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의 장점의 하나는 굳이 웹써핑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아크로에서 원 포인트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안의 본질을 드려다보는데 있어서 전문적 회계의 지식을 요할까? 그렇다면 그것은 사회적 낭비에 다름아니다.

필요한 것은 문장독해력과 사안의 본질을 드려다보는 능력과 종합적 판단력일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런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삼성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초일류기업이 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다.


도덕적 명제인가? 그런데 이미 삼성은 초일류기업이다. 여기서 더 초일류기업이 되는 것이 지배구조 개선에 있는가? 저렇게 말한 사람은 삼성이 초일류기업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지배구조를 자기집착대로 바꾸기를 원하고 이쁘다고 감상하며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회계적으로 말하면 둘 다 옳다고 본다. 문제가 된 것은 자체 재무제표의 부정이 아니라, 연결재무제표의 처리문제이다. 재량이라고 보는 쪽, 뭐, 적정하게 회계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도 크게 부당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의에 의한 분식회계라고 보는 것도 충분한 근거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비여부를 가리는 근거가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처리해야 하는 의도에 있다고 본다.


삼성의 경영권이 이재용으로 승계되면 안되는가? 나는 그것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본다.

미래가치를 가지고 현재가치를 장악하고, 미래가치의 도전을 담보하는 것이 비시장적인가? 나는 삼성이 그렇게 했다고 추정하는 것에 대하여 불법이라는 분노보다는 천재적인 장사수완이라고 감탄한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재단해야 할 이득이 있는가?


이한상교수의 의도는 회계의 추상같은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그 사람의 허풍이다. 회계기준은 꾸준히 변하고, 편법의 회계기준이 있었다고 해서 회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필연이다라는 것도 없다. 재량은 재량대로 처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바다 위에 뜬 배위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툰다. 그래서 배가 난파하는가? 그냥 배는 계속해서 항해하고,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로 소란을 피우면 다투는 것이다. 물론 그 분란이 치명적으로 배의 침몰로 이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은 단순하지는 않다. 일단 의도된 항해대로 집중하는 자원의 활용은 분산될 것이다.


삼성은 초일류기업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노키아의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한 삼성의 대응은 바이오에의 도전이다. 어느 기업이 2015년도에 5천억원을 투자하여 바이오 생산 3공장을 만들면서 세계 생산량 1위 공장을 세울 투자를 할 수 있는가? 삼성 밖에 없다. 국가가 하랴? 그런 삼성은 무슨 여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삼성전자가 거둔 성과이다. 그래서 미래가치를 가지고 현재가치를 장악하여 지속적인 초일류기업에 도전한다는 삼성의 청사진이 사실이라면, 이는 지극히 시장적이고 모험적이다.


성공여부는 바이오가 반도체처럼 자랄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영권여부의 트집이 아니라, 그것을 재량으로 처리하고, 삼성이 바이오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장여건, 기업여견을 갖추어주는 것이다.


이한상교수의 의도는 무엇인가? 추상같은 회계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은 바이오사업의 모험과 성공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여전히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회계기준의 추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모험에 있는 것이다.


현재가치는 시장과 미래에 대한 모험이지, 해가 다르게 변해가는 회계기준에 무슨 절대성이 있다고 허풍떠는 것이 아니다.


바이오투자 10여년동안의 손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성공하느냐가 관건이고, 핵심은 그런 10여년의 손실의 누적을 하나의 과정으로 요구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삼성전자를 장악하여 바이오를 밀어부쳐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시장적 모험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할지 안할지는 알 수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험도 없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경제 미래의 한 측면이 그 모험의 성공과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