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을 잘 잘수가 없다. 불면증이다.

대통령의 파면이 방송되는 순간 주변의 환호를 들으며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양심상 동의할 수 없는 판결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그들의 사고회로와 나의 그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판결을 들으며 환호하는 걸까?

나는 우파 자유주의자이고 세상을 이렇게 본다.

인간의 유한한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류의 발전에 유용하게 사용하려면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가 어떤일을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은 우리를 더욱 잘살게 할 것이며 누군가의 실패는 인류의 경험으로 축적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 하다. 자유라는 미명하에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조차 용인된다면 동물들의 삶과 다른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법이 법, 즉 정의로운 규칙(Rule of justice)에 따라 자유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준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법치주의이다.

물론 여기서 얘기하는 정의의 규칙으로서의 법은 인류가 자생적인 질서(Spontaneous order)를 자연스럽게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성, 법이 달성하고자하는 구체적인 목표나 동기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추상성, 행동규칙으로서의 확실성을 갖춘 법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무수히 만들어지고 있는 해괴한 법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일정금액 이상으로 싸게 팔지 못하게 하거나, 레미제라블에서 딸을 키우기 위해 몸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창녀 판틴을 구속시켜야 마땅하다는 성매매특별법 등을 모두 정의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금번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사실관계, 언론보도 과정에서의 확대재생산,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 등의 전 과정이 정의로운 규칙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의무를 방기했다. 아니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앞장서서 정의의 규칙과 법치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우선, 헌재는 사실관계를 왜곡한 거짓말을 결정문에 썼거나 사실관계의 파악이라는 재판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는데 소홀했다.소추의결 당시 토론을 원하는 의원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결정문은 김진태 의원의 기자회견으로 거짓임이 판명되었으며, 케이디코퍼레이션에 대한 혐의도 해당 기업들의 보도자료 등을 보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종창 기자의 고발장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71631&C_CC=AZ을 보면 헌재의 거짓말과 사실관계 파악 미흡의 범죄행위를 상세히 알 수 있다.

두번째, 탄핵소추안의 국회표결 절차는 국회법을 어기지 않았으므로 국회의 자율권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법조문에만 위배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형식적인 법치주의'의 전형이다.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정의의 원칙과 대한민국 헌법 원리에 국회법이 부합하는지를 따져보는 '실질적인 법치'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다. 만약 이들에게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판결하라고 하면 어떤 판결을 내릴까? 나치의 학살도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시행되었으므로 합헌이라고 판결하지 않을까?

세번째, 대통령이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헌재의 주장은 타당하다. 대통령이라도 강제로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정의로운 규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의 기금 출연과 작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해서 기업들에게서 1조를 출연하겠다는 농어촌상생기금과 이전 대통령들의 모금 행위와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다.

국회의 입법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마음대로 기업들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해도 괜찮지만 법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나선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두가지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주도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역사, 국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재산권 침해와의 비교 판단 등 부연설명이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다.

농어촌 상생기금법이 기업들의 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헌법소원이라도 해서 헌재가 무슨 변명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언론의 보도를 사실로 인정하고 혼란스러운 여론에 굴복함으로써 법치를 지키기는 커녕 목소리 큰 다수 대중에 의한 지배, 즉, 여론정치, 광장정치를 승인해 버렸다.

결정문 초반에 언급한 사건의 발단은 조선과 JTBC의 보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피청구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다.'는 표현과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다는 표현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결정문에는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였는데 이 결정문에는 그런 친절함도 사라져버렸다.

대중은 쉽게 흥분해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광우병, 한미FTA, 메르스사태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으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틀릴 가능성도 매우 높다.이러한 민주주의의 태생적인 한계를 보완해주는 원칙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흥분한 대중을 설득할 책무는 정치인과 언론 등에도 있지만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존재들이므로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법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나라의 명운을 구하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역사가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소명일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사실관계 호도, 논리적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고 여론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고 있으며 본인들이 수호해야할 헌법을 제왕적대통령제라고 모욕하는 듯한 판결문을 내놓고 국민들의 승복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 지성들의 수준이란 말인가?

헌법재판소는 흥분한 촛불대중에 아부하는 혁명재판소로 전락했다.

재판관들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우중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지키는 전선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편은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국회도, 지식인들도 모두 항복을 선언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낙동강 전선까지 몰려있다.

법치를 수호하고자하는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생즉사사즉생의 각오로 싸우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전쟁에 지면 바다에 빠져 죽으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