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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업화와 고속성장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고생했던 자신들의 세대에 대한 향수에서 그 말에 공감을 하는 것일 뿐이다.(2) 지금 청년실업 문제는 어짜피 고생해야할 청춘인데 (자기네들 탓도 있고, 불경기 탓도 있지만) 청년이라면 당연히 받아드려야할 문제일 뿐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1, 2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는 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생각하시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8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일자리 자체도 많았고, 고생을 하더라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생을 하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요... 그때의 청년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청년들은 고생을 피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욕하기보다 먼저 왜 그들이 고생을 피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 이제는 대다수가 장년일 사회지도층이 그걸 모르지는 않겠죠. 그걸 주기 싫어서든, 이제는 줄 수가 없든, 아니면 둘다 해당되는 등의 이유가 있을테고요...
청년실업문제는 한국의 일자리 혹은 경제생태계가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은 1980년대와 2015년이 공존하고 있고, 80년대식 일자리는 2015년대 경제생태계 진입에 실패한 사람들과 한국의 80년대 수준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채워주고 있는거죠.
결국 청년들더러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쪽으로 가라는 꼰대들의 주장은, '너는 왜 198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에 올라타지 않고 2015년에 계속 남아 있느냐'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 타임머신 지네들이나 탈 것이지 참...
청년실업은 청년들을 강제로 타임머신에 태워 80년대로 보내는게 아니라, 80년대식 일자리들을 2015년으로 업데이트 해야만 해결될 수 있겠죠.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일단 한국에는 2015년에 걸맞게 업데이트 되지 못한, 80년대 그대로인 일자리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에는 동의하실거 같습니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 기업들의 생산력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스킬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그런 곳에 가보면 8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상품들을 생산하고 있지요. 2015년의 청년들이 그런 곳에 가서 일하려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요.
저는 어떤 사람의 생활수준은 그 사람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에 수렴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거구요. 만약 그렇다면 착취율이 엄청나게 높은거고,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모두 때부자가 되었겠죠. 그러나 그들 역시 죽네 사네 하는건 마찬가지고...
따라서 저는 그런 일자리들이 아직도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단순히 독일처럼 외노자 비차별같은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노력이 부족해서 였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건 부차적인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의 생산력 발전이 선행되어야만 그런 것들도 가능한거겠죠.
결국 80년대식 기업들이 제대로된 시장경쟁에 노출되서 경쟁력을 강화한게 아니라 정부의 안일한 보호정책으로 온존해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 같습니다. 그 외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요.
"노동자 한사람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이나 양이 전혀 변화하지 않아도 (아무런 알 수 없는 이유로) 해당 회사의 물건이 더 팔리거나 또는 가격이 올라가거나 해서 어쨋든 매출(회사수익)이 오르고 따라서 임금이 인상되기만 하면 노동생산성도 그냥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생산성'에 대해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저는 그런 건 적하효과에 의한 착시라고 보거든요. 즉 일부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돈을 더 많이 벌면 당연히 그 기업의 구성원들은 더 많은 소비를 하려할테고 따라서 물가가 오르고 그래서 아무런 경쟁력의 변화가 없던 기업의 상품들도 덩달아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매출도 증가하고... 즉 노동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소득만 증가하는거죠.
또한 제대로된 시장경쟁이라는건, 갑을관계의 개선은 당연한 전제조건이 되는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생산성 격차는 외부적인 요인들도 있겠지만, 내부 요인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필요한건 중소기업의 보호가 아니라 개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시장경쟁 원칙에 위배되는 대기업들의 횡포로부터는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겠구요.
일단 중소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양질의 일자리든 뭐든 만들어지는건 너무 당연하지 않겠나 싶어요. 여기서 돈을 많이 번다는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윤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경쟁력이 좋아져서 매출이 증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대기업들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발전하지 못하고 돈을 못 버는 경우는 극히 일부이지 싶어요.
저야 뭐 아시다시피 임금은 노동력의 시장가격일 뿐이고 실제 노동의 가치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라서, 아마도 견해차이가 좁혀지진 않을거 같습니다.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널뛰기를 하는건데, 노동생산성이라는게 수요와 공급 즉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높아지고 낮아질 수 있다는게 직관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네요. 물론 수요가 늘면 더 많이 생산하려는 요인이 되니 생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하는건 맞을텐데, 수요의 증가에 의한 가격 인상 그 자체가 노동생산성의 증가이다 라는건 좀 갸우뚱 해지네요.
그런데 그걸 따지는게 중요한 논제인 것 같지는 않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유는 임금이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청년들의 마인드가 원인이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의 경제수준에 걸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고) 기업들이 그런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경쟁력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기까지는 서로 동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낙후된 이유가 뭐냐일텐데, 저는 대략 5~6가지의 개별 요인들이 있는 것 같아요. 대기업들의 갑질 횡포도 그 중의 하나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의 갑질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80년대식 저임금 저생산성 구조로 운영되고 있으면서도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기업들도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죠.
요약하면 나쁜 놈이 아니라 강한 놈이 살아남는, 즉 살아남기 위해 저임금으로 쥐어짜는 경쟁을 하는게 아니라 보다 고품질의 고부가가치 생산성을 갖추기 위해 경쟁하는 경제풍토로 바뀌어야 해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걸 위해서는 갑질의 개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교육제도 부터 죄다 바꿔야하는 대단한 작업일거 같긴 해서 어쩌면 대책없는 탁상공론일 수도...
비행소년님/
저도 호기심을 풀기위해서 좀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일단 시장가치로 노동생산성을 매기는 주류경제학쪽의 입장이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몇가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네요. 누구 주장이 맞는지 따져보자는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질문하는 겁니다.
우선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재화는 상품이라고 할 수 없을겁니다. 제 아무리 노동을 투입해 공들여 만들었다 할지라도 본인 만족을 위해 취미생활로 만든 목각인형이 상품일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일시적으로는 시장에서 팔릴 수 있다 하더라도, 시장가격이 비용보다 낮아서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한계상품 역시 분석대상에서 빠져야하겠죠. 결국 노동생산성의 정의는 시장에서 팔리며 또한 시장가격이 비용보다 높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기본 범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의 선호가 더 높은 퀄리티나 디자인의 차이는 당연히 노동생산성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맑스경제학에서는 이 부분을 노동스킬 혹은 노동숙련도 등으로 정리하는데 그러면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등등의 개념이 전개되죠. (그런데 이 파트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는 적당한 이야기가 아닐거 같고, 제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해져서 오류없이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쨌든 스킬과 숙련도가 높으면 노동생산성도 높다는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노동생산성의 이 측면은 주류경제학처럼 시장가치로 매겨도 결과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거 같습니다. 어찌보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니 뭐니 하면서 복잡하게 가는거보다 그 쪽이 훨씬 더 편리하고 이해하기 쉬울거 같고요.
그런데 노동생산성의 모든 측면을 시장가치로 매기다보면 이런 딜레마가 발생할 거 같거든요. 가령 컴퓨터는 어떤가요? 과거의 컴퓨터보다 현재 최첨단 컴퓨터의 퀄리티나 디자인이 소비자 선호 기준에서도 월등할겁니다. 또한 노동시간당 생산대수도 압도적으로 많을거구요. 당연히 생산력이 높아진거고 그것은 노동생산성이 증가해서일 것 같거든요. 그런데 컴퓨터의 시장가격은 낮아지고 해당 회사의 매출은 줄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컴퓨터의 가격은 단순금액으로도 과거보다 훨씬 싸졌고 상대적 화폐가치로 따지면 비교불가할 정도이죠. 컴퓨터 제조회사들의 매출과 그 쪽 업종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상대적 화폐가치로 비교하면 다운되었을거 같구요.
그렇다면 이 때 컴퓨터 업종의 노동생산성은 장기적으로 감소한거라고 봐야할까요? 더 우월한 퀄리티와 디자인의 상품을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이 생산하게 되었지만, 노동생산성은 감소했다는 주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용어의 기본 정의부터가 헝클어지는거 같고, "똑같은 시간에 부채를 한개 만드는 사람과 두개 만드는 사람의 노동생산성은 단적으로 후자가 두배가 높아야 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죠" 라는 비행소년님의 말씀과도 괴리가 있는 것 아닐까 라는거죠.
청년실업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리고 중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왕 산으로 간 김에 좀 더 가보죠^^
거칠게 요약하면 '임금이 상승했다는 것은 곧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반증일 수 밖에 없다' 라는 취지의 주장인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고 서로간에 이견은 없겠네요. 다만 여전히 '갤럭시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임금이 아이폰을 생산하는 팍스콘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두 배 이상 높으므로, 갤럭시를 생산하는 노동은 아이폰을 생산하는 노동보다 두 배 이상 생산성이 높다' 라는 결론은 뭔가 미심쩍은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가시지는 않습니다. 아마 이건 서로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간극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건 맑스경제학에서는 노동과 자본을 딱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단적으로 자본 역시 노동이라고 보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죽은 노동 혹은 자본가의 소유가 된 축적된 노동' 이런 개념이죠. '자연물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가치를 제외하면 모든 가치의 원천은 노동이다' 에서 출발하는 이론이니까 자본이라는 가치 또한 다른 형태로 전화된 노동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이고요. 따라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시각에서는 자본생산성 역시 노동생산성 안에 포함되며 부분집합쯤 된다고 봐야겠죠. 즉 '노동생산성은 오로지 노동 (정확하게는 산 노동) 자체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입장은 똑같다는 말씀. 좀 헷갈리죠? ㅎㅎㅎ 어찌보면 용어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보니 서로 의사소통이 힘든 부분이 있는 듯.
예를 들어 자본가가 최첨단기계를 도입하여 동일한 노동 동작으로 하루 한개에서 두개로 생산량이 증가했을 때, 주류경제학에서는 그것을 자본생산성 증가의 결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 역시 노동으로 만든거거든요. 즉 '최첨단 기계를 제작하는 새로운 노동 + 기존 생산 노동에 의해 생산량이 두배로 증가했으니 해당 분야의 노동생산성은 두배가 되었고 사회 전체적인 생산력은 증가했다' 이렇게 설명하죠.
미진한 부분은 다른 기회가 또 있겠죠^^
비행소년/
간단하게 질문에만 답하고 산을 내려가야겠네요^^
맑스경제학에서 자본은 유형자본만을 자본이라 부르고 운동법칙을 분석하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무형자본 혹은 휴먼케피털은 애초에 자본이 아닌거죠. 그러니 그걸 죽은 노동이라고 부를거냐 말거냐 그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는거고...
물론 맑스가 오늘날 휴먼캐피털 쯤에 해당하는 개념 자체를 모르거나 분석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개념들은 경우에 따라 인간 지능 혹은 지식 혹은 기술 등으로 부르고 그것들과 자본주의적 생산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생산력과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방대한 분량으로 분석을 하죠.
가령 기계의 발전은 곧 생산력의 발전이다라고 주장하고 (그 논리로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을 강력하게 비판하죠) 기계를 '인간 지능이 사물로 외화된, 인간 지능 그 자체' 쯤으로 정의하는게 좋은 예이겠죠. 즉 맑스경제학에서 휴먼캐피털은 육체적 힘과 더불어 노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거죠. 오히려 육체적 힘보다는 그것이 인간 노동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인간의 특성이 육체적 힘보다는 지능이니 당연한 소리이고요. 즉 휴먼캐피털이야말로 '산 노동'을 구성하는 핵심중의 핵심인건데 거기에 뜬금없이 '자본' 이라는 이름을 붙인거죠.
오히려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의 지식에 대해 어떻게 볼것인가가 당시에도 상당한 논쟁거리였던 거 같습니다. 맑스가 그 주제에 대해 뭐라고 정리는 했던거 같은데 잘 기억은 안나네요. '자본가의 지식은 이윤을 창출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 아닌가' 그런건데 그건 이윤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죠.
저는 오히려 인간 지능, 기술, 지식 등으로 부르면 충분한 개념을 굳이 왜 '휴먼캐피털' 즉 일종의 자본이라고 부르는건지 그게 더 궁금합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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