가 들어온다 말하자면 그거야 그러면 거길 가야하고 요거같이 38선 한 군데가 아니고 수십 군데니까 어디 들어가자하면 저리가고 우리 데려가면 좀 호강시럽긴 해. 그렇게 줄 세우진 않으니께. 높은 사람들이 나를 이쁘다고 차지를 해버려. 안예쁜 사람들은 막 그냥 막 군인들이 뭐 그렇게 안 많죠. 부대같이 많지 않죠. 싸움하러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많이 가? 오늘 누구누구 토벌은 누구누구 토벌. 하고 데려가잖아. 그래가지고 그렇게 나가면 나는 조금 호강하는 셈이야 예쁘다고.]

=> 한국 보수들은 이런 구술을 두고 예쁨받았단다 하는 수준이고 일본극우랑 똑같죠. K리버럴 한국남성은 하룻밤에 70-80명 타령하면서 우는데 이런 사람들 보면 공감력 있어 보이기는 커녕 같잖고 웃깁니다. 그런 인간도 있었죠. 일본군위안부가 어떻게 '강제연행' 되었는지 열정적으로 떠들고 다니면서 양예원 씨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사진찍은 꽃뱀이라고 한 K리버럴 한남. 이게 딱 현재 한국 수준이에요. 위안부이슈에 대해 핵심을 짧게 언급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파페북친구가 많은 신상목이라는 분이군요. 

[전쟁 시기 군 대상 매춘업의 성행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일본군은 도를 넘었다. 전황(戰況)이 격화되면서 위안소를 안전지대를 넘어 전투 지역 가까이 두고 부대의 일부처럼 운용한 것이다. 여성의 존엄과 신체의 안전이 그토록 훼손되는 처지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면 누구도 자기 발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성과 자발성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이다.

당시 일본 군부에는 남성은 전장(戰場)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여성은 그 남성들을 위안하는 존재가 되어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발상이 횡행했다. 자살특공대, 옥쇄와 궤를 같이하는 군국주의의 광기였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은 그러한 과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성의 성(性)을 국가의 도구로 삼고 비전투 여성을 전쟁터에 투입하는 비인도적 만행을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일본 내에서 꽤 큰 울림이 있다.]


------

https://youtu.be/D9TRhcpjauc

우리가 일본을 미워 안 할 수가 없어

- 김순악 할머니 -

시간 : 17분37초

기획 : 아시아프레스

일자 : 2002년 12월 24일

1928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
1943년 당시 15세 집에서 연행돼 북경, 하얼빈, 내몽고, 북경으로 이동
1944년 북경에서 위안소 생활
1946년 압록강을 거쳐 이북으로 귀국
1949년 여수에서 첫 아들 임신 귀향
2003년 현재 75세 경북 경산에 거주

말을 하면 우리 어릴적에 들으니께네 어.. 뭐, 일하기 싫으면 대구 야무탁 공장에 식풀로나 가제하메 아가씨들이고 무슨 이런것들이곤 눈도 못뜨지지만은 그런데가믄 그래도 돈벌이 된다는 것은 알거든. 여자가 돈벌인다고 하는데는 알거든. 공장이 다른데도. 그것밖에 모르지.

그래서 공장간다고 날 데리고 우리 엄마가 공장으로 보내야지 저 어린 것을 간단한 일만 하고 아무 것도 배운 거 없는데 어디로 취업을 한다고, 보내는가하면서 공장을 어떻게 얘기가 되어 가지고 공장간다고하니까 어떻게 말을 했는가봐 그러면서 옷을 곱게 입혀주면서 공장 간다고 그래. 그리 됐어.

그래가지고 대구에서 또 이리저리 섞여가지고 여자들 누군지도 모르고 눈도 못두겠고 나는 제일 못났어 그 중에서도 아가씨들 중에서도 제가 좀 더 ....고 그렇지만은 옷도 제일 좀 입혀놓고 한복 치마라도 까맣게 물들여가지고 이쁜 흰 저고리랑 이래 안입고 나만 옷이 좀 달라 우리 엄마가 나만 옛날 시집 올 때 뜯은 옷을 가지고 저고리를 해 입히고 어디간다카니 대구 간다고 하니까 누구한테 안 빠지게 만들었다고 한건데 그리 맨들어졌는기라 말하자면 딴 여자들은 보니까 독특하고....보니 나는 눈이 희번덕 희번덕 하는 것도 없고 부시렁부시렁....하고 내 흉보는 것만 같고 그래 근데 그런 아가씨들은 내 생각에는 중학교, 국민학교정도..다 커 열 대여섯살 먹으니 다 크지 뭐 그런 것도 섞이고 저런 것도 섞여있는데 그 중에 대여섯이서 갔는가 그리 갔는데 서울 가니까 또 바글바글해 지금 생각하니까 속았어 그 때, 이태원이 일본 집인데 집이 일본 집이더라고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집 이층도 있고 그러대 한 집을 지어놓은게 아니라 일본 사람 살다가 피안하는 그런 집인 것 같아 거기에 며칠이 있었는데 자꾸자꾸 시집들이 없어지대. 아가씨들이 없어지대. 한 잠 자면 몇씩 없고 몇씩 없고 이래. 다 먼저 먼저 가버렸나봐 어디로 갔는지 그래가지고 밥먹을 적에 수근수근해서 보니 누구는 호진핑을 갔단다. 누구는 뭐 대만을 갔단다. 이리 수근거리더라고 나는 여기 경상도 사람인데 어찌알아. 딴 골짜기에 나온 여자들, 다른 도회지에 나온 여자들 난 모르거든. 친구도 없고, 또 말을 할 줄 알아가지고 제발제발 그런 거 하기에는 뭐 말할 줄도 모르고.

그래가지고 나중에되어서 거기서 지대로 옷을 해 입혀가지고 어찌해가지고 우리 물건같은 거를 참하게 해가지고 잘 꾸며가지고 어디로 넘기는 가봐 안팔리고 우리들은 밥만 치우고, 지들끼리 있으니 놀고 밖에 출입을 못해. 지키고 있어요. 일본 사람이....젊은 사람들이 지금 같으면 깡패같은 우리가 티비에서 보든지 아무튼 그런 깡패같은 그런 젊은 청년들이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일본 사람들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화장실을 왔다갔다하니까는 보이는데 여기가 일본 인지 어딘지 알 수도없고 서울에 안와봤으니 알 수도없고 그러더니만 또 몇몇한테 기차타고 나가자카고 우리가는 입고 하는 옷보따리 뭐 사 입히는 거 이것 저것 사입히는 것도 옷보따리가 옷이 요만큼 한 거 가방이 있나 보따리나....그런께 그때부터는 기차를 타는데 서울역에서 타가지고 압록강만 넘어서니까 그렇게 춥더라고 차에 바람이 술술술술 들어오고 문 연다고 그러는게 아니라 중국 가는 차가 군인들만 차는 그때 말론 급행이라카더라 급행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타는 것은 완행이라카고 급행이란 것을 탔는데 좀 허가 낸 사람들만 타지 허가 안낸 사람들은 못타는 갑대. 그래가지고 얼마인가 이틀인가 삼일인가 갔는데 후리핑으로 갔어. 후리핑. 아주 큰 중국 땅.. 후리핑이라고카더라.하루핑, 하루핑.. 후리핑이 아니라 하루핑

그런데 그 영감 말 지금 말로하면은 그런 여자들 모으는 데만 데려다 줘 버리고 여기 있거라 그 집에 여자 분들, 남자 분들이 왔다 왔다 이렇게만 떠들지 주인이 나를 불러 들어가가지고 참하게 하고 있어야한다 뭐 어쩌고 하고 있어야한다. 옷을 여기서 입고 간거 벗기고, 따순 물로 해주고 돈이 올라가고 올라가고 그러지. 어디든지 가서 묵고 자는데 다 내가 돈을 짊어지고 있는기라.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그러니 참말로 버릴 적에는 빚이....이렇게 다 덮어쓰고 앉아있는기라.

내가 댕기면서 일년 몇 달간은 내가 돈 벌어서 준 게 없지그래 거기 가가지고 일 년은 번 것이 내가 옷 해입어야지 돈 써야지 내가 돈을 탔거든 전쟁통에 손님이, 우리는 또 시로도.. 그 때는 일본 말로 시로도라고 한다.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아픈 데가 많지. 손님 못 받지. 손님 많이 있을 때 못 받으면 주인한테 또 구박받지. 돈을 잘 벌어야 구박을 안받을텐데 밥도 아깝다.이렇게 하면서 구박받지. 그래서 손님 많을 때는 죽어라 이를 깨물고라도 손님 많이 받아야지. 그렇게라도 갚아야지 우째

나는 한 30명 그정도 받았을끼다. 시간이 없으니까. 왜냐면 아침 한 일찍 나오는 거를 9시 쯤 나오면은 그 군인들이 놀다오너라 다섯시까지 놀다오너라카면 오래간만에 산으로 기댕기다가는 나오니까는 소주 한 잔 먹어야지 뭐도 먹어야지 뭐도 먹어야지하고 그리 모인다 하는 것이 나락을 갔어드라 이 말이야. 우리 화장실을 가려면 군용.... 문짝 있는 데마저 서는 놈들이야 그렇게 산선다고 그리고 자꾸 앞에 들어간 놈을 보고 문을 자꾸 발로 차니 벌렁벌렁하는 문을 잠갔나 어쨌나 벌덕벌덕거려 옷을 안벗어내니 벌덕 열고봐도 뭐 별거 아니야. 우리도 부끄러운 것도 하나도 없고 우리도 부끄러운 것도 하나도 없고 어떻게 오줌 누르고 뻘거벗긴 애를 내가 거머쥐고 있는데 오줌 누러 쫓아가고 있는데 어쩔긴데 그거 부끄러운 게 뭐가 있노 딴 사람이 볼 사람이 있나 저그하고 우리 밖에 못보네

-그러고 가면 뭐라 그러지 않아요

아이고 누가 뭐라고 그래 김밥을 이렇게 김밥을 둥그렇게 말아가지고 일본 도시락 아니가 일본 도시락. 벤또라고 한다. 벤또에다가, 벤또 뚜껑에다가 여기다 갖다놓는다 물하고 거기다가 이방 저방 벅쩍거리고 시끄럽고 신이나서 그라네 이게 나오려고 내가 화장실에, 밑에까지 씻으러 갈 여유도 없는데 깨물어버려 배가 고프니까 그래가지고 일를 하려고 해도 일본 말을 잘 해가지고 ....하나 어데고하면 다이쿄다이쿄하는 것 밖에 모르겠다. 고향이 어디고하면 다이쿄, 대구가 다이쿄, 다이쿄라 그 사람들이 총각들이 뭘 알겠노 군대 이제 나온 총각들이 뭘 알겠니 우리도 쫄병나갈 적에 ....던 총각들이 .... 나가는데 그 때는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이 비슷한데 우리가 일본 놈한테 한국 사람도 그랬고 중국 사람들도 그랬고 다 조금 괄시를 받았다 이말이야 양반들 쓰고 다니는 것도 이것도 칼로 가지고 쪼자버리지 양반을 갖다가 이거를 거머쥐고 동네 사람들 다 보는데 질질질 끌고 댕기고 일본 놈들이 그렇게 밉다고 안할 수가 없어.... 놔두는 거 잡아간다. 밥 해먹는다고 쌀 다 들이고

골짜기에 들어앉아가지고 얼마나 일도 그 뭐꼬 나무해대고 나물줄기나 기름붓고 이리 살다가 밥주고 내맘대로 엄마 아버지 잔소리하는 것도 안듣고 꺼떡거리게 이거는 나는 세상 모르고 꺼떡거리는기라 나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금일하러가야된다 매매씻어라 뭐 어째라 이런 잔소리 하는 그거는 아 이래야되는갑다 아플 때는 아파가지고 지랄하고 일하면은 손님 오실 때 병원에 치료댕기라카고 병원에서 너는 치료 이틀만 오너라, 며칠만 오너라, 손님 상대하지 말아라. 좋은 거만 말해주겠지..그럴 정도는 지금도 여기 조금 뱃겨도 피를 줄줄 안흘리는데 피가 줄줄 흐르고 뭐 어쩌니까 저번에 따가워가지고 아프다고 괜히 고함을 지르고 지랄을 하니까 병원에 가라카고 어쩌고하니까 며칠 있으라고 주사 놔버리니까 괜찮아 몇 사람을 상대하고 나니까는 굶긴 게 아니고 지금 뭐 뒤로 받고 하니까 괜찮아진게

-주인에 대해 생각 나는 것이 있어요 나이라든가..

나이가 지금은 그 여자가 얼굴이 좀 순하고 나이가 한 50대 이제 주름 살이 쫌 있고 한 50대 되었는데 남자는 일본 사람 애 데리고, 애 둘씩 데리고 애도 머시매와 가시내든가..모르겠다. 그런 것은 모르겠어. 난 일단 남자하고 여자하고 있는데 남자는 남자역할을하고 여자는 여자, 그니까 여자는 우리 담당을 하고 그정도밖에 쌀이 떨어졌다 안떨어졌다 하는 것도 어디 정보부에 가서 얘기해가지고 쌀도 오고 이러는가봐 군인들이 둘이나 서이나 리어카나 구르마같은 데에 밀고 갖다주고 그래, 받고 남자는 우리한테 무슨 말이 없고 그러니까 배급이나 타다주고 그러는가봐 비누같은거

아이고 힘들고 그런 것도 모른다 나이 어린 게 뭐가 힘들어 손님 그렇게 옷도 안벗고 후닥닥 거리는 거 그게 제일 힘들고 군인들이 없고 우리끼리만 만나면은 좋다고 까불고 놀고, 밥주면 밥먹고 목욕가자고하면 둘 셋이서 짜서 목욕 갔다오고 우리는 피난....서 나라가 어찌 생겼는지 그거는 모르지만 여기 한국에서 다 겪고 나오고 군인들도 우리 크면서 많이 봤고 일본 군인들을 전부 일본 사람이 사는 것도, 우리 한국에 일본 사람들이 사는 것도 아니매로 일본 사람들 만나는 것을 무섭다 어쨌다 그런건 우린 몰랐다카니까네 그니까 공장간다카는게 그것이 그게 우리 마음에 그렇게 돼가 있지


--------


이런 자료들이 여가부 홈페이지 어딘가에 있는데 <화해와 치유 재단>이 해산되어 그런 모양인지 링크가 대부분 안 됩니다. 그래서 유툽 가서 영상 퍼 오고 구술내용은 카피를 했어요. 정말 너무하는군요. 희한하게 이 링크는 됩니다. 다른 페이지는 링크 걸면 다 깨져요. http://www.hermuseum.go.kr/cop/bbs/anonymous/selectBoardArticle.do?bbsId=grandmavoice_main&nttId=6183&fbclid=IwAR1bXI26QMRLhDoy83rqCrax74Ef8wUEdSvhkDNnxUj-UKcHSPrctBbl9Oo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