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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의 공천을 두고 '권은희가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는데요.... 과연 권은희가 열렬한 운동권 출신인지에 대하여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고 '학생 운동에 열심히 한 것은 (조갑제 주장에 의하면)맞지만 운동권 핵심은 아니다...라는 것이 저의 조사 결과입니다.
우선, 권은희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된 것에 대한 배경 설명은 저의 포스팅을 클릭.
상기 제 글 중에서 '자펌 형태'로 퍼왔습니다.
조갑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다음은 그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권은희 과장이 사시(司試)출신 첫 여성 수사과장, 최연소 수사과장으로 주목을 받던 2005년 10월31일 나온 <주간조선>을 보면 “대학에선 학생회의 역사연구회원으로 야학에 참여했고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권은희 과장의 남편도 운동권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9.8대1의 경쟁률 속에 치러진 2005년 경정특채 시험에서 특별히 좋은 스펙이 아니었던 그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 노무현 정권 하의 상황 속에서 ‘운동권 전력’이 작용했을 개연성도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권은희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비난의 근거를 조갑제의 글을 인용하여 비난하는 것이 다수이고 또한 전남대 출신으로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강기정과 선후배 관계라는 것을 들어 비난하는데요..... 권은희가 전남대 법학과 출신으로 강기정과 선후배 관계인 것은 맞지만 운동권으로 엮인 '돈독한 동지적 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권은희가 운동권의 핵심 인물은 아니라는 추측은 몇가지 사실에 근거합니다.
첫번째는 물론, 아직 권은희는 정치인은 아닙니다만 위키백과에서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 기록을 찾아보면 '자랑스럽게' 학생운동 경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권은희에 대한 기록에는 운동권에서 간부 역할을 한 기록이 없습니다. (위키의 권은희 관련 기록은 여기를 클릭)
두번째는 한총련의 역사입니다. 권은희는 1974년생으로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1994년은 한총련의 전성기였습니다. 학생운동의 주축 조직이었던 전대협(전국대학대표자협의회)이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전환된 것은 1993년이었으며 이 당시 한총련 가입 대학수는 191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그러니까 권은희가 대학을 입학했을 당시에는 한총련 전성시대였고 당연히(?) 운동권의 영향 아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은희가 대학교 3학년 때(1996년) 한총련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한양대에서 발생한 이석씨 치사 사건입니다.
학생운동 주변에서는 한총련 운동이 퇴조한 계기가 1996년 8월 연대 사태와 이듬해 한양대에서 벌어진 이석씨 치사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총련은 그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한총련에 가입해 있는 학교에서 단과대 학생회장이 선출되면, 자동으로 이적단체 구성원이 되어 수배·구속되었다. 이런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직접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한총련은 아직도 이적단체로 남아 있다. 이와 함께 한총련 주류의 강경노선과 자기혁신 노력이 부족한 것도 지적된다.
(출처는 상동) 인용문 중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된 것은 2000년-인용자 주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탄압(?)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당시'에도 여전했습니다. 주사파들과 논쟁을 하다보면 그들은 30분 이상 논쟁을 안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로 PC방 등에서 논쟁을 하는데 30분 이상 같은 자리에서 인터넷에 접속하여 논쟁을 하다보면 국정원의 감시망에 걸리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수배, 구속이 자동적으로 된 것은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2000년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따라서 2000년이면 전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법학과 석사 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있었을 권은희는 해당 사항이 없었을겁니다. 그런데 극렬 운동권 학생의 경우, 그 활동이 졸업 후에도 지속되거나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면 과연 국정원에서 가만 두었을까요?
권은희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경정에 특별 채용된 이유'는 운동권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권은희는 남편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지만 생존의 기로에서 허덕여야 했고 노무현 정권의 공약 중 하나가 바로 '경찰권 수사 독립'이었기 때문에 권은희로서는 변호사 사무실보다는 경찰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 타당했을 것이고 당시 80여명이 넘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경찰 특채에 응모하였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반에 LG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하였는데 당시 '사법고시 합격자'가 5명이나 응모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법조계 중 변호사 분야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 검사는 물론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좋은 스펙으로 민간기업에 입사를 희망했던 것이다.
당시, 변호사 업계가 얼마나 불황이었는지를 설명한 기사를 아래에 발췌한다.
법조불황, ‘돈도 명예도 다 싫다’
청주변호사회, 한달 5건 이하 수임 1/3 ‘생존비상’
‘나홀로 소송’에 ‘부익부 빈익빈’ 겹쳐,
법률시장의 불황은 변호사가 크게 늘어난 반면 사선 변호사 선임없이 스스로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이 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200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나홀로 소송’은 132만 4,861건으로 전체소송의 85% 가량을 차지했다. 지난 2000년에는 92만 3,415건이었다. 지난 9월에 도입된 개인회생제도도 80%정도가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번째는 권은희가 최연소 과장이 되면서 '학생 운동에'도' 열심이었다'라고 한 말에서 학생운동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권력화된 간부는 아닙니다.
1990년대 말 전후하여.... IMF와 한총련의 몰락... 그리고 518학살 피해자의 당사자일 수 있는 전남대학교 재학 중인 권은희는 당시 대학생들의 사회참여의 정도와 열정보다 더 높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보는게 타당하겠지요.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고찰없이 '권은희는 운동권 출신이다'라고 단정짓는 것은 또 하나의 마녀사냥입니다. 논의는 간단합니다. 그녀가 운동권 핵심 출신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당연히, 저도 운동권 출신들에게 '새누리당 꼴통들에게 느끼는 염증만큼'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뭐뭐는 뭐뭐다'라고 단정 지으면서 운동권에게 부당한 이미지를 덧칠하려는 의도, 그리고 그 반대로 권은희의 언행에 부정적인 시각을 확대재생산하는 짓, 한마디로 아직 우리 사회가 촌스런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2014.07.12 15:59:34
제가 운동권은 전혀 아닙니다만, 학생 시절 받았던 인상만 놓고 봤을때 학번 별로 의식화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났던 것 같습니다.
91학번들이 빨치산 수준이었다면(술자리에서 한번 물어봤더니 강경대 사건 때문에 신입생때부터 데모 엄청 했다고 하더군요.) 92학번의 전투력은 그 절반, 93학번은 거의 민방위 수준이었죠. 수능 세대들부터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권위 의식이라든지 강압적인 태도(?)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차이가 났구요.
물론 학생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면 얘기가 다를지 모르지만, 93학번이 무슨 동아리 활동 수준에서 학생운동을 해봤자 얼마나 했을지 의문입니다.
하물며 고시 공부 열심히 해서 고시 패스까지 한 권은희가 학생 운동을 거창하게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14.07.12 18:39:14
feed님/님의 판단인, '권은희가 운동권을 거창하게 하지는 않았다'라는 판단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전남대 94학번이 2000년 사법고시 합격하고 더우기 대학원을 다른 대학원(연세대)로 가려면 기본적으로 평점이 3.0은 넘어야 하니까요.
논의는 인터넷에서 주장되어지는 것들이 '권은희의 잘못들-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잘못의 비판 역시 웃기지도 않는 형식으로 비판되어지지만-이 운동권이기 때문이다'라는 형식으로 주장되어서 권은희가 잘못한 것 이상으로 운동권과 권은희를 쌍으로 묶어 이미지 덧칠하기를 하는 작태를 거론한 것입니다.
이건 법률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피노키오님의 주장이 원론적으로는 맞습니다만 '증언 중 일부가 잘못되었다'고 피고가 무죄가 된다는 논리도 우습고 또한 검찰의 직무태만이 눈에 띌 정도이니까요.,
2014.07.12 17:04:19
조갑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상관없고 권은희가 운동권이라고 그의 고발이 잘못된 것도 아니지요
다만 그가 폭로한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그런 폭로를 한 배경으로 학생 운동을 했다는 부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정이지요
운동권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2014.07.12 18:43:50
흐강님/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정리를 안하고 있습니다만.... 사건기록들을 대충 훌터보았는데 3,4일만 드릴링하면 님이 판단하시는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는 판단입니다.
간단하게 뉴스 하나만 인용합니다.
재판부 "수사 축소 지시 없었고 선거운동도 아니었다"
김 前청장 관련 증거 인멸한 경찰 간부는 실형 '대조'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서혜림 기자 =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5일 항소심에서 원심처럼 무죄를 선고받았다.
작년 3∼5월께 이 사건 관련 증거를 수차례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박모(36) 전 서울청 디지털 증거분석팀장(경감)은 이날 공교롭게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금 권은희를 비난하는 행태는, 물론 권은희가 잘못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그건 마치 과거 DJ가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다른 정치인들에게는 널럴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면서 유독 DJ에게는 살인적인 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과 같은 작태...라고 하면 제가 지나친 것일까요?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아크로의 혹자는 뜬금없이 본질을 자주 언급하는 헛짓을 하던데 본질이란 바로 이럴 때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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