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은 여기에서 보시고 중요부분만 요약 합니다.
http://theacro.com/zbxe/wikitree2/5264319

유시민이 2002년에 만든 개혁당도 원래는 유시민이 구상한 게 아니라,  명계남, 문성근, 노사모 핵심들 그리고 정청래가 결합해 시작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의 개념(컨셉)을 훔쳐다 쓴 것이라네요. 

<청래 칼럼>

제  목 : 정치기술자 유시민의 몰락.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9-16 조회수  233 
  
출마선언은 하되 완주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또 하나의 예언이다. 사기후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99.9% 적중할 것이다. 레이스 도중 분명히 어떤 명분을 댈 것이다.(그 명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중도사퇴하고 특정한 ‘누구 지지선언“을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 캠프에 누나를 미리 파견한 것이다. 누나와 동생의 싸움은 없을 것이다.>(8월6일 청래칼럼 中에서) 

단일화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나왔다는 유시민이 본경선 하루 만에 끝내 사퇴했다. ‘출마선언은 하되 완주하지 않는다.’는 40일전 나의 예언은 또 적중했다. 제주 울산 경선에서 정동영후보가 1등을 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오후 6시를 전후에 수 십 개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이어 나의 핸드폰 진동이 또다시 연신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제 좀 심심하겠어요. 유시민이 사퇴해 버려서...6시 46분”, “점집 차리셔야겠어요. 7시 7분 ○○○기자”, “각본대로 되어 가네요. 돗자리 까세요. 7시 57분”. 거의 10분 차이로 승리의 소식과 유시민의 사퇴를 알리는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유시민 말 바꾸기가 하늘을 찌른다. 나 원참~

그런데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면숙후보가 단일화했지만 이해찬후보에게 표가 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의 표가 이해찬후보에게 가지 않는다. 일단 제주 울산을 제외하고는 유시민이 모아 놓은 표가 없다. 예비경선 후 이해찬(14.37%), 유시민(10.14%), 한명숙(9.42%)을 모두 합치면(33.93%) 손학규(24.75%)도 이기고 정동영(24.46%)도 이긴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것은 잘못된 산수이다. 

 그것도 나의 예언을 100% 적중시키며 이미 예측한대로 이해찬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예측했기에 별로 놀라거나 당황스럽지는 않다. 나는 일찍이 아무도 그의 출마를 점치지 못할 때 그의 출마를 99.9% 기정사실화했다. 다음은 그의 증거인 나의 예언록이다. 

<나는 유장관이 99.9%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 그의 행적을 보았을 때 ‘안 한다면 하고, 한다고 하면 안 했기 때문’이다. 그가 첫 번째 국회의원이 될 때 당시 민주당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결국 민주당 후보의 불출마로 당선되었다. 기간당원제가 목표지 당의장은 절대 안 나간다 했다가 기필코 나왔다. 참 손바닥도 가볍다. 

지금 대선출마를 절대 안 한다고 하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 확신한다. 참으로 거꾸로 생각하면 예측 가능한 정치인이다. 따라서 솔직하게 대선에 출마하고 활동하면 된다고 본다. 대통령만 팔지 않는다면....유시민 자체가 대단하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노무현'이 오버랩 되는 것이 문제라서 그렇다.>(5월 14일 청래 칼럼中에서)

 
그런데 이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제 그는 친노(親盧)를 할 이유가 없다. 친노(親盧)를 이용해 빼먹을 단물이 이제 없어졌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또 예언한다. 그는 99.9% 반노(反盧)의 길을 갈 것이다. 두고 보시라 그가 얼마나 찬란하게 얼마나 비정하게 반노(反盧)의 길을 걸어가는지.....>(8월6일 청래칼럼中) 

나의 이 예언은 또 100% 적중했다. ‘나는 절대로 친노후보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노무현 주식회사 간부였는데 지금부터는 유시민 주식회사 대표이다.’며 노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나라당 이명박을 고소한 대통령의 정치행위에 대해 양비양시론으로 응수했다. 결국 노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양보하라는 말로 했지만 이는 사실상 ‘노대통령이 틀렸다.’며 노대통령을 공격하기까지 한 것이다. 
 앞서 말한 우리는 이미 사무실을 얻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지역구 전환이 가능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상근자 30여명과 함께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위해 사무실을 빌려달라는 그에게 우리 사무실 한쪽을 기꺼이 내주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노무현 일병구하기 지지선언이 끝나고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인터넷 정당의 개념을 도둑질해 갔다. 명계남도 나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가 ‘인터넷 정당을 하겠다.’는 선언을 접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는 나중에 원래 자신이 긴 시간 준비해 온 것이라 변명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인터넷 정당 팀의 허* 없이 컨셉을 훔쳐가 사고를 쳤으나 인터넷 사이트는 준비하기 어려웠다 보다. 며칠 후 그는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인터넷 정정당당 사이트(http://www.cybercorea.org 이 사이트는2003년 국민의 힘으로 사용했다.)를 빌려 달라는 것이 아닌가? 

참 낯도 두껍다. 인터넷 정당 개념을 절도해 가더니 이제 그 사이트까지 빌려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 우리 팀은 회의 끝에 거절하고 대선을 앞두고 시끄럽게 적전분열 할 수 없으니 우리가 꿈꾸었던 인터넷 정당을 접고 유권자 운동을 했다.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 찍어라.’는 구호를 걸고 ‘대학교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운동’으로 전환해 활동했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 뱃지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이렇게 나와 그는 2002년 그의 절도행각으로 인한 악연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그의 2003년 그의 보궐선거를 정말 열심히 도왔다. 지금 그의 비서로 근무하는 친구와 문성근 선배 그리고 내가 3인 1조가 되어 아침 10시부터 밥 10시까지 막판 사흘 밤낮없이 뛰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당시 민주당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그가 속으로는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정동영에게 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 삼고초려를 했다. ‘도와주면 2007년 업고 다니면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은 오늘 어떻게 되었는가? 배은망덕으로 갚고 있지 않은가? 참 의리 운운하는데 유시민 정말 고약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