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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 작전은 순전히 맥아더의 똥고집이고 영웅심리로 이루어진 거라 보는데요
이 맥아더 스스로도 말했듯이 인천상륙은 합리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작전이었는데도 맥아더가 실행한건 도박이라는 이야기
중국 모택동은 주은래를 시켜서 일본주둔 맥아더 사령부를 염탐하였는데 이미 당시 부두에 물자 하역하고 병사 집결하고 또 공공연한 소문이 나있었다는군요
결국 주은래가 인턴상륙 작전이 확실하다고 모택동에게 보고하자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알려주라고 했는데 김일성은 절대로 상륙같은건 없다고 큰소리 치고 대비를 안해서 월미도에 무혈입성 상륙작전시 20명 사상으로 인천 접수
솔직이 인천에 1개 사단만 배치하고 방어준비했으면 상륙은 실패했을 판인데
김일성이도 삽질하고 맥아더도 삽질많이 하고
더 웃긴게 맥아더는 얼짱각도에서만 사진찍도록 하고 무지하게 메스컴을 이용하고 영웅신화를 만들었다니 참
이 맥아더 스스로도 말했듯이 인천상륙은 합리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작전이었는데도 맥아더가 실행한건 도박이라는 이야기
중국 모택동은 주은래를 시켜서 일본주둔 맥아더 사령부를 염탐하였는데 이미 당시 부두에 물자 하역하고 병사 집결하고 또 공공연한 소문이 나있었다는군요
결국 주은래가 인턴상륙 작전이 확실하다고 모택동에게 보고하자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알려주라고 했는데 김일성은 절대로 상륙같은건 없다고 큰소리 치고 대비를 안해서 월미도에 무혈입성 상륙작전시 20명 사상으로 인천 접수
솔직이 인천에 1개 사단만 배치하고 방어준비했으면 상륙은 실패했을 판인데
김일성이도 삽질하고 맥아더도 삽질많이 하고
더 웃긴게 맥아더는 얼짱각도에서만 사진찍도록 하고 무지하게 메스컴을 이용하고 영웅신화를 만들었다니 참
2010.07.21 18:05:58
제가 알기론 김일성이 대비할래도 대비할 여건이 안됐다는. 워낙 해군, 공군 절대 열세에 이래 지나 저래 지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결국 낙동강을 밀어버리는 것에 올인. 1개 사단과 해안포만 배치했어도 결과는 몰랐겠지만 아마 1개 사단 정도의 여력도 없었을 겁니다. 낙동강에서 1개 사단이라도 빼냇다간 바로 뚫려버릴 처지여서. 인천 상륙 이전에 이미 낙동강의 전세도 유엔군에게 넘어오고 있던 형편이니.
2차 대전때 독일은 북한보다 훨씬 여건이 좋았지만- 그나마 해군이 유보트라도 있었고 무너지고 있었다지만 루프트 바페도 남아있었고 거기에 상륙작전 예상하고 해안기지 구축했고 롬멜 등의 명장이 지휘했고 상륙 예상지 후방에 기갑 사단등 배치- 결국 물량 퍼부우니 대책이 없었죠.
결국 그 상황에서 김일성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낙동강에서 단계적으로 후퇴하여 휴전선 쯤에 전선을 재구축하든지(이 경우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절대 위기에 처해지겠죠), 아니면 어떻게든 낙동강을 뚫어서 부산까지 밀고 가든지 외에 없었겠죠. 인천상륙은 일기 불순 등의 운에 맡기더라도 말입니다.
2차 대전때 독일은 북한보다 훨씬 여건이 좋았지만- 그나마 해군이 유보트라도 있었고 무너지고 있었다지만 루프트 바페도 남아있었고 거기에 상륙작전 예상하고 해안기지 구축했고 롬멜 등의 명장이 지휘했고 상륙 예상지 후방에 기갑 사단등 배치- 결국 물량 퍼부우니 대책이 없었죠.
결국 그 상황에서 김일성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낙동강에서 단계적으로 후퇴하여 휴전선 쯤에 전선을 재구축하든지(이 경우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절대 위기에 처해지겠죠), 아니면 어떻게든 낙동강을 뚫어서 부산까지 밀고 가든지 외에 없었겠죠. 인천상륙은 일기 불순 등의 운에 맡기더라도 말입니다.
2010.07.22 01:02:38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 [태양의 유산]에 보면 맥아더가 머리가 비상한 천재로 그려지고 있더군요. 맥아더 집안이 필리핀의 총독 역할을 하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일본군이 필리핀 등지에서 모은 금을 패전 직전에 숨기고, 맥아더가 이 금을 찾으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맥아더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지 싶어요....
2010.07.22 01:27:17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독일이 못막은건 물량이 아니라 히틀러와 방어 사령관의 작전 삽질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기갑부대와 병력이 있었는데 신속하게 대처를 못해서 무너진거지요
실제로 오마하 해변 같은 경우는 미군에게 지옥이었고요
인천의 경우 북한이 맘만 먹으면 서울 방어 병력일부와 후방 에서 긁어 모으면 1개 사단정도는 편성 가능했고 기록에 보면 김일성이 어쩔수 없이 올인한 것이 아니라 인천상륙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중국의 충고를 무시했답니다
실제로 인천상륙이 되면 서울은 지척인데 낙동강에 올인할수가 없지요
이미 낙동강에서 전력이 소모되고 8월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어도 못뚫은 판에요
실제로 인천에서 서울 진입까지는 인민군 저항 때문에 상당한 시일이 걸렸지요
인천 같은 경우는 상륙작전의 최악의 환경이라 월미도에 해안포 배치하고 방어부대 1개 연대만 배치했어도 미군은 엄청난 희생을 냈고 아울러 조수차때문에 상륙작전의 시간은 제한이 되어 있어 인민군은 버티기만해도 실패할 상황이지요
2010.07.22 01:29:06
인천에 재미들린 맥아더는 원산 상륙을 지시했는데 기뢰제거 하는동안에 국군이 원산에 육로로 진주하고도 10일인가 배안에서 대기한 후 상륙 배안에서 이질걸려 700명이 넘게 누워있었고요
중공군 개입안한다고 고집피우고 중공군하고 교전을 한 후에도 1-2만명이라고 주장 맥아더 삽질 엄청납니다
중공군 개입안한다고 고집피우고 중공군하고 교전을 한 후에도 1-2만명이라고 주장 맥아더 삽질 엄청납니다
2010.07.22 03:19:31
276호 언냐 말도 일리가 있고 내가 허접이라 뭐라 반박은 못하겠는데...(난 310호) 물론 놀망디에서 방어에 실패한 건 기갑부대가 너무나 뒤늦게 출동했다는 사정이 있죠.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독일이 북한보단 훨씬 사정이 좋았다는 건 분명하다고 봅니다. 일단 독일군 전투력이 북한보다 월등했고 준비도 더 착실했고 지휘관 능력도 좋았고 해안포 및 기타 진지 구축도 일찍부터 시작됐고 해 공군의 지원도 좋았고. 특히 예상하고 일찍부터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정이 있었던 반면
인천은 육이오가 벌어진지 석달도 채 지나지 않은 가운데 결행된 작전이죠. 언냐 말대로 상륙작전 가능성을 김일성이 일축했다면 분명 실책이겠지만 설사 더 뛰어난 군 전략가였다해도 전쟁 시작한 지 8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또 얼마나 버라이어티했습니까. 사흘만에 서울 진공. 10일뒤 미군과 교전, 낙동강까지 일사천리, 교착 등등), 거기에 상륙전이든 상륙 방어든 경험이 하나도 없는 신생국가 군대를 끌고 해공군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자 상륙전 노하우가 풍부하다 못해 넘치고 넘쳤던 미군을 상대로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란...글쎄요...
오마하는 또 다르죠. 그야말로 독일 입장에서 천우신조라할만큼 기상이 도와줬고 토치카나 해안포가 일찍 배치되어있었으니까요. 또 디에프 등을 통해 독일군도 상륙작전 방어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고...그렇지만 결국 오마하도 미군의 물량 앞에선 뚫려버렸죠.
그래서 전 설사 김일성이 인천상륙을 예상하고 최선을 다해 방어선을 구축했어도 결국은 뚫렸을 거라고 봅니다. 전쟁의 신이 아닌 다음에야 전쟁 직전이나 직후 상륙작전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테고 그래서 잘 봐줘야 20여일 정도일 텐데 그 동안 방어부대 재편 및 배치하고 지형 숙지하고 해안포 및 토치카 구축하고 그런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죠. 더구나 당시 북한군 수준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예비군까지 탈탈 털어 낙동강 내려보낸 형편에 인천을 제외한 후방 지역에 최소한의 예비대와 방어부대를 남겨놓는다는 전제하에 인천 및 서울에 전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얼마나 가능했을지...
제가 김일성이었더라도 당시 전력상 인천 상륙을 예상했더라도 천우신조에 맡기고 (조수간만의 차 등등) 다만 상륙은 할 것 같으니 수도권 방어는 좀 강화해두고... 어차피 낙동강외에 희망이 없으니 올인하는 편을 택했을 것 같더군요.
아무튼...한국의 꼴통 우파들은 악착같이 인천 상륙 작전을 맥아더의 신출귀몰한 기습으로 칭송하고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불가항력설'을 좌빨로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는데(님은 전혀 이런 스탈이 아니죠. 오히려 북한의 무능설이고^^) 전 불가항력설이라해도 인천상륙에 관한한 맥아더 능력은 인정해줘야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물론 그외엔 다...거품이고.... 중공군 개입부터 보면 한심하고..
인천은 육이오가 벌어진지 석달도 채 지나지 않은 가운데 결행된 작전이죠. 언냐 말대로 상륙작전 가능성을 김일성이 일축했다면 분명 실책이겠지만 설사 더 뛰어난 군 전략가였다해도 전쟁 시작한 지 8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또 얼마나 버라이어티했습니까. 사흘만에 서울 진공. 10일뒤 미군과 교전, 낙동강까지 일사천리, 교착 등등), 거기에 상륙전이든 상륙 방어든 경험이 하나도 없는 신생국가 군대를 끌고 해공군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자 상륙전 노하우가 풍부하다 못해 넘치고 넘쳤던 미군을 상대로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란...글쎄요...
오마하는 또 다르죠. 그야말로 독일 입장에서 천우신조라할만큼 기상이 도와줬고 토치카나 해안포가 일찍 배치되어있었으니까요. 또 디에프 등을 통해 독일군도 상륙작전 방어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고...그렇지만 결국 오마하도 미군의 물량 앞에선 뚫려버렸죠.
그래서 전 설사 김일성이 인천상륙을 예상하고 최선을 다해 방어선을 구축했어도 결국은 뚫렸을 거라고 봅니다. 전쟁의 신이 아닌 다음에야 전쟁 직전이나 직후 상륙작전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테고 그래서 잘 봐줘야 20여일 정도일 텐데 그 동안 방어부대 재편 및 배치하고 지형 숙지하고 해안포 및 토치카 구축하고 그런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죠. 더구나 당시 북한군 수준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예비군까지 탈탈 털어 낙동강 내려보낸 형편에 인천을 제외한 후방 지역에 최소한의 예비대와 방어부대를 남겨놓는다는 전제하에 인천 및 서울에 전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얼마나 가능했을지...
제가 김일성이었더라도 당시 전력상 인천 상륙을 예상했더라도 천우신조에 맡기고 (조수간만의 차 등등) 다만 상륙은 할 것 같으니 수도권 방어는 좀 강화해두고... 어차피 낙동강외에 희망이 없으니 올인하는 편을 택했을 것 같더군요.
아무튼...한국의 꼴통 우파들은 악착같이 인천 상륙 작전을 맥아더의 신출귀몰한 기습으로 칭송하고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불가항력설'을 좌빨로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는데(님은 전혀 이런 스탈이 아니죠. 오히려 북한의 무능설이고^^) 전 불가항력설이라해도 인천상륙에 관한한 맥아더 능력은 인정해줘야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물론 그외엔 다...거품이고.... 중공군 개입부터 보면 한심하고..
2010.07.22 04:14:38
물론 놀망디 물량이면 아쨋든 상륙은 성공했을거라 봅니다
다만 롬멜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상급자가 누구더라 기억이 안나는데 그친구도 똘똘하지만 그때 삽질좀 했고
독일군 전투력이면 연합군 엄청난 손실을 입고 후속부대 오는것도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인천상륙 작전 맞아요
사실 길어야 한달이나 20일 준비할수 있지만 문제는 막을수 없으면 낙동강에서 일찍 철수했으면 잔존 전투력을 보존하고 재편성해서 38선에서 저지선을 만들 수 있다고 봐야지요
아니면 인천에서 몇일만 시간으 ㄹ끌고 저지해도 낙동강 병력이 질서있게 철수 할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는데 아무런 대비를 전혀 안한게 문제지요
다만 맥아더가 상륙 성공한 뒤 서울을 우회하여 동부쪽으로 진군하였으면 인민군 패잔병이 북으로 툴출하는 것을 상당수 저지할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지요
상륙작전 비록 세바스토풀처럼 만들수는 없었어도 토치카나 참호는 만들수 있고 병력배치를 했으면 쉽지는 않았고 시일이 걸렸겠지요
인천의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상륙작전의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건 방어자 입장에서는 아주 유리하고 몇번만 저지하면 이미 미군 내부에서도 반대자가 많기에 사상자 나고 하면 취소하고 철수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낙동강에서 정예를 상륙작전으로 빼가는 바람에 워커가 얼마나 열받았는데요
7만명이 동원되었는데 그 인원과 장비면 낙동강에서 치고 올라가도 인민군 무너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륙작전 준비하면서 열악한 전력으로 방어하고 공방전 치르느라 희생이 많았고 처음부터 낙동강에 집중을 시켰다면 이미 전력이 소진되고 보급이 형편없어진 인민군은 그냥 밀어버릴수 있고 인민군 역시 낙동강에 올인했기에 밀렸을경우 저지선의 개념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롬멜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상급자가 누구더라 기억이 안나는데 그친구도 똘똘하지만 그때 삽질좀 했고
독일군 전투력이면 연합군 엄청난 손실을 입고 후속부대 오는것도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인천상륙 작전 맞아요
사실 길어야 한달이나 20일 준비할수 있지만 문제는 막을수 없으면 낙동강에서 일찍 철수했으면 잔존 전투력을 보존하고 재편성해서 38선에서 저지선을 만들 수 있다고 봐야지요
아니면 인천에서 몇일만 시간으 ㄹ끌고 저지해도 낙동강 병력이 질서있게 철수 할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는데 아무런 대비를 전혀 안한게 문제지요
다만 맥아더가 상륙 성공한 뒤 서울을 우회하여 동부쪽으로 진군하였으면 인민군 패잔병이 북으로 툴출하는 것을 상당수 저지할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지요
상륙작전 비록 세바스토풀처럼 만들수는 없었어도 토치카나 참호는 만들수 있고 병력배치를 했으면 쉽지는 않았고 시일이 걸렸겠지요
인천의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상륙작전의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건 방어자 입장에서는 아주 유리하고 몇번만 저지하면 이미 미군 내부에서도 반대자가 많기에 사상자 나고 하면 취소하고 철수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낙동강에서 정예를 상륙작전으로 빼가는 바람에 워커가 얼마나 열받았는데요
7만명이 동원되었는데 그 인원과 장비면 낙동강에서 치고 올라가도 인민군 무너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륙작전 준비하면서 열악한 전력으로 방어하고 공방전 치르느라 희생이 많았고 처음부터 낙동강에 집중을 시켰다면 이미 전력이 소진되고 보급이 형편없어진 인민군은 그냥 밀어버릴수 있고 인민군 역시 낙동강에 올인했기에 밀렸을경우 저지선의 개념은 없었으니까요
2010.07.22 04:41:50
아, 역시 언냐 글 읽으니 좋아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것 같지만 - 삼국지의 영향인지, 이순신이나 을지문덕 장군등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신출귀몰, 용의주도 등등을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사를 자세히 보면 100프로 삽질도 없고 100프로 완벽한 경우도 없더군요. 자세히 보면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고.
가령 던커크 철수의 경우 히틀러나 독일군의 최대 실책이라 하지만 그 정도로 급속한 전진이 이뤄진 상태에서, 후방의 지원이나 정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또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군의 반격이 후방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조건 밀어부칠 수 있었겠냐는 설명이 더 와닿더군요. 더 나아가 영국군의 해군 우세를 감안하면 아무리 독일군이 몰아부쳤어도 결국 70프로 이상은 철수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예측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언냐 말대로 인천상륙이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이었다 하더라도 과연 주력을 낙동강에 집중해서 정면으로 뚫는 것과 비교할 때 반드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 상륙 작전 성공 후에 서울 수복이란 정치적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북한군이 후퇴할 시간을 준 것도 비판받아야할 지점이고.
김일성 입장에선 미군 개입 후엔 전력의 열세를 깨닫고 재빨리 적절한 수준에서 휴전 제의하고 그 이면에 후퇴시켜 재정비했으면 인력 피해는 물론 공화국이 날아갈 위기도 모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뼈아픈 실책이고...그런데 김일성 입장을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예상치 못한 인민군의 전과에 낙동강까지 밀어붙였고 '조국 해방 통일'이란 정치적 명분으로 몰아치던 상황에서 갑자기 '뒤로 돌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그 경우 일어날 혼란 및 실망(이럴 거면 왜 전쟁한거야? 등등의 반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한국 전쟁이 재밌는건 초반의 대성공이 후반의 화로 전환된 사례가 참 많다는 거죠.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 덕에 인민군은 낙동강에 올인했고 그 덕에 인천상륙 작전 이후 대박살났고...또 유엔군 및 한국군은 쾌속 진군 덕에 압록강까지 갔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지옥을 맛봤고...
양쪽 다 그렇게까지 성공하지 않았으면 대략 자신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하거나 전선을 고착시킬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잘돼서 화가 돼버렸죠.
아무튼 언냐 글 고맙. 앞으로도 자주 밀리 글 좀 써줘요.
가령 던커크 철수의 경우 히틀러나 독일군의 최대 실책이라 하지만 그 정도로 급속한 전진이 이뤄진 상태에서, 후방의 지원이나 정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또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군의 반격이 후방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조건 밀어부칠 수 있었겠냐는 설명이 더 와닿더군요. 더 나아가 영국군의 해군 우세를 감안하면 아무리 독일군이 몰아부쳤어도 결국 70프로 이상은 철수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예측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언냐 말대로 인천상륙이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이었다 하더라도 과연 주력을 낙동강에 집중해서 정면으로 뚫는 것과 비교할 때 반드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 상륙 작전 성공 후에 서울 수복이란 정치적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북한군이 후퇴할 시간을 준 것도 비판받아야할 지점이고.
김일성 입장에선 미군 개입 후엔 전력의 열세를 깨닫고 재빨리 적절한 수준에서 휴전 제의하고 그 이면에 후퇴시켜 재정비했으면 인력 피해는 물론 공화국이 날아갈 위기도 모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뼈아픈 실책이고...그런데 김일성 입장을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예상치 못한 인민군의 전과에 낙동강까지 밀어붙였고 '조국 해방 통일'이란 정치적 명분으로 몰아치던 상황에서 갑자기 '뒤로 돌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그 경우 일어날 혼란 및 실망(이럴 거면 왜 전쟁한거야? 등등의 반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한국 전쟁이 재밌는건 초반의 대성공이 후반의 화로 전환된 사례가 참 많다는 거죠.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 덕에 인민군은 낙동강에 올인했고 그 덕에 인천상륙 작전 이후 대박살났고...또 유엔군 및 한국군은 쾌속 진군 덕에 압록강까지 갔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지옥을 맛봤고...
양쪽 다 그렇게까지 성공하지 않았으면 대략 자신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하거나 전선을 고착시킬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잘돼서 화가 돼버렸죠.
아무튼 언냐 글 고맙. 앞으로도 자주 밀리 글 좀 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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