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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서프에서 저의 여러 가지 의견에 공감의 뜻을 많이 표해주시는 분과 댓글로 나눈 내용입니다. 당시 제가 추리력 문제를 냈었고, 그 후 그 문제가 어느 싸이트에도 조금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하여 이미 접해본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약 20년 전쯤에 후배로부터 들은 문제입니다.
어 느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100% 모두 완벽하게 논리적인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은 언제나 빈틈없이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잇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전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집에서 개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습니다.
어 느 날부터인가 마을에 미친개가 존재한다는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마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다른 개가 들어온 증거는 없습니다. 드디어 미친 개를 봤다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개들은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 지만 개 주인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동안 키운 정이 있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집 개는 미쳤을 경우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음에 반하여 자신의 개가 미쳤을 경우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아도 미쳤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 을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였습니다. 미친 개를 찾아서 모두 다 죽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미친 개 주인에게 개가 미쳤다는 사실을 절대로 알려주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자신의 개가 미친 개라는 사실은 개 주인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 즉 어느 집 개가 미쳤다는 의견을 서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개 주인이 직접 죽여야 하며, 자신의 개가 100% 미친 개가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경우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게다가 죽일 때는 반드시 총으로 사살하는데 미친 개가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른 날 밤 12시에 사살하여야 한다는 등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회 의가 있었던 첫날밤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밤에도 총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셋째 날 밤 12시에 드디어 총성이 온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물론 총소리는 한 번밖에 울리지 않았습니다. 여럿이 쏘더라도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친개 또는 미친개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사살된 그 마을에 있었던 미친 개는 모두 몇 마리였을까요?
미친 개 문제는 추리력을 테스트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과외 받는다고 해결되는 유형의 문제도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추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돈 쳐발라서 되는 유형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전 본고사 있던 시절의 서울대학교 수학문제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답을 알고 나면 참 간단한 문제였었고 그래서 너무도 허망한 그런 문제입니다. 하지만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 본고사를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10대에 해야 합니다. 대학 본고사 보는 경우 수학 한 과목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나, 모든 대학이 다 본고사를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있는 집 아이들이 더 유리한 제도는 안 된다고. 한마디로 과외, 그것도 고액과외 많이 받는 얘들이 유리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본고사에서 어떤 유형의 문제들이 출제되는지. 그리고 시험문제라는 것은 해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합격, 불합격을 앞에 두고 풀어야 하는 경우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즉 풀지 못해도 큰 지장 없는 경우가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돈 많은 집 애들만 유리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그들의 무의식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추리력이나 논리력이라는 것이 트레이닝으로 되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거죠. 내(내 새끼 포함)가 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들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영역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평가 받으려면요. 하드웨어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가, 지 새끼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유를 하드웨어가 부실해서라고 주장합니다. 절대로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뮤직카드가 없어서 음악을 틀 수 없는 컴퓨터를 스피커가 좋지 못해서, 메모리 용량이 딸려서 그러는 거라고 우긴다는 것이죠. 그런 부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님께서도 인정하기 어려운 이야기인가요? 돈 많은 이들이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반대하는 이유라는 거. 솔직히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 말이 맞다고 여길 뿐입니다. 하지만 배울 만큼 배우고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이 본고사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지 새끼들이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에서는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이런 '논리 퍼즐' 형 문제들도, 정말 '배경지식 없이' 풀 수 있는 것들만을 모두 모아 보면 대략 백여 개 내의 유형들로 정리할 수 있다는 얘기를 어떤 퍼즐 잡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논리적 클리셰들은 '몬티 홀 확률론'(경찰대 수학문제에도 한 번 나왔었죠), '저울로 무게 다른 것 찾기'(역시 경찰대 문제에서 나왔습니다), '공 찾기', '모자 문제', '해적 퍼즐', 그 외에도 수십가지 유형들이 있지요.
차라리 IQ테스트의 규칙성 퍼즐과 같은 문제를 주장하신다면 저는 이해가 갑니다.(물론 그것들 역시 유형을 파악하면 다음에는 얼마나 빨리 '내가 바보임을 확인하느냐' 이지만요) 그렇지만, 심지어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들도 2천 개 안팎의 유형들로 정리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훈련을 받고 안 받고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유형을 출제한다 해도, 그 '경험'에 의한('머리'가 아니라) 효과는 무시할 수 없으며, '경험'을 쌓는 방식이 혼자 이것저것 보는 것보다 기경험자의 훈련에 의한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매스 레터'를 읽고, '알파테크닉 난제수학'과 '자유자재'와 '천일 수학'(물론 이런 일반적인 수준 이상에서는 수많은 올림피아드 문제집들이 있습니다만)으로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과 출발선에 있어서 상당한 불균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제가 깊이 생각한 바가 없어서 이렇게 전형적인 반응밖에는 할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논거를 보강한다 해도 기본적인 관심사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을 조금 수정본다면 본문에서 논하신 바와 별로 차이나지 않게 될 지도 모르지요. 예컨대, 저는 '아주 기본적인 차이'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의해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제가 부정할 생각이 없고, 저는 오히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부분을 살릴 수 있는 시험제도를 개발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저는 말씀하신 바대로의 '논리력 테스트 문제'가 그 취지에 부적합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점에서는 '본고사형 유형을 가미한 통합논술'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제 관심 수준에서는 인스턴트적인 얘기로군요.
비관적이라는 것은, 어쨌거나 이러한 부문을 다시 개설하게 되면 그 '효과'가 있든 없든 사교육 부담 증가와 공교육 고사(물론 상류 공교육, 즉 어디어디의 고등학교처럼 모든 선생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곳은 반사이익을 얻겠지만요) 를 가속화시키고 학생 부담 역시 증가시킨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사교육은 '현실적인 효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개설 가능한 부문 수'와 '학생이 짊어지는 상대적 부담의 정도'에 그 규모가 의존할 뿐이지요. 정말로 '머리'만 갖고 풀어야 하는 문제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부문'에 대한 사교육은 증가할 겁니다. 더구나, 한국 엄마들처럼 '영재교육'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당시에 서울대를 가려고 하는 학생들은 오전수업만 받고, 오후에는 귀가해서 학원에 가든지 과외를 받든지 혼자 공부했다고 합니다.
물론 학교수업은 관심도 없고, 수업시간에 자기 스케줄에 맞춰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왜냐 하면, 학교수업을 서울대를 갈 학생 수준에 맞추면 다른 학생들이 따라 갈 수가 없었고,
학교수업에서 배우는 것들은 서울대의 본고사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본고사 때문에 학교수업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니(공교육 붕괴까지는 아니었겠죠),
학교공부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내신성적제도가 도입되었답니다.
2. 본고사제도가 필요하냐 안 필요하냐, 합리적이냐 불합리하냐를 놓고 토론을 벌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저의 2가지 생각만 명확히 말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첫째로 본고사를 하고 싶은 대학/학과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미국 같은 나라는 본고사로 입학생을 선발하고 싶어도 땅이 넓다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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