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 (고야스 노부쿠니, 김석근 역 , 역사비평사, 2007)

 
메이시 유신기의 대표적인 일본 계몽사상사,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표작 '문명론의 개략'을 읽고 해설한 책입니다.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사항부터 말합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마루야마 마사오가 쓴 '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독자가 이미 읽어 봤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그 내용을 전개시킵니다. 본문 도처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 독해를 인용, 거론하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목만 봐도 이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문명론의 개략을 마루야마처럼 그냥 안이하게 읽는게 아니라 '정밀하게' 읽겠다는 점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을 읽고나서 이 책을 집어들기를 권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처럼 본문 중간중간 헤메거나 대충 읽고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유감스러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뿐만 아니라 '문명론의 개략' 책 자체를 읽은 후에 노부쿠니의 설명을 듣는다면 더 좋겠지요.  


 이 책을 집어들 정도의 독자라면 대개 후쿠자와 유키치가 어떤 인물인지 약간의 사전정보는 가지고 있을 겁니다. 국내에서는 일본 근대기의 계몽 사상가이자 악명(?) 높은 '탈아론'을 주장한 인물, 일본 우익의 원류 정도로 알려져 있죠. 김옥균 등 조선 말기 국내 급진 개화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었다는 사실이나 일본 화폐권에 나오고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위인의 하나라는 점도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노부쿠니가 그리는 후쿠자와의 모습은 근대 일본의 초국가주의의 원류와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후쿠자와가 일본 국민 만들기와 서구식 제도와 기술의 도입을 통한 부국강병추구 노선을 주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천황제를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쿠니에 따르면) 후쿠자와를 천황제 국가의 신봉자라고 볼 순 없습니다. 노부쿠니의 통해 보여지는 후쿠자와는 서구 열강의 위협에 절치부심하며 일본이라는 나라의 독립과 생존, 발전의 방안을 모색하는 현실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천황제를 인정하는 후쿠자와의 입장 역시 딱히 천황이 국가이 정치/종교적 수장으로서 절대권력을 누려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기왕에' 메이시 유신이 왕정복고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시작된 운동이고 이제 와서 이를 되돌리긴 불가능하니 만큼, 일본의 근대화, 문명화에 걸리적거리지만 않는다면 천황제 자체를 굳이 반대하며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다는, 바꿔 말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의 상황에 따른 현실주의, 실용주의적 사고에 가깝습니다. 요컨데 후쿠자와는 정체의 선택 문제를 서구적 문명화(근대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수단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노부쿠니에 따르면, 문명론의 개략은 출간된 1875년 당시 일본이 차후 채택해야할 정체를 둘러싸고 각 세력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투쟁하는 상황에서 천황제 절대주의 국가를 추구한 이른바 '국체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후쿠자와가 행한 사상투쟁의 일환으로 태어난 저서입니다. 후쿠자와 입장에선 유감스럽게도, 이후의 일본 역사는 이들 '국체론자'들이 대세를 점하고 후쿠자와의 우려대로 훗날 태평양 전쟁 패전이라는 비참한 종국을 맞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쿠자와가 이들 천황제 국가주의자들보다 더 평화(?)스럽고 온건한 신조를 가졌냐면 그건 아닙니다. 19세기 당시의 제국주의 질서를 주어진 대세로서, 국익을 위한 전쟁을 당연시합니다. 천황제 국가주의를 주장한 국체론자에 대한 후쿠자와의 반대는 단지 그와 같은 길을 걸어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당시 서구 제국주의 국가와 같은 반열로 올라가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위용을 떨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나름의 정세 판단, 즉 일본이 갈 길은 복고주의가 아닌 철저한 영미식, 또는 서유럽식 문명화(이는 물론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도 포함됩니다. 후쿠자와가 보기엔 식민지 침략 역시 '문명' 행위입니다)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뿐입니다. 


 문명론의 개략을 통한 후쿠자와의 사고관을 일단 이해하면 왜 10년 후 '탈아론'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쉽게 납득이 갑니다. 피부에 딱 와닿을 정도라고 할까요. 탈아론은 문명론의 개략에서 명시된 후쿠자와의 '국가,국민 만들기-근대화' 방안의 논리적 귀결에 가깝습니다. 

 
 뱀꼬리  : 노부쿠니의 각주를 보면 '자유', '권리', '연설'이란 번역어를 고안한게 바로 후쿠자와라고 합니다. 철학이란 용어는 문명론의 개략이 출간된 1875년의 1년 전인 1874년 니시 아마네가 처음 쓰기 시작합니다. 1881년 경이 되면 '윤리학' '형이상학' 등과 함께 번역어로 정착됩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경쟁'이란 번역어휘를 고안한 장본인도 역시 후쿠자와입니다. 이를 국내에 도입시킨 자는 유길준. 박노자가 쓴 책 중 어딘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지금 그 제목이 기억나지 않네요). 

 




2.  1Q84 1권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역, 문학동네, 2009) 


 우선 1권까지 읽었습니다. 속도감 있게 잘 읽힙니다. 문학성, 문학적 성취는 제가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제쳐두고, 소설적 재미만 얘기하면 '태엽감는 새'나 '해변의 카프카'보다 낫습니다. 이건 어느정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 작품 가운데 제가 제일로 쳐온 소설이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고 이후 하루키가 이와 맞먹거나 뛰어넘는 작품을 쓰지 못하리라 여겼왔습니다만, 이번에 나온 1Q84와 비교하면 어느 작품이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조금은 고민될 정돕니다. 일단 완결판까지 다 읽고 평가할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은 소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하루키 소설도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1Q84도 마찬가진데, 제 경우엔 이 소설을 '일본 전후 시대에 관한 사회풍자'와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가 직조된 소설로 즐기고 있습니다. 좀 무리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유사종교집단 선구의 이야기는 천황제 하의 일본인, 일본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힐 여지도 다소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인공 덴고와는 기질상 대척점에서 서 있고 또 갈등을 겪었던 덴고의 부친이 'NHK' 라디오 요금 수금원이었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하루키가 전후 일본사회, 일본시민들에 체질적인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나름대로 작품에 반영하려고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것이 문학적 성취라는 기준에 볼 때 성공적인가 여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넘깁니다. 


 이번 소설을 좌파성향이  강한 소설로 읽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읽기입니다. 인간의 산물에 불과한 시스템에 도리어 상처받고 억압당하는 개인들, 이건 맑스주의의 '인간소외론'과 맞닻아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소외는 맑스 자신이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말하는 그 소외의 개념과는 다르고, 오히려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비판하며 젊은 맑스(young Marx)를 강조했던 유럽 신좌파의 인간소외론, 문화론적 소외이론과 친연성이 훨씬 더 강합니다. 따라서 이번 소설은 (적어도 1권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관점에 따라선 좀 좌빨스러운, 혹은 진보신당스러운 세계관에 일정 부분 통하는 면이 있는 작품으로 풀이할 여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