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의 장래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누가 알겠어?"


지인의 그 말을 들으면서 경제대공황 시절에 주식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았다는 경제학자들의 사례를 떠올렸다. 경제학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류경제학의 실수인, 하다 못해 맑시즘조차 실수를 불러 일으켰던 '인간은 합리적 결정을 하는 인간'이라는 전제를 비트코인에 대입해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비트코인은 경제이론으로 보면 비합리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인간의 합리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합리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류경제학도 맑시즘도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제적 소비 떄문에 실수를 했고 또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토인비는 일찌감치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감히 인류 역사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대립의 반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합리성은 지배층이 정한 사회적 규칙애 따르는 것. 그리고 그 규칙은 종종 불공정성을 강요한다. 따라서 비합리성은 인간의 평등을 갈구하면서 이런 지배층이 만든 사회적 규칙에 의해 야기된 불공정성을 깨기 위하여 발현된다.


그리고 인류의 최대의 비합리성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민주주의 제도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비합리성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수립된 민주정권이 길로틴으로 상징되는 폭악적인 자세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 고래들로 표현되는 비트코인의 과점, 그리고 비트코인을 근본적으로 채굴할 수 없는 불평등에서도 인류는 어쩌면 더 큰, 합리성을 내세워 불공정을 야기시키는 화폐제도를 폐기시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맑시즘에 의하면 화폐는 정부에 의하여 공급량이 조정되어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 불공정성에 대하여 인류는 비합리성을 발현하여 불공정성을 깨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환원하면, 프랑스 대혁명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인간의 비합리성 때문이고 그 비합리성을 폭발시킨 이유가 바로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 때문인 것처럼 화폐제도는 지배층이 민중을 '합리적'으로 가장 '불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아주 큰 무기이므로.


다른 말로 다시 돌려 쓰면, 만일,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지구촌을 휩쓸지 않았다면 인류의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는 지금보다 크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비트코인은 소수 매니어에 의해서만 채굴되는 것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 합리성을 가장한 불공정성을 강요하는 화폐제도라는 것에 인류가 분노하여 비합리성을 폭발시킬 날이 올 수도 있다. 그 날은 바로 비트코인이 화폐로 자리매김하는 때일 것이다. 지불보장? 비합리성이 만족된다면, 인류에게 지불보장은 그렇게 큰 포션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공익을 위해' 그러니까 합리성을 내세워 불공정성을 강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처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