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학규가 난데없이 굴러 들어와서 전례 없는 땡깡을 부리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누가 봐도 너무할 지경. 봐줄 만큼 봐줬는데도, 당에 대한 기여 하나 없이 경선룰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들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상당히 불합리하고 불만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기에 불합리한 건을 안철수가 받아야만 다음 수가 생깁니다.

손학규를 통해서 경선 흥행하고, 경기도 표심 얻어내고, 개헌 연대 발 들이고 모 이런거 때문 아닙니다.

그냥 딱 한가지 호남 민심 잡기 위해서 입니다. 

(전 비호남인이기 때문에, 이하 내용은 제 관측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혀 딴소리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안철수가 버텨서 손학규를 탈당 시킬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손학규 나가봤자, 손학규 본인이 뭐 대단한 수가 생기느냐 그런거 아닙니다. 그냥 만덕산 토굴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김종인 옆에 가봤자, 유승민 옆에 가봤자 지금 국민의당에서 대접받는 거 10분지 1도 못받습니다.  

근데 손학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모두에게 아웃오브 안중) 지금 천정배 까지 대선후보 포기한 마당에 그럼 국민의당 경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박지원이 억지로 박주선 의원 데려다가 급히 스파링 파트너 시켜주는 모양새 만들고 있습니다만... 그냥 안철수 추대 비슷하게 흘러갈 겁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 

안철수는 호남 지지를 온전히 받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안철수가 호남 지지를 온전히 받지 못하게 되면 

대선 승리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지게 됩니다.

제1야당이라는 자산을 들고 있는 문재인은 '호남이 지지 거두면 은퇴하겠다' 이걸 협박처럼 하고, 그걸 뭉개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호남 기반하고 있는 제2야당 국민의당 안철수는 호남이 지지 거두면 은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손학규가 대놓고 땡깡 부리는데, 박지원이 쩔쩔매는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손학규가 강하게 나올 수 있는 기반에는, 호남에 있는 '반 안철수' 혹은 '안철수에 대한 우려'를 파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지지자들이 '호남 중진'이 "안철수가 만든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배신한다라고 화를 내고 있겠지만, 그 호남 중진들이 그냥 개인적으로 감정만으로 안철수 고깝게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광주,전남,전북 지역 주민들중에서 안철수에 대해서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을 저 중진들이 대신 받아서 표출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껏 안철수가 창당 멤버이자, 유일한 중량급 대선주자라고 떠받들다 준다고 고깝게 봤는데, 손학규 들어온걸 가지고 지렛대를 삼아 안철수를 시험해 보고 싶은 겁니다. 

제가 보기엔, 박지원 대표가 마음대로 손학규 쫒아내거나,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는 데는 호남지역 민심 한편에 이런 기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손학규 나가고 경선 파토나고, 안철수가 그냥 추대되면, 지금 안철수 고깝게 보는 호남지역 사람들은 '국민의당 볼것도 없이 그냥 안철수 사당이네. ' 하고 돌아서 버릴 겁니다. 

제 생각엔 차라리 안철수가 백기들고 "불합리 하더라도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게 낫습니다.

오너쉽 관계가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의 안철수가 되도록 말입니다.

국민의당의 헤게모니는 당을 만든 안철수가 아니라, 당에 표를 가장 많이 준 호남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걸 선언하는 셈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다음 수가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4. 호남이 단순히 문재인 미워서 그냥 안철수 찍어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문재인이 대북송금특검하고, 열린우리당시절 호남 배신하고, 얼마전에도 또 그짓말 하고 김홍걸 데리고 다니면서 호남 모욕주고... 그래서 문재인 말고 안철수 찍을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안철수 측 인사들이나 지지자들은 호남지역이 안철수에 올인할 때 생기는 리스크를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호남이 안철수에게 올인하려면 아주 커다란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 안철수에게 올인해서 안철수가 극적으로 이겼는데, 안철수가 호남은 '타고온 뗏목' 취급할 경우.

열린우리당 시즌 2 처럼 되는 경우 말입니다.  정권 잡았더니 자기 주변에 깜도 안되는 인간들 -- 안철수 캠프 시절부터 붙어있는 어중이떠중이들 -- 이나 중도 표 넓힌다고 합류 시킨 아무나들 (이상돈)이나 챙겨줘고, 호남출신들은 그냥 꿔다놓은 보리자루 취급 내지는 빈밥공기만 주는거 아니냐 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새정연 시절이나 아니면 국민의당 시절이나, 안철수가 과연 호남에서의 지지를 다지기 위해 뭔가 스킨쉽을 넓힌 적이 있습니까? 호남 지역 정치인들을 내세운다거나 같이 움직이는 경우를 잘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보단 원내대표나 당대표에서 호남의원들 나오기만 해도 "호남당 되면 안된다."하면서 결사 반대하고, 자기 측근들에게만 포스트를 주려는 듯한 모습이 비치니 이런 의심이 안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건 또 표만 홀랑 가져다 바치고 대통령 되면 호남 무시하고  튀어 버리는 열린우리당 마크2 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보인단 말입니다. 

자기 지지 계층의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인은 결코 좋은 소리 들을 수 없다는 데 다들 동의할겁니다.

근데  자기 지지 지역의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인은 왜 '그 지지지역에 갇히지 않는 훌륭한 전국 정치인'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2) 안철수에게 올인했지만, 안철수가 지는 경우. 

사실은 이게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1)보다 100배는 더 심각합니다.

2007년대선에서 호남은 반이명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당이던 대통합민주당의 정동영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인기가 없던 참여정부의 후보로 인식된 정동영은 커다른 표차로 (이회창도 같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패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명박 안찍은 유일한 지역이 호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선후보 결과에서 호남지역만 색갈 다르다고 무지하게 갈궈대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호남지역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롱과 멸시가 생겨난 것도, 홍어드립이 창궐한것도 그때 부터 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오프라인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뒤에서 씹는정도였다면, 이때부터는 이게 공공연해 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반이명박으로 지금 야권을 대표하는 후보에 올인했음에도 그 모양이었습니다.

만약 이번에 안철수에게 올인했는데, 안철수가 져버리면? 그리고 문재인이 대선 되면?


그때 호남에 쏟아질 비난과 조롱과 멸시의 양이 얼마가 될지 상상이 가십니까?

벌써부터 문재인 대선 예약이라고, "안철수에게 표 가져다 받친 호남 반성해라" 소리 여기저기서 슬슬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안철수는 대선 떨어져서 정계 은퇴해도 사는데 큰 지장 없습니다.

지금 라이트한 안철수 지지자들이야 기분좀 나쁘고 술이나 먹고 몇년간 정치 관심 끊으면 될겁니다.

근데 호남 사람들은? 김대중 시절부터 멸시받고, 노무현때 배신당하고, 이명박 이후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쉬쉬하고 없는듯 하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차별의 대상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온갖 조롱,멸시,차별의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이렇게 큰 리스크입니다. 

안철수가 호남에게 자신을 적극 지지해 달라고 말하는 건, 이렇게 큰 리스크를 져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될 정도의 액션은 호남에 취해 주고 있습니까? 그 액션이란게 단순히 이희호 여사 찾아가서 차마시고 사진찍고 (녹취록 언론에 흘리고) 그런다고 되는건 아닙니다. 



5. 결국 제 말은 정리해 보면

* 현재 경선룰, 경선 일정은 불합리하고 손학규의 뗑깡이다.
* 그럼에도 안철수가 이걸 받아주는 건  국민의당 헤게모니가 안철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당에게 표를 준 사람들 특히 호남지역 사람들에게 있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다. 
 * 어쩌다보니 지금 손학규가 안철수에 대한 호남지역 거주민들의 불만을 상징하는 존재 처럼 되어버렸다. (천정배 사퇴로 더욱)
 * 호남은 대선에서 "대세론 문제인"대신 안철수를 지지하려면 큰 리스크를 져야 한다.
 * 그 리스크를 지게 하는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라도, 안철수가 굽히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라.   안철수 대선 실패하면, 적어도 국민의당 만큼은 온전히 호남이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뭐 이런 이야기 입니다.

기왕 룰 받는 승부수 걸었는데, 2,3일 후보 늦게 선출하는 거 못받을 것은 또 무었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경선에서 안철수가 이기냐 손학규가 이기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안철수가 당이 본인에게 불리할 요구를 할때, 그걸 받아주겠냐 안받아주겠냐를 보는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호남 대중의 정치적 감각이라면 안철수측에서 중재안을 받으면,  호남지역민들은 손학규 대신 안철수 지지해 줄겁니다.  

박지원 대표가 "중재안이 불합리하지만 안철수가 받아라"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물론 이 글이 제 망상일 확률도 높습니다. 제가 호남 거주민이나 2-3세도 아니고... 그저 제가 아크로/정덕 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얻은 촉으로 쓴 글에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