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3 (일본의 광개토대왕 비문 조작설)

 

2018.08.30.

 

독도, 간도, 일본군 위안부에 이어 오늘은 광개토대왕비와 관련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설민석이 tvN ‘어쩌다 어른에서 광개토대왕비에 대해 강연한 동영상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병기 교수가 강연하는 동영상을 링크할테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설민석, ‘tvN 어쩌다 어른에서 광개토대왕비 관련 강연 동영상>

https://tv.naver.com/v/1375746

<김병기,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의 광개토대왕비 관련 강연 동영상>

https://tv.naver.com/v/2500803

김병기는 일본이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설민석은 비문의 내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둘다 정작 자신들은 역사적 사실에 난도질을 하면서 일본을 비난하는 짓을 태연히 하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한 방청객들이 이들의 주장에 수긍하고 일본 비난에 맞장구치며 분노하는 장면을 보노라니 안타깝더군요. 이런 국수주의에 쩔어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방송에 내보내는 방송사들도 한심하구요. (jtbc는 김병기의 주장을 방송에 내보냈다가 기경량의 반론에 화들짝 놀래 그 뒤에 기경량을 출연시켜 반론의 기회를 주긴 했습니다.)

방송에 나와 방청객과 시청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려면 적어도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고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의견들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난 후에 카메라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두 사람이 방송에서 강연한 때가 2017년과 2018년이니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인식도 이 정도 수준일 거라 예상됩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요즈음 많이 늘고 있긴 합니다만.

 

이제 본격적으로 광개토대왕비에 어떤 내용이 나와 있는지, 어떤 문구가 논란이 되는지, 설민석과 김병기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왜곡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무얼 잘못 알고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개토대뢍비는 1883년 당시 일본군 중위인 사코우 가게노부(酒勾景信)가 중국 지안 지역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발견하고 그 탁본을 떠 일본에 가져감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이 탁본을 분석한 <회여록>을 내놓으면서 이를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전문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廣開土好太王碑 釋文 飜譯>

http://blog.daum.net/elpaso57/8114021

문제가 되는 비문은 아래의 신묘년조입니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해석: 백잔(백제),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391)에 바다를 건너 백잔, □□,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광개토왕비에 적힌 1775자 가운데 20, ‘신묘년조로 일컫는 위 문구를 근거로 일본 학자들은 왜가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의 백제, □□(가야), 신라를 격파해 신하 된 백성(신민)으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 한반도 남부의 지배권을 두고 북방의 강자이던 고구려와 대립할 정도의 세력이었다고 파악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가 4세기 왜의 한반도 남부 지배설,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1930년대에 정인보, 신채호 등 민족주의 학자들이 반박에 나섰는데, 정인보는 신묘년조의 주어가 아닌 고구려로 보고 아래와 같이 일본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백잔(백제),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왜를) 격파하였다. 백잔이 [왜와 통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하지만 정인보의 해석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해당 구절에 없는 고구려를 주어로 넣어 해석해 한문의 문법이나 해석방식에 있어 억지스러운 것이고 일본측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죠.

 

1970, 재일동포 학자 이진희가 비문 변조설을 들고 나오면서 다시 신묘년조 논쟁은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이진희는 탁본마다 같은 글자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나며, 그 원인이 비면에 발라진 석회 때문이란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근거로 일본의 육군 참모본부가 광개토왕릉비를 변조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진희의 주장에 따르면, 탁본을 최초로 일본에 반입한 사코우 가게노부는 일본 참모본부의 밀정이었으며, 그는 광개토왕비의 이용 가치가 큰 것을 알고 탁본을 직접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본 쪽에 유리하도록신묘년조 기사 등 25글자를 변조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참모본부가 사코우 탁본의 글자 변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비면에 석회를 발라 다시 글자를 조작했으며, 현재 일본에 남은 탁본들은 모두 변조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진희의 주장은 1981년 중국 학자 왕젠췬(王健群)에 의해 간단히 부정되어 버립니다. 왕젠췬은 지안에 머물며 장기간 현지 조사를 진행한 결과, 능비에 석회를 바른 것은 일본인이 아닌 중국인 전문 탁본업자였음을 밝혀냈습니다. 탁본을 팔아 장사를 하던 중국인 초씨 부자가 탁본 작업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울퉁불퉁한 비면 일부에 석회를 발랐을 뿐, 글자 조작 의도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석회를 바르기 이전에 제작한 탁본들이 차례로 확인돼 일본이 입수한 탁본들과 비교하는 작업이 진행됐고, 그 결과 일본 쪽이 신묘년조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지요.

 

그렇다고 4세기 후반 당시 왜가 백제·가야·신라를 격파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광개토왕비의 기록, 신묘년조의 상황이 역사적 사실로 학계의 정설로 인정된 것은 아닙니다. ‘신묘년조에 대한 일본측 해석은 맞지만, ‘신묘년조는 고구려의 자국 중심적, 주관적인 국제질서 인식을 반영한 정치적 선전성격이 강해 전쟁 서술 과정이 반드시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광개토왕비를 쓴 광개토대왕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를 과대 칭송하고, 고구려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뻥을 섞어 비문을 작성했다고 보는 것이 한국 뿐아니라 일본 학계의 대체적 시각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고구려 뿐아니라 고대나 중세 시대 동서양 모두에서 나타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왕국이나 그 이후의 바빌로니아, 레반테 지역의 앗시리아, 히타이트의 점토판 등의 고대 기록이나 이집트 파라오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과 파피루스에도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자국 중심의 과장된 기술은 흔합니다.

일례로 이집트와 히타이트 왕국이 충돌해 싸운 레반트 지역의 카데시 전투에 대해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자신이 세운 라메세움 신전 벽면에 상형문자와 부조로 히타이트를 완전히 압살하고 굴복시킨 것처럼 묘사해 놓았습니다. 반면, 히타이트측은 그 반대로 기술하고 있죠. 역사가들은 양측이 협상해 비긴 것이지만 사실은 람세스 2세가 졌다고 평가합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은 이런데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가 굴복하고 조공을 받친 것처럼 역사에 기록해 놓았지요.

이런 고대의 기록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감안하고 광개토대왕 비문을 해석하면, 고구려는 자신들이 백제를 공격한 명분을 쌓기 위해,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일부러 를 실제 이상으로, 혹은 사실과 다르게 과장해서 강대했거나 한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려 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이는 신묘년조의 바로 앞 구절 백잔(백제),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해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라는 둘째 치고 백제가 고구려에 복속해 조공을 바쳐왔다는 언급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는 신묘년(391)에서 불과 20여 년 전인 370년대에도 고구려를 집요하게 공격했고,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까지 했는데 백제가 고구려의 속국으로 조공을 받쳤다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의 이 구절이 사실일 수가 없지요.

신묘년조 외에 비문 곳곳에는 왜가 상당히 과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구문들이 많습니다. 앞에 광개토대왕 비문 전문이 나오는 블로그를 링크해 놓았으니 클릭해서 다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한일의 역사학계는 광개토대왕비가 일본에 의해 조작, 왜곡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묘년조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또 일본 역사학계도 이 신묘년조가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사학계의 흐름이나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무시한 채, 설민석과 김병기는 일본에 의해 조작되었다거나 비문에도 없는 고구려를 주어로 내세워 고구려가 바다 건너온 왜를 쳐부수었다고 해석합니다. 1930년대 정인보, 1970년대 이진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정인보는 당시가 일제시대라 반일을 위해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했다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수 있지만, 2017년의 설민석은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의 이진희의 주장이 1980년대에 간단히 부정된 사실도 모르고, 일본이 조작했다는 것을 객관적 자료나 합리적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직감으로 파악했다는 김병기를 저렇게 방송에서 떠들도록 하는 방송사(JTBC)는 어찌해야 할까요?

김병기의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연한 일본 조작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설인지는 제가 따로 설명드리지 않고, 이 방송을 보고 반론을 제기했던 기경량의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김병기와 기경량 중 누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경량의 주장>

http://kirang.tistory.com/802

<기경량의 입장>

http://vod.jtbc.joins.com/player/clip/vo10233280

다행히 KBS의 역사교양 프로그램 그날은 김병기나 설민석과 같은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KBS, ‘그날’>

https://youtu.be/8JK8NfAMmgo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설민석이나 김병기와 같은 주장을 해대는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국수적 역사관을 가졌거나 반일감정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인간들이 그렇습니다. 설민석과 같이 대중의 비위를 맞춰 인기를 얻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경량을 비판하는 글>

http://gdlsg.tistory.com/2198

<"광개토대왕비 탁본 비교분석 결과 조작 확실">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7152467&date=20140929&type=1&rankingSectionId=103&rankingSeq=1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사관에 따라 해석은 달리 할 수 있지만 fact 그 자체를 왜곡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도록, 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해 왜곡해서도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