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정치 관련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썼던 문장은 이 것일 것이다.

"전두환은 증오의 대상, 노무현은 혐오의 대상"


예로, 노무현이나 이명박 또한 박근혜나 문재인을 내가 혐오는 하지만 증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능력은 동정의 대상이 될지언정 증오의 대상이 아니므로.

IMF를 불러일으킨 YS, 그래서 수많은 민초의 삶을 바꾼 YS에게도 무능력에 대한 별다른 혐오감을 느끼지 못했고 증오심도 없었다. 단지, DJ가 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을 때 '정치적 시기심'을 보인 YS에게 혐오감을 표시한 적은 있다.



전두환.


그는 증오의 대상이다. 분명히 그는 자신의 정권욕을 위해 학살이라는 도구를 활용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 혐오감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두가지,

첫번째는, 나는 결코 동의를 하지 못하겠지만, 그의 말대로 '구국의 결단'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이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에서 비극을 야기한 것처럼 그는 당시 상황이, 북한의 위협이 사실이므로, 대한민국이 누란의 위기에 빠져있다고 판단했고 또한, 전국에서 유독 광주만 시위가 계속되었으니까.


두번째는 영화 더록에서 묘사된 것처럼, 참극이 작은 돌멩이 하나에서 비롯된 것처럼 광주학살은 실제 전두환의 의도와는 다르게 학살극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최선의 선의'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전두환은 증오의 대상, 노무현은 혐오의 대상'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증오의 대상'이었던 전두환에게 혐오라는 감정이 덧붙여진 것은 DJ가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라'라는 권유에 '사과할 일 없다'라고 했던 일 때문이다. 그 학살극은 분명 전두환의 정권욕에서 출발된 것이니까.


그런 혐오감은 발포 여부를 결정 짓는 회의에 그동안의 전두환의 부인과는 달리 전두환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증폭이 되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


"남자 새끼가 정말. 아랫도리에 그 거추장한 것이나 떼버리지"



전두환은 정말 용기있는 한 군인으로서 구국의 결단으로 학살을 벌린게 아니라 비열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도 못지는,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비극 또는 참극을 일으킨 주역들의 성격이 한결같이 비열했다는 사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전두환은 최근 자서전에서 그에 대한 혐오의 정점을 찍었다.


자신의 입으로 광주에 '북한군 개입이 없다'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놓고는 자서전에는 '북한군 개입이 있었다'라고 쓰다니. 


왜 말을 번복했을까?


기록물의 가치는 활자화된 신문보다 대통령의 자서전이 더 가치가 높다. 역사학자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이 실린 활자매체와 대통령 자서전 중 어느 것을 더 믿을까? 물론, 케바케이기는 하겠지만 광주학살 건에 대하여는 전두환 자서전을 더 신뢰할 것이다. 즉, '그는 역사연구의 가치의 정도를 노려 반전을 시도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추가 : 비록, 읽지는 않았지만, 이명박의 자서전이나 문재인의 자서전을 분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 자서전들에는 왜곡된 사실들이 많이 있으므로.)



만일 그가 평소에도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라는 주장을, 설사 그 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했다면 그냥 증오만 했을 것이다. 내가 전두환에 대하여 혐오를 떨쳐버리지 못하겠는 것은,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하여 말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전대가리, 넌 남자도 아니다. 아니, 인간새끼도 아니다. 너는 벽을 기어가는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럽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