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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부인이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0.26 이후 무주공산인 대한민국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장악 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고 이 과정에서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당시 경복궁에서 쿠데타를 모의중이던 신군부 일당을 전차포를 동원하여 날려버릴려다 실패로 돌아가고 부하에 의해서 체포돼 서빙고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강제전역을 당합니다.
당시에도 장태완 장군이 강직하다고 정평이 났는데 신군부측에서는 "꼴통"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강제 전역 당한 이후 아버지는 곡기를 끊어 사실상 자살을 하고 하나 뿐인 아들은 실종돼 할아버지 산소에서 동사한 체로 발견됩니다. 정의의 편에 섰지만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한 거죠. 2010년 장태완 장군이 별세한 이후 부인이 투신 자살한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단신으로 처리되었지만 장태완 가문사를 들여다 보면 한국 현대사, 나아가 역사 속에서 한국의 "정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지속되어 왔는지를 생각 해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열우당 시절 친일파 청산의 열기가 몰아칠때도 바로 이러한 현대사에서 정의를 원하는 대중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역사 바로세우기를 하다보니 그 바로세우기가 조선, 고려시대, 고조선까지 올라가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들여다 보면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합니다. "정의"를 실현시킬 세력은 역사적으로 힘이 없는 대중이거나 양심적 소수이고 그렇다 보니 항상 힘을 가진 무리가 쉽게 쉽게 사회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쉽게 정의가 쉽게 무너지고 복원이 안되느냐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유교적인 가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가정 내에서 구성원마다 종교가 다르지만 종교로 인한 불화가 그렇게 크지 않고 사회에서도 종교가 융합할 수 있었던 게 오랜 기간 동안 내재화된 유교의식을 꼽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유교적 관습으로 무디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죠. 정의가 쉽게 쓸려나가지만 이를 회복하기 위한 피를 부르는 "정의"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미지근한 온화와 화합의 가치를 설파하는 유교의 가치가 먼저 움직인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정의는 사라지고 그게 반복되고.
성경에서도 보면 원리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 상당히 많고 실제로 일부 종파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에서 종교간 분쟁이 극심하지 않은 건 유교의 가치가 뿌리잡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상하 종속의 역학관계가 종교갈등에 먼저 작용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동양인의 인식구조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인식적으로 사물을 받아 들이는게 서양인과 많이 다릅니다. 싸인펜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동,서양 아기를 두고 한 실험에서 서양의 아기 같은 경우는 싸인펜이 바닥과 접촉한 면(on) 자체에 인식의 촛점이 이루어졌고 동양 아기의 경우 접촉보다는 싸인펜 뚜껑이 싸인펜에 들어가는 것(in)에 인식의 촛점이 이뤄졌다는 결과가 있는데 동양의 경우 관계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유교적 가치가 이 인식적 기초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클 수도 반대로 선험적으로 또는 DNA 자체로 동양인이 서양인 보다 "관계"를 인식하는데 더 발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식적 기초에서 "관계"에 집중을 하게 되면 규칙이나 합의가 들어설 여기가 적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만약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정의”가 훼손됐다고 할지라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정의의 정의가 무뎌지거나 정의가 관계라는 이름으로 소리 소문없이 사장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당시 장태완 사령관의 경우도 역시 이러한 동양의 “관계”를 기초로 한 인식이 부족했다라고 볼 수가 있죠. “관계” 보다는 사회적 합의로 한 규칙에 더 충실한 서양인의 의식구조에 더 근접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점 때문에 언제가 한 서양 정치인이 “동양인은 동양인 자체로 민주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종이다”라거나 서양 철학자의 경우 동양인의 가치규범인 유학, 공자를 두고 “Confucius is always confused”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바로 인식적 기초가 다른데서 비롯한 오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관계보다는 사회적 함의와 합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는 서양인의 인식구조에 좀 더 적합한 정치방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12.12 와중에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민을 쥐떼로 비유한 일도 있고.
문제는 이러한 쿠데타가 특정지역에서 연달아 일어났고 그리고 그로 인한 이익을 향유하고 유린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점에서도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고 지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물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상도에서 일어날 수 밖에 있었던 어떤 인식적 기초와 경제적 이유가 상호 결합했다고 보는데 특히 이러한 “관계”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 함의와 합의를 선행할 정도로 강력한 데 그 원인이 없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분명 인식적 기초를 파고 들어가다보면 지역적 특색이 나올 듯한데 별로 실익은 없어 보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호남과 달리 상대적으로 척박한 땅이 아닌가 싶은데 극한 생존의 문제에 “정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일본의 군국주의가 극성을 달한 데는 몇몇 군국주의 선각자(?)의 노력도 있지만 과거 왜구의 노략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식량부족 등 삶 자체가 불안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결국 한정된 토지에 많은 인구에서 사회적 정의 보다는 일단의 “생존” 그리고 그 생존을 위해 “관계”가 더 중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얘기가 이상한 데로 빠졌는데 전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가족의 불행에는 이러한 복합적 이유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정의는 저 멀리에 있고 이익이 눈 앞에 있는데 선뜻 “노”라고 외칠 수는 없겠죠. 다만 장 사령관이 그 “노”를 했고 그 “노”의 결과는 처참하게 나타납니다. 최근 김근태 전 의장, 김홍업까지 그 “노”를 외친 대가는 한국에서 처절했습니다.
“정의”를 외치다 제도권 들어가서 없는 조폭적 “의리”나 내세우고 “도청”을 옹호하게 되는지 이러한 변절의 기저에는 바로 인식적 기초인 “관계”가 관계됐겠고 그 “관계”의 인식적 뿌리에 아주 강력한 상도의 “관계”의 인식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 “관계”는 기득 패권 유지로 발전한 “우리가 남이가”로 발현된 것이고.
마지막으로 늦었지만 굴곡진 한국 현대사 속에 “정의”를 위해 희생, 헌신한 전 장태완 사령관 가족에 조의를 표합니다.
장태완씨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안타까운일이지만, 그것과 정의 와는 무관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군부의 힘이 빠진것은 문민정부 들어서 이며, 그이후 장태완씨에 대한 사회적인식은 무척 우호적이 었으며, 그에 걸맞게 생활 하다 가셧습니다
본문은 마치 정의로운 장태완씨가 말년까지 푸대점을 받았다는듯이 쓰셧습니다
문민정부 이후 갑종 출신의 장교가 오를수 있는 최고의 지위까지 올랏고,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등을 지냇고, 돌아가시던 때까지 존경을 받으셧습니다
그리고 장태완씨가 '노'라고 왜친것은 단순이 자신의 '정의'때문에 '관계'를 고려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 할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군부로 대표되는 육사출신 장교들에 대한 갑종출신 장교들의 뿌리깊은 위화감을 고려 하신다면 단순히 사회적규칙,군인으로써의 본분 등으로 인해 "반란군놈의새끼들,,,"이란 말을 한것이 아니라 비주류로 가장 천대 받던 장교집단으로써 엘리트 집단의 과오에 대해 더 강하게 저항 할수 있다는 점을 고려 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장태완씨가 훌륭한 군인이라는 제 인식은 여전함니다만
또한 갑종장교들의 육사출신에 의한 천대 멸시의 항변만으로 그 상황을 봐야 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버핏리님이 '정의'와 '관계'를 대척점으로 놓고 정의에 더큰 가치를 두엇기 때문이라고 장태완장군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보셧기에 꼭 그런것 만이 아니라 갑종장교들과 육사엘리트장교들과의 '관계'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쳣을 것이라는 의미로 쓴것입니다
장태완씨의 불행한 가족사는 슬픈일입니다만, 항간에 흔하게 퍼져 있는 '친일파후손은 잘나가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지지리 궁상이다' 라는 인식의 연장선으로써 장태완씨의 불행한 가족사를 바라봐서는 맞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정의로운일을 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잡은 불의한 사람들로 인해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로 인해 더더욱 핍박 받는 듯한 그 인식 말입니다
버핏리 님의 위의 본문글은 제게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의로운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 못받는다는 그 무가치한 인식이 버핏리님이 쓰신글의 근간에 깔려 있으며,더 나아가 그런 인식을 더욱 강화 시켜 나가는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 될수도 있습니다
마치 예전의 국개론을 떠들던 어떤 무리들의 인식과 같은 방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훌륭한 군인으로써의 행동은 이후 충분하진 않겟지만 국민들로 부터 최대한의 호의와 존경을 받으셧습니다
장태완씨의 불행한 가족사는 그분이 정의로와서가 아니라 개같은 신군부 쿠데타세력 때문입니다
장태완씨의 불행한 가족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정의로운 일을 하면 장태완씨 가족처럼 될수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들까지 고초를 격으며 정의에 편에 서면 국민들로 부터 참군인의 표상, 정의로운 사람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수 있다는 미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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