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sex)에 대해서 가장 건전하고 건강하다고 할만한 보수적인 관점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녀를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야 말로 건강한 보수주의로서 자신과 가족의 성을 대합니다.

성에 대해서 가장 건전하고 건강하다고 할만한 진보적인 관점은 갓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의 마음입니다. 서로를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 연인이야 말로 건강한 진보주의로서 자신과 연인의 성을 대할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또 아무리 파릇한 연인이라고 해도,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면, 넓은 범위의 도착증 병을 앓게 됩니다. 소유하고 집착하는 마음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도착증은 '소유와 집착'을 바로 가리키는 병명이지요.

아빠는 딸을 만나야지만 비로소 여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성숙한 남자가 됩니다. 엄마도 아들을 만나고나서야 비로소 남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성숙한 여자가 되고요. 따라서,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부모가 자식의 성(sex)을 위하는 마음은 우리사회가 성문화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성의 가이드라인은 종교가 제시하면 안됩니다. 만약 종교가 성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독점해서 섹스를 천박한 것이나 죄의 종자, 인내해서 극복해야 한는 것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신의 뜻도 아니고 깨달음의 지혜도 아닙니다. 그런 억압적 가이드라인은 종교에 종사하는 성직자들의 오류일 뿐입니다. 종교적 성도착인 것이죠. 억압된 성을 주장하는 성직자는 본인이 왜 성을 인내하는 삶을 사는지, 그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이드라인은 부모의 마음으로부터 발굴하고 적용하면 됩니다. 그것이 사회가 성을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입니다.

파릇한 새내기 연인들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나와 상대를 알아갑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면과 정서, 성격, 심리, 마음 등 전방위로 관계를 맺습니다. 이 때, 섹스는 나와 상대를 탐구하는 강력한 동기유발제가 됩니다. 젊은 연인의 성이 가진 특징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가이드라인도 그들의 한계없는 성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종교나 정치, 심지어 신이나 지혜의 화신일 지라도 젊은 연인이 나누는 은밀하고 내밀한 그들만의 한계없는 섹스는 침범할 수 없습니다.

젊은 연인에게 '한계없음'이 가능하려면, 주입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특정 신념체계만이 옳다는 집착에서 벗어나고 서로를 소유하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다면, 서로간에 사랑, 신뢰, 배려를 통해서 합의해내는 그들만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 집니다. 그것이 아주 훌륭한 진보의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성 문제에 대해서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집착없고,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과 연인의 마음이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뤄야지 사회가 건강한 성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성도착에서 벗어나고요.

부모입장에서 권력이 내 자식의 성을 유린하고, 내 자식이 성폭행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고 내키지 않는 성관계르 맺어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용납이 안되고, 너무나도 슬 픈일입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반드시 쪽팔림을 주고, 법적으로 강력하게 처벌되기를 바라는 것이 보편적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다만, 그것만 있으면 안되죠. 어떻게 하면 은밀하고 내밀한 성관계의 자유를 보장할지도 분명히 생각해야 합니다.

권력지향의 페미니즘이나 특정 정치 신념들에 의해서 성이 권력투쟁의 도구가 되면 안됩니다. 성은 삶을 유지하는 강력한 에너지인데요. 남녀평등, 남성중심사회구조 등을 혁파하는 도구로 남용되면 안됩니다.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가지되 남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과 보수, 저항과 진보를 앞세우기 전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대를 소유하지 않는 마음부터 우선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가 건강하고 올바른 관점으로 성을 다루면서도 남용하지 않고, 또 개인은 은밀하고 내밀한 성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사회적 법도를 벗어남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