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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윤치호는 과연 악성 친일파이자 배타적이고 부정해야만 할 사람일까?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들어가서 국민들의 참정권, 국민대표자(영국과 프랑스에서 선발되던 의회 의원제도의 소개 등)의 선출, 민권, 교육권, 양반과 같은 국민권리 주장을 역설했으나 그후 황국협회나 보부상에 의해 역적으로 몰림. 백성들은 그저 윤치호나 기타 독립협회 사람들의 주장은 듣지도 않고 황제에게 도전하는 반역자 정도로 취급...
민중 자신들을 위한 참정권, 국민대표자(영국과 프랑스에서 선발되던 의회 의원제도의 소개 등)의 선출, 민권, 교육권, 양반과 같은 국민권리 주장을 한 것이 어떻게 잘못이며, 이런 민중들에게 실망해서 철저한 현실주의자, 냉소주의자로 변신한 것...
유교의 권위주의, 가부장제 질서를 잘못된 것으로 간주, 아버지가 아들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랫사람처럼 부려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잘못이며, 그런 것을 없애려면 합리주의, 자유주의, 서구의 민권사상의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 잘못인가?
일부 여운형의 극렬빠들은 부정하지만 여운형은 안창호의 연설에 감동받았으면서도, 안창호의 지역감정 발언에 격분하여 한때 안창호를 규탄하기도 했음.(1933년 일기라고는 하지만 1919년에 보고 들은 것을 그때 가서 썼을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이런 독립운동가들의 분열상을 보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윤치호의 판단착오인가? 잘못인가...
105인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고문을 당하고(당시 일본인들이 행한 고문은 코에 물붓기, 거꾸로 매달고 때리기, 거꾸로 매달고 코에 고추가룻물 붓기, 전기충격기 찜질, 손발에 연필과 나무로 주리를 트는 것(이건 조선한테 배운거니 뭐...) 등이 있었는데) 그 고문에 못이겨 전향을 선언한게 잘못인가? 살고 싶은 욕구를 품은 것도 잘못인가?
청구구락부, 수양동우회, 흥업구락부 사건 등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빼오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신원보증을 서주고,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여 눈총을 받게 되자 어쩔수 없이 협력하게 된 것도 죽일 죄악인가?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나쁜 놈으로 몰고가는 일만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은 없다.

윤치호에 대해서 뭔가 세간의 인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군요.
일단 대략, 독립협회 해산 이전까지의 그의 행적은 위인전에 올려도 모자라지 않을 인물이죠. 인물 자체로도 뛰어난 인물같고 윤치호 이전에는 한-일-영으로 3중 통역을 해야 했다는데 그가 최초로 한-영 동시 통역이 가능했다고도 하고...
하지만 윤치호는 이런 저런 개화(독립협회, 갑신정변)나 일련의 사회 구조 변혁작업(이를 테면 약간 노골적인 제국주의국가에서 입헌민주국가로의 변혁)이 다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또 그 돌아간 원인이 다름이 아니라 고종을 위시한 지도층과 조선인들 그 자체라는 사실에서 큰 실망감 & 개화 및 입헌국가로의 정립이 성공한 일본, 미국에 대한 동경을 넘어선 거의 종교적 추앙의 단계로 갑니다. 실제 종교적이기도 한게 감리교 신자가 되지요.
이때, 이때는 아직 합방 이전인데, 이미 윤치호는 조선인은 독립된 국가를 꾸려나갈 능력이 없다, 혹은 조선인은 일본에 예속되는것이 이롭다 라는 식의 후일 30 년은 지나고서야 나올 이른바 대동아공영권 수준의 사상을 이미 자기 일기에서 스스로 내보입니다. 그래서 러일 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에 한껏 찬양을 하고, 자기 주장 (일본에게 예속되야 한다)을 반복하죠.
즉 이전에 보인 사상적 측면으로 볼때 이미 그는 충분히 친일파가 될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아니 이완용 및 일진회 일원들과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이완용 내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아서 이지 아마, 그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을사조약을 찬성 또는 묵인 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것으로 그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당대 개혁적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식이긴 합니다. 그래서 그가 친일을 하게된 기본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길준 같은 경우, 여하튼 간에 아무리 명성황후가 미워도 그런 식의 행동을 보여서 자기들에게 득이 될것이 없을것이 뻔한데, 어리석게도 을미사변의 기본 계획을 세우고 길안내 및 앞잡이 역활을 도맡아서 하게 되지요 (참고로 윤치호 역시 유길준이 을미사변의 배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이광수, 최린, 윤치호, 박영효 등이 엇비슷한 길을 걸었고,
신채호 이회영 형제 같은 경우는 아나키스트 비슷하게 되었고,
김좌진 지청천 노백린 등은 무장투쟁의 길로 가지요..
여튼 신원보증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 라는건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고, 그가 후반기에 벌인 일들을 보면 애시당초 그는 우리나라 민족의 독립 같은걸 원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이승만이 이미 태평양전쟁 발발 하자마자 일본의 패배를 예견하고, 아니 사실 이승만이 미국에게 인정받은 것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일본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다 라고 예언한 것이 그 이유, 방법 등과 함께 제대로 적중했지요.
이런 이승만의 활동이나 장개석 등의 발언으로 한국 독립이 약속된 카이로 회담 등이 있고 나서도,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듣고 나서도, 윤치호는 한국은 독립될 가망성이 없으며, 아니 독립 되어서도 안된다. 일본 품에 있는게 더 좋다 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런 주장은 독립협회가 분쇄된 직후부터 가진 생각하고 거의 일치합니다.
윤치호는 이승만의 단파 방송등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들어본 적도 있다는데 이미 중추원등 일제 요직을 차지한 그에게 있어서 일본이 패망한 다는 것은 결코 상상하기 힘들고 더욱이 그렇게 될 경우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할 겁니다. 즉 설혹 105 인 사건 등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하더라도 후기의 행보는 그냥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자가 아니라,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할 경우 자기 입지가 흔들리고 경제적으로 타격받을 것이 자명한 마당에 이미 그런 핑계를 넘어선 수준이였지요.
말하자면 한때 조선 최고의 두뇌이자 개화된 사람의 길을 걸었던 그이지만 이미 1930년대 중반 이후로는 노회한 일제 귀족에 중추원에 주도적으로 드나드는 적극적 친일파, 아니 친일이라기 보다, 그냥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 인사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제 생각은 윤치호는 자기가 친일파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별로 부끄럽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요즘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것과도 비슷한 발상인데, 윤치호는 자기 신념에 비한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독립된 국가 그러나 후진적이고 낙후된 국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님 말대로 모던보이인 그가, 낙후된 독립 조선과, 식민지 근대화된 일제 식민지중 하나를 택하라면 이미, 이미 미국 유학 시절 부터 후자를 택했을 것이 자명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극악하게 말하면 그는 독립된 것을 슬퍼했다 혹은 독립된 것을 한탄했다고 해야할 정도의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죠. 이따위 독립 되서 뭐하냐 나라는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데..뭐 이런 식의 발상 말입니다. 사실 해방 직후 상황은 그랬을 것입니다.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던 일본인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하니 나라가 개판 오분전 이였겠지요. 당연히 윤치호 눈에는 해방 전에 잘 돌아가던 세상에 비해서 온 나라가 벌집 쑤신듯 시끄럽고 좌우파가 맨날 싸우고 암살하고, 니꺼다 내꺼다 싸우고, 일본인이 많았던 관료, 전문가, 기술자 등이 사라져서 기업, 관공서, 학교 등이 개판이 된 나라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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