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 다이어트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운동 중독증'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하루에 한시간 이상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음날 극도로 컨디션이 나빠져서 정상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휴무일 날 주로 이용하는 곳은 한강시민공원. 탁 트인 시야를 즐기면서 하는 운동은 별미이죠. 그런데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나요? 운동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운동을 생활화하는 사람들과 자주 대화를 가지는데요.... 대화의 주제는 대게 '건강'. 나보다 스무살은 연배인 할아버님의 경우, 내가 아직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10KM 단축마라톤에 매년 참가하시면서 올해는 기록이 좀 단축되어야 할텐데...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하시죠.


그런데 운동을 주제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면 이내 우울한 이야기인 '죽음'으로 이야기 주제가 옮겨가죠. 그리고 이구동성 하는 말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죽어야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텐데...."


오복 중에 으뜸이 장수인데 오래 살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릴 때 친구 할머님의 죽음이 생각납니다. 친구 할머님은 매우 정정하셨는데 하루는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에게 '친구와 잘 놀아라. 나는 낮잠 좀 잘께'라고 하시면서 방으로 들어가셨죠. 그런데 친구 집 뜰에서 한참을 놀았는데도 친구 할머님이 기척을 하지 않으시는겁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친구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다음날 등교해서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흔히 '호상'이라고 불리우는 건강하게 사시던 노인들이 잠을 주무시다가 그대로 영면하신 일화를 많이 듣는데요.... '건강하게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깨끗하게 죽어야 한다'라는 우울한 이야기가 공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죽을까?'라는, 아직은 멀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되니 '깨끗하게 죽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죽는 것'을 택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호주의 과학자인 데이비드 구달은 올해 104세. 그는 여전히 건강했지만 '깨끗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선택했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인 '환희의 송가'를 듣고 영면을 했다네요.


글쎄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우리 속담에 있듯 우리 조상들은, 좋개 이야기하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나쁘게 이야기하면 삶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 것인데요..... 우리나라도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이렇게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많을까요?


안락사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그리고 안락사가 허용되어 '깨끗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있어도 한국은 외국의 경우와는 다르게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것이라는게 내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안락사가 허용되어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 아니라 살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지치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일종의 강요된 선택'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세계의 몇몇 나라에서 허용된 '안락사'. 그 안락사가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었을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문화로 정착이 될까요?


한국의 경우, 올해부터 존엄사법이 실행되는데 존엄사법은 '생명장치에 의하여만 생명이 연장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생명장치 제거를 허용하는 것에 국환하고 있죠. 이 법이 시행되게 된 이유는 2009년 대법원 판례.


대한민국 형사소송빕 제252조 2항에는 방조에 의한 자살도 사법 처리 대상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상기한 '생명장치에 의하여 생명이 연장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생명 연장의 의무가 있다'라는 것이죠.

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등) ①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이 법 조항이 대법원 2009년 판결에 의하여 '생명장치에 의하여만 생명이 연장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생명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즉, 특별한 경우에는 안락사를 허용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올해부터 '존엄사'를 허용한 것이고요.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거등][공2009상,849]

【판결요지】 중 [2]항

[2] [다수의견] (가)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이하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 한다)에 이루어지는 진료행위(이하 ‘연명치료’라 한다)는,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치료에 불과하므로, 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와는 다른 기준으로 진료중단 허용 가능성을 판단하여야 한다.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되므로, 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여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 한편,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주치의의 소견뿐 아니라 사실조회, 진료기록 감정 등에 나타난 다른 전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판결 전문은 여기를 클릭)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특수한 상황인 경우에)안락사를 허용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경우'인데 이 판결로 미루어본다면 '병들어서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쳐야 하는 상황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을 한국의 법조계에서는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마도,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자살을 택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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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나 가야겠네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