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자칫하면 우리나라 정치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적지 않은 당원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당과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 그리고 점차 위력을 더해가는 제3지대론이 그러한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지율이 하락하고, 제3지대론이 당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호남과 안철수의 정치적 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은 호남 정치인들과 안철수 모두에게 있다. 일단 호남 정치인들의 문제부터 짚어본다.

호남이 안고 있는 질곡 즉 호남차별의 문제는 *경제산업 분야의 낙후 *공공과 민간 분야의 호남 출신에 대한 인사차별 *광범위한 호남 혐오 현상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이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어렵고 순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졸저 <호남과 친노> 인용).

경제적 낙후와 인사차별은 당장 다른 지역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일종의 제로썸 게임으로, 호남의 불리함을 해결하려면 일단 다른 지역의 몫을 가져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호남의 고립과 왕따 현상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호남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의 선후 및 방법론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호남의 경제적 낙후와 인사차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그것은 호남에 가해지는 혐오와 이미지 왜곡을 먼저 해결한 이후에 가능하다. 호남에 대한 혐오와 이미지 왜곡이 경제적 낙후와 인사차별을 정당화하는 측면도 있다. 사실 호남에 대한 혐오야말로 호남차별 문제의 본질이라고 봐야 한다.

친노세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호남 정치를 구태, 부패, 토호 등의 이미지로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 즉 정치적 상징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개혁 진보진영의 정치적 대표성과 정통성을 호남 아닌 PK 운동권이 갖고 있다는 억지를 대중적으로 유통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호남의 이미지를 진흙탕에 쳐박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호남 정치인들의 호남차별 문제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과 친노좌파에 대한 노예 근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총선 이후 원내에 진출한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의 현안을 챙기려고 애쓴 것은 사실로 보인다. 국민의당 초선 의원 한 분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은 호남의 이익을 챙기는 데 의정 활동의 대부분을 할애한다"고 토로했던 것이 과장만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이런 경제산업적 낙후나 인사차별 문제는 단기간에 두드러진 효과를 내기도 어려운데다 다른 지역의 정치인이나 시민들로부터 '호남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는 점이다. 호남 지역구 의원이 대부분인 국민의당 의석 구조상 이런 비판은 대중에게 먹혀들기 쉽다. 즉 호남 정치의 명분 확보라는 점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행보를 했던 것이다.

반면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들은 정작 호남 지역차별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인 호남혐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총선 직후 친노세력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자행된 호남과 호남정치 비하에 대해 국민의당 전체가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들이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친노 좌파에 대한 공포심에 기인한다. 자신들이 정치적 도덕성이나 명분에서 친노좌파보다 열등하다는, 친노좌파의 호남 정치에 대한 구태/부패/토호 세력이라는 비난을 내재화한 결과이다.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들은 당 소속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는 여전히 친노좌파의 이념적 노예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호남 정치인들에게 새누리당 정권과의 투쟁보다 훨씬 어려운 결단이 바로 친노좌파의 이념적 지배구조를 탈피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최순실 사태에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사실상 더민당 친노들의 깃발 아래 그들의 명분 강화에 철저하게 기여하는 투쟁을 했던 것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호남 정치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안철수와의 결합을 방해하는 일차적 요인이다. 안철수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만, 호남을 넘어 전국적인 정치적 대의명분을 확보해야 하는 절대적 요구를 안고 있다. 그리고 호남 정치의 명분 상실은 안철수가 호남과의 더 긴밀한 정치적 결합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원인이 뭐가 됐건 안철수와 호남의 괴리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에게 치명적이다. 안철수에게 호남 아닌 중도 성향의 지지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스윙보터이며 정치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안철수 현상 초기에 50%가 넘었던 지지율이 대거 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당시 안철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호남이 분리되어도 안철수는 정치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단기적으로 지지율이 상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소멸된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장애물인 호남차별 및 지역구도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명제와 깃발도 안철수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평범한, 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다. 오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것은 결코 호남을 미화하거나 절대화하려는 주장이 아니다.

호남만으로도 안되고, 호남이 없어서도 안되는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딜레마.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호남 정치의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이 회복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출발점은 광범위한 호남 혐오와 폄하, 저주 등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다. 호남 정치인들이 앞장서야 하고, 안철수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