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디워가 한참 넷을 달구던 당시 돌아가는 상황을 매우 흥미롭게, 혹은 혼란스레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다 지난 뒤 돌아보면,
다 아시겠지만 당시 무척 혼란스러웠지요. 신화와 음모론, 평론가로 대표되는 엘리트와 대중, 충무로와 비충무로, 데우스 액스 마키나와 장르론, 평론가의 의무와 겸손함이 섞이고 충돌하고 싸웠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죠. 논란의 시작은 무릎팍 도사에 심형래씨가 출연하며 시작했지요. (아니면 지적을) 그 프로에서 심형래씨는 어려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까지 보입니다. 물론 결론은 고생 끝에 야심작이었고 그 내용을 채워놓은 것은 자신의 신념과 애국심 기타 등등이었죠.
사실이든 아니든 과장됐든을 떠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는 예능 프로에 나와 재미와 감동을 통해 차기 개봉작을 홍보하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습니다.
통상의 경우는 그냥 일부가 감동받고 끝납니다. 그 일부가 적극적인 팬으로 나서는 건 알아서 할 문제고 저같은 일부는 그러거나 말거나 취향따라 영화를 선택합니다. 예, 이렇게 끝나는게 정상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접하는 매체와 인물이란 프리즘을 거쳐 내용을 받아들이니까요. 예능프로에 홍보 목적으로 심형래가 나왔다는 전제하에 그의 발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일부에서 뜻밖의 흐름이 형성됩니다. 사실은 뜻밖이 아니지요. 노무현 당선 직후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흐름이 심형래와 결합해서 폭발적 양상을 보입니다. 일단 그 흐름을...음모와 기득권으로 뭉쳐 변화를 거부하는 엘리트층(실제 엘리트인지와 상관없습니다)을 타파하는 집단 지성이라고 명명해 둡시다.
그 흐름에서 바라본 심형래 건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송희일이란 커밍 아웃 감독은 블로그에 애국심 마케팅 운운했다 분노한 네티즌의 집중 포화를 당한 끝에 블로그가 다운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사건입니다. 왜냐면 이송희일 감독은 디워파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충무로 주류 영화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오히려 비주류 독립 영화인에 가깝고 따지면 심형래 감독보다도 충무로 주류 자본과 떨어져있습니다. 단적으로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충무로의 독점적 기업 CJ의 투자를 받았지만 이송희일 감독은 그 투자금의 1/10도 받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디워 팬들의 공격은 막무가내였을까요? 예. 전 그렇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제 가치관에서 그럴 뿐, 그들의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들의 눈에 이송희일도 대중과 거리감이 있는 '엘리트' 영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커밍아웃한 소수자라는 사실조차 대중과의 거리감을 증명하는 증거였겠지요. 즉, 그들에게 '심형래를 핍박하고 무시한 충무로 주류 영화인'이란 실제의 충무로보다 그들의 감정과 판단과 거리가 있는 (그들 눈에 비친) '엘리트층'이란 허구적 이미지에 가까왔을 것이란 가정이 성립합니다.
그러면서 디워 팬들은 - 놀랍게도 주류 충무로 자본보다 충무로에선 영화인으로 치지도 않는 평론가들을 주 타겟으로 설정합니다. 이것도 아이러니합니다. 왜냐면 실제로 영화계를 움직이는 큰손은 자본이건만 전혀 공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화 평론가는 90년대를 정점으로하여 인터넷이 일반화된 당시엔 거의 영향력을 상실한 계층이었습니다. 조금 과장 섞어 이야기해서 요즘 영화계에선 평론가들의 견해 따위보다 인터넷의 댓글 한줄을 더 무서워합니다.
이런 점에서 심형래를 핍박하거나 무시해온 평론가 집단이란 디워 팬들의 가설은 완전히 허구라는 결론이 충분히 성립합니다. 그들이 기득권 구세력으로 설정한 평론집단은 사실 약자에 가까왔으니 이 흐름에 대한 우려가 일어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파시즘이란 용어까지 등장해서 디워 팬들을 자극하기도 했고 잘 아시다시피 진중권은 정면에서 맞섰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진중권의 행위를 평가해보겠습니다.
진중권이 디워 팬들의 '난동'을 단호히 비판한 것,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쉽지 않지요. 매우 용기있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내린 디워라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에 대해선 박수를 유보합니다. 왜냐면 전 디워를 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디워는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 아동용 판타지란 장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하기에 개연성을 중시하는 데우스 액스 마키나를 적용한건 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이 이런 측면을 지적했다가 진중권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지요. (최근 진보신당 내부 논쟁을 보니 진중권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며 김규항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더군요. 속으로 혀를 찼습니다.)
다만 다시 진중권을 옹호하자면 그의 디워평이 어설펐다 할지라도 중요한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실 디워에 대한 진지한 평은 영화 평론가나 교수, 학자들 사이에서 이뤄져야 마땅함에도 그게 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분토론에서 디워의 영화적 수준을 놓고 '자칭' 평론가들끼리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제가 보기에 그들의 수준은 장삼이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정도 결론만으로 당시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디워 당시의 어떤 이상열기는 인터넷이 일반화된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계속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피투성이 살생부 건을 봅시다. 가히 하드고어적인 제목이죠. 그런데 서프라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서 열광한 네티즌들이 내세운 주장의 핵심은 이랬습니다.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을 네티즌의 힘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 이후 일각의 흐름을 볼까요? 서프라이스를 위시해서 그러한 흐름은 한나라당만을 향한게 아니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가 '학벌의식으로 똘똘 뭉친 진보 꼰대'라는 댓글 사냥을 당한 끝에 이후 거의 활동을 접다시피 하셨지요. 그 댓글 사냥은 이후 강준만을 비롯해 여러 진보 인사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흐름은 반드시 친노적이었을까요? 글쎄요. 전 아리까리합니다. 다만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학벌 타파, 기득권 타파'라는 슬로건이 한동안 반복되서 나타났다는 특징은 있지요. 그렇지만 상당수 친노들은 이 흐름에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과 디워 사태는 다시 흥미롭습니다.
우선 앞에 말한 슬로건은 반복됩니다. 황우석 건은 '서울대 의대 중심의 학벌 기득권 세력'으로, 디워 건은 '충무로 주류 평론가 세력'으로요.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야할 이유도 명확히 설명됩니다. 황우석이나 심형래 모두 학벌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에 애국 세력들이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피투성이, 리영희 선생, 황우석, 디워까지의 흐름을 보면 묘한 변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명분은 똑같지만 공격해야할 대상은 '정치권'에서 "진보 꼰대','서울대의대', '충무로 평론가집단' 등으로 변이되고 확산됩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이 흐름을 '포퓰리즘'이라 명명하며 노무현 정부와 동일시하려 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꼭 그렇진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흐름을 포섭하려 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한미 FTA 등에서 잘 드러나듯 반드시 편승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매우 흥미로운 건 노무현 정부가 편승하기 거부했을 때 이들의 타겟이 정치권에서 다른 진영으로 변이되어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황우석도 그렇고 디워도 그렇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 한나라당 진영에선 이를 갑니다만 -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다시 한번 나타납니다. 물론 쇠고기 파동 당시 주류를 이 흐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흐름이 결합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커졌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 흐름은 상당히 약화됩니다만...
정리해보죠. 이 흐름은 정치권만을 타겟으로 하지 않습니다. 보수진영은 자신들만 타겟으로 한다는 피해의식이 있지만 사실 이 들의 타겟은 진보진영, 학교, 평론가등 그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일한 예외라면 노무현 한명이겠죠. 유시민도 타겟이 아니지만 이들의 적극적 보호 인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이들의 눈에 비친 기득권 세력은 좋은 학벌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편입될 수 있습니다. 386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 흐름을 대표하는 논객 혹은 이데올로그 중에는 대학 강사가 많다는 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강사 처지 개선에 나선 배경엔 이러한 점도 깔려있지 않나 합니다만....
과연 이 흐름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본격적으로 사회 계층이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의 흐름엔 어떤 절망감이 깔려있습니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자신들은 이제 더 이상 이너 서클이나 그룹, 혹은 엘리트 층이나 기득권 계급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라보는 기득권 계층에 386이나 진보 인사도 포함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왜냐면 후자도 문화적으론 기득권 층이거든요!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에 걸맞는 문화는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문화 지체지요. 아예 다르다고 인식하면 그에 맞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명품 따위 사는 속물'이라 반응하지, 명품을 사려 열망하지 않습니다. 최근엔 달라졌다지만 과거 영국 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펍에 드나들며 '이 곳은 영국 여왕 따위는 올 수 없는 곳'이라 자부했다는 게 좋은 예입니다. 또 디워같은 경우 컬트팬이 만들어지고 평론가들의 견해엔 조소를 보낼 지언정 공격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아직까지 이 흐름이 자신들만의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디시나 딴지를 보면 오히려 침체하고 퇴보하는 경향까지 나타납니다.
세번째는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계층 분화라는 추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타날 테니까요. 요즘들어 복지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 흐름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겠지요. 더이상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자신의 삶을 그나마 낫게하는 유일한 길이 복지일 테니까요.
자... 이 이상은 제 능력을 벗어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하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택도 없는 소리.... 라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말일까요? ^ ^
어떤 영화가 쓰레기 같은 영화라면,
그걸 그렇게 드러내놓고 평가해도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디 워의 경우는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악플러들의 공격과 진중권의 반격이 겹쳐서 연쇄반응을 일으켜 대폭발이 일어났지요.
그 옛날에는 인터넷 게시판이 없어서 사람들이 의견을 증폭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을 전후로 해서 인터넷 게시판이 매우 활성화되었습니다.
특히 서프라이즈는 개혁진영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는 대표적인 사이트가 되었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정보도 더 많아지고, 논리적인 근거도 여러 가지를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찬성이든 반대든 방향과는 무관하게 의견이 증폭됩니다.
황우석과 관련해서 황빠들이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서프라이즈가 중요한 황빠 진지 중의 하나였지요.
황빠들은 황우석과 국익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진실부터 확인하고 나서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진실은 둘째 치고, 황우석과 국익만 염두에 두었던 것이 큰 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호감이나 애국심이라는 게 인터넷 게시판의 의견을 쉽게 달굴 수 있다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 워의 경우도 심형래에 대한 호감과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인터넷 게시판의 의견을 쉽게 달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뒤에도 광우병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이 같은 형태를 보였습니다.
정보가 모이고,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숨기고 거짓말한 자들에 대한 비난과 경멸이 뒤섞이고,
정부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반응으로 나타나 혐오감과 정의감을 다시 증폭시키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사회 계층의 분화로 본다면,
글쎄요, 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군요.
그래서 택도 없는 소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님의 비판은 전혀 제 글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로 드릴 말씀은 없고...다만...
이건 정말 언제고 드리고 싶었던 말씀인데요. 님은 님 생각과 주장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서 좀 벗어나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좀 알아보는 노력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꽤나 돈 안되는 것에 정신 파는 인간이긴 합니다만 가령 그림 파일로 동영상 파일 만들어 교재 만든다는 아이디어, 이런거 주변에 알아보세요. 조금만 알아보시면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금방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님 댓글에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로 진지하게 드리는 충고입니다. 듣든 말든은 님이 알아서 하실 문제고 다시는 충고할 생각도 없습니다만.
언론 칼럼니스트들이 이런걸 짚어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분명히 인터넷 보편화 이후 이런 흐름이 있습니다
이 흐름은 저항만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들의 희망을 특정인에게 투사하는 반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무현이 영삼시계로 삽질하니 정몽준에게 지지율이 몰리고 ( 사실 정몽준이 그런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요)
다시 노무현 그리고 황우석 심형래 유시민에게 이르지요
즉 기득권이나 권위에 절망하는 사람이 자신들의 희망이 되어줄 사람들에게 올인하는 흐름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주신것 같습니다. 저도 이 계층의 가장 큰 특징이 독자적인 컨텐츠나 의제 생산 능력은 없으면서 네거티브 실행력만 넘쳐흐르는데 있다고 보거든요. 흐르는 강물님 말씀대로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일종의 절망, 증오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쎄요. 물론 계층분화는 있을 수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시닉스 님이 문화라고 인정하지 않는)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그룹들이 시닉스님이 판단한 그 그룹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들이 사회 현상으로 볼 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나마 그 크기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예전처럼 맹신적이지도 않아요. 시닉스님 글 보고 아고라 들어가서 조회수만 보니, 김광수 경제연구소 같은 곳에서 쓴 글을 제외하고는 최대 만을 넘질 못하네요. (전자는 3만) 오늘 네이트닷컴의 판에 올라오는 베스트 게시물이 6만을 넘기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돈지 알 수 있습니다.
DC 같은 경우, 미국의 4Ch, 일본의 2Ch 처럼 그냥 사회, 문화를 소비하는 집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같이 통큰 치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보면 안되죠. 아고라가 시닉스님이 말하는 하위계층의 통닭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성토에 가깝다면, DC는 하나의 개념어에 불과하죠. 얼리어닭터나, 계천절 등을 만들기 위한 소스일 뿐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이제 그들이 자신들도 어찌할바를 모르는 흐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의 생물로 간주하자면) 자아비판을 하는 주기가 분명히 짧아 지고 있어요. 이번 지하철 막말녀 뉴스만 봐도 그렇더군요. 입에 오르자마자 막말녀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똥녀, 군삼녀 때랑은 분명히 다르죠.
그럼 왜 물리적 크기도 작아지고, 맹신의 크기도 작아진 이 그룹+(별 것 아닌)사회현상이 계속해서 대두되는 가에 대한 제 생각은 무분별한 인터넷 기사가 그룹을 부풀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네티즌 술렁, 인터넷 회자 " 등을 필두로 한 클릭이 목적인 인터넷 신문들이 이 그룹들을 필요에 의해 과대포장합니다. 어느새 사회현상이 되어버리고, 어중이 떠중이들이 붙어 그룹을 키웁니다. 다른 기사가 양산 될 때까지 팩트를 소비하다가 와해되는거죠. 이 순환고리 형태의 구조를 형성하는 그룹이 같은 그룹이라고 보기 어려운게, 그들만의 이데올로기가 분명히 충돌합니다.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 이날의 주제이면, 현직 군인을 필두로 국가주의자들이 모이고, 보온병이 이 날의 주제면 반한나라당(+DC)파가 모이죠. 저는 이게 소수의 컨텐츠 생산 -> 인터넷 언론의 부풀리기 -> 다른 컨텐츠 생산의 쳇바퀴라고 봅니다.
생각보다 인터넷화제는 크지 않아요. 몇 년전에 대학 수시인가, 정시인가 원서접수 사이트가 다운 되서, 그날 첫뉴스에 오르고 다음날 까지 원서 접수가 연장된 일이 있었어요. DC 수능 갤러리에서 상주하던 고3, 재수생 셋이서 벌인일이었죠.
심형래도 마찬가지고, 살생부도 마찬가집니다. 어디나 소위 '또라이'는 존재하죠. 그걸 상업적(클릭)으로 이용하려는 그룹이 움직일 때, 그 또라이들이 사회현상으로 바뀐다고 봐요.
굳이 이 순환고리를 사회 계층으로 시닉스님 말대로 간주하자면,
하나의 문화를 만들려면 어떤 것이든 적층되어야 하는데, 기반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무조건 사회상위계층에 적대적인 인간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죠.
님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있습니다. 살생부, 서프라이스, 댓글 사냥, 황우석, 디워, 미네르바 모두 어떠한 계층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흐름으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일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과도기적 현상으로 봐야하지 않는가, 그나마도 지금은 퇴조세거나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는게 님 주장의 요지인 듯하고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우선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입니다. 분명 인터넷의 새로운 문화나 콘텐츠에 대한 언론의 호기심이나 상업적 포장이 많은 부분 증폭시켰겠지요. 그 다음 최근들어 제가 말한 흐름은 많이 수그러든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개똥녀나 막말녀, 그리고 수능 사이트 다운 등과 제가 이야기한 흐름은 성격이 다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자는 그야말로 일회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인 반면 후자는 일관된 어떤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적었듯 '학벌, 문화 등등 기득권 집단(그게 실체가 있든 그야말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든)에 대한 맹렬한 적의, 사건에 대한 음모론적 해석, 그리고 격렬한 집단적 반응' 등등 꽤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들이 일관된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다 우연히 찍힌 일개인에 대한 폭력이란 속성을 갖고 있고 또 그런 만큼 단발성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개똥녀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요.
그 다음 최근 수그러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전 막연하지만 그 원인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류 문화, 혹은 언론의 포섭, 그리고 노무현 사망 이후 정치적 구심점 상실,(실제의 노무현과 상관없이 이들 다수는- 서프가 황우석 및 디워의 근거지 역할을 했던 것에서 드러나듯- 어떤 신화화된, 혹은 이미지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애정이 강합니다) 그 결과 방향성 이탈 혹은 분산으로 말미암은 에너지 소모 등을 전 원인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전 - 어쩌면 이 부분이 핵심적인 차이일 텐데 - 이들은 순화되고 잠복되었을 뿐 발생 토대인 사회 변화가 계속 진행중이기에 언제든 다시 등장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서브 프라임 같은 사태가 터지든(당분간 가능성 낮음), 누군가 새로운 정치적 구심으로 등장하든, 정치적 구심은 아니더라도 황우석이나 심형래같은 인물이 나타나든, 어쨌든 말입니다.
물론 알고보니 이명박이 뛰어났다거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박근혜의 현명한 영도로 완전 체제내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님과 저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려면 보다 실증적으로 깊이 들어가야할 텐데 전 능력이 모라자는 관계로 이만...휘리릭.
ps - 다시 한번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아크로에 처음으로 댓글 달아봅니다.
평소에 저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요. 후기산업사회, 전(前) 세대의 기득권. 이런 요소들로 젊은 층들의 신분이동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그들에겐 쓸만한 일자리가 적으니까요. 자신들에게 기회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면서 불만이 쌓입니다. 불만은 있으나 저항할 수단은 없다. 이것은 분노로 전환됩니다. 그 결과 젊은 층들은 영웅(HERO)를 기다리게 됩니다. 분노를 표출할 수단으로서 말이죠.
불리한 토대에서 능력만으로 신분 상승을 이뤄낸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영웅은 신분 상승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신분 상승은 있으되 주류 사회로 편입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류 사회에 맞서는 영웅. 결과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한 경우 전설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노무현도, 디워도, 황우석도, 미네르바도 우리가 꿈꾸는 영웅이었던 것이죠.
물론 이러한 영웅(HERO)론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잣대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영웅(그것이 단수이든 혹은 복수이든)이 이러한 신분 사회를 깨트려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리만족을 취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장렬한 전사에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자괴감을 벗어나려는 것인지...
시닉스님은 이것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다양성을 갖추길 바라신다지만, 저는 이 자체를 부정적으로 결국 없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1)신분이동이 더욱 자유로워지는 사회가 되거나 (2)기를 쓰고 신분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의 발전이 이뤄진다면, 이러한 영웅 기다리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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