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록.

한국 선거 역사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면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호남 기업들이 영남 기업들의 제품을 거부해서 영남 기업들이 문제가 생겼다"


이 문구는 1071년 대선 이틀 전에 당시 공화당 박정희 후보 진영에서 뿌렸던 흑색 선전이다. (feat. 문재인의 자서전에 있던 자기 아버지가 호남 상인들에게 어쩌구 저쩌구...는 이 흑색선전 문구의 구조와 동일하다는 것은 양념)


그리고 이 흑색선전의 문구는 엄창록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창록.


그는 원래 DJ의 인물이었다. 그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엄창록이 없었다면 무명이었던 DJ가 정계에 진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하니 그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엄창록은 선거에 관한 한 제갈공명과 같다....라는 평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만일, 1971년 대선 직전에 그가 당시 안기부에 납치 당해서 공화당에 투항하지 않았다면(다른 주장은 회유에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다만) 1971년 대선에서는 DJ가 승리했을 것이라고 하니 그는 선거 전략에 관한 한 대한민국 넘버원이라고 할 수 있다.


DJ에 대한 비방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엄창록의 선거전략에 기인한다. 흑색선전이라고 불리는 이 선거전은 당시 금권을 쥐고 있던 여당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는 변명 아닌 변명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비군 발언 관련하여 DJ는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박정희는 DJ의 예비군 발언을 재빠르게 정책에 반영하여, 그 것도 두번, 지지율을 높인 것처럼 실제 엄창록 때문에 DJ는 비방을 썼고 실제 수혜자는 박정희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여담이지만, DJ의 예비군 제도 철폐 제도가 실시되었다면 당시 지주들 위주의 호남보다는 영세농이 많았던 영남이 더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재빠르게 DJ의 발언을 정책에 반영한 이유이기도 하고.)



엄창록.


선거 판의 제갈공명은 그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 제도로 인해 대통령 선거가 없어진 선거판에서 잊혀진 이름이 되어간다. 대선을 좌우하던 인물이 한갖 국회의원 선거 판에서 활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엄창록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 것은 1987년 대선을 앞둔 당시 민정당 대선 후보 노태우 캠프.


노태우 후보는 엄창록에게 대선 판도에 대하여 물었고 그런 노태우에게 엄창록은 흥미없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미 두 후보를 갈라놓았으니 뭘 더 말씀드릴까요?"



엄창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이후의 기록들은 살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연령을 헤아려보면 죽었을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 만일 그가 살아있어서 박근혜가 그를 불러서 현 정국과 내년 대선의 판도를 물어보았다면 엄창록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내가 선거 예측을 감히 엄창록에 비교나 할 깜냥이겠느냐마는 현 정국과 내년 대선 판도를 예측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다.


"문재인은 박근혜가 즉시 하야를 하거나 우여곡절 끝에 임기를 마쳐도 대선에 당선되지는 않을 것"


나의 이런 예측의 근거들 중 하나는 지난 2012년 1월, 문재인의 지지율이, 2011년 말의 49%에서 52%까지 계속 유지되었음에도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함량 미달과 팀킬로 인하여 안철수 현상을 등에 입었음에도 결국 대선에서 패배했던 사실에 기인한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