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인들은 도대체 해외여행을 가서 뭘 보고 느끼고 오는걸까요? 개돼지 민족답게 단순하게 먹고 처먹고 또 처먹고 오는걸까요? 고등학교 이상 학력이 아마도 한국이 OECD 국가들 중 상위권일겁니다. 반면에 국제적 사고는 아마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이지 싶습니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는건지. 또 기업에서는 뭘 배우는건지. 아주 허접한 중소기업이 아니면 국제적 사고는 당연한건데 말입니다. 

솔직히 작금의 사태는 국민의 문제도 아니고 기업들의 문제도 아니고 나라의 문제도 아닙니다. 병적인 문재인의 반일감정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문재인만 끌어내리면 됩니다. 한 놈 때문에 온 국민이 쓸데없는 고통을 받는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달빛양아치들과 개돼지 국민들. 지금 한일무역전쟁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무역전쟁이라고 이름붙이기에도 창피합니다. 이건 어린조카가 난데없이 깽깡을 부리는 꼴이니 말입니다. 

아니, 문재인은 그렇게 국가를 생각한다면 일본에 보이는 끝없는 적개심을 북한에도 보여줘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은 말 그대로 김정일 똥꼬까지 쪽쪽 빨아줍니다. 만일, 북한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공평하게 표했더라면 내가 피해를 봐도 문재인 지지했을겁니다. 한마디로 개XX 한마리 잘못 뽑아서 이 사달이 난겁니다.


아마 저 열등감은 서울대를 못간 것에 연유할겁니다. 재수를 하면서 종로학원을 다녔다는데 종로학원은 SKY 대학 지원생들만 다녔던 종합학원이거든요? 아마도 예비고사 잘못 봐서 경희대에 들어간 그 컴플렉스가 노무현이 발현했던 그 컴플렉스가 함께 작동되었고 그래서 노무현이 '노무현은 문재인의 친구'라고 한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즉, 기득권층에 대한 끝없는 혐오감에 친일과 재벌은 그 기득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성장했는지 모르죠.


2. 내가 쓴 글들이 국뽕에 취한 인간들과 수구꼴통 그리고 진보 쓰레기들, 즉 이승만 박정희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꼴통수구/진보들과 특히 정치적 해리성 정체성 장애 증후군(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달빛양아치들이 내 글 하나당 한명이라도 진실을 알았으면 하는 희망입니다. 기대난망입니다만.

솔직히 이번 논란은 문재인의 병적인 반일감정이었지만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조상들이 무능했던 수치스러움을 미화하고 국뽕으로 왜곡했던 것과 이승만, 박정희를 증심으로 무조건 영웅 만들기와 무조건 죽일놈 만들기를 했던 수구꼴통 쓰레기들과 진보꼴통 쓰레기들이 그동안 역사를 왜곡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문재인의 반일 감정이 병적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고 배웠더라면 이번에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겁니다. 이런 잘못된 교육과 자신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반성하지 않고(분명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보정하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회의 탓으로 돌리면서 극도의 증오심만 키우고 그 화살을 소위 친일파로만 돌리기 때문이죠.


3. 한일협정에서 already와 such에 대하여 맥락을 파악하려면 한일협정의 영문판이 필요했고 국가기록원을 다시 방문해서 다운을 받으려고 하니 택배비 3,500원. 뭐 논문들 다운 받느라 한달에 십만원 가량 소비하는데 그깟 3,500원입니다만 우편물로 보낸다는군요. 뭐, 무한복사 등의 염려가 있는건 알겠는데 그럼 국내외 논문들은 바보라서 온라인에서 PDF로 다운받게 하나요? 다운 받은 후 불법 복제를 방지하려면 복사방지 PDF 파일로 만들어서 올리던지. 

정말 뭐하자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기관들의 홈페이지들에 가보면 업데이트 늦는 것은 기본, 사용자 중심의 메뉴 구성은 딴나라 이야기, 그리고 국제화는 요원합니다. 예로, 외교부에 올린 독도 관련자료 역시 국제법과는 다른 설명을 하고 있고 왜 국제법상 독도가 일본 땅이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진보쓰레기들은 이게 다 이승만 때문이다라는 비난만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다른 곳에서 such에 해당하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어서 영문판 해독 대신 그 글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제가 인용하는 그 글은 already에 대한 설명이 없어 조금 어용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4.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하여도 그 역사를 제대로 기술한 책이나 글은 없다시피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에서는 기술이 되어 있을까? 1965년 한일협정은 1951년 이숭만 정부 시절부터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 조약에 의하여 한일회담 제1차 회의가 시작되었고 1965년 한일협정은 한일회담 제7차 회의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한일회담에서 한국은 약자가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진보쓰레기들은 박정희만 비난하고 처자빠져 있죠.
한일협정에서 한국이 약자의 위치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기장 큰 이유는 한국이 경제적 약자와 아쉬운 쪽은 한국이라는 것 이외에 이승만 정부 및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정은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의 조항들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조약에서 전승국의 지위를 획득하려고 노력했지만 좌절이 되어 그 결과 일본에게 막대한 배상/보상을 요구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무산이 되었고 한국이 배상 권리를 향유하는 제14조국에서 탈락하여 한일간 전후처리는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제4조에서 규정한대로 재산청구권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출처(ref.) : 정치/경제/사회 게시판 - 한일협정에서 일본의 실제 배상액은 3억달러가 아니라 63억 달러 - http://theacro.com/zbxe/free/5435195 by 한그루



5. 한일회담이 1951년 6,25 동란 중에 시작된 이유는 냉전대립이 격화되면서 아시아에서 강력한 반공라인을 만들 필요성이 있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의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유럽 중흥을 불러온 마샬플랜의 마샬외교관이 제시한 한미일 하청구도 계획에 의했던 것이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이 마무리시키면서 시작이 되었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을 마무리하면서 독도가 일본 땅으로 바뀐겁니다. (이건 아래에 설명드리는데 이 부분은 저도 오랫동안 오류를 범했었죠.) 어쨌든, 한일회담은 1951년부터 1965년까지 14년간 지속되었는데 이승만 정부 때 회담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일본배상금 60억달러 + 알파에서 알파 때문에 결렬이 되었고 이승만 정부로서는 경제개발에 대하여 그렇게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보다는 정부의 정통성이 더 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부 정통성 문제를 보완하려는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고려의 최씨정권, 이순신,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까지 아마도 군부 출신들은 민간인 출신인 졸병들의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고 특질 상 강한 것을 희구하여 '부국강병'을 근본으로 생각했으며 따라서 문인들보다 더 경제를 중요시한 심리에 의한 것인지 경제개발을 추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경제개발을 추진했습니다. (이 부분은 전두환과 군부를 설명하면서 설명한 글이 문예게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보충해주신 어느 분의 댓글이 함께 있을겁니다. 검색은 셀프 ^^)



6. 대한민국의 정통성


대한민국 헌법에는 아래의 기술에 의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런데 상해임시정부의 헌법 조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상해임시정부 헌법 조문은 한번 개정되었고 조선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 명시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어쨌든 아래 발췌 조문은 4월 11일 공표분입니다.)


제3조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의 판도로 함.

제7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상해임시정부의 제3조와 제7조는 서로 이율배반적이죠. 재산(영토)은 물려받고 부채(을사조약 등)은 물려받지 않겠다는 것이죠. 무슨 경로우대도 아니고 적통성을 이어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명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헌법에서처럼 3.1운동으로 건립된 것을 적시한 것도 아니고.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프랑스로부터만 승인을 받았다는 것과 (을사조약의 부당성 주장에 대하여는 세가지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국제연맹의 결의안, 하바드 법과대학 연구 및 프랑스의 연구 결과입니다. --> 프랑스의 연구 자료는 프랑스 대사관 홈페이지에 가면 보실 수 있을겁니다. 영문판 번역이 있었는지... 아니면 프랑스어를 잘 몰라 번역기를 돌려 보았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당시 강대국은 전부 제국주의여서 을사조약을 부인하면 그나마 승인 받기 힘들다는 것 등 (사실, 다른나라와는 달리 을사조약-설사 비평등 조약이라고 할지라도-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나라의 승인을 받기 힘들었겠죠.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연구논문에서 주장한 프랑스 말고는요. 러시아의 경우는 패스)



7. 60억 + 알파


이미 알파 때문에 이승만 정부 때는 한일협정이 결렬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 3억불로 타결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제7차 힌일회담)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에서 한국은 재산권 청구권만 인정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알파가 바로 위안부 또는 강제징용 손해배상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물론, 일본도 빨리 조약을 체결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받았습니디만 일본이 짱구도 아니고 왜 3억불을 무상제공합니까? 이미 재산청구권은 60억불로 한국정부와 합의를 봤는데 말입니다. 일본이 많이 참은거지요. 일본은 그냥 미국에게 '쟤들이 부당한 것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 조항에 위반되는 주장 - 회담 성사를 방해한다라고 하면 되는데요?



물론, 일본의 노림수는 6.25 특수로 경제를 부활시켰으며 한미일하청 구도에서 한국을 이용해 (흔히 가마우치 경제라 불리우는)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얻기 위해 한국의 경제부흥은 필요하다고 판단 3억불을 무상 제공했다고 판단하는게 합리적이겠죠.



8. already + null and void


1965년 한일협정에서 가장 난항을 겪었던 것이 바로 을사조약의 무효였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는 대한민국 독립 전의 일본과의 모든 조약은 (원천적)무효(null and void)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대한민국이 독립을 했으므로 그 전에 있던 조약은 (실효적으로)무효(already null and void)가 맞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3억불 무상 차관 제공은 배상의 성격이고요.


이 조항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협상은 결렬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 사실은 박정희 정부에서도 already null and void의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null and void라고 명기했다면 일본축 입장에서는 국가적 재난급에 해당하는 조항이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절대 양보할리 없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것은 박정희 정부. 더 이상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 수 없었던 박정희 정부는 already와 such를 바꾸는 빅딜을 한겁니다. 즉, 거칠게 이야기하면 '민족의 역사 세우기와 경제발전 및 국가안보를 맞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자금이 아니었다면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었을까요?


물론, 한미일 하청구도에서 한국경제는 일정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 방아쇠를 제시간에 제대로 당겼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을 놓쳤다면? 아마도 애치슨라인애서 한국이 제외된 것처럼 한미일 하청구도는 미일대만 하청구도로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에서 제국시대에 착취국가로 있었던 나라 말고 자립하여 잘사는 나라 있나요?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그러니 자립경제니 하는 개소리는 하지 마사길.



9.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 조약에서 such의 사용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 조약에서 such의 쓰임새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제 글에서 자펌형태로 인용하되 보다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하여 설명된 문장들을 수정합니다.


1. Approves the conclusions of the reports of the Temporary Commission;

2.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상기 빨간색 마킹 부분이 해석의 논란이 있는데 이 such를 한반도 상의 단 하나의 합법정부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미치는 영역에서의 유일한 정부로 인정할 것인가?의 해석의 논란이 있습니다.

10. already와 빅딜한 such 삭제의 효과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에 명시된 such의 해석상의 논란을 없애고 한일협정에서는 such라는 단어를 없애고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를 승인토록 한 것입니다.



이 such를 삭제한 효과를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발췌합니다.


1965년에 한일조약이 체결되고 그 이후의 한일 양국간의 관계를 보면, 한일조약 중 두 가지의 내용이 양국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우선 일본에는 공산당·사회당·좌파지식인 등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세력들은 집권여당인 자민당 내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는 정세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나타내는 나라이므로 1970년대 초와 같이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냉전체제에서 데탕트체제(대립 관계에 있는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어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태)로 바뀔 때에는 일본정부마저 ‘북한러시붐’을 타고 북한과 외교관계 수립까지 모색하려 하였다.


북한은 한국이 미국·일본의 두 동맹국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중국·소련의 두 동맹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만일 정세변화에 발맞추어 일본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경제관계를 맺고 북한의 경제력배양에 기여하였다면 한반도에는 한국에게 불리한 힘의 불균형이 생겼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한국이 일본의 북한접근을 견제한 것은 ‘유일한 합법정부’ 조항이다.


일본은 그 이후 북한과의 정치적 교류는 포기하였으나 결국 ‘정경분리의 원칙’에 의거, 북한과 비정치적인(예컨대 경제적) 교류는 확대해갔다. 그래서 한국은 ‘6·23선언’(평화통일 외교정책)으로 일본에게 ‘교차원칙’(북한의 우방국가인 중·소가 한국 접근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우방국가인 미국과 일본도 북한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을 지키도록 종용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은 여기를 클릭)

그런데 미국의 닉슨이 중공을 방문하여 데탕트 시작은 예상보다 더 빨리 왔고 정세변화에 민감한 일본이 북한과 수교했다면? 일본은 남북한 통일을 반대해왔습니다. 트럼프의 대북 유화정책에도 일본 정부는 사사건건 반대를 해왔습니다. 결국 일본은 남북한의 이간질 목적으로 남북한에게 공동으로 힘을 부여했을 것이고 최소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오늘날 같이 발전되지 못했을겁니다.


11. 이데올로기의 천국 대한민국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특 중 하나가 결론을 미리 내놓고 그 결론에 짜맞추어 침소봉대, 팩트왜곡을 하죠. 그리고 근본적으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러니 제대로된 주장을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을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를 볼 수 없습니다.


자존감은 턱없이 낮은데 자의식은 너무 강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방어적으로 해석하고 들어야 할 것은 거부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뭐, 인정하기 싫지만 다들 보편적으로 느끼는 것이니 말을 아끼겠습니다만 비판을 하건, 옹호를 하건 팩트를 가지고 그리고 맥락을 보고 비판을 하건 옹호를 하라는 것입니다.



맥락을 보고 용서를 하자는게 아닙니다. 잘못된 비판이 될 확률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들 안합니다.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일부의 사실만 가지고 난도질을 해놓습니다. 아니면 영웅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정희가 있습니다.



관련 글을 더 쓸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사해석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미리 결론을 짜맞추어 놓고 주장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살펴보다보면 결론에 도달하고 그 결론은 사상적 진영에 관계없이 비슷해질겁니다. 그런데 결론을 짜맞추어 놓고 주장들을 하니까 진실은 저 멀리에 있게되고 쓸데없는 논박만 판을 치게되는거죠.





(독도는 국제법 상 일본의 영토라는 것은 별도의 글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본의 영토임에도 왜 우리가 점유하게 되었을까?에 대하여도 언급하겠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