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신(湖南精神)  


   출생지역이나 피부색으로 인한 지역과 민족 간의 자만과 멸시는 분명 사회적 질병이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범죄이다. 예컨대 지역감정중 어느 지방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어느 지방에서 태어나게 하는 하늘을 멸시하는 죄인 것이다. 백인이 만약 흑인을 무시한다면 흑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무시한 죄이다. 그리고 자기 힘이나 노력, 실력으로 백인이 된 것이 아닌데 자기 힘으로 백인된 것처럼 혈통이나 혈색 혹은 출신지 때문에 뻐기며 유색인종이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다. 어디서 태어나든, 어떤 혈색을 가졌던 상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보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어느 지방이든 민족이든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보편적 사실이다. 

상기한 기본적인 준거(準據)의 틀’(frame of reference)에서 호남 정신을 살펴본다. 

적지 않은 역사학자나 문화인류학 전공자들이 호남인들의 특질을 분석한 것을 기초로 지면상 세가지 호남정신을 정리한다면

첫째는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상대적으로 산이 적고 넓은 호남평야를 보고 성장하는 호남인들은 개방성이 강하고 노래와 판소리를 좋아하며 평화를 구가하는 지역민의 특색이 정신으로 굳어갔다. 농경사회에서 부유층이 많았다. 호남은 곡창지대가 많다. 보릿고개 때 호남에 식량 구하러 타지 사람들이 모였는데 특히 산악 지형이었던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타지는 쪽박 깨는데 정이 많은 호남사람들은 식량 나눠 줘서 호남으로 많이 왔다고 한다.

 

이 호남인의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은 평화를 깨는 불의 앞에는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는 정신이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호남정신의 특징은 탁상공론을 지양하고 실천성향이 강한 호남쪽 성리학 특성이 가미되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호남인들의 특징 혹은 정신이 혼합되어 호남정신을 만들어 온 것이다.

 

왜란과 호란의 국가적 국란에 대처하는 모습이 타지역민에 비해 불요불굴(不撓不屈) 의병봉기와 국가에 대한 충절이 뚜렷이 드러난다. 나종우 교수는 조선전기의 호남 성리학의 특징이 절의 정신과 실천정신을 기초하여 성립되고 그것이 국난을 당하여 구국 의병으로 표출되었다면 조선후기에 와서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는 의리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호남 지역에 있어서 하나의 실학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남 실학은 현실적인 모순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타계하려 하였기 때문에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의 저항으로 발전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 교수는 계속해서 주장하길 외적침입에 항거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었지 호남인만이 행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호남 의병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첫째, 재야 지도층인 의병장들이 생명과 재산을 모두 내놓고 국가의 위기를 구하려고 한 점 

둘째, 향토뿐만 아니라 국토를 생각한 점(임란의 3대첩 모두가 호남인이 싸운 전투)을 들 수 있다. 임란당시 삼도수군통제사겸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이 若無 湖南이면 是無國家라 한것도 군량미 같은 곡식 때문이 아니고 호남인의 충전기상을 말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서 사회 모순과 불의가 드러났을 때 날카로운 비판과 개혁논리로써 본연의 지성적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호남의 의병과 실학사상은 융합되었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대일 저항 운동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호남의 정신은 일제 강점기때 광주학생독립운동(光州學生獨立運動)으로 이어졌다.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1929113일부터 광주시내에서 일어난 일본 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으로 일어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간 충돌과 11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운동을 거쳐, 한편으로는 호남지역 일대로 확산되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을 거쳐서 전국 가지로 확산된 항일운동으로 192911월 말에서 19303월이나 5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을 말한다. 12월에는 경성과 평양, 함경도 등지와 같은 국내 지역과 만주벌에 위치한 간도 등으로 확산되었고, 19305월까지 전국적인 동맹휴학, 학생 항일 시위로 변모, 발전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은 항일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과 자랑스런 호남정신

다시 쓴 한국현대사의 저자인 강만길은 그의 책 P369에서 광주 항쟁은 조선왕조시대의 갑오광주항쟁은 조선왕조시대의 갑오농민전쟁 & 호남의병전쟁과 일제식민지시대의 광주학생운동 및 815후의 각종 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통, 박정희정권 말기의 중화학공업 과잉투자 등으로 인한 경제적 침체, 특히 박정희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 조장, 경제개발과정에서의 호남지방의 상대적 낙후,’유신독재체제 이래 ‘YH사건’ ‘부마항쟁’ ‘서울의 봄으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의 고조,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의 정권장악을 위한 계엄확대 및 김대중 체포에 대한 반대, 정권장악에 나선 신군부의 힘의 과시를 위한 학생시위 과잉진압 등의 원인이 겹쳐 터진 민중항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근대정치사를 살펴 볼 때 처음으로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사용한 사람이 박정희이다. 호남과 비호남의 프레임으로 성공했지만 한국사회에 치유되기 힘든 국론분열과 깊은 사회적인 상처를 남겼다. 홀대와 소외 속에서도 호남인은 끝내 호남정신으로 똘똘 뭉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물론 전라도에 태어났다고 해서 다 호남정신을 유전적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호남정신 곧 호남의 혼()이 없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호남사람이 아닌 것이다. 어느 지역민이든 그 지역의 조상과 선배들이 남긴 소중한 전통과 정신은 계승할 가치가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호남정신을 자랑하고 뻐기는데 쓰는 교만을 경계하고 잘 계승할 뿐 아니라 발전시켜 오늘의 한반도 위기에서도 빛을 발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By:전투와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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