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왜 이 모양, 이 꼴밖에 안 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할 터이나,
그중 한 가지 가설은 "보복 정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이 있다.

때는 1960년 4월 19일, 숱한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발포로 죽는다. 발포 명령은 내무부 장관 최인규가 내렸다고 하나, 그 근원을 따지면 3.15 부정 선거로 이어진다.  대통령 선거는 부정 선거가 아니었으나, 부통령 선거가 부정 선거이었다. 책임을 지고 대통령 이승만이 사임한다. 이화장으로 돌아가자, 백성들이 "이박사 만세"를 외친다. 

감방에 들어가 재판을 받아야 할 이승만에게 만세를 외치는 장면을 본 박정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쿠데타를 해서건 뭐를 해서건 내가 독재하다가도 하야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박정희 만세'를 해 주겠군!" 만일 4.19후 이승만 동상 목이 아니라 그 본인 목을 광화문 네거리에 효수하였더라면 박정희가 감히 그런 야무진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전두환은 박정희가 혼자서만 하다가 총 맞아 죽음을 보았다. 장기 독재하다가는 자기도 총 맞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7년 단임 약속을 지킨다.

그렇게 내려온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에 대한 진정한 보복 정치는 끝내 실현되지 못 하였다. "항장불살"이라는 고대적 사자성어도 등장한다.

김영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었다.
김대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었다. 
노무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었다.

이제 비로소 재인이가 보복 정치를 실현하고 있으니, 남한 정치의 파라다임이 바뀐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온정주의적, 종족주의적, 동포애적, 끼리끼리 협잡 정치가 막을 내릴 판이다.

재인이가 정권을 내놓고 우파가 집권한다면, 털 것이고, 털어서 나오면 재인이 일당이 이적죄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공개 교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재인이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 한 목숨 바쳐 남한에 '진정한' 보복 정치 및 정의 사회를 구현시키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애국심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그가 과연 그러한 애국자인지 아닌지 지켜볼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