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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 金 洙映, 시여 침을 뱉으라, 部分
1960년대 대표적 참여시인 이었으며 시를 쓰는 마음가짐, 몸 전체로 시를 쓰고자하는
치열함에 있어서는 한국의 시인들중 첫 손가락에 꼽힐 김수영시인의 詩論 중 한 부분입니다.
그는 “모든 실험적 문학은 필연적으로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않을 수 없고” 따라서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불온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문화,민족, 인류에 대한 염두,다른 말로 하자면 특정 역사 인식, 사회 의식 같은 것을 위한 의도적인
시 쓰기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시는 자유이어야 한다는 보다 근원적인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 이지요.
오래전 읽은 김수영 시인의 시론에 저는 여전히 공감 합니다.
시뿐 아니라 소설, 문학 전반, 나아가 음악이나 미술등 다른 예술들을 대 할때도
비슷한 태도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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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중략.....
시인으로서의 기형도의 힘은 그가 가난과 이별의 체험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체험을 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시인들도 그와 같은 체험을 했고, 하고 있다),
그 체험에서 의미있는 하나의 미학을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중략………….
기형도의 시학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피상적인 것은,
그의 현실에 역사가 없으며, 더 정확히 말해 역사적 전망이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퇴폐적이라는 비판일 것이다. 그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가깝다. 그 비판은 기형도 시가 연 새 지평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며,
그의 시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의 시를 비판하고 있는 비판이다….중략…
나는 기형도의 시가 아주 극단적인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중략----
그 도저한 부정성은 벤이나 첼란에게서나 볼 수 있는 부정성이다
(한국 시에서 그런 부정성을 보여준 시인이 누구일까 ? 이상 ? 이상에게는 그러나 치열성이 부족하다). >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경, 종로 2가 부근의 한 극장 안에서 29살의 생을 마감한
기 형도 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붙인 평론가 김 현 씨의 해설 일부입니다. 기형도 시인은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더욱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고 하겠으나
문단에서는 그의 독특한 시작들로 인해 호/불호를 떠나 상당히 주목 받았던 시인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 형도의 시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는 이래야한다라는 어떤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시집이며,
위에 일부 발췌한, 그 시집 말미에 실린 김 현 씨의 기 형도시 해설 또한
시인 이었던(평론가가 아닌) 김수영 씨의 시론과 함께 읽어 볼만하다 여깁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평론을 읽지 않습니다만 (제 나름대로의 감상에 영향을 받기 싫어서...)
이 해설은 젊은 시인의 죽음에 대한 진혼가 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설의 말미에 인용된 조사인듯한 소설가 김훈 씨의 짧은 글 역시 심금을 울립니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결국은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는 시인의 시를 읽는 것은
고통 스럽기도하지만, 아래의 ‘엄마 걱정’같은 시를 읽을 때면
아프간에서 피흘리는 아이들, 한끼 끼니를 위해 맨발로 폐선장이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방글라데쉬의 아이들, 인도 빈민가의 아이들이 떠올라
유니세프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엄마 걱정
기 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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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그 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한가위 명절 동안 좋은 시간,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많은 순간들 보내시기를 ~
5.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저는 그로데스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절망의 리얼리즘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보면
그런 표현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발췌하신 장시, 눈시울을 적시지 않고 다 읽어낼 수 없지요.
제가 그의 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 것은 그의 시를 읽기가 두렵기 때문이라하겠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시들에 이미 아프게 시려진 마음으로
그의 출구없는 절망을 따라가는 것은 몸서리쳐지는 일이지요.
그의 시가 주는 시적 미학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집에 자주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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