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 하도 많은 일이 지나가서,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 사실 얼마전의 일입니다.

고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때였습니다. 1년 3개월 전입니다.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로 빠졌습니다. (관련기사)

그리고 백남기씨가 사망한 것은 2016년 9월 25일, 거의 1년 만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즉 돌아가신지 4개월도 아직 채 안 되었습니다.

웃긴 일은 그리고 나서 벌어졌습니다. 경찰에서 갑자기 사인을 규명하겠다며 부검 영장을 들고 온겁니다. 망자와 유가족을 모독해도 유분수지, 여론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처음에 기각되었던 영장도, 유가족과 합의 조건부로 발부되었으나, 합의 따위는 개뿔 경찰은 빈소 앞에서 망자측과 대치하는 우격다짐을 벌입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끝에, 결국 2016년 10월 28일 영장의 효력이 다하고 나서야 (기사) 경찰에서 결국 부검 집행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장례가 겨우 치뤄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말 탄핵 정국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야만성과 비민주성을 상징하는 사건중의 하나로 흔히 꼽히고 있습니다. 저도 그 관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건을 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야만성과 비민주성을 사람들이 '우리 그리운 노짱님'를 그리워하며, 참여정부 시절을 요순시절 마냥 신화하 사며, 제 2의 참여 정부를 예고하는 모습은 도저히 견딜 수 가 없습니다.

참여정부 때도 이 사건과 거의 거울상처럼 보이는 사건이 있었었으니 말입니다.

2005년 11월 15일. 전국 농민 대회가 여의도 국회앞에서 있었습니다. 쌀협상 비준 반대가 쟁점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었고, 그리고 이날의 시위는 강제 진압 됩니다. 그리고 이날 시위 진압에서 방패로 내리찍는 전경들의 진압방식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사)  

(사진 출처: 위의 링크 기사)

그리고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이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사망합니다. 이날 시위 진압과정에서 머리를 다친 전용철씨는 11월 24일, 홍덕표씨는 12월에 끝내 사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전용철씨 시신은 보령 아산병원에서 부검에 들어갑니다. (기사)

결과는 두부 손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 위의 기사에는 당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머리등에 충격이 가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나중 경찰을 통한 국과수의  발표는 더 웃기게 나왔습니다.  전용철씨가 "스스로 다쳤다" 라는 겁니다. 시위가 끝난후 멀쩡히 귀가 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다는 겁니다. 몸에 난 피멍자국은? 치료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겁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당연히 논란을 불러왔고, 이후 부상당한 전씨가 후송되는 사진이 발견되면서 결국 사건은 크게 번저갑니다. (기사

결국 국가의 책임,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을 인정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참여연대 기자회견문) 여론이 계속 악회되었고, 12월 19일 이해찬 총리 사과, 12월 27일 서울경찰청장 사표제출, 허준영 경찰청장 사과에 이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 문을 발표합니다.


故 전용철 사망관련, 48일간의 일지

11월 15일 여의도 전국농민집회 참가
11월 17일 몸 상태의 이상기우로 아산보령병원 입원,
               뇌출혈 소견으로 충남대학병원으로 후송
11월 24일 사망, 분향소 설치(보령장례식장)
11월 25일 서울대학병원 영안실 안치, 국과수 부검 및 결과 기자회견
               충남청, 집에서 쓰러져 사망한 것으로 발표
               보령시 농민단체 및 민주단체 대천역 촛불집회 돌입
11월 26일 보령분향소 대천역으로 이동
11월 27일 15일 전국농민대회 당시 의식 잃은 사진발견
11월 28일 경찰, 직접적 가격은 없었으며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 발언
               농민회충남도연맹, 대전역 집회
11월 29일 충남청, ‘집에서 쓰려진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됨을 서울청으로 이송
               보령시비상대책위 구성, 대책회의
               인권위, 진상조사 접수 및 착수
               황인성 시민사회수석, 서울빈소 조문
12월   1일 범대위 진상조사단 구성
12월   3일 대천역 농민, 노동자, 시민, 민주단체 집회(가두시위)
               보령경찰서 앞 항의집회
12월   8일 국회 진상조사단, ‘국회청문회’ 개최
12월   9일 범대위, 진상조사 1차결과 발표
12월 10일 보령시대책위, 보령경찰서앞 항의집회(가두시위)
               보령시대책위, 한상익 서장과의 면담
               한상익 서장, 보령경찰초동수사 오류인정 사과
12월 14일 경찰청, 이종우 서울청기동단장(경무관)직위해제
12월 15일 고 전용철씨 생일
12월 18일 전북 김제 홍덕표 농민사망
12월 19일 이해찬 총리 공식사과
12월 20일 보령시대책위, 보령경찰서 앞 촛불집회
               전국 경찰서 앞 촛불집회
12월 22일 범대위, 청와대앞 노숙농성 돌입
12월 26일 인권위, 농민사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발표
12월 27일 이기묵 서울경찰청장 사표제출
               허준영 경찰청장 대국민사과문 발표
               노무현 대통령 대국민사과문 발표
12월 29일 허준영 경찰청장 사표제출
               범대위, 공식 조문 개시
12월 30일 대천역, 천도제(천수암, 석일정스님) 거행
12월 31일 합동영결식 


출처: 보령신문 (기사)

지금 달레반, 친문 지지자들이 내세우는게 그겁니다. 박근혜씨와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했다 이겁니다. 그러니 비교가 안된다는 겁니다. 역시 우리 노짱님 흑흑흑...

누가 보면 돌아가신 다음날 바로 예를 다해서 사과하고, 최선을 다했는지 알겠습니다.  위의 일지보면 알지만, 그때도 정부는 농민 시신 부검하고, 그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귀가후 집앞에서 넘어져서 죽었다. 씨발. 

그러다가 부상입고 후송되는 사진 발견되면서 빼박캔트 몰리고 나서야, 마지못해 사과한겁니다. 썅

대통령 사과문과 기자회견 : 기사

그리고 그 사과. 당시에도 비판 많이 받았습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막중한데 통제에 신중하지 못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시위가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변명하는 태도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노 대통령은 폭력시위문화도 시위농민의 사망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자주 본다"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믿어지지 않지만 무려 위의 워딩이, 농민이 폭력 진압에서 사망하고, 시신을 부검한다음 그 사망원인을 눈뜨고 아웅하듯 모르쇠로 지나가려고 하다가, 증거가 나와서 딱 걸려서, 사과 기자 회견 하러 나와서 한 말이었습니다. 

박근혜씨가, 이명박씨가 저랬다고 생각해 보면 어땠을 거 같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당시 경찰 청장이었던 허준영 청장은 이날 사퇴를 거부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해임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건 핑계도 걸작이었던게 자기한테 해임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겁니다.

... "대통령인 내가 해석하기로는 (대통령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머지는 정치적 문제인데 이것은 대통령이 (문책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본인이 어떤 판단을 했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이미 본인의 판단이 아니고 대통령의 판단을 말하는 셈이 돼서 대통령이 그와 같은 권한을 갖지 않게 한 제도의 취지에 맞는지 그것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 경찰청장 해임 요청이 이 건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는데, 대통령에게 그런 권한 없다고 우기는건 이건 밖에 못봤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명박 정권때 어청수 청장 해임 하라고 요구했던 민주당은 (기사) 법해석도 못하는 모지리 들이라는 건지..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사과 같지도 않은 변명은, 죽어서 유감이긴 한데, 니들 폭력 시위가 문제였고, 나는 자를 생각 없다는 말로 밖엔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기억 더듬으니까, 그때 빡쳤던게 또 빡치네요. ㅆㅂ. 

지금와서 그때 노짱님은 주변에서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게 깍듯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하고 관련자 처벌하고 피해자 배상을 약속했다며 띄워주는 데 그냥 구역질이 납니다. 

말나온 김에, 이후 뭐 재발 방지와 관련자 처벌, 피해자 배상은 잘 이루어 졌을까요?

먼저 전용철씨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나라에서 알아서 해줬나? 아닙니다.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2006년에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냅니다. (기사).  그리고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은 이명박 정권때인 2008년 11월에 가서야, 원고 일부 승소로 1억 3천 만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사).  

관련자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 졌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일선 지휘였던 책임자들은 경징계를 받고 이후 슬그머니 복귀하고 승진했습니다. (기사)

...전기환 사무총장은 “정부는 두 농민 사망 당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국가배상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당시 경찰 책임자들만 경징계를 받고 모두 승진해 일선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


(참고로 당시 경찰 총장 허준영씨.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해임 거부했고, 본인은 대통령 사과에도 사임 안하고 버텨보려다가, 결국 여론을 못이기고 사임합니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사기업을 거쳐, 이명박 정권 시절 코레일 사장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허준영씨가 코레일 사장으로 있던 시기가, 용산 참사가 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자로 출마합니다. 선거구는 노원병. 
그리고 그 선거에서 노회찬 통진당 후보에게 패배합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은 삼성 X파일 사건의 최종 판결이 2013년에 나는 바람에, 당선 무효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2013년 노원병 재보궐 선거에 허준영 씨는 다시 출마합니다. 
그리고 그 선거구에서 당선된건 지금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입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  과연 이후 참여정부의 시위 진압 방식은 개선되었을 까요?

아닙니다.

위의 사과문으로 부터 한 6개월 정도 지난 2006년 7월 16일, 포항 지역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강제 진압중, 노동자 하중근씨가 사망하게 됩니다. (기사)

그리고 그 악명높은 대추리 사태의 군투입 폭력 진압이 있었던것도 위의 전용철씨 사건이 있었단 다음인 2006년 5월의 일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있었던 경찰 폭력에 대한 인권 오름의 컬럼: http://hr-oreum.net/article.php?id=713

... 노무현 정부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활용하면서 특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생존권 차원의 투쟁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경찰폭력을 동원해왔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던 초기, 그러니까 2003년에 도심집회금지 등을 골자로 집시법이 개악되었던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이 개악된 집시법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노동자·농민들의 목소리를 제압해왔다. 전용철, 홍덕표 그리고 하중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집회현장에서 죽거나 다쳐왔다

지난 몇 년간 경찰폭력은 민중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에 집약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건설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들이 지난 몇 년간 경찰폭력의 막대한 희생자들이었다. 이 풀뿌리 민중의 생존권 요구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은 점점 경찰권력에 의지해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관철시킨다. 경찰은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여러 위기와 저항을 관리하는 ‘위기관리자’에 불과하다....


지금 참여정부를 요순시대인것처럼 호도하고, 참여정부 시즌2를 예고하고 있는 문재인씨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구역질이 납니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를 아무리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 때도 정부는 무능했고, 억압적이었고, 권력의 과실이 삼성 재벌등 일부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딱 10년전 일입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어버려지지 않는 사실입니다. 

인터넷으로 구글링 하면 5분이면 관련 자료를 잔뜩 찾을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렇단 말입니다. 

@ 직접 관련은 없다고 하겠지만 문재인씨 당시 직함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습니다. 지금 우병우 포지션. 그냥 궁금해 하실까봐 알려드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