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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누군가가 질문한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정확한 정보라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동초서초한 글을 모아서 나름대로 짧게 정리했습니다.
움베로트 에코가 쓴 소설[장미이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수도사는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이며 상당히 이성적이고 융통성있는 스콜라 철학자로 등장합니다. 포용력을 갖춘 그는 '소형제회' 라든가 기타 이단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반면 가타리파, 보고밀파에 대해서는 절대로 기독교와 섞일 수 없는 동방의 이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카타리파, 보고밀파의 교리는 당시까지 알려진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아니 어떤 의미에서 반대되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마니교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마니라는 종교창시자가 조로아스터교를 기반으로 만든 이원교리를 지닌 종교입니다. 카타리파는 이 마니교의 교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옵니다.
예컨대 세상을 창조한 신은 선신이 아니라 악신이라는 건데 왜냐하면 이 세상, 물질계 자체가 '악'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이 악한 세계에 '선한 영혼'과 '악한 육체'를 가진 이원론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인간이 이 세계를 벗어나 '선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육체를 부정하고 영혼을 맑게하는 고행을 통해서고 이 물질계를 벗어나 선신이 지배하는 비물질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이 종파의 목적이 됩니다. 카타리파는 따라서 '섹스'도 '육식'도 모두 거부하고 오로지 몸을 깨끗하게 유지해서 정신을 맑게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지게 됩니다. 이건 유대교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 체계인 셈입니다.
심지어 카타리파는 '야훼'는 악신이고 구약은 야훼라는 악신이 만들어낸 악의 역사라고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괴상한 교리'를 인정한다면 로마교황청이 위험해 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죠. 처음에는 여러가지로 회유했지만 카타리파의 기본 입장이 로마교황청, 기종의 세속화된 카톨릭을 비판하는 것이므로 화해는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카타리파가 유행했던 지역인 알비의 카타리파(그래서 알비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는 성직자제도도 거부하였는데 이는 타 지역의 카타리파, 보고밀파의 성직자제도와도 배치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딴지일보에서 파토님이 언젠가 설명한 적이 있는 카타리파는 엄격하게는 이 알비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나중에는 알비십자군이 구성되어서 비참한 살육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들의 탄압은 나중에 성당기사단의 탄압으로도 이어지는데 당시 카타리파의 수장은 성당기사단의 수장이기도 했다는 거죠. 그리고 흔히 성당기사단의 보물로 알려진 그 '어떤 보물'은 '카타리파의 보물'과 같은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다빈치코드의 원전이 된 '성혈과 성배'를 보면 이 카타리파의 보물이야 말로 막달라마리아의 유골과 예수의 족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부 프리메이슨은 이 카타리파야말로 비전을 제대로 이해한 집단이고 이 집단과 성당기사단을 통해 프리메이슨의 비전이 지금까지 전수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종교사가들은 동방의 종교가 기원을 알 수없는 신비주의교파인 마기교에서 조로아스터교가 탄생했고 다시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와 카톨릭의 설립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에 이들로부터 마니교, 카타리, 보고밀파가 나타났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대 유대교는 마기교와 공존하고 있었고 상호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마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기교도들의 성지를 현대 기독교에서 구약의 위인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다니엘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구약시대(역사적으로 구약시기의)의 유대교는 현대에 우리가 아는 유대교와 매우 달랐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일단 보고밀파와 카타리파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 하겠습니다.
추가 : 마기교와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구약시대 가나안지역과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종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대표적인 종교는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종교인 마기교, 그리고 마기교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 올라 마기교를 물리친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현대의 유대교로 발전한 유대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래 페르시아 시대에 번성한 종교는 이 지역의 고대 종교인 마기교였습니다. 마기교의 기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메르 기원의 신들을 받들든 시기부터 존재했던 종교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기교는 키루스 2세 때에는 거의 국교수준으로 올라섰고 마기교 사제들은 인도에에서의 브라만계급처럼 특권층이 됩니다. 그러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원정을 떠난 사 이 마기교 사제 가우마타가 왕권을 찬탈하였다가 실정한 후 마기교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기교의 다소 괴상한 교리(선신과 악신, 선과 악을 동등하게 취급하는)를 선악의 이원론으로 단순화한 조로아스터교가 득세하기 시작하죠.
결국 마기교와 조로아스터교는 거의 같은 기원을 가진 종교이므로 카톨릭과 개신교와 같은 관계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러니 메디아의 수도 엑바타나는 이 두 종교의 공통의 성지가 됩니다. 예루살렘이 세 동방종교의 공통의 성지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그런데 이 엑바타나에는 구약의 다니엘이 세운 탑, 주로 왕들의 묘지로 기능하는 성스러운 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니엘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에 대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예수의 일차 사료를 쓴 것으로 알려 졌으나 추후 후대의 위작으로 판명된 유명한 인물이죠)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훌륭하게 지어졌으며 오늘날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마치 최근에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 탑 안에는 메디아, 페르시아, 파르티아의 왕들이 묻혀 있다. 이 건축물을 보호할 임무는 유대인 사제에게 맡겨 졌는데, 지금까지도 지켜져 오고 있다.]
다니엘의 무덤은 수사(Susa)에 있는데 시아파의 성지가 되어 있어요. 아무튼 참 특이한 일입니다. 다니엘이라는 인물은 마기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개신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인물로 여기고 있거든요. 이런 인물이 또 있나요?
분명한 것은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교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고 마기교, 조로아스터교와 교류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유기교의 사제들은 다른 두 종교의 사제들로부터 동업자 의식 비슷한 존중을 얻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이 세 종교의 기원은 마기교이며 마기교에서 영향을 받아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가 나온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종교와 달리 현재 마기교의 흔적은 거의 사라져버려 과연 마기교가 어떤 종교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네요.

마기교하고 조로아스터교 하고 서로 다른 건가여? 조로아스터교 사제를 마기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소위 동방박사들이 마기였다고 하잖아요.
초대 기독교에서 영지주의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청난 투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마르시온이 대표적이구요. 그리고 이것이 어거스틴의 시대에는 이른바 마니교로 다시 재등장합니다. 어거스틴 자신이 원래 마니교도였기도 했구요.
카타리파나 보고밀파는 나아가 신비주의 색체가 강한 그런 종파 같습니다.
확실한 건 기독교가 지중해 근처에서 세를 얻기 전에는 플라톤 계열의 영지주의 계통과 조로아스터교 계열의 영지주의 계열이 광범위하게 세를 얻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구요. 그런데 바울신학 자체에 이 영지주의 요소도 상당히 있다는 거에요.(나아가 방언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몬타누스주의적인 면도 같이 있어요.) 요한복음 1장의 그 유명한 구절도 과거 유대주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영지주의적 요소이구요.
그런데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이런 영지주의적 요소 자체도 해석을 통해서 다 거세당하게 됩니다. 제가 알기론 어거스틴의 예정론 자체도 바로 이런 영지주의적 해석에 반대하여 신의 절대주권(선악을 뛰어넘는)을 회복하고 그 신의 대리인인 카톨릭 종교왕국의 통치상의 절대권을 확립하려는 목적하에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거스틴의 해석은 그대로 칼빈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서양의 종교적 제국주의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특유의 그 배타성으로 대표되는 이런 교리들은 소위 공의회라는 곳에서 지극히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들이구요.
한가지 첨언하자면 과거 성리학의 배타성이 극에 달했을때 절의 불상의 머리를 베어 버리는 그런 일을 유생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현상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종교가 지극히 배타적으로 변할때는 필히 권력적 속성과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또다른 예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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