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마음

 

 

몇 해 전에 방영한 드라마 '브레인'은 뇌의학자들의 세상인 신경외과를 다뤘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국내 최고권위를 가진 뇌의학자 김상철 교수(정진영 분)가 한 어린이에게 '마음'이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아이가 심장을 가리키자 김 교수는 틀렸다며 머리를 가리키죠.

 

드라마를 보면서, 뇌의학자들은 뇌 속에 마음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현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마음이란 '인식의 주체'이고 '의지의 주체'이며, '창조의 주체'입니다. 이것은 부처,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 등 영적인 스승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인식이란 알아차림인데, 무엇이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습니까.

의지란 살아있음인데, 무엇이 무엇을 살아있게 합니까.

창조란 의미부여인데, 무엇이 무엇을 무엇으로 의미부여 합니까.

 

만약 뇌의학자들의 주장처럼 마음이 지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면 인식과 의지와 창조는 지능으로부터 부여받은 속성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성현들의 직관처럼 지능이 마음에 속한 것이라면,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었을 때, 그 친구(AI)는 마음에게서 인식과 의지와 창조라는 3가지 마음의 요소를 부여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여러 역할을 합니다. 자동생명유지장치로서 동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일 것입니다. 그 중에 지능이라는 기능있습니다. 인공지능이란 뇌의 지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를 통해서 구현하는 것이죠.

 

우리 몸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기본적으로 변환기(트랜스포머)로서 동작합니다. 눈,귀,코,혀 그리고 피부라는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외부의 정보를 동일한 포멧의 시그널로 변환시켜 뇌에 전달합니다. 빛의 정보(눈), 공기의 떨림 정보(귀), 화학작용 정보(코), 거칠고 부드러우며 따뜻하고 차가운 정보(피부)는 모두 형태가 다릅니다. 이것이 동일한 포멧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뇌에 전달됩니다.

 

뇌의 지능파트는 그것을 다시 이미지화 하여 범용적인 데이터로 변환합니다. 그리고나서 이름을 붙이고 이름간에 관계를 지어놓습니다. 이러한 지능의 행위는 보통 데이터베이스라고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동작 원리와 같고 그것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각종 추론과 연산들도 뇌의 지능이 하는 역할입니다.

 

이제 인공지능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름붙이고, 관계를 설정하며 추론하고 연산하는 것이죠. 물론 지금까지 컴퓨터도 이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두되는 '인공지능'은 과거의 컴퓨터와 양상이 조금은 다릅니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연역방식으로 계산을 통해 결론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연역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던 철학 방법이고 논리학이라고 합니다. 주어진 전제들을 모아서 새로운 답을 내는 것이죠. 주어진 전제가 참이므로 새로내린 답도 참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슈가 되는 '머신러닝, 딥러닝' 방식의 인공지능은 경험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자연을 스스로 인식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는 방식입니다. 귀납이라고 하는 방식이죠. 그러니까 배움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기계가 스스로 인식하며, 생각하고, 결론을 도출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역을 귀납으로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뇌도 연역과 귀납을 모두 사용합니다. 알파고와 같은 머신러닝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입니다. 논리학과 경험주의 철학전통이 변증법적으로 합일하여 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능과 인공지능이 바로 인식의 주체냐 하는 점입니다. 칸트로 부터 발전된 인식론은 지능을 바로 인식(마음)이라고 규정했습니다. 5감을 뇌가 인식함으로서 인간이 '나'라고 하는 주체성을 발현한다는 것이죠. 서양과학과 공학은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하여, 물자체라고 하는 객관세계와 인식하는 주관세계를 구분합니다. 나와 남이 구분되고 나와 세상이 구분됩니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구분되어서 지능을 통해 인식되고 의지가 발현되며 결론이 도출(창조)된다고 믿습니다.

 

즉 첫부분에서 '인식,의지,창조'에 대해 진술한 것을 인공지능이 곧 마음이라는 서양철학, 뇌의학 전통에따라 다시 구성하면 이렇습니다.

 

지능은 인식의 주체이며, 곧 '나'라고 하는 인식의 주체가 객관세계를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지능은 의지의 주체이며, 곧 '나'라고 하는 의지의 주체가 객관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능은 창조의 주체이며, 곧 '나'라고 하는 창조의 주체가 객관세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지능도 감각기관의 하나라고 규정합니다. 부처께서 설하신 내용에 따르면, '안이비설신의'라는 여섯감각기관(육근)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여섯경계를 접촉하여 느낌(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뜻)'라는 것이 '법(담마)'을 접촉해서 느낌(이미지)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지능의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오감)과 지적작용(지능)을 이용해서 인식하고 의지를 발현하고, 창조하는 주체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거에 대한 답은 다음기회에 2편에서 적어보겠습니다. 2편은 인공지능과 불성(영성)이라는 주제로 쓰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구성될 것 같습니다.

 

1) 마음이란 무엇인가?

2) 지능 혹은 인공지능에게도 불성(마음)이 있는가?

3) 인공지능의 한계는 무엇인가?

4) 레이커즈와일과 이기이원론의 착각

5) 인공지능과 이기일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