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기억 하나ㅡ


어느 날, 아침 배달을 앞두고 북적거리는 집배원 실에서 나보다 서너 살 젊은 동료 한 명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서 으시대고 있었다.
길거리의 리어카 장수에게서 산 물건이라고 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도 재미 삼아 그에게서 잠깐 선글라스를 빌어 써 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썩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이런저런 결점들을 지닌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물건을 골라낼 자신이 없어 애당초 선글라스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냈었는데, 별로 작은 편도 아닌 내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뒤덮을 만큼 큼직한 알이 달린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의외로 제법 멋스러웠다.
  "주윤발이 따로 없네!"
만족해 하는 나를 본 그 동료는 인심 좋게도 그 선글라스가 그렇게 마음에 들면 그냥 가지도록 하라고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우동 한 그릇을 사주고 선글라스와 맞바꾸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하던 그 즈음, 집배원 실에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하나둘 늘어 가던 참이었다.
온종일 눈 따가운 햇볕 속을 돌아다녀야 하는 집배원의 업무 성격상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우편물이 있어 하루에 한번씩은 들러야 하는 병원이 내 배달 구역 중에 있었는데, 접수대에 앉아 노닥거리던 간호사 둘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오늘은 멋을 잔뜩 내셨네요."
  "그건 또 어디서 나셨어요?"
말로는 멋있다고 칭찬을 하고 있었으나, 보아하니 비웃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별 악의는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내 모습이 모처럼 양복을 빼입고서 도시 나들이를 나온 시골뜨기쯤으로 보이는가 보았다.
하기사 좁은 어깨에 앙상한 가슴을 한 나 같은 체격에는 선글라스가 별로 어울리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를 쓰고서 몇 시간만 지나면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안경알이 너무 싸구려라서 그런 것이었다.
이틀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나는 선글라스를 벗어 버렸다.
두통에 시달리느니 햇빛에 눈이 좀 부신 편이 나았다.
그런 다음, 맨 얼굴로 예의 그 병원에 다시 찾아갔더니 이번에도 아가씨들이 까르르 웃어 대었다.

  "오늘은 왜 선글라스를 안 쓰고 오셨어요?"


맙소사! 이 아가씨들 눈에는 전번에 자기 딴에는 멋을 부린다고 쓰고 나왔던 선글라스를 자신들이 놀려 대는 것을 눈치챈 내가 부끄러워서 오늘은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정말 그렇게 순박한 총각으로 보이더란 말야?
  '후줄근한 집배원 유니폼 속에 숨은 샤프한 인텔리가 내 컨셉이었건만.... '


내 평생 처음으로 써 보았던 선글라스는 그렇게 하여 입수한 지 사흘 만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번에 내가 다시 선글라스를 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 년쯤 뒤의 일이었다.
안경테가 휘어졌던가 렌즈가 금이 갔던가 하여 수선을 받으러 안경점을 찾아갔다가 그만 진열대의 파란색 선글라스에 필이 꽂혀 버렸던 것이다.
살 생각이냐고 묻는 안경점 점원이 묻길래 나는 별로 넉넉하지 못한 처지라서 살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점원은 얼마쯤의 가격이면 살 수 있겠느냐고 끈질기게 물어 왔다.
이 정도 가격을 부르면 저 사람도 포기하려니 생각하고 나는 가격표에 적힌 금액의 절반을 불렀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나는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담배를 진작 끊었기에망정이지 담배값 대기조차 빠듯하던 처지였지만 그 파르스름한 선글라스를 꼭 갖고 싶기도 하였다.


내가 본래 한번 무엇인가에 마음이 동하면 그놈을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다.
어쩌다가 들었던 노래 하나가 마음에 들면 곧바로 그 레코드를 구해 와야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그 물건만 손에 넣으면 내 삶 전체가 만족스럽게 바뀔 것만 같은, 매번 배반당하면서도 이성으로는 도무지 제어하기 힘든 환상에 또 매번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고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는 이상적인 소비자랄까....
탄산음료처럼 상큼한 느낌의 그 파르스름한 선글라스만 내 것으로 만들면 감각이 파릇파릇하게 깨어나 글도 잘 써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녁에 돈을 가지고 안경점으로 갔더니 그 점원은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를 해왔다.
내가 골랐던 그 색깔로는 내 시력에 맞는 렌즈가 없더라고 하면서 다른 놈을 고르라고 열심히 권하는 것이었다.
그가 새로 권하는 선글라스도 파란색이었는데, 내가 골랐던 연한 파란색이 아니라 아주 짙은 파란색이었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두껍고도 정교한 느낌의 은색 테 때문인지 객관적으로 말해서 이쪽이 훨씬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실제로도 이놈이 앞의 물건보다 더 고가의 물건이지만 가격은 애초에 정했던 선까지 낮추어 주겠다는 것이 안경점 점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안경 가격이 더 높고 낮고와는 별도로 이놈은 앞의 것만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내 속에서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돈도 없는 처지에 갖고 싶던 물건이 없으면 그냥 나와 버리면 될 텐데 안경점 점원이 하도 열심히 권하는 것을 차마 뿌리치기 힘들어 선글라스를 사고 말았다.
어디 가서든 누가 뭘 열심히 권하면 차마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인 것이다.
오죽하면 군대 가서 무려 11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왔는데도 서울에 첫 발을 디디자마자 헌혈 좀 해달라고 매달리는 아가씨들에게 차마 냉정한 얼굴을 지을 수가 없어 그 금쪽 같은 시간 일부를 헌혈차 침대에 누워 보냈을까.


그렇게 사 가지고 온 선글라스 역시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입고 다니는 옷은 싸구려인 사람이 선글라스만 번쩍이는 것을 쓰고 다니면 그것도 좀 우스운 일일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는 일이 잘 풀려 이다음에 바캉스를 가게 되면 그때 사용해 봐야지 하고 속으로 벼르기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캉스를 떠날 수 있는 여유는 좀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가끔씩 꺼내어 거울 앞에서나 선글라스를 써보는 동안에 내 시력은 점점더 나빠져 나중에는 렌즈 도수가 맞지 않게 되고 말았다.
결국 단 한 번도 실제 사용을 못한 채 그놈을 버려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선글라스와는 영 인연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