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를 관통하여 사고하면 몇가지 분기점이 있었습니다.

그 한국 가요사의 분기점을 한국 정치사에 대입하면 '아구'가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이런 아구가 딱 맞아 떨어지는 현상은 뭐, 인류 문명 전개에서 흔한 것이니 딱히 신기할 것도 없겠죠.



한국 가요사에 첫번째 분기점은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였습니다.


1980년 나름 경제가 성장한 시절에 가수 조용필이 불러 히트를 쳤던 '창 밖의 여자'가 40만장의 레코드 판매를 기록한 것에 비해 1960년, 아직 경제개발 전에 발표된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60만장의 레코드 판매를 기록하면서 가요라는 것을 대중문화 상품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물론, 이미자 전에도 남인수 등 걸출한 가수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이 부른 노래는 '문화'로서의 가요보다는 '역사 기록'으로서의 가요 성격이 강했고 대중들이 그렇게 따라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일제 시대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역시 4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만)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공전에 히트에 힘입어 가요는 문화상품으로 소비되기 시작했고 그 후로 각 음반제조사들이 레코드 판매를 위하여 수많은 가수들을 탄생시킵니다. 즉, 맹아 상태의 가요계에서 제조자 주도형 가요(maker-oriented pop(ular) song)가 음반시장을 키우고 주도합니다.


1960년.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공전의 히트를 한 일년 후, 박정희에 의하여 5.16 쿠테타가 일어납니다. 5.16 쿠테타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박정희는 정치라는 것이 국민들 삶에 얼마나 밀접한 것인지를 알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즉, 맹아 상태의 정치 인식에서 제조자 주도형 정치(maker-oriented politics)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키우고 주도합니다.




가수 이미자로부터 촉발된 제조자 주도형 가요(maker-oriented pop song)에서 가요를 즐겼던 대중들은 많은 새로운 실험을 경험합니다. 신중현 사단, 가수를 브랜드화한 김추자, 그리고 트로트 일변도의 가요 시장에서 수많은 쟝르의 가요들이 나옵니다만 대중들은 아직 그런 새로운 실험을 채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78년. 훗날 가왕이라 불리는 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쳤고 대마초 사건으로 잠시 가요활동을 중단했다가 컴백하면서 부른 '창 밖의 여자'가 또 한번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그는 가요의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바로 제조자 주도형 가요(maker-oriented pop song)에서 마켓 주도형 가요(market-oriented pop song)으로요.


최초의 오빠 부대를 탄생시킨 것도 그이며 특정 음반 회사에 얽매이지 않아 자신이 부르고 싶었던 노래, 수많은 쟝르를 섭렵하면서 발표된 노래들로 가요 마켓 시장을 리드했습니다. 그동안 가요 소비자들은 동일한 쟝르에서 가수만 다른 곡을 선택했다면 새로운 마켓 주도형 가요 시장에서는 비록 아직은 조용필 한 명 뿐이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쟝르의 가요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에 의하여 주도된 제조자 주도형 정치(maker-oriented politics)에서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그 것은 바로 1971년 대선에서 야당 호보였던 김대중이 '40대 기수론'을 펼치면서 제조자 주도형 정치(maker-oriented politics)에서 마켓 주도형 정치(market-oriented politics)로 정치 시장을 바꿉니다.


국민들은 경제성장이라는 정치시장에서의 유일한 상품이자 선택이었던 것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켓 주도형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불행하게도 이 이후로는 유신독재 때문에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은 '체제 유지'라는 유일무이한 상품을 강요 당해야 했습니다만.




가수 조용필에 의해 창출된 마켓 주도형 가요 시장은 가요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가요 소비자들은 소비자이지만 또한 생산자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즉, 수동적으로 가요 문화를 즐기고 선택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가요 문화를 즐기고 가요 시장에 작으나마 생산자로서의 기여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감성을 제대로 자극한 것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입니다. 가수 조용필이 창출해낸 마켓 주도형 가요 시장을 소비자 주도형 가요 시장(customer-oriented pop song market)으로 이끌어 올립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폭발적인 아이돌 가수들의 탄생.


소비자 주도형 가요 시장은 기존의 가수들이 최소 십년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면 가요 소비자들은 아이돌을 탐욕스럽게 소비해 나갔습니다. 열광하는 시절은 불과 일이년. 그리고 그런 선택은 과거 선택 당해지는 것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으로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김대중이 만들어낸 마켓 주도형 정치는 독재 정권들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가요 시장에서처럼 진화하지 못하고 제조자 주도형 정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국민들의 선택은 기껏해야 '이쪽' 아니면 '저쪽'.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국민들은 심한 정치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분명히 '국가의 주인은 나'인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강요된 선택이니 말입니다.


그 때 나온 현상이 바로 안철수 현상. 독재 정권 때문에 다시 제조자 주도형 정치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정치에서 안철수 현상은 한국 정치를 곧바로 소비자 주도형 정치(customer-oriented politics)로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잘 이해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서태지처럼 자신을 매개체로 하여 수많은 분화를 일으켜야 하거나 또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야 하는데 그는 과거 제조자 주도형 정치 인물인 박원순에게 '통큰 양보'로 포장된 양보를 합니다.


안철수는 왜 유권자들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는지를 이해조차 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는 안철수 현상을 실재화시키기 위하여 서울시장에 출마를 하여 권력 의지를 보이던지 아니면 안철수 현상만 남겨두고 정치판에 발을 담그지 말아야 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에서 국민들은 그 '기의'에 열광했던 것이지 안철수 현상의 그 '기표'가 반드시 안철수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안철수는 그 '통큰 양보'로 인하여 스스로의 빛을 잠식해 버립니다.


저는 그동안의 안철수의 행보로 보았을 때 그가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아니 '안철수 현상'의 기표와 기의를 합치화 시킬 깜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우리 사회에 남긴 것으로 만족하고 은퇴를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안철수 현상은, 비록 지금은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한국 정치의 변혁을 일으킬 패러다임인 것은 분명하니까요.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좀먹는 행위는 이제 그만 보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한국에서 새정치는 다음과 같은 두 개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합니다.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이 만들었던 경부선-호남선 대결 구도의 철폐

또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퓨전



그런데 작금에 안철수가 새정치로 포장하여 하는 행위는 경부선-호남선 대결 구도를 철폐하거나 또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퓨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안철수 현상을 일컬어 'It's not cola'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의 작금의 행보는 딱 이렇습니다.


"Yes, it's another conflict"


결코 새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서도 말입니다.


그동안 국민의 당-바른정당의 합당 절차 때문에 입겐세이했는데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군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말입니다. ㅏ니, 할 말은 많은데 하고 싶지 않다....는게 맞는 말이겠죠.



buy country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