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종대의원이 이국종 응급의가 북한군 병사의 인격에 테러를 가했다며 환자 정보인 기생충 감염과 장내 분변을 공개했다는 점을 들었다. 김종대에 대한 비난의 물결이 솟구치고 있으니 거기에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나로선 정말 의아했던 점은 '기생충 감염'과 '장내 분변'이 왜 그 병사의 인격에 '테러'라는 표현을 쓸만큼 모욕적인가라는 점이다. 김종대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에이즈 감염 환자의 정보가 공개되며 벌어진 예를 드는데, 에이즈와 기생충 감염은 차원이 다르다. 가령 에이즈를 비롯한 성병은 환자의 과거 및 사생활에 대한 도덕적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조현병은 환자 자신의 사생활과 무관하지만 안전을 위협한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기생충 감염은? 장내 분변은? 아니 세상에 똥없는 사람 있나? 그리고 기생충 감염이 불치병은 그만두고 난치병 수준이기라도 하나?

어린 시절 기생충 감염 사례를 워낙 익숙하게 봐서였는지는 몰라도 난 북한군 병사가 불결하다는 느낌 조차 갖지 못했다. 그냥 '어이구 나라 잘못 만나 저 젊은이가 뭔 고생이래, 내 비록 김정은은 미워 죽겠지만 북한에 구충제라도 보내야 하는거 아닌가' 정도의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을 수록 쓸데없이 남 생각하는 내 고질병이 발동하여 나름 생각해보니 아예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한번 똥과 기생충의 이미지를 상상해보시라. 배 안에 가득한 똥 위로 우글거리는 기생충들(무려 길이가 20Cm래!)... 그런 분야로 재주있는 영화 감독이라면 모든 관객들을 구토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그래놓고 슬쩍 북한군 병사의 얼굴을 보여주면? 이쯤 상상해보니 김종대도 아주 이해가 안되진 않더라는 거다. 참 국회의원이 내 세금 받아 쳐먹고 할 일 더럽게 없네...라는 욕이 더 생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기생충과 분변의 실재가 어떤지는 상관없이 이 이미지란 놈이 보통이 아닌건 맞다. 옛날에 읽은 언어학을 대충 대입해보면 이렇다. 흔히 말하는 기표와 기의, 지시대상의 관계는, 아주 추상적으론 지시대상에 기반하여 기의가 형성되고 기표는 기의를 표상할 뿐이지만 현실에선 기표는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가지고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 독립성과 자율성은 인간들 사이에서 형성된 기표의 이미지에 기반한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예가 바로 자X,보X다. (여기서 그러면 그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둘러싼 의문이 생길 텐데 거기서부턴 후기 구조주의와 푸코로 넘어간다. 여기까지만....스탑!)

자X, 보X...이 네 글자를 보며 뭘 떠올리시는가? 거참 알쏭달쏭한 단어일세...라고 내숭떠는 분들은 없을 거다. 아무튼 저 차마 제대로 표기 못한 저 단어들의 원형과 남성 성기, 여성 성기를 비교해보시라. 전자는 걸핏하면 금칙어인데 후자는 나름 고급스런 이미지다. 아마도 학술 서적에선 대부분 후자로 표기할 거다.

그런데 우리 생각 좀 해보자. 전자든 후자든 가리키는 대상은 같다. 왜 이리 대접이 다른가? 그게 바로 이미지의 힘이다. 아무리 지시대상과 기의가 같더라도 전자와 후자의 기표는 완전히 다르게 취급된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럴까? 가령 자x, 보x를 대하는 태도는 모두 똑같아야할까?

어떤 여성들은 자x, 보X 단어를 보는 순간 성희롱이란 단어부터 떠올릴 거다. 그 여성들에게 '왜 남성 성기, 여성 성기란 단어와 같은 의미인데 왜 그러세요?'라 묻는건 바보같은 질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경우 자x,보x란 단어가 그렇게 쓰여왔기 때문이다. 언어란 원래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므로 그런 여성들에겐 당연히 그런 단어를 쓰면 안된다.

그런데 내가 제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위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가치관이나 언어 습관에 따라 어떤 사람들에겐 이러한 이런 일반적인 상황이 잘못되었으며 요즘 유행 표현으론 적폐일 수도 있다. 

당장 순우리말 쓰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의 일반론은 모화와 사대주의가 지배해온 우리 역사에서 우리 말이 얼마나 차별받아왔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다. 같은 지시 대상을 갖는 단어임에도 왜 성기는 대접받고 자x,보x는 이리 천대받는가라 분통터트릴 수도 있을 거다. 이게 아주 어처구니없는 말은 아니다. 학술 용어로 갈 수록 한자어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그게 대체할 우리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자x, 보x처럼 있어도 그러하다. 그러니 굴욕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선 남자 성기, 여자 성기보다 자x,보x를 써야 되지 않을까?

사실 위의 주장에 대해 난 이해하지만 동의하진 않는다. 국제적 지배어인 영어에서도 순수한 영어 단어와 프랑스나 라틴어 어원에 기반한 단어 사이의 대접을 보면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급적 우리 말을 살려쓰면 좋긴 하겠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언어 생활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위보다 더 흥미로운 사례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그 페미니스트들은 적극적으로 자x, 보x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놀랍지 않은가? 많은 여성들이 그 단어에 성희롱부터 떠올리는데? 그런데 곰곰히 들어보면 아주 매력적인 주장이다. 그 페미니스트들에 따르면 성에 대한 신비화와 특권화는 남성들이 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했다. 음탕하다며 피아노 다리에 천을 씌운 것처럼 그러한 신비화와 은폐는 언어 생활에서도 이뤄졌다. 즉, 성에 대한 공평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금기시하여 여성들의 성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그 결과 자x,보x와 같은 일상언어는, 마초적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고 여성들에겐 여성 성기, 남성 성기와 같은, 일상과 거리가 있는 단어만 사용하도록 허용된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 페미니스트들은 자x,보x 단어를 지금처럼 쓰자는 뜻이 아니다. 가령 여성을 보x라 표현하는 건 여전히 안될 짓이다. 그건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지시 대상을 잘못 지시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시 대상을 정확히 표현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의미다. 이건 상상해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주 아릿땁고 청초한 젊은 여성이 어느날 남성 상사에게 '어제 제 애인과 잤는데 그 애 자x에서 냄새나서 힘들었어요. 남자들은 왜 그래요? 그건 매너예요.'라는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대개의 남성 상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거 내가 성희롱 당하고 있는거 아닐까?' 혹은 '얘가 날 얼마나 만만하게 보길래 이러나', 아마 플레이보이끼 있는 남성은 '내가 그렇게 남자로서 매력이 없나?' 고민할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이 뭐 나쁜가? 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이렇게 지시 대상을 정확히 함으로서, 지금까지의 성 담론에 대한 억압을 없애고 여성 또한 성담론의 생산자로서 당당하게 서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생각해보면 자x,보x에 대해 일반인의 관념과 다른 이미지를 소유한 계층이나 사람의 예는 많을 것이다. 가령 성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의학 전공자들이나 수의학 전공자들은 또 다를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긴 자신이 생각하는 언어의 이미지를 절대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이나 일반적인 경우를 무시활 수는 없지만 '일반' 혹은 '역사'의 이름으로 절대화해버리면 그 만큼 당장 타인의 사상이나 창작의 자유는 억압된다. 원래 모든 사상이나 창작은 기존의 언어 관습을 비틀거나 전복하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당시 벌어졌던 '미쓰박' 사건이 대표적이다. 어떤 여성들에겐 미쓰란 단어는 여성 비하의 의미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여성들도 많았다. 어떤 여성들에게 미쓰는 사어화된 단어로 촌스러운 구세대를 표상하는 이미지였고 또 어떤 여성들에겐 디제이디오시의 하위문화를 드러내는 표식이었을 뿐이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항의하는 것까지야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여성들도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을 함부로 낙인찍는 행위는 자제했어야 한다.

먼길 돌아왔는데 김종대의 잘못은 이것이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들어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시점에 대해선 좀 더 사려깊었으면 하지만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분변과 기생충에 대해 자신과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인격에 대한 테러'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다양한 계층과 주장을 들어야하는 정치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김종대는 사실 변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의사들보다도 개인정보보호에 대해 비전문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김종대의 해명에서 특히 거슬렸던 부분은 '성찰'이란 단어다. 성찰을 뜻하는 reflection의 철학적 의미는 원래 타인이나 지시 대상에 자신(또는 자신의 생각)을 투영한 뒤 되돌아온 결과에 대해 검토함을 뜻한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거울에 비춘 자신을 찬찬히 대상화하여 관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찰은 본래 타인에게 요구함에 앞서 자신을 먼저 되짚어봐야 한다는 점이 전제다. 안타깝게도 난 김종대의 해명에서 자신을 되짚어보는 어떤 구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에게 '성찰'은 남에게 요구하는 단어일 뿐이다. 이런 경우 성찰은 그 본래적 의미를 잃고 타인에게 자신을 절대적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폭력이 된다. 이렇게 언어는 왜곡된다.  

ps - 오랜만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