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예술'이라는 단어가 있었나? 금시초문이다. 문화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았지만 '운동권 예술'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녹수님께서 쓰신 '자유게시판'의 '운동권 예술에 대한 혐오'는 '운동권 예술-이런 표현이 있다고 가정하고'에 대한 독재정권들이 독재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포한 '잘못된 사실'과 아주 같다.


녹수님의 과거사를 잠깐 언급하면 내가 비열한 짓을 하는 것일까?


녹수님은 양희은의 광팬이라고 하셨었다. 그리고 양희은의 음반(LP)는 전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 양희은이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자' 녹수님은 그렇게 아끼던 양희은의 LP 음반을 전부 내버렸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글쎄?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정서였다. 왜냐하면, 나는 김제동 개그맨을 좋아하는데 그가 골수 노빠임에도 그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으니까. 단지, '임을 향한 행진곡'을 '노무현 죽음'과 링크시킨 작태만큼은 짙은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예술인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지지정당과 정치인을 밝히기를 주문한다. 물론, 이순재의 경우, 당시 한나라당 지지를 선언했다가 극딜을 당했으며 인기가 폭락하기도 해서 예술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금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예술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과 지지하는 지지정당과 정치인은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양희은에 대한 녹수님의 과거사가 아니다.

우리나라 가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평가받는 김민기의 '아침이슬'. 그리고 동곡을 김민기가 편곡하여 같은 해에 양희은이 불러서 더 유명해진 '아침이슬'은 운동권 가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침이슬'은 박정희 독재정권 때 금지곡으로 분류되어 오랜 세월 동안 대중에게 불리워지지 못했다.


'키다리 미스터 김'이 숏다리 박정희를 빈정댄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것처럼 우습지도 않은 것이 '아침이슬'의 금지 이유이다.


왜냐하면,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금지곡을 받은 '아침이슬'은 1971년 '서울시 건전가요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아침이슬'을 금지곡으로 내세운 이유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구절이었는데 김민기가 예지력 만땅이어서 독재정권을 내다보고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른다'라는 가사말을 넣었겠는가?



이렇게 '운동권 예술'이라는 것은 독재정권이 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허상이며 그런 허상에 동의하는 것은 바로 레드컴플렉스를 국민순화의 용도로 사용했던 것과 같다.


녹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옳다. 내게 반대하는 너는 그를 수밖에 없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니 내가 너에게 가하는 모든 공격은 정당하다'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이야기다. 내가 몇번 언급한 Y대 출신의 전직 NL CEO는 NL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집단인지를 증언하고 있으니까. NL의 교리(?)는 성서의 교리와 마찬가지로 '이의제기'나 다른 해석이 허락치 않으니까. 한마디로 개신교 집단 이상으로 교조화된 것이 NL 집단이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NL이 상대방 진영에 가하는 모든 공격이 정당하다'라는 것을 참이라고 한다면 그 역인 '상대방이 NL에 가하는 모든 공격이 정당시 되는 현실은?' 사상적 도플갱어이며 또한 사상적 동전의 앞뒤면의 결과를 놓고 한쪽만 죽어라 패는 것은 잘봐줘서 편견이고 대충 봐서 야만이며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대한 폭력'이다.


즉, 'NL이 내가 너에게 가하는 모든 공격은 정당하다'라는 녹수님의 표현은 'NL에 가하는 나의 모든 공격은 정당하다'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단지, 주어와 목적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녹수님의 예술론

"예술은 예술로서의 고유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의 고유성이란 뭘까? 예술은 시장과 자본의 선택의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날,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명곡들이 중근대 유럽의 문화소비자들이었던 귀족들의 선택의 결과이다. 그 선택은 일반론이며 그 일반론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오늘날에도 클래식은 죽지 않고 음악의 중요 장르로 내려오고 있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는 위대한 예술을 '잠재된 인간의 고귀함을 환기시켜 준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반면에 뒤르켐은 '예술은 외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개인의 고유성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일반론이다.


클래식이 보편성을 이미 확보한 것이라면 '운동권 문화'는 아직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운동권 문화'(가 있다고 치고)의 대다수는 너무 촌스러워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해서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좋은 방증으로 한국 소설이 저렇게 침체된 이유는 바로 과거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 되어 대중들이 질식하고 경원시한 결과이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이고 기호일 뿐이다.

돼지의 예를 들자면, 과거에는 살찐 돼지와 홀쭉한 돼지 두 종이 있었는데 보다 많은 고기를 원하는 인류의 선택의 결과 '홀쭉한 돼지'는 사멸해 갔는데, 그렇다고 '홀쭉한 돼지'가 돼지가 아닌 것이 아니다.


3 x 3 =9

(1 + 1 + 1) + (1 + 1 + 1) + (1 + 1 + 1)  = 9


첫번째 식과 두번째 식은 같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 여기서 곱셈 기호나 덧셈 기호는 일반론 그리고 등호(=) 기호는 보편론.

점수를 매기는 선생은 '곱셈으로 계산하시요'라고 전제를 달지 않았다면 둘 다 '맞다'고 채점하는 것이 옳다. 단지, 덧셈으로 하는 경우에는 시험 시간에 쫓겨 문제를 채 풀지도 못하는 가능성이 훨씬 높고 따라서 구구단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그걸 비난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운동권 예술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고, 운동권 예술을 판단하는 것은 '혐오스럽다'라는 표현보다는 '촌스럽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믿기에도 운동권 예술은 일반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편성을 획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보편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혐오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이미 설명한 것처럼 독재정권들이 체제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에 동주하는 것이며 예술 자체를 모독한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며 예술에 대한 중대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이미 보편성을 획득한 모든 예술은 한 때 일반성만 가지고 있었는데 '촌스럽다'라는 표현에 비해 '혐오스럽다'라는 표현은 모든 보편성을 확보한 예술의 일반성을 부인하는, 결국 예술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