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처럼 잔잔한 마산 앞바다에는 돝섬이라는 조그만 섬이 하나 있다.

'돝'은 돼지의 고어(古語)다.

흡사 멧돼지처럼 생긴 섬이라 그런 이름이 붙혀졌다고 하는데, 그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어느 방향에서 섬을 바라봤었는지 몰라도 마산항 선창에서 바라보는 돝섬은 멧돼지가 아니라 꼭 고래처럼 생겨 있다.

그래서 어릴 때 난 돝섬의 도가 고래를 가리키는 한자인 줄 알았었더랬다.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가, 한 번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마산을 관광지로 꾸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는 얘기를 하였다.

그때 내가 불현듯 떠올린 생각이 돝섬을 유원지로 꾸미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섬 모양이 고래 같으니 등에다 커다란 분수를 설치하여 멀리서 보면 고래가 물을 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섬을 일주하는 모노레일도 깔고, 회전목마니 관람차니 하는 것들을 군데군데 배치하고....

아이디어는 떠올렸지만 숫기 없는 성격이라 손을 들지는 않았었다.

그러고 나서 십 년쯤 뒤에 돝섬이 실제로 유원지로 개발된 것을 보면 그때 내가 발표하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그럭저럭 쓸만한 아이디어이긴 하였던 모양이다. 




비슷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마산은 원래 세 군데나 되는 기차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 역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시 외곽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시내를 가로지르던 두 가닥의 철로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철거 비용이 만만찮아서 그런지 그대로 방치돼 있는 철로를 보고 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길다란 두 가닥의 선로를 산책로로 만들면 어떨까?

레일과 침목을 제거하고 고급스런 블럭을 깔고, 길 양편으로 같은 수종의 나무들을 심는 거야.

이쪽 길은 벚나무 길, 저쪽 길은 은행나무 길로 만들면 마산의 유명한 상징물이 되겠지....

이 아이디어 역시 현실화되었다.

철로 하나는 6차선 도로로 확장되었지만 다른 하나는 산책로로 바뀌었으니까.

다만, 돝섬 유원지가 내 생각과는 달리 고래가 물을 뿜는 분수가 빠져 있는 것처럼 기찻길 산책로 역시 가로수가 없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튼 난 아이디어 하나는 무궁무진하다.

가만 있어도 말 그대로 아이디어들이 샘솟듯이 퐁퐁 솟아오르곤 한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이 나한테는 아주 쉽고 또 즐거운 도락이다.

그 누구에게도 작품성을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난 처음부터 끝까지 2인칭 문장들로만 채워진 단편소설을 하나 쓴 적도 있다.

아, 이런 일도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전봇대들을 보고 전선들을 땅속에 매립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적이 있는데, 몇 해 뒤에 실제로 그런 공법을 채택한 지역이 더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도 있다.

이렇듯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들이 대부분 현실화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생각은 대체로 엇비슷하다는 증표라 할지....



그래도 내가 아는 한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아이디어도 하나 남아 있기는 하다.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에서 두 가지 문제ㅡ교통 체증과 주택 부족 현상을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아이디어다.

아파트를 짓되 엿가락처럼 아주 길쭉한 형태로 짓는다.

10층이 됐건 15층이 됐건 높이가 일정한 그런 아파트들의 옥상을 가교로 연결하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깔면 자동적으로 도로 하나가 생기지 않겠는가.

쌩쌩 달리는 차들을 감당해야 하니 여느 아파트보다 더 튼튼해야 하고 방음에도 신경써야 하겠지.

그런 문제들을 다 해결하더라도 머리 위로 차들이 달리는 데 대한 거부감은 어쩔 수 없을 테니 주로 가난한 서민들의 거주공간이 되는 일을 피할 수 없을 테고....

모르지. 어쩌면 지금부터 백 년쯤 후의 도시 풍경은 그런 아파트ㅡ도로들로 채워져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