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 군인, 지원병, 정신대의 손해배상 청구는 왜 하지 않나?

- 대법원 징용공 판결의 모순

 

2019.07.26.

 

한일간 갈등을 촉발하여 작금의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은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망칠지도 모를 정도의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온 것임에도 우리 국민들 중에 이 판결문 전문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극히 드물고, 심지어 언론사들 중에도 판결문을 심층 분석한 적이 없습니다. 공영방송이나 종편에서도 제대로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일 갈등을 해소하고 일본의 수출 제재를 풀려면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등한시합니다. (문재인 정부나 친문 언론들이 이에 대한 분석이나 토론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판결문 중에 핵심적인 부분만 따로 살펴 대법원이 얼마나 엉터리 판결을 했는지 다시 한번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문을 보면 법리나 논리는 찾아볼 수 없고, 결론을 정해 놓고 억지와 궤변으로 포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핵심적인 근거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 일본측이 한국측에 준 금액에는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의해 시행된 징용에 대한 배상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논리이지요.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측이 배상 요구한 8개항에 분명히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측은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을 요구하고 이에 대해 일본측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님으로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대법원은 해석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은 당시 일본측은 경제협력자금이라고 했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여 배상금이나 보상금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을 강조하면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일본측은 한일합방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당시 한국측은 이 금액을 받으면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보상금)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자국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각자의 입장을 자국내에 설명했던 것일 뿐입니다. 대법원은 일본측의 입장은 수용하고 한국측의 해석은 무시하면서 왜 한국 정부의 입장은 탄핵했는지는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 모국이 피식민지 국가에게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고 하여 배상이나 보상을 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케냐와 인도네시아에 배상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학살 사건에 대한 배상이지 식민지 지배 자체에 대한 배상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이 배상을 했다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알고 있지만,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배상이었지,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 대해서는 수십만명을 학살하고도 배상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배상(보상)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대부분의 식민 모국들은 식민지를 전쟁이나 침략으로 식민지화 했지만 조선과 일본은 전쟁이나 침략이 아니라 조약에 따라 평화적으로 합방이 된 경우입니다. 또 일본을 제외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피식민지를 원자재 조달과 자국 상품의 판매를 위해 수탈의 목적으로 이용했지만, 일본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조선을 수탈이 아니라 합병의 목적에 맞춰 정책을 폈습니다. 일본 정부가 조선(한반도) 예산의 50%를 지원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수탈했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을 하지 않았는데 일본은 더더욱 이를 인정할 리가 없겠지요. 대법원은 당시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관이나 일본이 공식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고 인정하기 곤란한 상황들은 고려하지 않고 한일 청구권 협정문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저런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심지어 대법원은 스스로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면서 저런 엉터리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한일 청구권 협정문 뿐아니라 한국측이 제시한 대일 청구권 요강안 8개항‘, 그리고 1952년 이후 수십차례에 걸친 한일회담 내용, 역대 정부들이 견지해 왔던 입장, 2005년 노무현 정부의 해석,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있었던 두 차례에 걸친 징용공에 대한 보상 등 징용공 배상(보상)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은 징용공에 대한 배상(보상)이 최종적으로 끝나고 징용공들은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 일본인 개인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김명수 대법원만이 억지 논리를 시전하고 있을 뿐이죠.

 

백번 양보하여 조국이나 김명수 대법원의 논리대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 전제되지 않았음으로 일본에 대해 징용공의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합시다. 만약 이 논리를 수용하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조국이나 김명수의 대법원은 알기나 할까요?

한일합방이 불법이고 식민지지배가 불법임으로 그 이후의 조선총독부나 일본 정부의 행정 행위는 모두 불법 행위라고 한다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가 행했던 일들에 관련된 사안들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일본(조선총독부)은 조선에 수많은 소학교 등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조선인들에게 수학을 권유했습니다. 학교 건립을 위해 조선에 산재한 서원이나 향교를 폐쇄하거나 수용하는 조치도 취했죠. 당시 소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나는 소학교 대신에 일을 나가 생계를 꾸려야 하는데 조선총독부에서 소학교 다니기를 권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소학교에 허비함으로써 손해를 보았다고 소송을 하게 되면 조선총독부의 행정은 불법이므로 원고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까?

조선 총독부에 의해 폐쇄, 수용된 서원이나 향교들이 조선총독부의 행위는 모두 불법이므로 일본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를 하는 것도 유효한가요?

조선총독부에 의해 토지조사령이 내려져 전국의 토지조사 사업이 시행되고 이를 토대로 토지 등록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조사령에 의한 토지 등록이 유효합니다. 만약 조선총독부에 의한 토지 조사령은 불법이므로 이에 의해 토지 등록이 된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징용자들이 남자의 경우라면 정신대는 조선의 여중고생이 강제로 노역에 동원된 경우로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정신대에서 노역을 했던 당시의 조선 여성(중고등학생)들도 당연히 불법 지배에 의한 피해 배상 청구권이 있습니다.

정신대 역시 대법원이 징용자에게 청구권이 있다는 근거를 댄 사항에 모두 해당합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징용자들이 청구권이 있다는 근거인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다. 원고(정신대에 동원된 여성)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더욱이 원고(정신대에 동원된 여성)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상시 감시를 받으며 일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들의 원고(정신대)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정신대 여성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의 요건을 모두 충족합니다.

아니 오히려 정신대에 동원된 사람들이 이번에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징용공들보다 더 많은 청구권 요건을 갖추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징용공들은 엄밀히 말해 강제 동원된 징용공들이 아니라 관 알선이나 기업의 모집에 의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행을 택한 것이지만, 정신대야말로 전시체제에서 일본정부의 법령에 따라 강제로 노역에 동원된 경우로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징용자들에 대해서만 청구권을 요구하고 정신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왜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측에 정신대의 노역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정신대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나 그 유족들이 지금이라도 한국의 사법부에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인 정신대 동원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면 대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 줄 것입니까? 대법원이 손을 들어주면 정신대 동원된 여성이나 유족들이 일본 기업의 한국내 자산을 압류하고 매각해도 되는 것인가요?

 

보다 더 징용공과 유사한, 아니 오히려 더 징용공보다 배상(보상) 청구권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징병자(징병 군인)와 지원병에 대해 조국과 대법원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제가 위안부 문제나 징용자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과민 반응을 보일 때마다 의아스럽게 느낀 것은 우리 국민들은 정작 전장에 나가 목숨을 내놓았던 지원병과 징병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징용 피해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Δ민간기업의 모집 Δ관의 알선 Δ실제 징용령에 의한 징용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민간 기업에 의한 모집이나 관 알선으로 일본에 돈 벌러 갔던 사람들은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는 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9449월부터 징용령이 실시되어 징용되어 갔던 사람들이나 역시 같은 시기에 징병령에 의해 일본군에 징집되었던 사람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의 법령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가집니다.

따라서 생명의 위험도나 본인 의사(자발성과 강제성) 여부로 볼 때 우선적으로 보상을 받고 보상액도 많아야 하는 순서를 보면, 징병자 > 징용자 = 정신대 > 지원병 > 관 알선 노무자 > 민간기업 모집 노무자 순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은 징병자와 지원병보다 이번에 소송을 한 관 알선 노무자나 민간기업 모집 노무자에 대해 더 열을 올리는 것일까요?

이번 대법원에서 승소를 한 원고들은 모두 관 알선 노무자와 민간기업 모집 노무자로 출발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실 민간기업 모집 노무자나 관 알선 노무자는 국가(일본)가 이들에 대해 연금 등의 이후 생활대책에 책임이 없지만, 지원병과 징병자에 대해서는 국가(일본)가 그들의 생활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보상액은 전자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지원병이나 징병자에 대해서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고, 이들과 이들 유족들은 숨 죽여 살고 있습니다. 젊은 청춘을 꽃 피워 보지도 못하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원혼이 지원병이나 징병자였다는 이유로 고국 땅에서 안식을 찾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55, 가미가제 특공대로 출격했다 오키나와 상공에서 미국 함정에 의해 생을 마감한 탁경현의 귀향기원비가 자신의 고향 사천에 세워지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왜곡된 감정에 휩싸여 역사를 비이성적으로 바라보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탁경현의 귀향기원비는 고향에 세우는 것을 반대하면서 일본의 잔학성을 보여주기 위해 탁경현을 일본에 의해 희생된 대표적인 인물로 이용하는 이율배반을 저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아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홈피-타임라인-‘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 규칙 공포’(19431020)에는 탁경현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ilje.or.kr/mobilize/timeline/

 

<조선인에게 육군으로 지원하도록 강요. 탁경현(卓庚鉉. 창씨명 光山文博 .1920.6.5. 1945.5.11) 일본 육군. 일본에서 생선가게를 하던 아버지 밑에서 공부하던 중, 일제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가게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가족이 편할 수 있도록 장교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194310월에 특별조종견습 사관 1기생에 합격, 이후 육군 소위가 되었다. 가미카제(神風)특공대로 출격 전에 자주 다니던 식당 주인에게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고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구로다 후쿠미가 쓴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의 홈피 내용을 함께 보는 저로서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는 지원이든, 징집이든, 민간 기업의 모집에 의하든, 관 알선이든, 징용령에 의해서든 군인으로, 노무자로 그 질곡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또 존경합니다. 자신을 일본인으로, 그리고 일본이 조국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든, 조선인으로 독립을 가슴에 품고 산 사람이든, 당시의 시대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치열하게 살았다면 차별을 두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제가 함부로 그들을 평가하거나 재단하기에는 제 삶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 참고로 아래에 대법원 판결문 중 핵심적인 부문만 그대로 복사해 올립니다. 전문은 아래에 링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전문을 읽어보시고 대법원이 얼마나 엉터리 논리로 한일갈등을 유발하고 한국경제를 아작내고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

https://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3200671

 

 

 

4.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

 

. 이러한 법리에 따라, 앞서 본 사실관계 및 채택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선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 한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와 같은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환송 후 원심의 아래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기록상 이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다.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2) 앞서 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과와 그 전후 사정, 특히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앞서 본 것처럼,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9. 8.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a)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대한민국도 이에 해당)의 시정 당국 및 그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고 규정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된 이후 곧이어 제1차 한일회담(1952. 2. 15.부터 같은 해 4. 25.까지)이 열렸는데, 그때 한국 측이 제시한 8개 항목도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8개 항목의 다른 부분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위 제5항 부분도 일본 측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위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을 제18호증)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이후 실제로 체결된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청구권협정 제21.에서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하여, 위 제4(a)에 규정된 것 이외의 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상, 위 제4(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 즉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는 청구권까지도 위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 2.(g)에서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것에 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도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공식의견을 밝혔다.

 

(3)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하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서는 ‘3억 달러 무상 제공, 2억 달러 차관(유상) 실행을 규정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명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차관의 경우 일본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위 무상 제공 및 차관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는 제한을 두고 있을 뿐이다. 청구권협정 전문에서 청구권 문제 해결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나,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와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은 없다. 이는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 2.(g)에서 언급된 ‘8개 항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일본 측의 입장도 청구권협정 제1조의 돈이 기본적으로 경제협력의 성격이라는 것이었고, 청구권협정 제1조와 제2조 사이에 법률적인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협정 당시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 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었다고 하면서, 1975년 청구권보상법 등에 의한 보상이 도의적 차원에서 볼 때 불충분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제정된 2007년 희생자지원법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모두 강제동원 관련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이나 지원금의 성격이 인도적 차원의 것임을 명시하였다.

 

(4)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도 포함된 내용으로 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5) 환송 후 원심에서 피고가 추가로 제출한 증거들도,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위와 같은 판단에 지장을 준다고 보이지 않는다.

 

위 증거들에 의하면, 1961. 5. 10. 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이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한 사실, 1961. 12. 15. 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6,400만 달러(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사실 등을 알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니다.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 일본 측의 반발로 제5차 한일회담 협상은 타결되지도 않았다. 또한 위와 같이 협상 과정에서 총 12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다.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 환송 후 원심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과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한편 피고는 이 부분 상고이유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는 전제하에, 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권리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되어서만 포기된 것이 아니라 개인청구권 자체가 포기(소멸)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환송 후 원심의 가정적 판단에 관한 것으로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