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단지, '살인을 허용하지 않는게 효율이 더 높다'라는 인류의 지배층들이 판단한 결과입니다. 살인을 허용하면 인간 각 개체는 '살해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쏟아야 하니 효율이 떨어질테고 그 결과 지배층이 가지고 가야 할 '파이'가 적어지기 때문이죠. 이런 판단이  제정일치 시대에는 종교적 교리로 흡수되어 대부분의 종교에서 '살인을 금하게 된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자살은 죄악'이라는 것 역시 인류의 지배층들에 의하여 강요된 것에 불과하죠. 물론 저는 '살인의 자유' 따위나 '자살의 자유' 따위를 주장할 생각은 터럭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미친 놈'이라고 비난할 것이 확실합니다.


단지, '살인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나 '자살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고상한 철학으로 포장되어 인간에게 강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현대 의학적으로 소생 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에게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비싼 비용이 들어가는 생명유지장치를 동원하여 그 식물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식물인간 본인? 가족? 병원? 그리고 국가?


경제적 이익은 병원이 가장 많이 보겠죠. 그런데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식물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효율을 떨어뜨리는겁니다. 즉, '살인을 하지 말라'고 강제된 이유와 반대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대의 이유 즉 모순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바로 '식물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 국가적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효율을 훨씬 더 올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덕목이 유지되는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뒷받침하는 알리바이 기제로 활용이 된다는 것이죠.


물론, 최근에는 한시적 안락사들을 허용하는 나라들이 있기는 하지만 '살인하지 말라'라는 효율을 높이는 덕목이 포기되지는 않겠죠.



전쟁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효율이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죠. '(적을)살인을 많이 할수록' 효율이 올라가는 이율배반적 성격 때문에 전장에서는 살인을 많이 한 군인이 영웅대접을 받는거죠. 즉, 그 영웅은 국가의 효율을 올렸기 때문에 영웅으로 간주된다는 것이죠. 결국, 살인자가 법정에서 처벌 받는 이유는 '국가적 효을을 떨어뜨렸기 때문'이고 전쟁영웅이 대접을 받는 이유는 '국가의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구증산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권장되는 '개돼지 증산 정책'을 국민들이 '맞는 정책'이라고 철저히 믿는 오류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택동이 그랬다죠? '인구는 국력'.


모택동이 이 발언은 '살인을 하지 말라'라는 덕목이 강제된 이유처럼 각 나라의 지배층들에게는 아주 달콤한 마약과 같은 주술이죠. 각 개인의 행복은 지배층들에게 중요치 않죠. 지배층들이 원하는 것은 개돼지 증산을 통하여 자기네들이 추수해갈 몫을 키우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주술은 인간의 기본본능 중에 하나인 '종족 보존 욕구'를 만족시키죠. 그래서 순순히 개돼지 증산에 순응하죠.



살인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강제된 것처럼 인구증산정책 역시 '개인의 삶의 질'보다는 '국가의 효율'이 먼저 강제된 결과입니다. 물론, 인구증산정책이 필요한 나라도 있겠죠. 그러나 최소한 한국에서의 인구증산정책은 국민들의 행복을 약탈해가는 수준으로 한국의 인구는 너무 많습니다.


물론, '개돼지 증산 정책'에 호응할지 여부는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나 '살인을 하지 말라'라는 효율적 측면에서 고려되어 권장된 덕목이 아주 지고한 도덕적 덕목으로 포장된 것처럼 '개돼지 증산 정책' 역시 효율적 측면만 고려된 정책인데 이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공멸이라는 공포로 포장되어 강제되고 있다는 것이죠.


하물며, '개돼지 증산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할 세대에게는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비도덕함'까지 강제되고 있는게 현실이죠.



당연히 개돼지 증산 정책을 포기한 결과 개인의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인지는 통계로 예측이 되야겠지요. 그러나 통계로 예측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개돼지 증산 정책'의 포장을 벗겨내는 일이죠. 분명한 것은, 최소한 한국은 개돼지 증산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개돼지 증산 정책이 지속되어 '개돼지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개돼지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니 말입니다.


한국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고 2위에 비하여 2.6배 자살자 수가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런 무대책인 '개돼지 증산 정책'의 여파이죠. 그러나 이 자살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만 메아리가 되어 개인에게 강제될 뿐이죠.


살인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효율을 고려해서 살인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돼지 증산 정책'이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여부는 이제 검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누구도 '개돼지 증산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아니, 반대는 커녕 '개돼지 증산 정책'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회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죠.



그 중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개돼지 머리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아주 꼬진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인구조절정책'은, 반인륜적인 정책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양심은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죠. 지배자가 흔히 하는 생각인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거느리는 개돼지 머리수와 비례한다'를 거부한 것이니 말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