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노동의 종말을 예고 합니다. 과연 이 지긋지긋한 하루 일과로 부터 벗어나는 노동의 종말이 올까요. 물음에 대한 답 이전에, 사실 노동의 종말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은 급여의 종말이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일이 없어지면 정말 못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기본소득 논의가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은 천부인권과 더불어 논의를 하는데 반해, 정치논리는 조금 다릅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의 종말에 대처하는  정책으로 담론화 하거나 기존의 복잡다양한 복지체계를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통합 대체 한다던지 하는 식의 정치담론이 나옵니다.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이라면 정치 논리도 환영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시장이 공약한 기본소득은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불쏘시게로서 제시됐습니다. 아직 북유럽에서 조차 시험단계인데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고 저도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의 시도는 단순히 급진적으로 규정하기에는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토지공개념 일부와 부의재분배, 소상공 서민 경제 활성화 라는 세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면서 기본소득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그것의 전면적 도입을 유인해 낼수 있는 것이 이재명의 기본소득이었습니다. 천재적이죠.


민주당 경선에서 패거리 적폐집단에게 져서 아쉽습니다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음 정권 누가 되더라도 부동산 버블과 경제활성화 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제명의 기본소득보다 훌륭한 것은 없어보입니다. 정직하고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임 대통령이라면 이재명 불러서 물어보고 해보자고 하겠죠.


인생을 깊은 생각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면 공산주의를 살펴보게 됩니다. 억압과 거짓을 가려나가다 보면 또 공산과 사회주의를 만나게 되고요. 그러나 곧 공산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폭력성을 만나면서 실망하게 될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죽창을 들 수 도 있고요.


전체주적 국가의 폭압과 폭력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구현 됐습니다. 굳이 자본주의 하에서 빨갱이들 악마라고 세뇌되지 않았더라도, 독립적 사유를 통해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직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에히리 프롬은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좌절한 사람들에게 마르크스는 그런 사람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를 말했던 철학자죠.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사적소유냐 공적소유냐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보다 자유롭고, 또 자유롭되 따뜻한 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상태에 있느냐 문제라고 마르크스는 생각 했습니다. 


이제 공산이냐 자본이냐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죄우는 스스로 무기력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성찰은 우리를 자기로부터의 혁명으로 인도합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놀음을 끝내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자기로부터의 혁명입니다.


마르크스 뿐만아니라 그 누구라도 성찰의 끝에서 나 자신의 탈바꿈이 바로 사회의 탈바꿈이 됨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제껏 자본과 공산은 이러한 깨달음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켜 왔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좌우라는 이념의 민낯입니다.


사람에게 두가지 대립되는 신념체계를 심어서 싸우게 함으로서 존재에 대한 사유, 참된 자유를 행한 성찰,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길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보수와 진보가 꼭 그 모양이지요. 적대적 공생으로 민중을 나누고 실체없이 허황된 다툼으로 내몰아서 지배-피지배의 그물을 망각하도록 합니다. 



<에히리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에서...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읽었을 뿐 아나라 스스로 인류사상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거듭 되새겼던 마르크스로서는 자신의 사회주의 이상이 잘 먹고 잘 입는 "복지" 또는 "노동자" 국가를 목표로 지닌 것으로 해석되리하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역사 속에서, 소외가 만들어낸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빈곤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면 언제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해왔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믿음,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인간 본질의 진정한 잠재력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그는 사회주의를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의 조건으로 보았지, 그 자체가 인간 삶의 목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는 인간의 역량을 대상화하여 만들어진 객관세계로부터 도피하거나 추상화하는 것, 또는 그 객관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는 비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단순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실제적인 것으로서 처음으로 부상하여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에게 인간이 소외를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는 것을 허락하는 사회이다. 그것은 진실로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활동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우상의 파괴라는 예언서의 목표를 충족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