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와 물리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 한 마리를 보았다. 

천문학자가 말하기를 "그것 참 신기하군. 스코틀랜드 양들은 죄 다 검은색이잖아?" 이 말을 듣고 있던 물리학자가 천문학자의 말을 반박하여 "그게 아니야. 스코틀랜드산 양들 중에서 일부만이 검은색이라고 말해야지." 이들의 말이 한심하다는 듯 수학자는 하늘을 잠시 쳐다본 뒤, "자네들은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린거야. 스코틀랜드에는 적어도 몸의 한쪽 면 이상의 면적에 검은 털이 나 있는 양이 적어도 한 마리 이상 방목되고 있는 들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이래야 말이 되는 거라구!"
(Ian Stewart, 「현대수학의 개념」)


천문학자는 관측하는 객체에 다가갈 수 없다. 관측은 가설을 낳고 가설은 검증을 거치더라도 여전히 불완전하다. 만일 인간이 관측 대상과 접촉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더 이상 천문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달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천문학이 아니며 지질학으로 소속이 변경된 소이이다.

반면 물리학은 관측 대상에 접근하며, 통제된 실험을 이용하여 이론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실험은 반드시 재현성이 있어야만 인정받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와서 보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만 한다. 에테르 가설은 이천 수백년 동안 믿어졌지만, 마이켈슨-몰리의 실험 한 방에 무너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이켈슨이나 몰리보다 덜 유명하겠는가? 그렇지 않지만 누구든지 동일 조건의 실험을 행하면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기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밟힘을 당하였다. 실험 결과가 이만저만한데 이론이 맞지 않는다면, 실험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이론이 틀린 것이다.

수학은 아예 순수한 뇌내의 영역이므로, 천문학과도 다르고 물리학과도 다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너무 많기때문에 생략한다. 다만 지금은 수학, 특히 해석학이 동서양의 달라진 운명의 기원이었다고 말함으로 충분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아크로에서의 토론은 과연 어디에 해당하겠는가?

여기서 트럼프, 재인이, 정은이에 대하여 아무리 갑론을박한다 할지라도; 아크로에 글 쓰는 이들이 트럼프, 재인이, 정은이의 발 그림자 근처에라도 접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들 내심의 고급하고 기밀한 정보이겠는가.

결국 본회원을 비롯하여 우리는 모두 천문학자가 별을 관찰하듯이, 그들에 대한 불완전한 관측을 토대로 불완전한 추론을 행하고 불완전한 결론을 내릴 뿐이다. 세제곱된 '불완전함'이다.

천문학이 무가치한 학문이 아니듯이 우리의 결론 또한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토론이 이어진다. 그러나 적어도 토론을 하려면 그 대상에 관하여는 합의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5410249&mid=free&comment_srl=5410642
에서 토인(土人)을 말하기 위하여, 인(人)과 민(民)이 어떻게 다른 단어인지를 설명하였다. 그랬다면 "갑골문과 금문의 시대에는 그랬는지 모르나, 그후 아무 시대부터는 뜻이 전화되어 이러저러하게 되었다."는 반박이 있을 줄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기대는 일단 실망으로 끝날 듯 싶다.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장수(將帥)를 잡으려면 먼저 말(馬)을 쏘라."

말(馬)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