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서 헬기 기총 소사는 있었는가?

                                                  


                                                              2018.02.12


지난 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특조위 발표문 그 어디에도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나는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실제와 다르게 미화하거나,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며 시민군의 무장을 정당화하고 계엄군의 잔학성을 부각하는 것도 반대한다. 그리고 이제 5.18도 객관적 실체를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들만 보여주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국방부 5.18 특조위의 발표는 일편향되었고,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한 일방을 위해 다른 일방을 악마화 하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본다.

먼저 국방부 특조위의 발표문을 보자. 

http://www.korea.kr/policy/societyView.do?newsId=148847816&call_from=naver_news

이 발표문을 보면 당시 헬기 조종사가 코브라 헬기에 발칸포 탄알을 싣고 출동했다는 진술과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나오지만, 헬기에서 발칸포를 쐈다는 증언이나 기록은 없다. 위 발표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조사보고서에는 당시 헬기 조종사들 모두 기총소사를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고 나온다.

문민 정부가 들어서고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도 5.18 조사를 3차례 했지만 모두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확인되었다. 그런데 2016년 8월, 전일빌딩 10층에서 기관총 탄흔이 발견되었다며 다시 5.18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2016년 8월 당시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해 썼던 글을 이 글의 말미에 덧붙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나는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헬기 기총 소사가 이루어지면 그 위력은 대단하다. 만약 기총소사가 있었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고, 기총소사에 의한 피해는 M16에 의한 것보다 막대해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는 증언들은 죄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헬기 기관총에 의해 사망했거나 부상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다음으로 내가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다고 보는 이유는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측이 내놓는 증거들이 한결 같이 헬기 기총소사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5.18 단체들은 전일 빌딩의 유리창의 구멍이 헬기 기총 소사의 증거라고 드는데 웃음만 나온다. 아래에 광주의 윤장현 시장 주도로 조사한 보고서를 소개한 글(전남조은뉴스)을 링크한다. 이 글의 말미 즈음에 나오는 헬기 기총소사로 전일 빌딩 유리창에 구멍 뚫렸다는 증언과 전화 부스에 구멍이 뚫린 사진(문8)을 보기 바란다.

http://blog.naver.com/inhyangin?Redirect=Log&logNo=221006706473 

그리고 아래에 링크하는 코브라 헬기의 발칸포 발사 시연 동영상도 보기 바란다.

http://www.pandora.tv/view/ardor/38129/#undefined_new

헬기 기관총(발칸포)은 분당 6천발이 나가고, 탄환 직경은 7.62mm 이상이다. 코브라 헬기에서 전일빌딩 10층을 향해 발칸포를 발사했다면 그 유리창은 어떻게 되겠는가? 발칸포에 의한 사격이 유리창에 이루어지면 구멍만 뚫릴까? 위 발칸포 발사 시연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발칸포는 분당 6천발이 나가는데 유리창이 구멍만 뚫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유리창 전체가 내려앉고 탄착된 지점은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M16이나 카빈총의 총알이 뚫고 간 유리창 구멍을 헬기의 발칸포 사격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주어야 하나?

2016년 8월에 전일빌딩에서 발견했다는 탄흔이라는 것도 헬기의 기총소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얼굴에 곰보 자국 내듯 난 탄흔이 발칸포 흔적이라 볼 수 있을까? 발칸포로 전일빌딩 외벽을 쏘았다면 저런 흔적을 남길 수는 없다.

국과수가 헬기 기총소사라고 확인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일단 국과수 발표 내용 자체가 과학적이지 않다. 헬기 기관총 탄흔이든지, 아니면 M16이나  칼빈 소총 탄흔이라고 해야 하는데, 헬기 기관총 탄흔일 수도 있고 소총 탄흔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국과수가 진짜 이런 식으로 발표했는지, 아니면 5.18 단체나 국방부 특조위가 국과수 발표를 왜곡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국과수 발표도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전일빌딩의 탄흔이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간단하다. 전일빌딩 외벽과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코브라 헬기 발칸포를 쏘아서 그 탄흔과 전일 빌딩의 탄흔과 대조 비교해 보면 된다. 국방부 특조위는 이 간단한 확인 방법을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전남조은뉴스를 인용한 글을 보면 얼마나 5.18 단체나 광주시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추정 혹은 단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문1~문9의 각 문항마다 서두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적어 놓고는 있지만, 그냥 자신들의 믿음이나 바램을 담은 주장에 불과할 뿐이고, 그 뒤에 증거라고 써 놓은 것들을 보면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내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 발표문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조위는 5월 21일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은 5월 22일 103항공대장 이OO 등 조종사 4명이 코브라 헬기 2대에 발칸포 500발씩을 싣고 광주로 향했다는 진술이다. 그리고는 특조위는 5월 21일 헬기 사격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며, 5월 21일에 비무장 상태의 시민들에게 헬기 사격한 것은 무차별적이며 비인도적인 것으로 계엄군의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헬기 사격은 5월 21일에 있었다면서 그 근거는 103 항공대의 5월 22일 코브라 헬기의 광주 출격이라니...   5월 22일에 발칸 탄환 각 500발을 싣은 코브라 헬기 2대는 타임머신처럼 5월 21일로 돌아가 비무장 광주시민을 발칸포로 쏘았다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전남조은뉴스에 나오는 당시 항공단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서를 보더라도 5월 21에는 헬기가 무장했다는 진술은 없고 지상으로부터 헬기가 대공사격을 받아 철수했고, 5월 22일부터 헬기의 무장이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또 헬기 조종사 중에 기총소사를 했다는 진술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무장도 하지 않은 헬기가 어떻게 5월 21일 비무장의 시민들에게 기총소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국방부 특조위의 발표가 얼마나 엉터리였으면 SBS마저 부실한 국방부 특조위 조사를 깠겠는가? 국방부 특조위는 3군 합동작전으로 진압작전을 펼쳤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SBS는 보도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14233

해병대가 5.18 진압작전에 동원된 적도 없으며 함정들도 동원되지 않은 것이 fact인데도 특조위는 해병대와 함정이 동원되어 3군 합동작전을 펼쳤다고 결론을 내렸다. 5.18 특조위는 계엄사가 시민군 도주를 막기 위해 해군 309편대를 출항시켜 해상봉쇄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당시에 309편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5.18 특조위는 해병 33대대의 광주 진입계획도 확인했다고 하지만, 출동명령서도 없으며 당시 33대대장에게 확인조차 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몇 개월 째 옛 광주교도소에 암매장되어 있다는 시신을 발굴한다고 광주교도소 마당과 그 뒷산을 파헤쳐 뒤집고 있지만, 단 한 구의 시신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언제까지 이런 짓을 계속해야 하는가?

확인도 안 된 소문을 사실처럼 단정해서 발표하고, 없었던 것을 부풀려 인위적으로 불행을 증폭하려는 이유가 무얼까?

이제 5.18을 다시 소환하여 5.18을 과장하려는 것에 어떤 저의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굳이 없었던 계엄군의 잔혹성을 만드려 내는 것에 환멸마저 느낀다. 무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진압에 투입된 계엄군도 시대의 희생자일 뿐인데 왜 그들을 악마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가?

5.18이 더 이상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5.18 단체나 유족, 그리고 광주시민들이 막아야 한다. 5.18에 희생된 분들의 숭고한 뜻을 위해서도 5.18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제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5.18도 38년이 되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여전히 한으로 남고 뼈에 사무치는 기억일 테지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기 위해 이젠 역사의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이 어떨까?

말초적 증오와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를 위한 준비를 하고, 5.18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 모두 새길 수 있도록 차분히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함이 어떨까 생각한다.

나찌당의 본거지였던 뮌휀의 쾨히니 광장 자리에는 지금 미술가 ‘카스트너’의 <풀은 역사 위에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작품이 있다. 1933년 나찌가 퇴폐적이라고 낙인 찍은 작가들의 책들을 불살랐던 광장에 ‘카스트너’가 그 자리를 불 살라 재로 만든 후 어떻게 풀이 자라는지를 관찰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5.18을 기억하면 어떨까?

과거를 상기하고 잊지 않도록 하되, 미래 세대가 그 의미를 찬찬히, 그리고 되씹게 하는 것이 5.18을 후세에게 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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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8월에 썼던 글의 일부를 참고로 그대로 복사해 올린다.


다음은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5.18 관련하여 1980년 5.18 당시, 1985년,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1995년,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총 5차례에 걸쳐 검찰, 국방부, 국회의 조사가 있었습니다만, 조사보고서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하고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중에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부정축재 및 5.18의 주범으로 처벌하려 할 때 검찰과 국방부가 합동으로 5.18에 대해 재수사한 조사 보고서(‘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검찰부 1995년 7월 18일 작성) 중에 헬기 기총 소사에 대한 부분을 발췌에 아래에 올려 보겠습니다.

*아래에 1995년 검찰과 국방부가 합동 수사한 조사보고서를 링크합니다.

http://m.blog.naver.com/codevvip/120210831234


헬기 기총 소사 여부 : P207~210

당시 육군항공단 근무 관계자들은 .... 그러한 사격을 실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군 관계자료상으로는 실제 공중 사격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재를 발견할 수 없음.

이광영이 헬기 사격으로 여학생이 어깨 부위를 피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적십자병원으로 후송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당시 적십자병원의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그 당시 헬기 사격 피해자가 내원하였음을 확인할 수 없었고,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 피해자라고 지목한 홍란은 검찰조사에서 건물 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 사격에 의하여 다쳤다고 진술했으며.

정낙평은 광주경찰서 상공에서 기종 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을 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부근 진주다방의 종업원이 옥상에서 헬기가 쏜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이 심동선에 대한 검시조서에 의하면 사인이 M16 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이고, 당시 건물 옥상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의한 피격이라는 증언(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714쪽)도 있으며,

아놀드 피터슨 목사는 헬기가 선회하고 상공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 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 사격 자체는 목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동인이 사격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검찰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 사격시 발생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부착된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되었고,

그 밖의 목격자들도 막연하게 헬기에서 사격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일 뿐, 달리 구체적으로 피해사실을 진술하지 못하고 있는 바,

광주시내 적십자병원, 기독병원, 전남대학병원의 당시 각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 보아도 그 당시 각 병원에서 헬기 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내원하였거나 입원, 치료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 165명에 대한 광주지방검찰청 사체 검시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 기총 사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

또한 (중략) 7.62밀리 6열 기관총(분당 2천~4천발 발사)에 의한 표적 사격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의 인명 피해와 뚜렷한 피탄 흔적, 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중략) 실제 다른 사례에 비해 광주지역에서 유류나 탄약을 많이 소모했다는 것이 아닌 점에 비추어 헬기 장착 무기에 의한 사격으로 인명 피해를 야기한 사실은 인정할 수 없음. 


위와 같은 1995년 검찰과 국방부의 수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5.18 당시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증언이나 루머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전일빌딩 10층 외벽에 헬기 기관총 사격에 의한 탄흔이 발견되었고, 국과수에서도 헬기 기관총 탄흔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기사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면 어설픈 곳이 많아 기사의 신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http://sports.khan.co.kr/culture/sk_index.html?art_id=201701121832003&sec_id=560901&pt=nv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8/0200000000AKR20170718105800054.HTML?input=1195m

이 기사는 아래와 같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1) "구경 5.56mm 또는 구경 0.3인치(7.62mm) 탄환에 의한 탄흔 추정"이라는 문장에서 "또는"는 무얼 말하나요? 둘이 동시에 다 발견되었다는 것인가요? 5.56mm인지 0.3인치인지 잘 모르겠으나 한 종류의 탄흔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까? 통상 "또는"의 의미는 “이 중에 하나”라는 뜻임으로 5.56mm가 아니면 0.3인치라는 것인데 국과수가 감정을 했다면서 탄흔 구경을 제대로 확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 당시 헬기에 무장된 기관단총은 5.56mm 구경 탄환을 쓰지 않았습니다. 5.56mm는 소총의 탄환 구경입니다. 만약 저 탄흔이 헬기 기총 소사에 의한 것이라면 0.3인치(7.62mm)의 탄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과수나 광주시는 왜 5.56mm를 언급하지요? 도대체 발견된 탄흔의 구경은 얼마입니까?


3) 경향신문은 헬기가 10층 높이에서 호버링하면서 기총소사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면 경향신문 주장대로 헬기는 적어도 10층 높이나 그 이하의 높이까지 하강해서 사격을 했어야 합니다.

외벽 기둥 탄흔을 보니 천정 가까이에 흔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기사에서도 천정에도 탄흔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10층 높이 이하 까지 내려와 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천정에 탄흔이 있다는 것은 밑에서 위를 보고 쏘았다는 뜻이 되는데 헬기가 얼마만큼 하강해서 밑에서 위로 쏘아야 천정에 탄흔을 남길 수 있을까요? 헬기에서 아래에서 위로 사격을 할 경우 프로펠러를 맞힐 위험이 있는데 헬기 기총 소사를 할 때 밑에서 위로 쏘는 경우가 흔합니까?

그런데 헬기가 10층(약 30m) 이하 높이까지 내려오면 무장한 시민군에 의해 피격될 위험이 매우 높은데 그렇게까지 아래로 내려와 비행했을까요? 그리고 그 정도까지 아래로 내려와 헬기가 비행했다면 이를 목격한 사람이 있을 텐데 이 정도로 하강해 기총소사를 했다는 증언은 왜 없습니까.


4) 기총 소사 흔적이 37년만에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전일빌딩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시 격렬한 현장에 있었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광주가 어떤 지역인가요? 그런데 이제 와서 헬기 기총 소사 탄흔을 발견했다구요? 사진을 보면 쉽게 눈에 띄는데 37년만에 발견? 내부에도 150발이 발견되었는데 10층 사무실은 37년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 동안 검찰, 국방부가 수차례 5.18 관련 수사를 했는데 왜 이를 발견하지 못했고, 광주시민들은 검찰과 국방부 수사 때에 제보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5)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언젠가 궐기대회를 하고 있을 때, 웬 사람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내려다 봤다. ....우리는 그 주변에 있다가 전일빌딩 옥상으로 총격을 가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이 말은 시민군이 전일빌딩 옥상을 향해 총을 쐈다는 이야기이며, 시민군들에 의한 총격 흔적은 전일빌딩 10층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총을 쐈으니 옥상 위에 탄흔이 있는 것이 아니라 10층 외벽과 기둥, 천정에 흔적이 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기록상으로는 시민군에 의한 전일빌딩 10층 총격 사실이 있음으로 전일빌딩 10층 외벽, 기둥, 천정의 탄흔은 헬기 기총 사격이 아니라 시민군의 소총 사격의 흔적이라고 봐야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만약 저 탄흔이 헬기 기총 사격에 의한 것이라면 시민군에 의한 소총 사격 탄흔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6) 외벽에 나타난 탄흔 흔적은 구경이 크고 화력이 소총보다 훨씬 큰 헬기에 장착한 기관단총 흔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사진상에 나와 있는 상태는 여드름 자국이나 곰보 자국 수준인데 기총 소사에 의해 저 정도의 흔적 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또 기관단총은 분당 2천발에서 4천발이 발사되는데 탄착점이 저렇게 듬성듬성 생기는 것도 이상하고 탄흔이 150여발 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7) 기사를 보면 탄흔은 있지만 모두 도탄했는지 탄알이 박힌 것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힌 탄알이 있었다면 국과수가 정확하게 어떤 화기에서 발사된 것인지 분명히 알아 구경을 확정하지 못하고  “5.62mm 또는 0.3인치”라는 표현을 썼을 리 만무하죠.

박힌 탄환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화력이 약했다는 뜻입니다. 특히 천정이라면 석고 보드로 되어 있어 기관단총의 총격을 받았다면 천정이 박살이 나고 탄환은 석고보도를 뚫고 천정 콘크리트에 박히거나 큰 탄흔을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정의 탄흔 사진은 어느 언론사도, 광주시나 5.18단체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심하게 훼손된 천정이라면 헬기 기총소사의 흔적이라고 증명하기 더 좋을 텐데 왜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