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무실에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고 자신의 시집을 판매한 노영민 의원께서 호남에 대해서 한말씀 하셨습니다.

요지는 간단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 때문에, 호남 정치인들이 징징거리는 바람에 호남에 전체 유세일정의 3분의 1을 배정하는 바람에 수도권 등 가야할 곳에 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호남 때문에 이겨야 할 대선에서 패배했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857

친노 노영민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내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친노 친문 진영이 호남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알려주는 예고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0대 총선을 계기로 호남과 문재인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멀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현지의 얘기를 들어봐도, 표면적인 여론조사 지지율 등과 무관하게 반문재인 정서가 호남에서 아주 강고하게 자리잡은 것 같더군요.

이건 더민당 친노나 문재인에게 단순히 호남 유권자들의 표를 얼마나 얻느냐 하는 득표 계산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즉, 김대중과 정통 민주당 등 호남 정치인들의 피땀으로 쌓아올린 정치적 상징자산을 야비한 수법(대북송금특검, 민주당 분당, 대연정 제안)으로 도둑질해간 친노들의 입장에서 이른바 정통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친노들이 호남 정치를 토호, 부패, 구태 세력으로 몰아가면서도 김대중과 호남의 상징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은, 자기네 정치의 정당성과 명분의 근거가 사실은 김대중을 비롯한 호남 정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과 호남 정치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순간 자기들이 발딛고 선 정치적 명분과 상징자산도 위력을 잃을 것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문재인이 지난 총선 때 '내가 호남을 차별했다고 하는 얘기는 나의 존재를 뿌리채 부인하는 아픔' 운운했던 것도 바로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내뱉은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이 문재인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호남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순간, 호남은 문재인과 친노의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무기가 됩니다. 이럴 때 친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호남 정치 자체를 공격해서 완전히 짓밟아 괴멸시키는 것입니다. 최소한으로 유지해왔던 호남 정치에 대한 존중 등 립서비스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 신호탄, 예고편이 바로 최근 노영민의 발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호남, 지겨운 놈들! 저놈들 때문에 다 잡은 정권을 놓쳤어! 호남은 정권교체의 동지가 아니라 가장 먼저 쓰러트려야 할 적군"이라는 게 노영민 발언에 담긴 핵심 메시지입니다.

지난 총선 직후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세상이 87년의 정치를 뛰어넘고자 하고 지역주의의 덫에서 벗어났는데 호남만이 다시 지역주의의 늪에 빠진 것'이라며 '호남의 선택은 호남 기득권 정치가 드러낸 마지막 지역주의의 몸부림'이며 '문 전 대표는 구태에 갇힌 호남의 선택보다 새로운 세대의 호남정치와 변화를 요구하는 수도권의 민의, 그리고 영남의 변화를 훨씬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조대엽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진영 담쟁이캠프에도 몸 담았고, 얼마 전에는 문재인 대선 운동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부소장을 맡았습니다. 문재인 진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조대엽의 발언과 이번 노영민의 발언이 공유하는 코드를 유심히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호남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결론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난 총선 영남 지역에서 더민당 지지율이 상승한 것도 문재인과 친노 진영의 이런 판단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더민당에서 호남 색깔이 빠진 그만큼' 영남 유권자들이 지지해주더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친 한 분이 노영민 발언의 팩트가 정확하지 않다는 제보를 해오셨습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문재인의 유세 일정에서 호남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페친이 보내주신 문재인 대선 유세일정을 올립니다.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유세 일정>
11.28(수) 대전→세종→당진→아산→천안
11.29(목) 여수→순천→광양→사천→진주→김해
11.30(금) 울산→포항→경산→대구
12.01(토) 춘천→원주→제천→충주
12.02(일) 서울→인천→부천
12.03(월) 서울
12.04(화) 서울 (TV토론)
12.05(수) 서울
12.06(목) 서울→고양→의정부→성남→수원
12.07(금) 제주→부산
12.08(토) 부산→서울
12.09(일) 군포
12.10(월) 서울 (TV토론)
12.11(화) 고양→의정부→성남→안양→광명→안산→부평
12.12(수) 청주→공주→보령→서산→평택
12.13(목) 대전→논산→군산→전주→광주
12.14(금) 거제→창원→울산→양산→부산
12.15(토) 서울
12.16(일) 서울→인천→고양 (TV토론)
12.17(월) 서울→인천→김포→파주→구리→용인→화성
12.18(화) 서울→천안→대전→대구→부산

위 자료를 보면, 21일의 일정 가운데 문재인이 호남에 간 것은 11월 29일과 12월 13일 이틀뿐입니다. 그것도 호남만 간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 일정도 포함한 것입니다. 반면 영남 지방에 간 것은 모두 6일입니다. 호남의 3배입니다. 도대체 전체 일정의 3분의 1을 호남에 낭비(?)해야 했다고 노영민이 주장한 근거가 뭔지 궁금합니다.

심리적인 부담이나 짜증 등 주관적인 요소를 이 문제에 대입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조까튼 것들, 졸라 보기싫고 가기도 싫은데 와 달라고 징징대네" 이런 심리가 문재인 캠프 저변에 깔려있었다면 21일 가운데 단 이틀 호남에 들른 것도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노영민의 발언은 문재인 진영의 또다른 분위기도 보여줍니다. 정의당 5인방으로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유시민, 진중권 등을 거론하며 '우리당 후보 중에서 우리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문재인 뿐'이라며 "문재인 아니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 전 김종인이 "문재인이 완전 좌파로 당을 구성했다"고 한 얘기와 맥락이 이어집니다. 국회의 탄핵의결 이후 문재인이 거의 점령군, 혁명 구호 같은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과 친노의 이런 정체성을 잘 모르는 국민들, 호남 시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저는 지난 총선 후 호남의 상황을 '이념적 내전 중'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친노 좌파와의 이 이념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호남도 대한민국도 다같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